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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5/21 17:53
비단 조선뿐만 아니라 아픔을 치료하고자 하는 의지가 그릇된 방향으로 나타난것이죠. 인육캡슐이나 에이즈를 치료하기위해 여아와 성행위를 하는 등 비윤리적이고 잘못된 치료법을 맹신하는 경우는 무수히 많으니..
13/05/21 17:55
저희 아버지 세대만 하더라도 부모님이 상을 당하시면 3년동안 아침마다 밥을 지어 올리고,
할아버지 세대만 되면 무덤 옆에 살면서 3년상을 지내기도 했고요. 연세가 어느 정도이신지 모르겠지만.. 2~30대라고 가정할 때, 이게 맞나요? 저러는 걸 주변에서 본 기억이 없는데...
13/05/21 17:59
모르겠네요. 저희 증조할아버지가 서당 선생님이라 좀 엄격히 행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시묘살이 하셨고, 아버지는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한 달에 두 번씩 시골에 내려가셧다고 하더군요. 증조할머니랑 할머니는 매일 돌아가신 할아버지 아침밥 올렸고요. 다른 건 안 해도 이거 잊어버리면 난리 났다고 하더군요. 근데 동네 대부분 다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비단 저희집 뿐 아니라... 지금이야 아무도 안 하지만요.
13/05/21 18:08
케바케겠죠. 저도 요새 드라마는 모르겠지만 드라마에서 어르신들 결혼 얘기할 때 나오는 족보만 해도 딱히 본 적 없으니까요.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유림은 지역 유지로 남았고 지금도 종갓집 같은 개념이 남아 있죠. 충분히 가능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13/05/21 18:14
중국 후한말부터 나타난 유교의 잘못된 모습들을 보면 어마어마하니 딱히 대단하다고 생각되진 않아요.
결국 사람사는 곳이고, 제 생각에 조선은 당시대를 생각하면 나은 축에 속한다고 봐요.
13/05/21 18:15
개인적으로 '효'는 굉장히 뻔뻔한 가치라고 봅니다. 자식에게 대접바라는걸 마치 아름다운 가치인것처럼 포장한 느낌이 듭니다.
전 한국의 효 이데올로기가 부부생활이나 개인의 인생에 굉장히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봅니다.
13/05/21 19:11
유교의 탄생 배경을 보면 충,효,인은 꼭 필요한 가치였죠.
공자가 혼란스런 전국을 안정화 시키고자 제안한 거였죠. 그게 평화의 시대에 우리 곁에 당연스레 있으면서 왜곡되서 그렇지, 저는 절대 나쁜 가치라고 생각이 안드네요.
13/05/21 20:01
원래 효는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부자 자효라는 말이 있는데(무슨 경전에서 나오는지는 까먹었네요 쿨럭..)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며,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를 한다는 뜻입니다. 원래 효 사상도 그렇고 유교 사상이 쌍무적입니다. 하지만 잘못 왜곡된 것이 문제지만요;;
13/05/21 18:18
저런일이 어디 조선뿐이겠습니까. 올바른 정보가 부족하고 사람 사는곳이면 다 있었다고 봅니다.
오히려 사소하다면 사소한 사건이 최고권력자에게까지 전달되는 시스템이 존재했다는게 대단한것 같습니다.
13/05/21 18:24
유교의 문제라기보단, 전반적인 교육수준이 낮으니 할 수 없었던 문제죠.
마녀재판의 문제라든가, 어디든 민도가 낮을 수 밖에 없던 과거에는 널리 있을 수밖에 없는 현상이 아닌가 싶네요. 그와 별도로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13/05/21 18:42
다른 덕목들도 그렇지만
마음에서 절로 우러나와야 하는 것들을 널리 퍼뜨려 가르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글로써 만들게 되고 경전이나 삼강행실도 등에 담으려고 했던 원래의 것보다 글자 자체에 매달리다보니 여러 문제가 발생한 것이겠네요. ps. 쉽상은 십상이 올바른 표현이라고 합니다. 평소에 헷갈려하던 거라 찾아봤는데 십상팔구(=십중팔구)에서 온 거라네요.
13/05/21 19:08
서양의 홀로코스트만 해도 그릇된 편견이 선동에 동원되면 얼마나 참혹한 결과로 이어지는가 나타나는 사안이죠.
그걸 국가에서 주도했다는게 더 경악스러운 지경이고, 당대 최고의 과학선진국에서 그랬다는건 사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은 지경이죠.
13/05/21 21:58
유교의 관용적이고, 자기 희생적인 도덕관은 사회를 안정시킬 수 있지만, 그만큼 합리성을 갖추긴 힘들죠.
오히려 서양의 비관용적인 잔인함이 인간들에게 생존 본능과 함께 그것를 위한 과학적인 방법론을 세우는데에 더 큰 영향을 끼쳤다고 봅니다. 동아시아 중에 일본이 유일하게 이런 서양과 비슷한 특성을 가졌죠. 해자가 있고 높게 솟구친 성을 봐도 그렇고.. 근대화에는 유교의 그런 특성이 도움이 되지 못한 거라고 봅니다.
13/05/21 22:06
그만큼 군주 자신을 노리는 세력들이 많아서, 거기에 대해 방어를 하기 위한 생각을 해야만 했다는 거죠.
하지만 관용적인 사회에서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그런 게 덜 필요하다는 거죠.
13/05/21 22:15
성을 쌓기 위한 기술을 필요로하기에 과학적 방법론을 세우는데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인가요?
그런 높은 성을 쌓고 해자를 파는 만드는 기술은 기원전에도 있었는데요. 높은 성이 가장 많이 쌓이던 중세시대야말로 과학적 방법론과는 가장 거리가 멀었던 시대고.. 중국 역시 전국시대처럼 피바람이 부는 시대가 합리성과 가장 거리가 멀었고, 그걸 보완하고자 나타난 게 유교니 그런 사상들이고요. 대체 성을 쌓는 것과 과학적 방법론, 혹은 합리성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그 의미에 감이 잘 잡히지 않아 여쭙는 것입니다.
13/05/21 22:20
음... 저도 차사마님 첫 덧글에서 1번째 줄, 2번째 줄은 서로 관계가 명백하다는 것이 느껴지는데 - 이 논지가 사실인가 어떤가는 차치하고 말예요 - 3번째 줄은 잘 모르겠네요. 말씀하시려는 바가 전달이 잘 되지 않는 느낌입니다.
13/05/21 22:25
서로 죽고 죽이고 하는 상황(전쟁)에서 자기 방어를 위한 합리적인 생각(과학적인 방법론)을 하게 된다는 거죠. 하지만 유교같은 관용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그런 것들을 스킵한다는 겁니다.
13/05/21 22:29
그런 의미라면 중국에서 합리성이 가장 발달해야할 시대는 전국시대고,
일본 역시 센코쿠시대고, 한반도에선 삼국/후삼국시대겠죠. 그런데 그 시대가 과학적 방법론이니, 합리성이니 하는 게 발달했다는 이야긴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시대를 거치고 나온 학문은 과학적 방법론이 아닌, 유교와 불교 등이었습니다. 중국의 전국시대에 유교가 나오고, 한반도의 삼국시대 후에 불교, 후삼국 시대 후에 불교와 성리학, 센코쿠 시대를 지나고 성리학이 발달한 것만봐도, 잔인함이 활발할 수록 과학적 방법론이 발달한다는 건 좀 공감이 가지 않네요.
13/05/21 22:38
sungsik님은 과학적 방법론과 유교, 불교를 대립의 관계로 보시고 반박하시지만, 서양도 기독교가 있었죠. 하지만 저의 논지는 유교의 장점이 근대화에 방해가 되었다는 겁니다. sungsik님의 미신이나 악습, 폐단들이 근대화를 막았다는 것에 반박한 겁니다.
13/05/21 22:44
여전히 잘 모르겠네요. 전 뭐가 좋고 나쁘다엔 큰 관심이 없고,
다만 잔인함이 합리성에 부합한다는 전제에 그냥 동의가 안 되서.. 잔인함이나 사회적 비관용 등을 따지면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가 세계 최고였고요. 대체 이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가네요. 설명해주셔도 그냥 평행선을 달릴 거 같아 그만하겠습니다.
13/05/21 22:25
성을 쌓는 양식은 그냥 지형에 따라 갈리는 것 뿐입니다.
조선은 산지가 많아 평지에 높은 성을 쌓는 것보다, 산을 이용하여 담을 쌓는 산성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택한 것이죠. 해자는 평지에 쌓은 성의 방어를 돕기 위한 것으로, 산성에는 만들기 힘들고 필요성이 적기 때문에 잘 만들지 않는 것 뿐이지, 평지에 쌓은 읍성의 경우엔 해자가 다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웅천읍성이 있고 낙안읍성이 있죠. 수원화성도 해자가 있습니다.
13/05/21 22:34
그건 아니죠. 일본도 후지산을 중심으로 산이 많았고, 그런 한국같은 식으로 산성을 쌓을려면 못 쌓을 것도 없었죠. 외적에 대한 방어라면 그런 식의 성을 쌓지만, 적이 될 세력(다이묘)들이 가까운 거리에 있다면, 산성으로는 안 됩니다.
13/05/21 23:34
일본 성 구조가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쪽은 관심 분야가 아니라..
다만 조선의 산성도 해자가 필요하다 생각되면 팠죠. 조선 읍성의 경우도 평지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에 산과 연결되게 짓기도 했고 그런 경우엔 산비탈에 해자를 만들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제가 질문했던 건 성을 짓는 양식은 그냥 환경에 달리하는 것 뿐인데, 성이나 해자와 과학적 방법론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후에 답변을 보니 죽고죽이는 상황에서 자신을 방어하려 드는 습성이 과학적 방법론이나 합리성으로 연결된다. 뭐 이런 말씀을 하고 싶었던 것 같네요. 성이나 해자는 그 방어를 하는 어떤 상징성의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고요.
13/05/21 23:41
합리적이지 못하면 죽는 상황과 성품이 안 좋으면 맞거나 죽는 상황이라고 설명 드리면 될까요? 그만큼 과학적인 생각을 해야 될 상황이 유교사회에는 없다는 거죠. "한국에도 읍성에는 해자가 있다. 한국은 산성이 있다." 그래서 본성에 높은 담과 해자가 필요없다? 그만큼 내전이 없었다는 말이죠. 산성을 반박의 예로 드는 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13/05/21 23:42
위 산성에 대한 언급은 님의 말하고자하는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이야기한 것입니다.
너무 염두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내용은 아직도 동의가 잘 되지 않지만, 생각의 차이로 남겨두겠습니다.
13/05/21 23:54
"그에 준하는 악습들이 다른 국가에도 무수히 많이 있었지만,
근대화에 성공하면 용서받을 사소한 악습들. 근대화에 실패하면 나라를 망친 원흉들. 이렇게 인식하기에.. 부정적인 인식이 큰 조선의 악습에 대해선 참 언급하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실제로 악습보다는 미덕이라는 부분이 근대화에 실패한 요인이라는 말한 겁니다. 뭔가 자꾸 논지가 서로 엇갈리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sungsik님께서 일본 중세 사회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 멋대로 판단한 게 잘못이네요. 확실히 성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없다면 이해 하기 힘든 부분이네요.
13/05/22 00:03
제가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 추측을 해보자면,
유럽은 근대화 성공, 일본도 근대화 성공, 그 둘 사이의 공통점이 뭘까. 잦은 내전과 그에 따른 높은 성과 깊은 해자. 이렇게 결론을 도출하신 것 아닌가요? 이건 개연성이 부족한 결과론적 해석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요. 또 중세 일본이 합리성이 강조되어 합리적이지 못한 행동을 기준으로 처벌을 받고 안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조선이 합리성이 결여되고 성품만 중시했다 생각하면 큰 오해라 말씀드리고 싶고.. 다만, 말씀하신 조선의 근대화가 실패한 이유에 대해선 조금 다른 의미로 비슷합니다. 대부분의 개혁은 필요성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필요성이 결여되면 의견을 모으기 힘들고, 지식이 전파되도 받아들이기 힘들죠. 의외로 조선의 근대화 실패는 조선이 부패하고 사회가 썩어서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사회에 큰 불만이 없기에 다른 무언가를 갈망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하고 전 생각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성 이야기는 잘 모르겠습니다.
13/05/22 00:07
일본이 성이 합리성이라... 성벽 찾기 힘들고 잘해야 상황 따라 목책을 두른 게 고작인 일본 대다수의 성을 중국이나 조선에 지었다면 그냥 짓밟혔을 것입니다. 일본 성 중 공들여 쌓은 것에나 돌벽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성 찬양론자들은 그런 희귀한 것들이 일반적인 양 이야기하면서 조선성은 읍성 정도를 들고 비교하더군요. 중국, 조선에는 기본으로 깔려있는 성벽도 없는게 태반이라는 걸 알고는 이야기하는 것인지... 실제로 일본에서 매우 드문 '포격을 통한 공성전'이 이루어진 오사카 전투에서 일본식 천수각을 비롯한 일본 특유의 방어시설은 상당한 취약점을 나타낸 바 있습니다. 히데요시가 워낙에 돈을 바르다시피 해서 그래도 버텨낸 거지만.
과학적이지 않으면 죽는 사회라...치사마님은 종종 일본에 대한 환상이 지나친 감이 있어요.
13/05/22 00:25
제 글을 다시 읽어 보세요. 성의 우월성 논쟁이 아닙니다;; 내전이 잦았고, 그만큼 생존을 위해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13/05/22 00:34
생존을 위한 합리적인 선택은 중국도 하고 조선도 합니다. 마치 일본만 합리적이고 중국 조선은 비합리적이다는 말을 하시는군요. 전형적인 편견에 불과합니다.
일본에 대한 찬양적 색안경부터 벗으세요. 일본이 주변국보다 중세부터 과학적이었네 합리적이었네 하는 식의 주장은 꽤나 허황된 이야깁니다. 아케치님을 필두로 해서 해당 분야에 빠삭하신 역덕분들은 대폭소할지도 모르겠군요.
13/05/22 00:37
성을 과학적으로 잘 쌓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일본의 성 자체를 합리적으로 잘 쌓았다는 말도 아니고요. 그런 설명은 없습니다. 오해라구요;; 그리고 편견이 심하시네요. 색안경은 나이트해머님이 벗어야 될 듯합니다. 멋대로 오해해놓고 이게 무슨 낙인찍기입니까?
13/05/22 00:42
위에서는 합리성을 외치시던 분이 낙인찍기라고 투덜거리면 뭐가 달라지긴 할까 모르겠습니다. 과학적인 사고라고 위에 써놓은 건 다른 사람이 쓰기라도 했나 보군요? 성의 건축 양식과 과학적 방법론을 연관시키던 사람은 다른 사람이기라도 했단 말입니까.
13/05/22 00:52
뒷북이지만 그 엇갈린 부분을 해소하고자 합니다. 나이트해머님의 리플을 보고 이제야 알게 된 거 같네요. 성에 대한 이야기는 성을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서 잘 쌓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저도 인식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솔직히 sungsik님이 왜 저러시나 했습니다.;;
또한 근대화 논란에서는 의견을 피력했으니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근대화 실패는 부패하고는 상관없고, 합리성의 결여라고 생각합니다.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도로 정비를 막았고, 해금령을 내렸습니다. 이러니 당연히 상업이 발달할 수 없었겠죠. 부패라고 했지만 차라리 돈 많은 상인이 조정에 돈 먹이고 도로 정비나 해금령을 어떻게 했으면 근대화가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만큼 (유교)도덕성만을 강조하고 합리성은 등한시했다고 볼 수 있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sungsik님이 주장하신 폐단과 악습이 근대화 실패의 원인 아니라, 유교 자체의 근본적인 한계성에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큰 불만이 없었다면 동학 혁명같은 근대화 운동은 일어나지 않았겠죠?
13/05/22 00:55
제가 한 말 중에 과학적 방법론을 해자와 높은 성과 연관지은 부분이 있나요?
해자와 높은 성은 "오히려 서양의 비관용적인 잔인함이 인간들에게 생존 본능과 함께 그것를 위한" 이 부분에 대한 것입니다. 애초에 해자와 높은 성과 과학적 방법론이 무슨 상관입니까? 전 그 부분에 대한 설명 자체를 한 적이 없어요. 이게 오해라는 말입니다.
13/05/22 01:00
그런걸로 근대화가 가능했다면 베트남은 열강이 되었겠지요. 유교의 한계를 논한다면 일본 역사상 가장 유교가 융성한 시기는 에도 막부였고 존왕파의 사상적 기반의 일익은 유교적 이념(괜히 '존왕'파가 아닙니다.)에 기반한다는 점이 반례가 될 것입니다. 동학 농민운동이요? 18~19세기 전후로 일본의 농민봉기는 세는 걸 포기하게 만드는 데 그에 비하면 동학 정도면 거의 없는 수준이죠.
13/05/22 01:06
나이트해머님께 "
본이 성이 합리성이라... 성벽 찾기 힘들고 잘해야 상황 따라 목책을 두른 게 고작인 일본 대다수의 성을 중국이나 조선에 지었다면 그냥 짓밟혔을 것입니다. 일본 성 중 공들여 쌓은 것에나 돌벽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성 찬양론자들은 그런 희귀한 것들이 일반적인 양 이야기하면서 조선성은 읍성 정도를 들고 비교하더군요. 중국, 조선에는 기본으로 깔려있는 성벽도 없는게 태반이라는 걸 알고는 이야기하는 것인지... 실제로 일본에서 매우 드문 '포격을 통한 공성전'이 이루어진 오사카 전투에서 일본식 천수각을 비롯한 일본 특유의 방어시설은 상당한 취약점을 나타낸 바 있습니다. 히데요시가 워낙에 돈을 바르다시피 해서 그래도 버텨낸 거지만. 일본에 대한 찬양적 색안경부터 벗으세요. 일본이 주변국보다 중세부터 과학적이었네 합리적이었네 하는 식의 주장은 꽤나 허황된 이야깁니다. 아케치님을 필두로 해서 해당 분야에 빠삭하신 역덕분들은 대폭소할지도 모르겠군요." 이 말에 대한 해명을 듣고 싶습니다.
13/05/22 01:07
[오히려 서양의 비관용적인 잔인함이 인간들에게 생존 본능과 함께 그것를 위한 과학적인 방법론을 세우는데에 더 큰 영향을 끼쳤다고 봅니다.
동아시아 중에 일본이 유일하게 이런 서양과 비슷한 특성을 가졌죠. 해자가 있고 높게 솟구친 성을 봐도 그렇고.. ] 차사마님의 리플 일부인데, 아무리 봐도 차사마님께서 과학적 방법론을 해자를 지닌 높은 성과 연관시키신 게 맞는 것 같은데요?;
13/05/22 01:12
이 리플에 성을 과학적으로 합리적으로 지었다는 부분이 있나요?
"오히려 서양의 비관용적인 잔인함이 인간들에게 생존 본능과 함께 그것를 위한 과학적인 방법론을 세우는데에 더 큰 영향을 끼쳤다고 봅니다. " 제 논지는 이거고 해자와 높게 솟구친 성은 그만큼 내전이 잦았다는 것을 예로 든 겁니다;; sungsik님에게 단 리플도 보시길 바랍니다. 일본의 성이 합리적으로 잘 지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계속 "서양의 비관용적인 잔인함이 인간들에게 생존 본능"에 대한 말만 했죠.
13/05/22 01:14
차사마님께서 일본 성의 축조 방식과 과학적 합리성을 함께 논하셨다고 말씀 드리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차사마님께서 처음 달아주신 덧글은 명백히 "일본이 과학적인 방법론을 지녔음을 보여주는 근거는 일본이 축조한 해자가 있는 높은 성에 있다"고 읽히고 있습니다. 만약 차사마님께서 정말로 "'과학적 방법론'과 '해자를 지닌 높은 성'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첫 번째 덧글을 잘못 쓰신 겁니다. 이 경우 오독이 일어나게 된 책임은 읽는 이가 아니라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13/05/22 01:17
그렇게 본다면 유교는 딱히 얘기할 문제가 아닙니다만 -_-a 서양에서는 사회 안정은 되지만 합리성은 없는 사상이나 학문이 없었던 게 아니니까요
13/05/21 22:19
이건 정말로 끔찍한 일이지만, 잘못된 미신에 의한 폐단이 어디 조선만의 일이겠어요. 다른 분들이 덧글에서 써주신 것처럼 지금 이 순간조차 아프리카 어딘가에서는 에이즈를 낫게 하기 위해 어린 소녀들이 강간 당하고 있는 게 현실인 걸요.
그런데 조선 이외의 나라들도 이렇게 사소한 - 사실은 전혀 사소하지 않지만 - 살인 사건에까지 왕이 직접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았나요? 이 건도 그렇지만, 전에 써주신 다른 글에서도 왕이 직접 천민 여자아이의 발목이 잘린 사건에 대해서 몇 번이고 하교를 반복하면서 수사 진행 전반에 관심을 가졌던 걸로 기억하는데...
13/05/21 22:32
근데 중종하면 일반적으로 허수아비 왕. 이런 인식이 강한데,
실록의 기록을 보면 볼 수록 의외로 세종을 제외하고 (노비를 포함한) 백성들에 대한 사정에 가장 관심을 가지는 왕인 느낌이 들어요. 말씀하신 발목 사건을 담당한 왕도 중종이었죠. 중종의 재평가가 시급합니다-_-!
13/05/21 22:39
인육효험설(?) 하니까 이거랑 무관하지만 드라마 허준의 에피소드가 떠오르네요.
허준에게 가르침을 주는 인물로 등장한 스님 이야기요. 원래 양반관료였는데 자식이 나병환자들에게 납치되서 죽죠. 나병환자들 사이에서 사람 간이 치료에 효험이 있다는 믿음이 있는 탓에.. 결국 범인들을 찾아서 모두 쳐죽이는데 그 가족의 어린애 하나가 남은걸 보고 데려가서 키웠던가...? 뭐 그런 내용이었던거 같네요. 이상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줬던 부분..
13/05/21 22:49
실제 비슷한 기록이 있습니다.
전교하였다. “배를 갈라 사람을 죽인 자를 체포하는 일을 해조로 하여금 공사로 만들게 하라.” 하였는데, 이는 경연관의 아룀에 의한 것이다. 이 때 경외의 사람들이 인육(人肉)과 사람의 간담(肝膽)을 창질(瘡疾)을 치료하는 약으로 쓰기 때문에 흉악한 무리들이 소아(小兒)를 사람이 없는 곳으로 유괴함은 물론이고 비록 장성한 남녀라도 혼자 길을 가는 경우에는 겁략하여 모두 배를 가르고 쓸개를 꺼내었는데, 이는 그 쓸개를 팔면 많은 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무에 묶여 배를 갈리운 자가 산골짝에 잇달아 있으므로 나무꾼들의 나무를 하러 갈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법을 만들어 현상금을 걸고 체포하게 한 것이다. - 선조 10권, 9년(1576 병자 / 명 만력(萬曆) 4년) 6월 26일(정해) 1번째기사 사람의 간과 쓸개가 한센병을 치료하는 데 효엄이 있다고 하여 어린 아이를 유괴하여 죽이는 사태가 있었죠. 시기도 선조 때이니 허준에 나오는 시기와도 거의 일치합니다.
13/05/22 00:35
"오히려 서양의 비관용적인 잔인함이 인간들에게 생존 본능과 함께 그것를 위한 과학적인 방법론을 세우는데에 더 큰 영향을 끼쳤다고 봅니다.
동아시아 중에 일본이 유일하게 이런 서양과 비슷한 특성을 가졌죠. 해자가 있고 높게 솟구친 성을 봐도 그렇고.. " 성을 과학적으로 잘 쌓았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내전이 잦았다는 말입니다.;;
13/05/22 00:53
...일본만이 서양과 비슷했다고 외치는 주장은 일본 제국시기에나 먹힐만한 이야기군요. 비관용적 잔인함과 과학적 방법론의 연관성이야 위에서부터 수많은 반례가 나왔지요.
한가지 알려드릴까요. 일본에서 유학이 가장 융성한 때는 전국시대를 경험한 후인 에도막부입니다, 국학으로 취급받으며 조선 통신사마저도 놀랄 정도로 융성했지요.
13/05/22 01:03
위에 차사마님이 써놓은 리플에 대한 해명이 되지 않는 글을 쓰시고는 오해가 풀렸냐고 따져물으면 뭐하자는 겁니까.
비관용적 잔인함과 과학성의 연관성 반례야 위에 많다고 말해드렸지요. 이상입니다.
13/05/22 01:08
"본이 성이 합리성이라... 성벽 찾기 힘들고 잘해야 상황 따라 목책을 두른 게 고작인 일본 대다수의 성을 중국이나 조선에 지었다면 그냥 짓밟혔을 것입니다. 일본 성 중 공들여 쌓은 것에나 돌벽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성 찬양론자들은 그런 희귀한 것들이 일반적인 양 이야기하면서 조선성은 읍성 정도를 들고 비교하더군요. 중국, 조선에는 기본으로 깔려있는 성벽도 없는게 태반이라는 걸 알고는 이야기하는 것인지... 실제로 일본에서 매우 드문 '포격을 통한 공성전'이 이루어진 오사카 전투에서 일본식 천수각을 비롯한 일본 특유의 방어시설은 상당한 취약점을 나타낸 바 있습니다. 히데요시가 워낙에 돈을 바르다시피 해서 그래도 버텨낸 거지만.
일본에 대한 찬양적 색안경부터 벗으세요. 일본이 주변국보다 중세부터 과학적이었네 합리적이었네 하는 식의 주장은 꽤나 허황된 이야깁니다. 아케치님을 필두로 해서 해당 분야에 빠삭하신 역덕분들은 대폭소할지도 모르겠군요." 이런 식으로 멋대로 오해하고 거기다가 일본을 찬양한다는 낙인까지 찍고 계신 부분 말입니다. 거기다가 우월성을 합리성으로 생각한다면 조조는 유비보다 우월한 인간이었나요? 도대체 뭘 찬양했다는 겁니까? 나이트해머님 본인께서 편견을 가지고 계신 겁니다.
13/05/22 01:21
일본의 성의 특성이나 그것의 한계는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적었는데 해명을 요구하는 것은 괴이하고, 합리성이란 단어가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면 일본이 합리적이고 유교사회는 그렇지 못하다는 주장이야 찬양론으로 보일 소지가 다분하군요. 조조와 유비라는 잘못된 예를 이야기하시기까지 하시니 바라시는 모범답안이 뭔가도 짐작이 안갑니다. 어짜피 그걸 안다고 그대로 답해드릴지는 미지수이긴 하지만.
13/05/22 01:30
언어의 사회성에 의거하여 볼때 편견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저를 매도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군요. 거기에 이를 근거로 매도했다고 모함까지 하시니 두배가 되겠네요.
13/05/22 01:34
언어의 사회성에 의거해서 나를 오해하게 했으니, 너는 일본 찬양자라고 한 적에 대해 전혀 꺼리낌이 없다는 거군요.
그게 언어의 사회성과 무슨 상관인 지도 모르겠고 그렇네요.
13/05/22 01:31
일본의 왕의 경우는 입헌군주제를 도입한 거고, 성리학이 아닌 공자의 논어를 해석하고 이것이 생활 철학이 된 거죠. 중국이나 한국과는 그 괘가 달랐습니다. 워낙 통치 이념이 이것저것 받아들이다 보니까 다양했던 거지. 유학이 메인은 아니었습니다.
13/05/22 01:37
막부가 후원해주는 사상이 메인이 아니면 뭐가 메인일까요. 성리학이 아니라 논어 해석이 주다, 라니... 18세기 조선 통신사들이 '우리보다 더 발전된 거 아닐까'하고 쑥덕대던 일본 성리학이 이렇게 부정될 수 있군요.
13/05/22 01:38
"18세기 조선 통신사들이 '우리보다 더 발전된 거 아닐까'하고 쑥덕대던 일본 성리학이 이렇게 부정될 수 있군요." -> 무슨 의미인 지 모르겠습니다. 해석이 전혀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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