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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2/11/20 15:06:43 |
Name |
물빛노을 |
Subject |
첫사랑...설레고...수줍고...섬찟한...(2) |
2학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들은 풍월이 있어 J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접근했습니다. 초-중-고 다 같이 다녔는
데 작년에 처음 본 애입니다ㅡ.ㅡ; 그래도 1학년 때 같은 반이라, 말 붙이기는 수월했습니
다. 같이 장난칠 정도는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J와는 말 한 마디 못했습니다.
신은 있었습니다. 어느날, 저는 J와 짝이 되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맛이 간 놈으로
보건 정신병자로 보건 상관없이,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 마치 일행이 아닌 것처럼 멀리 떨
어져서 따라오건 말건, 그날 저는 집에 가면서 만세를 부르고 악을 쓰며 노래하고 방방 뛰
었습니다.
짝이 되니까 친해지기는 쉽더군요. 공부 시간에 몇 마디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친해졌습니
다(Ex) 저 선생 너무 싫어, 가르치지도 못하고 신경질만 부리고 점수만 깎지 않냐? 맞아,
맞아;;). 사적인 얘기가 오가기 시작했습니다. 영화나 연예인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루었
습니다. 저는 J에 대한 정보를 그날그날 잘 적어두기 시작했습니다.
이후에 저는 J와 많이 친해졌습니다. 자리에 관계없이 쉬는 시간에 같이 많이 떠들었습니
다. 학기 말이 되자 담임선생님은 오는 순서대로 앉고 싶은 위치에 앉으라고 했습니다. 저
는 J의 뒷자리를 선택했습니다. J는 30분 전에 오더군요. 저는 그 시간에 맞춰서 가다가,
10분 정도 J보다 먼저 갔습니다. 나중에는 J가 제 앞자리에 알아서 앉게 되었습니다(그만
큼 친해졌다는 얘기지요. 반에서 가장 친한 남학생으로 저를 꼽을 정도였으니까요. 이때
쯤 되자 제 주변의 친구들은 제가 J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들이 제게 한 말은 전혀 기억 못 하더군요). 불을 끄고 어두운 교실 한가운데의 책상위에
앉아서 J를 맞이한다던지(6시 40분~7시 정도에는 상당히 어둡더군요. 파르스름한 빛이 있
는...), 같이 장난치고 눈 온 날은 눈싸움도 하고요(J가 "반에서-전교에서-눈뭉쳐서 먼저
던질 수 있는 남학생은 너밖에 없다"라고 했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저는 이제 J와 사귀는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겨울 방학이 가까워오자 저는 방학 사이
에 J와 멀어질까봐 고민한 끝에 사준다고 해도 귀찮다고 안 사던 폰을 샀습니다. 오직 J와
문자 혹은 전화로라도 연락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른 이들은 친구 사이에라도 불러내서
같이 놀고 영화도 보러 가고 하던데, 저와 J의 만남은 철저히 학교에서만 이루어졌습니
다. J가 같은 동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학교 밖에서 한 번도 J와 만난 적이 없습
니다.
겨울 방학 보충 때도 저와 J는 앞뒤로 앉아서 많이 놀았습니다-_-; 매일 밤 잠이 오지 않
아 1시간 이상 뒹굴기는 예사였습니다. 제 수줍은 고백에 J가 응해주는 꿈, 거부하고 절 차
는 꿈, 두고보자고 보류하는 꿈까지 고백에 관련된 모든 경우를 꿈으로 겪었습니다.
어느 날의 J의 친구(여자입니다)랑 저랑 J랑 학교에서 역시 앞뒤로 앉아 놀고 있는데, 그
친구가 물었습니다. "영록, 너 얘한테 관심있지?" 저는 당황했습니다. Yes? No?
대답이 난감했습니다. 저는 묘한 웃음(J한테 어떻게 보였을지 생각하면 초어이없습니다-
_-; 내가 왜 그랬을까)을 띄우며 J를 보고 말했습니다. "글쎄...?"
그 날 이후 제 증상은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이제 2월학기가 되었고, J는 저와 제 2외국어
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반이 될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3학년이 되면 J는 새 친구들을 사귈
테고, 어쩌면 그 중에는 J의 남자 친구가 포함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마음이 조급해졌습니
다. 그런 저를 완전히 무너뜨린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기술 시간이었습니다(저희는 아직도! 남자는 기술, 여자는 가정을 배웁니다).
<있잖아...사실 너 좋아해..>라는 문자가 J에게서 제 폰으로 도착했습니다.
저는 미칠 듯이 흥분했습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역시 들은 풍월이 있었
습니다. 저는 무덤덤한 것처럼 답장을 보냈습니다.
<무슨 소리야? 갑자기...>
<너도 나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저는 이성을 잃었습니다.
<야 좀 있다 다시 얘기하자 나 지금 너무 정신이 없다>
그 때 제게 찬물이 떨어집니다.
<야 영록 너 무슨 소리하냐?>
<무슨 소리냐니...나 지금 니가 보낸 문자 땜에 정신 없다고>
<내가 무슨 문자를 보냈다고 그래?>
청천벽력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문자는 자기 번호 말고 다른 번호를 찍어보낼 수 있다고 하더군요. 누군가
제 마음을 아는 사람이 장난친 거 같았습니다. 이제는 J가 제 마음을 분명히 알았으리라
생각한 저는 그 다음날, 2월 8일에 고백했습니다.
아침 자습 시간에, 저는 J에게 쪽지(문자가 아닙니다)를 보냈습니다.
<나 영록인데...잠깐 복도에서 얘기 좀 하자> J는 저를 따라 나왔습니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던 저는 저희 반인 1반에서 4반복도까지 머리가 쪼개질 듯한 고통 속에서
걸어갔고 J는 잠잠히 따라왔습니다.
"야 J(이름의 약자입니다-_-;)야, 나 널 좋아한다."
좀더 멋있게, 닭살스럽게, 느끼하게 미사여구 동원해서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전날 밤
장장 5시간 동안 궁리했던(평소에 쓰잘데기 없는 말 잘하는 실력을 십분 발휘하여) 말들
이 왠지모를 두통 때문에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제 친구는 "여자의 마음이 갈대라
면, 나는 그 갈대를 사랑이라는 끈으로 묶는 막대기가 되겠다"라고까지 해서 여자 친구를
만들었는데(제가 제공해준 대사입니다. 그걸 설마 그대로 읇을 줄이야-_-;), 저는 J의 표
정이 변하는 것을 보고 쓸데없는 소리를 덧붙이고 말았습니다.
"물론, 니 생각에는 많이 부족하겠지만..." 빌어먹을! 내뱉고 나서야 실수를 깨달았습니다.
들은 풍월로도, 몇몇 사람들의 충고로도, 고백 시에 자신감없는 말은 금물이었습니다.
이게 웬 헛소리란 말입니까? 아니나 다를까,
"미안해. 난 그냥 친구로만 지냈으면 좋겠어..."
J는 구두 끝으로 바닥을 긁으며 이 말만을 하고 서 있었습니다.
저는 목소리를 쥐어짜냈습니다.
"그냥...친구...?"
" 응..."
" 그래...알았어."
그리고 J는 교실로 돌아갔습니다. <차였다>라는 제 문자를 본 친구들은 위로해주었지만,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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