겨울이 온다. 두터워지는 사람들의 옷깃에서, 차가워진 공기에서뿐만 아니라 그냥 지나칠 뻔 했던 내 발길을 잡아세운 광고판에서도 겨울은 온다.
[2019 디자인 다이어리. 나의 하루, 나의 일년, 나의 기록]
겨울하면 연말과 신년이 있고, 다이어리가 빠질 수 없다. 다이어리 광고가 나오기 시작하는 걸 보면서 아, 정말 겨울이 오는구나, 하고 다시금 느꼈다.
지난 한 주간은 나에게 아주 힘든 주간이었는데, 사실 오늘까지 딱 3주동안 정말 '죽어라' 힘든 기간이었다. 물론 앞으로도 할 일이야 항상 쌓이고 쌓였지만, 그래도 이제 좀 낫겠지, 하고 한숨 돌리는 찰나, 겨울이 와 버렸네. 어쩜 이렇게 시간이 빠른지, 가슴이 저며온다. 난 뭘 한 거지, 하면서.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건 겨울이 달갑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이럴 땐 피아프의 Milord 같은 걸 들으면서 감정 진자의 템포를 조절해야 한다.
어제는 느지막히 일어나서 느지막히 카페를 갔다가 느지막히 호프집에서 웰치스를 마시고는 느지막히 잠들었다. 엄청난 악몽에 시달리면서. 겨울이 오는 걸 느꼈나보다. 원래 나는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호사스럽게 카페에서 공부하다가 저녁을 먹고 다른 카페로 가서 또 공부를 했는데, 카페들이 다 예쁘고 분위기가 좋아서 만족스러웠다. 또 나와 함께 해준 나의 소중한 벗이 있기에 비교적 편안하게 집중해서 일을 할 수 있었다.
위 사진은 두 번째로 방문했던 카페인 Cafe Grasse 카페 그라쎄 라는 곳인데, 식사도 파는 것 같았지만 8시경에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식사하는 손님은 없었다. 카페의 따뜻하면서도 왠지 고풍스러운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지만, 40년대 풍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그 공기가 날 완전히 녹여버렸다. 아코디언 소리와 피아노 소리, 이국적인 낱말들이 날 붙잡고 녹여서 바닥까지 닿게 만들었다. 약간 노이즈가 들리는 마이크에 대고 부르는 날 것의 목소리들.
그래서 나는 바닥에 녹아 엉겨붙어있는 나를 일으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D와 호프집에 손도대지 않을 오징어를 시켜놓고 웰치스를 마시기 위한 약속을 잡아야 했던 것이다. 나는 자주 D의 말을 따라가지 못해서 의미없는 미소를 짓거나 아무말이나 대거리를 해대지만 어찌저찌 우리의 대화는 죽이 맞는 편이다. 길게 우회하는 시골길 같은 우리의 대화는 자정이 다가오면서 끝을 맺어야 했고, 어정쩡하게 매듭짓다 말아버린 리본같은 모습으로 남았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택시를 앞에두고 D와 나는 작별인사로 깊은 포옹을 나눴다. 따뜻했다. 날씨가 춥구나, 하고 생각했다. 겨울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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