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경험기, 프리뷰, 리뷰, 기록 분석, 패치 노트 등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Date |
2007/12/21 01:24:59 |
Name |
opSCV |
Subject |
김택용과 응수타진 |
김택용 선수는 너무 잘하는거 같습니다.
마재윤 선수도 너무 잘하는거 같아요.
이윤열 선수의 응수타진도 참 좋아합니다.
임요환 선수의 응수타진은 아직까지도 그 빛을 잃지 않은 거 같습니다.
이영호 선수의 최근 응수타진도 정말 좋아합니다. 배짱이 좋아요.
염보성 선수도 참 잘하는거 같아요.
신희승 선수의 응수타진은 참 좋은거 같았는데, 요즘 다시 생각해보는 중입니다.
이승원 해설위원이나 김동준 해설위원 해설은 선수들의 응수타진을 잘 짚어주시는거 같습니다.
엄재경 해설 위원은 이런 점에서 조금 아쉽다고 느껴집니다. 뭐 다른 컨셉의 해설이시지만요.
김정민 선수 요즘 스팀팩 볼때마다 가슴이 많이 아픕니다. 웬지 남일 같지가 않아요.
홍진호 선수는 좀 더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정도면 15줄은 채운거 같습니다. 힘드네요.
포모스 매니아칼럼에서 굼벵이님께 허락받고 퍼온 글입니다.
좋은글은 같이 봅시다^^
1.응수타진(應手打診)
응수타진이란 용어의 기원을 찾아보려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다용되는 말임에도 그 기원을 잘 찾을 수가 없었다. 신문도 잘 보지않던 내가 이 용어를 처음 접한 것은 바둑책이었다. 후에 신문기사나 뉴스를 통해 용어를 접하면서 점차 그 의미를 알아간 것이지, 처음부터 바둑적인 의미를 알고있었던 건 아니다. 응수타진의 바둑적인 의미를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패,장문 등과 같은 바둑의 기초와는 달리 응수타진은 바둑의 고급활용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응수타진이란 한마디로 상대를 떠보는 행위다. 보통 사회생활에 익숙한 사람일 수록 이런 응수타진에 강하다. 상사의 의중을 빨리 깨닫는 것만큼 사회생활의 우위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비단 직장생활을 예들지 않더라도, 연애의 고급기술중 하나로 응수타진이 자주 응용됨을 솔로들도 잘 알 것이다. 바둑에서 사용되는 응수타진이란 용어 역시 비슷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우선 김택용에 관한 것은 미뤄두고, 바둑의 응수타진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바둑의 응수타진
보통 응수타진을 '잽'으로 비유하곤 한다. 공격은 공격인데, 무겁고 거친 공격보다는 가볍고 유연한 공격이다. 권투선수들이 잽을 툭툭 던지듯 바둑기사들도 대국중에 적지않은 응수타진을 시도하곤 한다. 권투의 잽이 그러하듯, 응수타진 역시 그 조건이 존재한다.
첫째, 가벼워야한다. 둘째, 빨라야한다. 셋째, 상대가 무시못할 정도의 위력은 가져야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응수타진이 늘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아니다.
권투에서 잽이 응용되는 것을 상상해보면 쉽다. '왼쪽을 지배하는 자'로 대변되는 잽의 위력은 모두들 잘 알 것이다. 무겁게 느린 강타보다 가볍고 빠른 연타가 스파링을 주도하는 경우가 참 많다. 스트레이트를 위한 보조역할로만 인식하기엔 잽이 경기내에서 주도하는 범위가 너무 넓다. 바둑의 응수타진 역시 대국의 주도권과 깊이 관계되는, 가볍지만 '묵직한' 고급기술중 하나이다.
보통 바둑에서 응수타진의 장면이 나오면, 초보로선 쌩뚱맞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응수타진은 항상 의외의 곳에서 출현하며 대국을 예상치못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경우도 있다. 특히 초보들은 응수타진의 의미조차 이해못한 채 골머리를 싸매어보지만, 실력의 향상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 대응하기 조차 만만치가 않다.
이창호9단의 전성기때 그를 상대하던 기사들이 애를 먹었던 것중 하나가 바로 이 응수타진인데, 이창호9단이 응수타진을 자주 했던 이유는 판의 모양을 빨리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상대의 응수를 물어서 바둑의 모양을 결정한다- 이것이 응수타진의 큰 목적중 하나이다.
3.응수타진의 목적.
앞서 단락에서 이미 2가지 목적을 언급했었다. 첫째, 대국의 주도권을 가져간다. 둘째, 바둑의 모양을 결정한다. 그러나 이 두가지 목적은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바둑대국을 그림그리기에 비유했을 때, 각각의 대국자들은 늘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의 그림을 그려나가려 애쓴다.(보통 대국전에 눈을 감고 명상을 하거나, 포석부분에서 시간을 많이 소비하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그러나 크레파스를 서로 한턴씩 밖에 쓸 수 없다면 어떨까. 이런 경우 응수타진이란 기법이 등장한다.
빈 도화지에 무언가를 그린다면, 그 종류는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상대의 의중은 당연히 알기 어렵다. 하지만 내가 큰 나무를 한그루 그리고, 상대에게 색칠하도록 유도한다면 상대의 의중을 어느정도는 간파할 수 있다.
만약 상대가 여름을 그리고자한다면 그것은 여름나무로 표현될 것이고, 겨울을 그리고자한다면 메마른 색상을 가진 겨울나무가 될 것이다. 여기까지 가능하다면 그 뒤는 쉽다. 여름나무라면 눈사람을 그리고, 겨울나무라면 드롭킥을 날리는 그 분을 그리면 된다.
상대가 꿈꾸는 그림을 망치는 것은 이처럼 간단한 일이 되고 만다. 응수타진의 목적은 이처럼 모양을 결정하면서 주도권을 잃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권투에서의 잽도 마찬가지다. 잽을 통해 상대의 반응을 관찰하고 리듬을 파악한다. 그러면서도 링위의 주도권을 항상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응수타진의 목적은 이것만이 아니다. 복싱전문가에게 잽에 관해 물으면 반드시 등장할 만한 단어는 무엇일까? 아마 스트레이트나 훅이 반드시 등장하리라 생각된다.
마찬가지로 응수타진을 이야기할 때에도 항상 그 이면의 것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응수타진의 또 하나의 목적은 그 가벼움 속에 숨은 비수(秘手)의 활용이다.
4.비수(秘手)
응수타진은 기본적으로 가벼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사들마다 그 성향의 차이는 있어서, 이창호9단의 경우는 판을 크게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신산이라 불리는 이창호9단에게 있어 이 응수타진이란 것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였을 것이다. 하지만 조훈현9단의 경우 응수타진은 특유의 흔들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요즘 전성기를 맞이한 이세돌9단의 경우는 상대의 숨통을 끊는 목적으로 사용하였다.
정확히 어느 대국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상대는 후야오위란 이름의 중국기사였던 것같다. 이창호9단을 이기고 올라온 상대였기에 이세돌의 수읽기가 더욱 날이 선 것일까, 그 대국에서 후야오위는 이세돌9단의 비금도(칼이름이 아니라 이세돌9단의 고향)에 일격을 당하였다. 응수타진에서 대마몰살까지 거의 60수에 이르는 완벽한 수읽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후야오위는 아마 응수타진의 시점에서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이세돌9단이 날린 잽에만 신경이 팔려서 스트레이트가 날아오는 걸 놓쳐버린 탓이다.
비수라고 해서 그 권투선수의 손이 3개인 것은 아니다. 비수, 숨겨진 손이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상대의 혼을 뺏는 현란한 왼손잽이 그의 오른손을 비수로 만들었을 뿐.
바둑의 응수타진도 그러하다. 상대방의 응수타진에 대해 언제나 긴장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방심하는 순간 대국은 종료되고 만다.
응수타진의 세 번째 목적은 방금 설명한 것과 같다. 허허실실작전, 설령 속지않더라도 고민에 빠져서 시간이 소비하거나 긴장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는 게 프로의 세계다.
5.응수타진과 스타크래프트
전에 바둑과 스타크래프트에 관해 생각을 정리할 때 유일하게 정리되지 않던 부분이 있었다. 응수타진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서야 조금씩 이해가 되기시작했는데, 그 가장 큰 계기가 김택용의 프로토스을 본 것이었다.
사실 그 전에도 스타크래프트에서 어떻게 응수타진이 응용되는가 궁금해한 적은 많았다. 스타크래프트와 바둑은 다른 게임이지만 인간이 창조했다는 큰 공통점이 있다.(바둑의 기원설중 신이 창조했다는 것도 있지만 그냥 넘어가자) 그래서 바둑의 중요한 부분중 하나인 응수타진 역시 스타크래프트 게임내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으리라 믿고있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쉽지가 않았다.
응수타진은 속임수가 아니다. 먼저 보여주고 시작한다는 점에서 맞춰가기나 페이크가 아니고, 그 이후에 많은 선택지를 가진다는 점에서 단순한 견제와 다르다.
초창기의 최연성이나 이윤열에게 '알면서도 못막는다'란 수식어가 붙은 것은 두 선수 사이에 기량의 차이가 존재했기 때문이지, 응수타진을 응용해서가 아니었다. 엄밀한 의미에서 응수타진은 김택용 이후에야 겨우 구체화되었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에게 최소한의 패를 보여주면서 경우의 수를 줄이고, 선택을 강요하고, 그 선택을 관찰하면서 언제나 유리한 고지에 서게끔 만드는 유닛의 흐름이 응수타진이다. 물론 이게 쉬운 일이 아님은 자명하다.
테란의 레이스가 과연 응수타진에 응용할 만 유닛인가. 저그의 뮤탈은 어떨까. 아쉽게도 그들은 다수가 되지않는 이상 큰 효과를 발휘하기 힘들고, 잠깐의 실수에도 그냥 '녹아버린다'. 실드가 회복되고 높은 체력과 기능을 가지고 속도 또한 느리지 않은 프로토스의 유닛흐름 중에 응수타진의 기법을 먼저 발견하게 된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응수타진이 가진 몇가지 필수불가결의 조건때문이다. 그럼, 프로토스를 설명함에 앞서 다시 바둑으로 돌아가 그 조건을 살펴보도록하자.
6.응수타진의 조건
바둑기사들에게 응수타진의 조건이 뭐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사실 바둑에서 응수타진의 조건이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을 꼽는다면, 앞서 처음부분에서 언급한 잽의 3가지 조건과 일치할 것이다. 첫째, 가벼워야 한다. 둘째, 빨라야한다. 셋째, 상대가 무시못할 정도의 위력은 가져야한다. 그리고 더욱더 기본적인 것을 하나 더하자면 '쉽게 제압당해선 안된다'는 조건을 꼽을 수 있다.
그럼 우선 앞의 3가지 조건과 프로토스의 조건을 비교해보자. 프로토스의 유닛은 과연 가벼운가. 프로토스의 유닛은 3종족 가운데 가장 비싸다. 게다가 생산속도도 느리고 인구수도 많이 차지한다. 어찌보면 프로토스야 말로 가장 무거운 종족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것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프로토스의 유닛을 상대하면서 얼마나 상대가 무거워지는냐 하는 것이다.
다크템플러1마리는 무척 비싸지만, 이 1기로 인해서 저그가 동원해야하는 자원량은 엄청나다. 그 와중에 드론학살이라도 일어나면 상상을 초월한 무게가 저그에게 실리게 된다.
물론 다크템플러가 잡히는 즉시 그 무게는 사라지게되지만 그에게는 무한클로킹이란 기능이 있다. 선수들의 컨트롤이 좋아진 요즘, 다크템플러는 분명 프로토스의 발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유닛임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번엔 둘째 조건을 비교해보자. 스타크래프트 전 종족중에서 가장 빠른 유닛은 속업벌쳐라고 알고있다. 하지만 정말 빠르다고 할 만한 유닛은 공중유닛이어야 한다. 지상유닛은 지형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프로토스의 커세어는 따로 속업이 필요없는 유닛이다. 게다가 스플래쉬데미지와 긴 사정거리로 인해 사냥속도도 무척이나 빠르다.
스타게이트에서 생산되어 적본진까지 날아가서 오버로드를 사냥하고 피해없이 귀환하는 전체 시간을 따졌을 때 커세어만한 유닛은 없을 것이다.
흔히 커세어다크의 재발견이란 표현을 쓰곤한다. 다크템플러는 가볍고 커세어는 재빠르다. 단지 오버로드사냥과 클로킹 이용이라는 간단한 이유외에도 다크템플러와 커세어는 이처럼 서로 많은 것을 보완해주는 존재이다. 커세어로 인해 다크템플러의 기동성이 확충되고, 다크템플러로 인해 커세어의 존재에 더욱 무게가 실리게 된다.
세번째 조건인 응수타진의 최소한의 '위력'은 이 두 유닛의 상부상조관계에 의해 더욱 배가된다. 다크커세어 전략에 당해본 사람들에겐 특별히 묘사할 필요가 없지않나 생각된다.
(진정한 의미의 재발견에 관해서는 뒤에 한번 더 언급할 것이다.)
그렇다면 앞서 3가지 조건에 이어 네번째 조건인 '쉽게 제압당하지 않는다'에 대해 알아보자. 이것을 따로 분류한 이유는 위의 세가지 조건보다는 개인의 역량에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아마 바둑을 조금이라도 두어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것이다. 상대의 돌 한점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4개의 돌이 필요하다. 이런 바둑의 기본적인 속성때문에 응수타진은 그 의미를 갖는다. 만약 돌 한점만으로 상대의 응수타진을 제압할 수 있다면 아무도 응수타진을 하려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쉽게 제압당하는 때도 있다. 바로 적진 깊숙히 응수타진을 해야할 경우이다. 주변에 상대의 힘이 강할 수록 응수타진은 위태로와진다. 응수타진은 언제나 최소한의 활로를 확보해두거나, 혹은 사석으로서의 이용가치가 있을 때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스타크래프트에서는 지형과도 연관된 부분이다)
그래서 바둑기사들이 응수타진을 할때 반드시 선행되어야하는 것이 고도의 수읽기 능력이다. 너무 깊이 들어가면 위험하고, 너무 얕게 들어가면 의미가 약해진다.
마찬가지로 플토유저들이 응수타진을 하려할 때도 고도의 컨트롤과 전체적인 판을 읽는 능력이 선행되어야한다. 히드라1마리에 격추당하는 커세어나 성큰에 돌진하는 다크템플러만큼 저그의 희망이 되어주는 건 없을 것이다. 플토유저는 마치 외줄타기를 하듯이 그 선을 넘지않아야 하는데, 이 외줄타기에 실패한 유저만큼 암울한 건 없다.
앞서 말했지만 플토유닛의 물흐르는 듯한 운용은 어디까지나 그 유닛이 살아있을 때까지만 인것이다.
7.저플전과 응수타진
다크커세어를 이용한 응수타진은 저그를 상대할 때 효용이 극대화된다. 김택용의 저그전을 살펴보면 커세어다크 체제임을 뻔히 아는데도 이리저리 휘둘리고 결국에는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자멸하는 저그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물론 김택용과 첫 대면해야했던 마재윤의 경우, 초반의 패배는 그 체제에 익숙하지 못해서라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다크템플러의 드론학살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뒤의 연패는 김택용의 커세어다크가 단순한 일회용 전략이 아님을 시사한다. 사람들의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프로토스의 재앙이라 불리는 마재윤이 유독 김택용에게만 혹독한 시련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이 궁금증에 대한 많은 가설이 있었다. 하지만 그 가설들은 크게 2가지로 구분이 가능하다. 첫째, 당시 마재윤의 무리한 스케쥴이나 맵의 문제로 인해 패배했다는 가설. 둘째, 김택용의 저그전 능력이 마재윤을 능가해서라는 가설.
실력이냐, 아니냐. 마재윤과의 9전은 사실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이었다해도 무방하다. 검증의 결과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히치하이커에서의 1패를 제외하고 마재윤을 8번이나 이겨낸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었다.
아무튼 마재윤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김택용vs마재윤의 저플전은 김택용의 응수타진을 관찰하는데 더할나위없는 귀중한 아이템이 되었다. 박태민이나 한상봉 선수와의 다전도 물론 나름 의미가 있지만, 김택용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낸 것은 마재윤과의 경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마재윤선수에게 감사한다. 그가 아니었으면 글은 고사하고, 이런 재미있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테니까.
1)마재윤의 플토전
마재윤의 대테란전 기본빌드는 3해처리이다. 하지만 대플토전 기본빌드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전에 포모스 자유게시판의 어떤 글을 본 적이 있다. 마재윤의 플토전에 대한 분석을 듣고싶어하는 취지의 글이었던 것같다. 만약 마재윤의 플토전에 고정화된 틀이 있었다면 쉬운 일이었겠지만, 기본적으로 마재윤의 플토전은 프리스타일에 가깝다.
왜냐면 그것이 '과거의 프로토스'를 상대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으니까. 대플토전 저그의 빌드는 발전하지 않은게 아니라 발전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저그가 프로토스를 상대하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을까. 언젠가 어느 저그유저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실수만 하지않는다면 프로토스에겐 지지 않는다는 강한 자신감을 표현한 인터뷰였다. 흔히 플토유저가 저그전의 괴로움을 토로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삼지선다,이지선다이다. 몇 가지 공격방법으로 두고서, 그 대응법의 격차가 심하게 벌어질 때 그것을 선다공격이라고 한다. 가장 일반적인 예를 들면 럴커와 뮤탈의 이지선다같은 것이다. 럴커를 대응하기 위해선 옵저버를 가야하고 뮤탈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아콘이나 커세어테크가 손쉽다. 하지만 프로토스의 건물은 가격이 비싸다. 저그가 에그 터뜨리듯 간단히 방향을 수정하기가 어려운 것이 프로토스의 고전적인 딜레마이다.
반면 저그의 입장은 간명하다. 미리 유닛을 눌러두지 않더라도 라바는 3개까지 모을 수가 있다. 가장 강한 이지선다,삼지선다를 구사하는 방식은 다름아닌 정찰을 통한 맞춰가기이다. 즉, 저그는 일부러 경기를 주도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저플전의 패러다임이 낳은 것이 현재 마재윤의 저플전 프리스타일이다. 그러나 김택용이 그런 마재윤의 가치관에 반기를 든 것이다. 프리스타일에 대항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인 응수타진을 들고서 말이다.
그럼 왜 커세어다크의 응수타진이 프리스타일을 상대로 강력한 면을 보이는 것일까. 이에 관해 설명하기 전에 먼저 앞서 언급한 응수타진의 목적은 되짚어보자. 응수타진의 목적은 첫째, 주도권을 장악한다. 둘째, 게임의 형태를 결정한다. 셋째, 정찰봉쇄와 주의분산에서 이어지는 일격-비수(秘手)-이다.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있는가. 김택용의 응수타진이야말로 마재윤의 프리스타일에 대해 치명적인 맹독이었다. 그리고 마재윤은 그 맹독을 마시고 8번이나 실신하였다.
2)김택용의 저플전
김택용의 저플전은 늘 프로브에서 시작된다. 상당히 이른 시기에 출발한 프로브는 저그의 본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중계한다. 2인용맵도 늘어나고 미네랄도 더 많아져서인지, 프로토스 입장에서는 첫 정찰프로브가 일찍 출발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적어진 듯한 느낌이다.
아무튼 첫 프로브가 도착할 무렵 5드론같은게 아닌 이상 프로브를 방해할 유닛은 단 하나도 없다. 김택용은 자신의 멀티지역에 파일런을 지어놓고 프로브 한 마리를 대기시켜놓는다. 더블해처리냐 본진트윈이냐 아니면 9드론이냐에 따라 포지-캐논-넥서스의 순서가 달라진다. 그렇잖아도 자원축적력이 뛰어난 프로토스의 자원효용이 극대화되는 시점이다.
사실 이 순간에 저그가 더블해처리를 한다고 해도 프로토스에게 불리할 건 전혀없다. 파일런-넥서스-그 뒤 상황봐서 저글링이 생산되려하면 포지-캐논을 짓는다.
하지만 초반에 생산된 저글링은 보통 프로브를 잡으려 저그의 본진에 머문다. 3월3일 1경기는 마재윤의 저플전스타일과 김택용의 저플전스타일의 첫 조우였다. 마재윤은 늘 하던대로 2저글링만으로 프로브를 잡으려했고, 김택용 역시 늘 하던대로 프로브 컨트롤을 하여서 한참동안이나 정찰을 연속했다.
아마 이 시점에선 마재윤도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것이다. 언젠가는 프로브가 잡힐 것이고, 그 뒤로는 저그의 페이스이다 라고 느꼈을지 모른다. 그러나 프로토스의 멀티에는 벌써 넥서스가 완성중이고 테크 또한 느리지 않았다. 마재윤은 여기서 뮤탈을 선택한다. 뮤탈로 상대진영을 정찰하고 맞춰갈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택용은 이미 마재윤을 맞춰가고 있는 중이었다.
곧 커세어 다수가 날아와서 뮤탈을 패닉에 빠뜨렸고 마재윤이 당황한 사이 다크템플러가 떨어지면서 저그진영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당시 이 게임에 대한 분석은 그러했다. 보통 커세어는 정찰 목적으로 1-2기 정도밖에 뽑지 않았는데 김택용은 그 이상 많은 수의 커세어를 뽑았고, 그게 마재윤을 당황시켰다라고. 하지만 김택용이 아무 생각없이 커세어 수를 늘린건 아니었다. 스커지도 없고, 히드라덴도 늦은 뮤탈체제에 대해서 커세어를 계속 모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경기가 마재윤의 패배로 이어진 것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뮤탈을 통한 맞춰가기가 프로토스의 프로브-질럿-커세어를 통한 맞춰가기로 역전되었으니, 게임의 양상 또한 180도 역전된 것이다.
하지만 이 맞춰가기의 역전현상은 빙산의 일각일 따름이다. 단지 이것뿐이라면 응수타진이란 거창한 이름을 붙일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맞춰가기에서 프로토스는 다크템플러와 커세어를 사용하였고, 그 후 이 유닛들의 조합때문에 저그는 많은 패들을 그냥 버려야했다. 대표적인 것이 럴커란 유닛이다. 커세어로 인해 럴커가 대공이 안된다는 단점아닌 단점이 부각된 것이다. 더이상 플토에겐 지옥같은 연탄밭을 애써 뚫을 필요도, 힘들게 옵저버를 일찍 뽑을 이유도 사라져버렸다.(초중반의 이야기다)
그러나 선다공격의 공포에서 해방된 프로토스에 반해,선택의 폭이 좁아진 저그는 더이상 프로토스의 시야를 벗어나기 힘들어졌다. 김택용의 커세어다크는 저그의 막멀티, 빠른테크,드론펌프질,순간적인 유닛폭발력등의 프로토스를 능가하는 저그의 일탈행동을 효과적으로 제약함으로서 저그를 송두리째 손바닥안에 넣어버렸다. 마치 학생을 벌주는 숙련된 선도주임처럼 말이다.
이쯤에서 응수타진의 2번째 목적을 다시 상기시켜보자. "게임의 형태를 미리 결정한다."
김택용이 늘 수싸움에서 앞섰다고 하기보단, 커세어다크 체제 하의 마재윤이 정말 예측하기 쉬운 보통저그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는 정말 말 잘 듣는 착한 학생이었다.
3)싸움의 법칙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말이 있다. 최근의 스타크래프트 트렌드는 정보전이다. 최대한 자신의 정보를 노출시키지 않고, 상대의 정보는 최대한 많이 입수해야한다.
특히 저그란 종족은 한꺼번에 여러가지를 할 수 없다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유닛을 뽑자면 드론이 없고, 드론을 뽑으면 유닛이 없고, 멀티를 하자니 테크가 늦어진다.
일꾼-공격유닛-멀티-테크란 네가지 요소를 한 번에 보충할 수 없기에 저그는 늘 약점을 가진 종족으로 남는다. 마재윤을 비롯한 저그의 전술이 fake를 기반으로 하게된 것은 당연한 진화의 흐름이다.
하지만 프로토스는 저그에 비해 안정적인 생산구조를 가지고 있다. 굳이 fake를 쓰지않아도 일꾼-공격유닛-멀티-테크를 균형있게 조율할 수 있다.( 최적화된 더블넥은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프로토스의 큰 약점중 하나는 순환력이다. 유닛생산에 있어 유닛을 아끼고,저그의 fake에 절대로 속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프로토스의 숙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저플전이란 결국 속느냐,속지않느냐의 머리싸움이다. 마재윤이 fake를 극대화한 것처럼, 김택용이 정찰력을 극대화한 것은 프로토스의 자연스런 진화였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김택용의 커세어다크는 멀뚱히 상대방의 본진을 정찰하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김택용이 커세어다크를 선택한 것은 저그를 자신의 예상범위 안에 묶어두기 위해서다.(물론 정찰력도 포함해서) 속느냐 속지않느냐의 싸움에서 마재윤이 번번히 패배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커세어다크의 압도적인 구속력때문이다.
프로토스가 1개의 패를 내보이면 저그는 2개의 패를 내보여야 하고, 프로토스가 3개의 패를 내보이면 저그는 6개의 패를 내보여야 한다. 이것이 커세어다크 전략을 응수타진이라 부르는 가장 큰 이유이다.
8.비수(秘手)
잽을 잘 쓰는 권투선수와 잽만 잘 쓰는 권투선수를 비교해보자. 잽만 잘 쓰고 스트레이트나 훅이 약한 선수는 기본적으로 거리를 유지한 아웃파이터로 성장하게 된다. 그는 상대의 사정권 안으로 들어가는 걸 무척이나 싫어하며, 가급적 잽만으로 상대를 지치게만들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잽을 잘 쓰는 권투선수라면 어떨까. 그는 잽 이외에도 강한 스트레이트나 훅을 가지고 있다. 아마 그라면 상대의 사정권 안으로 들어간다해도 잽만 잘 쓰는 선수처럼 불안해하진 않을 것이다. 펀치력이 강한 상대라면 잽으로 어느 정도 기운을 뺀 다음 인파이팅을 시도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택용은 잽과 스트레이트가 잘 조화된 선수라고 할 수 있다. 커세어다크의 잽이 너무 화려한 나머지, 비수와 같은 스트레이트가 주목받지 못하는 경향도 있지만 몇몇 경기를 살펴보면 이 스트레이트에 얻어맞고 다운된 여러 저그들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의 비수를 피하지 못했을까. 글의 초반에 언급했듯이 그 비밀은 잽에 있다. 잽이 그들의 시야를 뺏어버린 탓이다. 다크커세어 전략은 기본적으로 상대의 동선을 제약하며, 동시에 오버로드 사냥을 통해 그들의 시야를 뺏게된다.
수없이 날아오는 잽 속에 숨은 묵직한 스트레이트, 그것이 바로 진짜 비수인 것이다.
9.마치며.
나는 김택용의 경기가 즐겁다. 그의 프로토스는 마치 끊임없이 생각하는 컴퓨터와 같은 느낌이었다. 모든 것이 논리정연하며, 저그를 잘 이해하며, 경기 자체가 재미가 있다.
김택용의 비수더블넥은 바둑의 응수타진에 비견될 정도로 고도화된 기술이라 여기며 그에 대한 감상을 희미하게나마 적어본다.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