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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9/18 20:10:08
Name 생각안나
Subject [일반] 5억년짜리 버튼으로 씨부려보는 잡스런 이야기 (수정됨)
밑에글에 댓글로 적어놨다가 왠지 댓글로만 남기기엔 괜시리 아쉬워서 따로 글을 하나 써보기로 했습니다.
같은 주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글을 팠는데 문제가 된다면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참고로 만화 몬스터 결말 스포 있습니다.



우선 밑에글의 사고실험을 간단히 비유해보자면


'100만엔 줄 테니까 1초 동안 5억년짜리 꿈 한번 꿔볼래? 대신 꿈을 꿨는지조차 못 느끼도록 기억 완전 삭제 시켜줌.'


이렇게 바꿔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헌데 이게 자아를 가졌다고 착각하는 개인으로서의 인간에게는 감이 안 잡히는 이야기라 좀 공허한 얘기처럼 들렸거든요.
해서 그 공허함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어 이렇게 글을 따로 하나 파보게 됐네요.

하여튼 이 사고실험이 솔직히 듣는 입장에서는 좀 황당하거든요.
5억년짜리 경험을 실제라 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실제가 아니라 치기도 어려우니까요.
개인적으로 이 사고실험의 철학적 결론은 현실도 마찬가지 같더라~ 같은 얘기로 귀결된다 보는데,
이 실험이 양자택일이라 다소 우화적이긴 해도 어쨌든 현실적인 행동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인식 체계 한계상
이래도 뭔가 이상하고 저래도 뭔가 이상하고 xx 뭐 어쩌라는 건지, 라는 현실적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 뭐 그런 얘기가 아닌가 싶더라는 거죠.
불교는 잘 모르겠지만 무아라느니 공이라느니 그쪽에서 아무리 그렇게 떠들어봤자 그게 그런 줄은 알겠다만
그래서 아 어쩌라고~ 같은 생각이 들게 되는 그런 공허한 얘기랑 본 사고실험이 비슷한 것 같더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저 같은 범인의 마음을 잘 보여주는 게 구운몽 같은 환몽구조의 고전소설들이라 생각하는데,
잘 보면 해탈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세속적 원리와 초월적 원리에 번갈아 이끌려가는 인간 욕망의 이동을 잘 그려낸 소설들 아닌가 싶더군요.
(작가가 의도했든 아니든)
속세가 덧없고 자아가 덧없다는 걸 알면서도 속세를 바라고 또 자아를 바라게 되는 욕망의 이동과 몽중몽 혹은 환몽의 구조를 통해 다시 자아를 초월하고자 하는 욕망의 회귀를 보여주죠.

저는 이게 일종의 이중사고라고 보는데요.
자아가 없다는 걸 알고 주체가 없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느끼고야 마는 인간의 이중적인 존재 인식을 보여준다는 거죠. 어떻게 보면 사람의 모든 내외적 작용들은 이러한 이중사고로 채워져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영화라는 매체가 문화활동 중에서는 그 정점에 있지 않나 싶구요. 한낱 픽션 영상인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영화를 보는 그 잠깐 동안만큼은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실제라 느끼죠. 아무리 비판적이고 엄격한 사람이라도 자연스러운 감상 상태에서는 순간순간의 몰입을 통제할 순 없을 겁니다. 이건 뭐 거의 부처님이나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싶네요.

이러한 이중사고가 적용된 가장 대표적인 예가 하나 번뜩 생각났는데, 그건 다름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고귀함입니다.
다들 이성적으로는 인간도 다른 동물이나 심지어 다른 모든 사물들과 다를 바 없으며
그저 우주의 티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인간을 세상의 다른 모든 사물들과 구별하며
인간성이라는 것에 어떤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죠.
물론 어떤 분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세상에 대한 우리의 착취와 그로 인한 우리의 번창을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논리적으로 인간의 특별함을 지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저는 그렇게 논리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무의식적으로는 인간의 고귀함이라는 것이 내재화된 상태라고 봅니다.
이것도 일종의 이중사고고 하나의 신화겠지요. 종교를 가지신 분들이 아니라면요.
(그분들의 세계관으로 보면 인간은 정말 특별한 존재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얼마 전에 어떤 글에서 자기 애완견이랑 모르는 사람이랑 물에 빠지면 누구를 구할 거냐는 주제로 파이어가 한번 난 적이 있었죠.
몇몇 분들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개를 구하겠다고 말할 수 있냐며 화를 내시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었습니다.
몇몇 분들은 실제 상황을 감안하면 개를 구하는 것이 적절한 선택일 수 있다며 옹호하시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그런 실제 상황이 주요 논점인 것 같지는 않더라구요. 애초에 자기 애완견이랑 사람이랑 동시에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누구를 구할 거냐~ 하는 것이 실제적인 상황 설정 같지도 않구 말이죠. 어떻게 보면 답정너일 수도 있는데,
그 화두의 주요 논점은 그냥 개vs사람 그 자체였습니다.
이 비교 구도 그 자체가 어떤 기묘한 불안감을 유발하는 것이었죠.
상황 여하에 따라 인간의 가치가 개보다 못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 (의도된 것이든 아니든) 그 화두의 주요 논점 아니었나 싶더라는 겁니다.
물론 상황 여하를 진지하게 고려하면 단순히 개vs사람이 아니라 개+구하는 사람vs물에 빠진 사람이 되겠지만, 앞서 말했듯 개vs사람이라는 구도를 설정하는 것 자체의 무시무시함이랄까요.

5억년짜리 버튼을 누를 거냐 말 거냐 하는 얘기도 주제를 관통하는 이치는 비슷하다고 봅니다. 거의 뭐 도매금으로 싸잡어서 따져보는 이치지만요.
그 버튼을 누르는 일이 제아무리 기억 삭제 가능하다 하더라도,
해서 현실의 나는 백업 데이터쯤 취급하고 다른 차원에 갔다오는 나는 어차피 백업될 데이터쯤 취급한다 하더라도
(연속적이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자기 존재를 연속적으로 인식하는 개인에게 있어 그 버튼과 버튼으로 경험하게 될 5억년은
실존적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버튼을 누르는 게 더 나은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요.

인간성 혹은 인간의 정체성이란 것도 실은 이러한 이중사고와 자기 착각 혹은 집단 착각의 결과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란 얘기가 있죠. 그 뉘앙스는 좀 다르겠습니다만 집단 환각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여긴다, 라는 맥락에서 저는 인간의 모든 인지가 그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도 보면 그러한 인간 인지의 작용이 잘 묘사돼 있습니다.
짐작들 하셨겠지만 이중사고라는 말도 1984에서 따온 말인데요. 1984의 이중사고라 하니 많은 분들이 이중언어를 떠올리시겠지만 저는 이중사고가 가장 극적으로 잘 드러난 부분은 바로 다음 대목들이라 생각합니다.


"권력은 고통과 모욕을 주는 가운데 존재하는 걸세. 그리고 권력은 인간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서 권력자가 선택한 새로운 형태로 다시 뜯어맞추는 거라네."

"윈스턴, 우리는 모든 면에서 삶을 통제하고 있네. 우리가 하는 일에 분노하여 반항하는 인간 본성이라 불리는 어떤 것을 상상하고 있을 테지. 그렇지만 우리는 인간 본성 자체를 창조하네. 인간이란 끊임없이 변하기 쉬운 존재지. 자네는 노동자나 노예들이 들고 일어나 우리를 전복시킬 수도 있다는 구태의연한 생각을 하고 있을 걸세. 그런 생각은 집어치우게나. 그들은 짐승처럼 무력하네. 인간성이 곧 당일세."

"자네는 신을 믿나?"
"믿지 않습니다."
"그럼 우리를 패배시킬 거라는 그 원칙은 뭔가?"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정신이라고나 할까요."
"자네는 자네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하나?"
"네."
"이보게 윈스턴. 자네가 인간이라면 자네는 마지막 인간일세. 자네와 같은 인간들은 이미 멸종됐네. (중략) 거울에 비친 자네 몰골을 좀 보게."
그가 말했다.
"자네 몸을 뒤덮고 있는 더러운 때를 보란 말일세. 발가락 사이의 때도 좀 보고. 자네 다리에 퍼져 있는 구역질 날 것 같은 상처들도 좀 보지 그러나. (중략)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어 가고 있지. 자네란 인간은 대체 뭔가? 불결한 때 덩어리 아닌가? 돌아서서 다시 거울을 보게. 자네와 마주선 몸뚱이가 보이나? 그게 마지막 인간의 모습이야."


이 대목들은 제가 가장 인상깊게 본 대목이기도 합니다. 왜 인상깊냐 하면 이 대목들에서 오브라이언이 말하고 있는 변하기 쉬운 인간성,
권력으로 갈기갈기 찢어서 재조립 가능한 인간의 마음이야말로 이중사고의 핵심적인 면모들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인간의 마음조차도 깨부쉈다가 지들 꼴리는대로 끼워맞출 수 있는 권력의 강력함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번 더 생각해보면 그만큼 가변적이고 신축성이 있는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이 곧 인간성이 될 수 있는 것이죠. 당이든 인간성이든 그 자체로는 어차피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 곧 현실이 됩니다. 본 작품에서 후덜덜한 것은 그 생각을 당이 만든다는 거지만요.

아 물론 1984에서 하는 것처럼 인간의 가치를 깨부섰다가 끼워맞췄다가 또 깨부쉈다가 할 수 있는 권력은 북한 정도 아니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와 비슷한 이치(역시 도매금으로 싸잡은 이치일지도 모르겠지만)가 현실에도 곳곳에 만연해 있다고 봅니다.
가장 쉬운 예가 바로 전쟁이죠. 전쟁이라고 사람을 죽여도 되느냐~ 마느냐~ 같은 구태한 예부터 시작해서 전쟁시 사로잡은 포로를 고문해도 되느냐 마느냐(고문해서 정보를 얻어내면 다수의 아군을 살릴 수 있음), 타국에서 작전 수행 중 인근 주민들에게 발견됐을 시 그 주민을 죽여야 하냐 말아야 하냐 같은 예들이 대표적이죠. 

사람은 누구나 똑같이 고귀하고 생명은 존귀하다지만 현실에서 그 가치는 시시때때로 평가절하됩니다. 그게 이 세상의 전모죠.
생명까지는 안 가더라도 사람의 가치야 예로부터 시시때때로 왔다갔다 거리고 그랬구요.
노예제가 있었을 때에는 가축 취급 당하기도 했고 오늘날에도 여러가지 요인에 의해서 인간의 고귀함이 똑같이 취급되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예전에 그것이 알고싶다였나 pd수첩이었나 운전기사 분들 개처럼 다루는 재벌편이 문득 기억나네요.
뭐 물론 현실은 현실이고 현실과는 별개로 인간은 누구나 고귀하다고 생각하는 믿음이 중요하다, 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현실을 모른다고 생각해서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아니구요.
사람들이 현실을 알면서도, 또 인간의 고귀함이라는 것이 애초에 주어진 적 없는 상상의 산물이라는 걸 알면서도 
(마치 순간순간 영화에 몰입하는 관객들처럼) 
무의식적으로 인간의 고귀함이 정말로 존재한다고 생각해버리곤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이 일종의 이중사고라는 것이죠.


몬스터라고, 제가 정말 좋아하는 만화가 하나 있습니다.
덴마라는 의사가 주인공인데 초간단하게 줄거리를 요약해보자면 총맞아서 다 죽어가는 어린애 하나 살려놨더니, 알고보니 그 애가 싸이코패스네? 라는 얘깁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되고 책임감을 느껴서 그 싸이코패스 요한의 행적을 덴마가 추적해간다~ 라는 얘기죠.
아마 모르는 분들이 더 적지 않으실까... 하여튼 이 요한이라는 놈이 왜 싸이코패스가 되었느냐에 대해서는 
완결이 나고도 다소 좀 이견이 있는데, 역시 이는 마지막 씬에 대한 해석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이견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인데요.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그 마지막 씬이라 함은(요한의 어린 시절 회상씬인데),
최종 흑막이라 할 수 있는 클라우스 포페가 요한과 요한의 쌍둥이 여동생 중에서 하나를 넘기라고 요한의 어머니에게 요구하자 어느 쪽을 넘겨야 할지 고민하는 장면입니다. 요한의 어머니는 결국 쌍둥이 여동생 안나를 넘기게 되는데요.
그 장면에서 쌍둥이 여동생 안나와 여장을 하고 있던 요한은 완벽하게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요한은 어머니가 자신을 넘기려다가 실수로 착각해서 안나를 넘기게 됐다고 오해를 했다는 썰이 하나 있죠. 한 마디로 부모에게 버림받아서 삐뚤어졌다는 썰입니다.
다른 하나는, 제가 지지하는 썰인데 그 순간(어머니가 '이쪽... 아니 이쪽...' 하면서 누굴 보낼까 고민하는 순간)에
마치 무슨 돈오라도 하듯 깨달음이 왔다는 거죠 요한에게.
아~ 생명 그까이꺼 인간 그까이꺼 별 거 아니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거네~ 
상황에 따라서 유동적으로다가 이리 훼까닥 저리 훼까닥 하는 거네~ 이런 깨달음이 말입죠.
클라우스 포페의 명대사 "인간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라는 대사도 맥락상 이 썰을 꽤나 받쳐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는 휴머니즘으로 포장되긴 했지만 애초에 그 함의가 꽤나 무시무시한 대사였죠.
인간은 정말로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괴물이든 보석이든 무엇이든 말이죠.

인간은 시대에 따라 가축이 될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 그 생명이 취사선택 당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고대에 태어났는데 주인이 죽었다고 그 아들내미가 지 애비랑 같이 당신을 매장시켜버리겠답니다. 
아 네 물론 당연한 일입니다. 당신은 노예로 태어났으니까요. 죽어서도 쥔님을 잘 모셔야죠.
여자후배한테 말을 걸었는데 왠지 모르겠지만 벌레 보는 것 같은 눈으로 당신을 본다구요? 아 네 그건 포상... 아니 당신은 그 순간 이미 벌레입니다.


위에서 얘기했던 정체성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이와 마찬가지죠. 유동적인 것이고 가변적인 것입니다. 
일종의 자기 최면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걸어주는 최면입니다.
위에서 든 예시들처럼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정말로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죠. 
그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이 생각했던 존재가 됩니다. 
제가 원체 이런 식으로다가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정말 놀랐던 건, 
이성애나 동성애의 성적 지향이 날 때부터 정해진다는 얘기였죠. 어떤 정체성들은 주어지기도 하더라는 겁니다.
물론 우연히 주어진 것이겠지만요.
(종교를 가지신 분들 중에서는... 그것도 그분의 뜻일 수 있다는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또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건 어떤 동성애자 분들이 말하기를 항문 성교를 한다고 다 동성애자는 아니며 플라토닉 러브가 진짜라는 분들도 있었다는 거죠.

그런 얘기들을 들었을 때 퍼뜩 떠오른 것은 고대 그리스 사회였습니다. 
제가 주워듣기로 그리스 사회의 동성애는 문화의 산물이며, 정확하게는 성억압적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더군요.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는 어린 여성과 중년 남성 시민의 결혼이 일반적이었으며 어린 여성과 어린 남성끼리의 결합은 사회적으로 억압되었고,
해서 어린 남성에 대한 여성의 부재는 비교적 성적으로 자유로운 중년 남성들로 대체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미소년들이 유사 남창 역할을 하게 됐더라~는 거지요.
또한 여성에 대한 젊은 남성의 욕망은 원정 전쟁시의 약탈과 겁탈로도 채워졌으며 국가적으로 그 욕망을 정복전쟁의 에너지원으로 썼다는 식의 설명이었습니다(물론 당대인들은 이를 자각하지 못했겠지만요). 이게 얼마나 정설인지는 모릅니다. 걍 이런 썰 봤다 정도인데요.
하여튼 이러거나 저러거나 고대 그리스에서 동성애가 문화의 산물인 것만은 정썰인 것 같은데,
재밌는 것은 그러한 와중에 여성과의 사랑은 그냥 육체적인 사랑이고 남성과의 사랑이 진짜 사랑이다! 라는 분위기가 당시에 있었다는 거죠. 
성적 지향으로서 주어진 것이라기보다는 문화적으로 만들어진 사랑이 진짜 사랑이 된 셈입니다. 근데 사실 이것도 얼마나 지지받는 학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뭐 동성애가 어느 정도 진지하게 취급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는 얘기.

그래서 왜 그런 얘기를 하냐면, 어떤 정체성들은 정말로 주어지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것마저도 어떤 경우에는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거죠.
이쯤되면 무엇이 진짜 나이고 무엇이 가짜 나인지 헷갈립니다. 
어떤 분들은 진짜도 가짜도 다 없고, 유전적 외부환경적 요인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 나라고 하기도 합디다.
응? 그렇게 치면 가령 성적 지향으로 형성된 동성애자나 문화적으로 형성된 동성애자나 뭐가 달라?
형성 이유야 다르겠고 그 존재 방식이야 다르겠지만,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모든 것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수 있고 동시에 모든 것이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거죠.
동성애자부터 성인, 살인자, 사기꾼, 정직한 사람, 공손한 사람 등등 모든 인격적 특성들은 주체가 아니라 객체라는 거죠.
어쩌면 지도를 보고 상상한 국경과 각국 지형들의 모습이 현실과는 다르지만 현실 세계에서 현실적 상호작용을 하는 것처럼 
자아라는 것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실제적인 작용을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거기에 주체라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바깥에 있고 전적으로 객체일 뿐입니다. 그저 주체라고 착각하면서 자아라는 일종의 마약을 빨아댈 뿐이죠.
마약을 빨아대니 고통스럽지 좀 끊어라~ 라고 하는 게 불교가 아닐까 싶습니다. 틀렸다고 너무 뭐라진 마세요. 이 글 자체가 문외한의 잡스런 씨부림일 뿐입니다ㅠㅠ


그래서 결론이 뭐냐구요? 왜 이렇게 잡소리를 길게 하냐구요?

기독교 역사 전체를 보면 성상 숭배와 성상 파괴 욕망이 공존해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니케포로스 같은 성상 숭배론자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성상 숭배를 옹호했다고 하더군요.
"이미지를 통하지 않고서는 예수를 생각할 수조차 없다"
또 예전에 일포스티노라는 영화에서 극중의 네루다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모든 것은 메타포야~" 사실 진짜 그런 대사가 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납니다. 하여튼 그렇게 말했던 기억이 나요. 뭔 개소리냐면요.

나 같은 범인은 절대 네오처럼 메트릭스에서 깨는 약 먹을 일 없고 0과 1로 세상을 볼 수도 없으니
순간순간 영화에 무의식적으로 몰입하는 관객들처럼
그냥 지금 꾸고 있는 꿈에나 순간순간 일희일비하며 과몰입충으로 살자~
근데 저거 저거 버튼 한번만 누르면 100만엔 개꿀일 것 같은데... 아 xx 어쩌라고

라는 개소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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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초비
18/09/18 20:32
수정 아이콘
잠깐만 기다려 재봉틀 가져올게 안되면 탭댄스 가능
18/09/18 20:53
수정 아이콘
글이 꽤나 흥미로와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네요 크크크
일단 글쓴이님이 불교의 공 사상을 맘에 들어하지 않는다는건 잘 알겠으나 그게 그렇게 말 그대로 '공'염불은 아닙니다. 붓다가 만난 최초의 고뇌, 번민의 시발점은 '왜 인간은 태어나서 고통스럽고 성장하며 고통을 겪으며 늙어 죽어가며 고통 받는가?' 에 대한 탐색 과정에서 나온 개념이며 이 생이란 고통의 바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유의 흐름에서 불교의 가르침 -이해하기 힘든 형이상한적인 비유와 어려운 한문들!- 이 발전하고, 결국 해탈하여 똥으로 가득찬 윤회에서 벗어나자는게 '저 혼자' 넘겨짚는 불교의 사상입니다.
말씀하시는 주제 -자아는 환상일 뿐- 와 동떨어진 공염불 옹호를 관두고 원 주제에 대한 제 개인적인 생각은
'인식보다 믿음이 우선한다' 입니다.
제가 말하는 믿음이란건 종교적인 믿음 이전의, 예쁜꼬마선충이나 지렁이의 반사작용에서 부터 시작된 먹이가 있는 곳으로의 끌림이나 위해가 될만 곳에서의 회피행동이 일정한 패턴으로 치우쳐지고, 항상 같은 방향으로 일어나는 행동을 '믿음'이란 개념의 근원이라 생각합니다.
써놓고 나서보니 이게 뭔 댕댕이 소린가 싶은게 글쓴분 따라가는것 같아 송구스럽지만 댓글창에 계속 쓰기 보단 저도 글 하나 써야할 것 같은 느낌도 솟아 오르고 5억년 상하차를 하면 얼마나 꿀일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아름다운 밤이네요.
생각안나
18/09/18 21:23
수정 아이콘
저도 말씀하신 그 믿음이 우선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람들에게 어떤 믿음이라는 것이 내재화된 상태라고 봐요. 왜 생겨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관객들이 저도 모르게 영화에 순간순간 몰입하는 그 비슷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 그리고 공 사상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건 아닙니다. 어려워서 제대로 내가 알아먹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공 사상 얘기하는 거 들어보니 설득력은 있어... 근데 현실적으로 체화하기에는 좀 에바 같아... 5억짜리 버튼 누르라는 소리 같다고ㅠㅠ 라는 느낌. 어쨌든 재밌게 읽어주셨다니 정말 감사할 따름이네요.
아점화한틱
18/09/18 22:42
수정 아이콘
하필 또 상하차가... 크크크크

무신론에 가까운 불가지론자로서 불교는 종교라는 카테고리 중에서 굉장히 흥미로워요. 제가 막 뭘 정하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불교는 종교라는 카테고리에 안넣을듯... 그보단 철학이나 인문학쪽 카테고리에 넣을거같아요.(아 물론 다신교에 가까운, 인도나 다른 나라들의 불교 말고 고대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의 불교를 말하는겁니다.)
티모대위
18/09/18 21:25
수정 아이콘
5억년 버튼 저는 절대 안누를것 같네요.. 5억년+1초 뒤의 내가 호강을 하건 말건간에 당장 영원에 가까운 시간동안 고통받는데..
이쥴레이
18/09/18 21:41
수정 아이콘
5억년 버튼 만화도 있지 않나요.
그거 보니 마지막 결말 다시보면서 공포스럽던데..
18/09/18 22:23
수정 아이콘
저도 흥미있는 글인데...엔터키 좀...자주 눌러주세요..부탁드립니다..흑흑
생각안나
18/09/18 23:13
수정 아이콘
죄송합니다... 많이 눌러서 한번 고쳐봤어요..
홍준표
18/09/18 22:54
수정 아이콘
??? 다들 모르셨나요 월급 들어오기 전날 다들 5억년 버튼 누르고 계신건데..
김성수
18/09/18 22:58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도 비슷한 류의 생각들을 근래에 자주 하는 것 같긴 합니다. (1984 내용부터는 제가 이해력이 부족해서..) 고통이란 게 두려운 것이냐? 시간은 무한하고 내 존재도 무한하다면. 먼지가 되었다 생명이 되었다를 무한히 반복한다면. 그렇다면 무한을 살다가 언젠가는 공간에 갇혀 살아온 무한만큼 온갖 고통을 받는 필연인가. 우리의 고통들은 그리 이치스러워 가볍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무한한 안식으로 가는 종착지가 있을까.
RookieKid
18/09/19 01:40
수정 아이콘
그 5억년의 버튼 만화 제목이 뭐죠?
18/09/19 02:42
수정 아이콘
(수정됨) https://cdn.pgr21.com/?b=10&n=161681
몇 년 전에 직접 번역했던 건데...오랜만에 검색해보니 아직 살아있네요

아, 지금 다시 보니 밑글에 링크가 걸려있었네요 그래서 이 글도 올라온 거구나...
유유히
18/09/19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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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생각안나 님의 글을 바탕으로 조금 사고의 나래를 펼쳐본 결과입니다.

유발 하라리의 책 사피엔스 를 보면, 인간이 현재의 생태지위를 차지하게 된 근본 원인은 지능이나 부속지(손가락)의 진화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궁극적인 이유이자 '종 차원의 유연한 협력체계 구축' 입니다. 예를 들어 원숭이와 개미, 돌고래 등 다양한 사회성 동물이 집단을 이루지만 A집단 원숭이와 B집단 원숭이는 서로 싸우거나, 소 닭 보듯 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인간 역시 사회성 형성의 극초기에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집단과 집단간에 싸우거나, 무시하거나 말고 선택지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협력하고 교류한다'입니다. 인간은 문명 생성 초기부터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협력할 수 있었습니다. 문자와 언어를 도구삼아서. 문자와 언어는 중요 수단이기는 하나 처음에는 통하지 않으니, 결국 인간은 [효율적으로 협력하는 능력] 을 가진 동물이었습니다. 물론 서로 싸운다는 선택지는 21세기 초에 온 지금까지도 유효하긴 합니다. (;) 언제쯤 그 선택지가 사라질지 궁금합니다.

이 언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면, 인간만의 특성이 다시 구분됩니다. 우리가 쓰는 언어 "사과-Apple-リンゴ"는 실존하는 빨갛고 새콤달콤한 바로 그 사과인가요?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나 공손찬의 백마비마론이 생각나네요. 유발 하라리에 의하면 바로 이것, 인간이 먹이사슬 상층부를 지워버린 능력이 바로 이것입니다. "가상화Virtualizaion=상징화Symbolization". 그 어떤 동물도 실체와 다른 무언가를 가상으로 상징화하여 상상하지 못합니다. 반복된 훈련으로 연관을 시킬 수는 있겠지만 (예 : 사과 팻말 보여주면 집어오게 시킴) 그 이상은 될 수 없습니다. 적어도 현재까지 나타난 증거로는 그러합니다.

우리는 손쉽게 직선 몇 개로 정육면체를 도식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동물들은, 심지어 문명화되지 않은 원시 부족들은 그 도식화된 정육면체와 실제의 정육면체를 도저히 연관짓질 못합니다. 다른 사례로, 삼성의 핸드폰이 폭발하면, 사람들은 삼성을 욕하고 삼성 불매운동을 합니다. 사실 삼성이란 이름과 실체는 사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법인격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은 그 삼성을 증오하고, 사랑하고, 경애하고, 비난합니다. 그렇다고 삼성이 고통받거나 기뻐하거나 그러지 못합니다. 미국도, 예수도, BTS도, 각각 아메리카 대륙에 존재하는 일련의 국토와 정부체계, 고대 아라비아 지방에 살았던 남성, 한국 청소년 몇 명으로 구성된 집단 그 이상을 '상징' 합니다.

인간의 이러한 상징화는 우리들 인간 자신에게도 적용되었습니다. 우리는 감각을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이 육체 저편에서 이 나를 조종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지칭하는 가상 / 상징화 대상이 바로 "자아", "영혼"입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죠. 모든 것이 가짜라고 의심하는 '나'를 자아로 상정한 것인데, 그것 또한 가상 상징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존재하는가?"

이걸 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싸워 왔고 또 싸우고 있습니다. 영혼의 무게가 있는지 재려고 인간을 저울위에 올려두고 사망 시점에 무게가 변화하는지 측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현재까지는 인간의 영혼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유의미한 과학적 근거가 없습니다. 그것은 복사할 수도 잘라낼 수도 붙여넣기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쁜꼬리선충처럼, 만약에 컴퓨터로 에뮬레이팅된 내 자아가 존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사상 최초로 상징화된 대상이 물리적/추상적 실체로 다가오는 인류 역사상 불-농경-산업혁명 을 잇는 대사건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치 플라톤의 이데아를 실험실 합성한 것과 같다 할까요, '신'을 프로그래밍한 것과 같다고 할까요.

카를 융의 집단무의식 이론에 따르면 전 세계의 창세 신화나 민담을 다수 조사한 결과, 그 모든 것을 망라하는 공통분모가 있다고 했습니다. 인간이라는 종이라면 뇌 속 어딘가에 공통된 심상을 담고 있다는 뜻입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 이론이 경험적으로 증명되었다면, 과학발전에 따라서는 완전무결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론은 없습니다. 그냥 생각 타래라서;
생각안나
18/09/22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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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저도 흥미로운 댓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우선 말씀하신 "자아", "영혼"이라는 게 그러한 일종의 가상 / 상징화 대상이라는 점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헌데 제가 정말로 재밌었던 건(본문에서 계속 이어지는 얘기지만) 사람들이 이성적으로는 그러한 가상화 혹은 상징화를 의식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무의식적으로는 "자아" 혹은 "영혼"이라는 가상의 자기 자신이 정말로 존재하는 것처럼 믿고 행동한다는 거죠. 마치 인간의 고귀함이 정말로 존재하는 것처럼 믿고 행동하듯 말입니다.

더 재밌었던 건 환몽구조 소설 얘기하면서도 언급했고 성상 숭배 얘기하면서도 암시했던 거지만, 인간에게는 그런 가상 / 상징화 대상을 긍정하고 숭배하려는 욕망이 존재하는 동시에 그것들을 부정하고 파괴하려는 욕망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입니다(저는 불교의 무아사상이 그런 파괴 욕망의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보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살짝 했던 얘기지만 구운몽을 보면 초월적 공간에 있던 성진이 현시적인 것을 바라고 양소유가 되었다가 다시 덧없음을 느끼고 초월적인 공간으로 회귀하게 되는데 저는 이러한 스토리텔링이 세속적 원리와 초월적 원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마음을 묘사하고 있다고 봤거든요. 다시 말해 자아를 긍정하는 동시에 부정하고, 믿으려는 동시에 믿지 않으려 한다는 거죠 무의식적으로다가. 부정하려 하고 믿지 않으려 하는 것 자체는 물론 의식적인 사유를 통해서 그렇게 된 거겠지만요.

긍정하려 하고 믿으려 하는 건 말씀하신 언어의 추상성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상적으로 언어를 써서 의사소통하려다 보니 정신머리가 자연스럽게 그리 형성되는 거 아닌가 싶네요. 그래서 본문에서는 영화를 통해 비유했었습니다. 잠깐만 깨어 있어도 스크린의 상이 가짜라는 걸 알고 있을 수 있겠지만, 잠깐만 정신이 팔려도 우리는 그 스크린의 상에 몰입되어 그것이 가짜라는 걸 잊게 됩니다

저는 성상 숭배욕과 성상 파괴욕도 이렇듯 양면적인 인간 정신 구조를 예시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즉 인간은 어떤 "상"이라는 것을 세우려고도 하고 깨부수려고도 하는데 대체 왜 그러냐? 하면 저는 그것을 자아(가상 / 상징화 대상)에 관한 원리와 등치시켜 이유를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위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그 원리란 이중성입니다. 본문에서는 이중사고라고 표현한 건데요. 사람들은 상이라는 것에 대해 상충하는 감정을 양가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것이죠. 불교에서 무아라든가 공이라든가 하는 얘기들을 듣고 그래 자아는 없고 세상은 공이야! 라고 이해는 하더라도 인간은 생겨먹은 게 이 꼴이기 때문에 그것을 체화하기란 결코 불가능하다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마치 추상성을 배재한 상태로 생각하라는 말과 같다고 봅니다. 아니면 생각 자체를 아예 하지 말라는 얘기랑 같다고 봐요.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뇌를 새대가리로 갈아 치우라는 말과 같은 말 아닌가 싶습니다.

본 주제로 돌아와서 5억년 버튼이라는 것도 결국 같은 얘기라고 생각해요. 다시 말해 5억년 버튼을 누른다는 건, 세상이 꿈이라는 것과 연속적이라고(하나의 상으로 존재한다고) 인식되는 우리의 존재도 실은 하나의 꿈에 불과하다는 걸-즉 무아라는 걸 깨닫는 일이라 봅니다. 단지 안다는 걸 넘어서서 온몸으로 체화하고 있는 거겠죠 그건. 근데 제가 보기에 그 정도 체화 수준이면 뇌를 새대가리로 갈아치운 거나 똑같습니다. 정말 그 버튼을 누를 수 있다면 말이죠...

그래서 저는 이 5억년 버튼을 일종의 해탈 버튼이라고 봅니다. 그걸 누를 수 있다면 리얼 부처 수준 인정 어 인정. 말씀하신 원시 부족처럼 가상이라든가 상징화 대상 모르는 건 당연하고(걔들도 영혼 그 비스무리한 개념은 알지 않을까 싶지만), 백만엔이 뭔지도 모르고 5억년이 뭔지도 모르고 심지어 버튼이 뭔지도 몰라서 그냥 우연히 누르는 거 아니면 리얼 부처 수준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보기엔 뇌를 새대가리로 갈아 치운 수준인 거죠.

근데, 그렇다 할지라도 다들 상이 덧없다는 걸 얼핏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철학자들이나 종교인처럼 이성적으로 혹은 교리적으로 파악하고 있지는 못할지라도 말이죠. 혹은 과학자들처럼 인격이나 경험, 기억 등도 그저 데이터 그 뭐 비슷한 걸로 파악하고 있지는 못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현세의 나를 백업 데이터쯤 취급하고 5억년 동안 다른 차원에 갔다가 돌아올 나를 백업될 데이터쯤 취급한다 해도 뭔가가 이상한 겁니다. 우리의 실존적 감각, 이 이중사고와 양가적 감정이 우리를 혼란시킵니다. 5억년 버튼을 누른다 쳐도 뭔가 이상하고 x같고, 안 누른다 쳐도 뭔가 이상하고 x같고... 그러다 보니 뭔가 또 공허해집니다. 이 양가성 사이에 놓여 있는 인간 의식의 한계와 그 공허함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이렇게 길게도 쓰고 댓글도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늘어놔 버렸네요.


해서 제 미천한 결론을 내려보자면 이렇습니다. 모든 것은 메타포고 이미지를 통하지 않고서는 예수를 생각할 수조차 없으니, 영화관의 관객들이 스크린의 상에 몰입해들어가듯 이 꿈 같은 현실에 몰입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게 꿈이라는 걸 가끔씩 의식 정도 할 수 있을 뿐(그러나 반대편도 꿈일 뿐이다. 나비도 꿈 장자도 꿈...)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이 꿈이라면, 우리를 공허하게 하는 것이 깨달음이고 자각이랄까요? 뭐 이런 중2병스러운 결론이 나오네요.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5억년 버튼을 누른다 쳐도 뭔가 x같고 안 누른다 쳐도 뭔가 x같고 아 x같다 뭐 어찌할 수가 없네, 라는 그런 얘기였습니다.
세상을보고올게
18/09/19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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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억년버튼 전 눌러보고 싶습니다.
100만엔보다 오억년 살아보고 싶네요.
하루살이한테 백년 살라고 해도 그렇게 두려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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