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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9/05/13 19:46:47 |
Name |
ipa |
Subject |
[LOL] Lck의 복수자들에게 (수정됨) |
방금 용아맥에서 엔드게임 2회차를 보고 왔습니다.
표를 구하는 과정이 힘들어서 그랬는지, 일반 상영관에서 본 1회차보다 눈물이 더 많이 나더라고요. 동행이 여자분이었는데... 창피....;;
그래서 쓰는 글입니다.
1. 프로게이머란
저는 확실히 게임에 재능이 없습니다.
게임을 너무 좋아하지만, 이제까지 했던 어떤 게임도 중간 이상을 가 본 적이 없어요.
스타도 그랬고 롤도 마찬가지네요. 골드 한 번 찍어보는 게 소원입니다.
그런 저에게, 프로게이머들이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히어로들의 초능력이나 마찬가집니다.
저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다다를 수 없는 정신적 신체적 능력으로 제 응원에 부응하고 자부심을 지켜주는데, 어찌 보면 영화속 히어로랑 별반 다를 것도 없잖아요.
어벤저스도 항상 성공하고 항상 모든 사람을 희생없이 구하는 것은 아니죠.
그래서 그들이 지키려 하는 시민들로부터 되레 욕을 먹기도 하고, 심지어 원한을 품고 흑화하는 시민들도 있어요.
다만, 멘탈마저 초인적인 히어로들과 달리 프로게이머들은 게임에서 로그아웃하는 순간 너무나도 평범한, 아니 오히려 어느 면에서는 저보다도 부족할 수 있는 어린 청년들이네요.
그래서 시민들의 비난과 오해, 멤버들끼리의 갈등, 그 외의 모든 인간적인 역경마저 마침내 초인적으로 극복해내는 영화 속 히어로들과 달리, 상처받고 무너지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실패를 하기도 하죠.
그래도 프로게이머들이 기본적으로 팬들의 영웅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아요. 그것만은 늘 잊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모든 팬들은 잠들기 전, 당신들과 같은 게임실력으로 당신들과 같이 팬들의 기쁨과 자부심을 위해 분투하는, 당신들과 같은 자신을 종종 꿈꿉니다.
그리고 당신의 능력이 내 것인 양, 당신의 성취가 나의 성공인 양 함께 기뻐하고 함께 뿌듯해하며 당신들에게 소속감을 느낍니다.
당신들이 속한 팀의 팬이라는 것, 당신들과 같은 리그의 팬이라는 것 자체로 자부심을 느끼고, 당신들이 그것을 지켜주길 간절히 희망하죠.
이런 희망이 때로 무거울 수도 있을 겁니다.
힘들 때는 이렇게도 한 번 생각해주세요.
프로게이머란 게임에 있어서만큼은 저 같은 시민 1이 허락받지 못한 초능력을 타고난 사람들이고, 그래서 수많은 평범한 팬들의 기쁨과 자부심을 걸고 싸울 수 있는 귀한 기회이자 숙명을 부여받은 영웅들이라고요.
2. 이기고 싶은 싸움과 지면 안 되는 싸움
저는 프로게이머나 스포츠 선수는 아니지만, 나름 승패가 있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승부욕이 강하고 과몰입도 약간 심한 편이어서 가끔 패배가 감당이 안 될 때가 있어요. 부담감이 심해서 잠이 안 오고 밥이 안 먹힐 때도 있고요.
제가 하는 일에도 여러 성격이 있는데, 가끔은 꼭 이기고 싶은 승부도 있고, 꼭 이겨야 하는 승부도 있으며, 절대 지고 싶지 않은 승부도 있습니다.
승부를 자주 해 본 사람이라면 저 미묘한 차이가 뭔지 알거에요.
그 중에서도 가장 괴롭고 피하고 싶은 승부는 “절대 지면 안되는 싸움” 입니다.
그런 승부는 부담감이 간절함을 짓누르죠. 부담감은 결국 빨리 벗어나고 싶고 피할 수만 있다면 상황 자체를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냉정한 판단이 안 되고 기쁘게 몰입하기 어려워요. 이겼을 때의 기쁨보다 졌을 때의 괴로움이 훨씬 생생하고 크게 다가오니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 게으름을 부리게 되기도 해요.
국제전에서의 대표라는 것은, 그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단 다섯 명이서 나누어진 채 자신만큼 강하고 간절한 상대와 뒤가 없는 승부를 연속해서 치러내야 한다는 것은, 초인이 아닌 청년들에게 “져서는 안 되는 싸움” 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겠죠.
그래서 즐기기보다는, 간절해지기보다는, 괴롭고 부담스러운 승부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 정도의 부담까지 져 본적은 없는 저로서는, 뭐라 얘기하는 것조차 주제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제 경험에 비추어 한 가지만 얘기해보자면, 결국 저 승부의 결을 바꾸는 건 자기자신이더라고요.
스스로 최면을 걸든, 마음 속으로 내기를 하든, 자신만의 명분을 만들든, ‘지면 x된다’를 ‘꼭 이기고 싶다’로 바꾸는 건 결국 저 자신의 마음가짐이었어요.
3. Lck Avengers
지금 lck 대표로 msi에 출전해 있는 skt 멤버들에게, 주제넘은 훈수도 많이 두고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거에요.
리그 내에서는 제가 응원하는 팀이 아니라서 시즌이 시작되면 오히려 지길 바랄 때가 많을 겁니다.
그래도 lck의 팬으로서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출전해있는 Skt가 lck의 대표이고, lck가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정예멤버라는 점을요.
작년 한해 ‘가망없이’ 무너졌던 lck는, 이제는 마침 복수자의 입장이네요. Skt 선수들 앞에 놓인 복수의 과업이, 해내지 못하면 끝장인 부담감이 아니라 “꼭 이뤄내고 싶은” 간절함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이 먹을만큼 먹은 아저씨로 하여금 만화 같은 영웅 이야기에 질질 짜게 만드는 건, 그 안에 들어있는 영웅으로서의 긍지, 자신과 동료들에 대한 믿음, 세상을 구하기 위해 분투하는 열정과 희생 같은, 다소 진부하고 오그라드는 주제의식 때문이겠죠.
그러니 이 글도 대 놓고 진부하고 오그라드는 마무리로 뻔하게 맺어보려 합니다. 다들 손가락 조심하세요.
Lck Avengers, assem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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