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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2/10/25 13:51:59 |
Name |
Hewddink |
Subject |
[잡답] 휴딩크의 일본 만화 작품의 고찰 - <슬램덩크(SLAM DUNK)> |
안녕하세요...
+_+
제가 얼마전에 일본 만화에 대한 중간 레포트를 썼습니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분야였기 때문에 레포트 첫 장에 목차까지 쓰는 등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이었죠.
"걸작"을 만들고 말겠다는 위대한 창조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저는 만인의
대작 <슬램덩크(SLAM DUNK)>를 저 나름대로 고찰하고 평론해 보았더랬습니다.
바로 아래에 나오는 내용인데요...
경어가 쓰이지 않은 건 제 레포트에서 원본 그대로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니까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구요...^ ^
한번 읽어보시고 추억의 만화 <슬램덩크(SLAM DUNK)>를 회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외없이 수많은 걸작들과 히트작들이 등장한 1990년대지만, 역시 만화계의 최고 사건은 <슬램덩크(SLAM DUNK)>였다. 농구의 불모지 일본에서 판매량 1위의 농구 만화라는 기적적인 사건을 연출했고, 7년간 연재되는 동안 농구를 좋아하는 청소년은 물론 대학생과 여성들에게까지 가장 사랑받는 만화로 군림해온 난공불락(難攻不落) <슬램덩크>. 최고의 판매량이 최고의 작품성을 보증해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뛰어난 그 인기가 그 작품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방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슬램덩크>는 곱씹어볼수록 최고의 인기에 걸맞는 질을 지닌 몇 안되는 작품중의 하나임에 분명하다. 1990년대 일본 만화의 상징, <슬램덩크>의 매력은 무엇일까?
<슬램덩크>는 1990년 일본슈에이사의 만화잡지 <소년 점프>에 연재되기 시작했다. 작가인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원래 농구 선수 출신이었다. 만화 중간에 간간이 비치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작은 키 때문에 농구 선수로 성공하기는 어려웠지만 농구를 향한 열정만큼은 버리지 못해 농구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데뷔한 후에도 농구 만화를 연재하기는 어려움이 많았다. 일본에서 농구의 인기는 대단히 미약하다. 당시만 해도 농구 경기를 TV에서 중계방송하는 경우조차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만화 출판사의 편집자들은 "야구, 축구, 배구 이외의 스토리는 안된다."고 못을 박았다. 그러나 작가의 간곡한 부탁으로 "처음 몇 달간만"이라는 조건을 달고 <슬램덩크>의 전설은 시작된다.
<슬램덩크>의 이야기는 매우 간명하다. 백호가 소연이를, 태섭이가 한나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초적인 양념일 뿐, 그 흔한 연애사건 하나 터지지 않는다.<슬램덩크>는 오직 농구의 아름다움만을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농구 선수 출신 작가였기에 가능하였겠지만,<슬램덩크>에 나오는 농구에 대한 정확하고 사실적인 묘사는 실로 놀랍다. 농구 경기 주변의 상황, 섬세한 작전 전개, 선수들의 심리 묘사, 현란한 기술적인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작가는 꼼꼼하게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가 강백호라는 농구 문외한이 농구를 배워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에, 농구에 대한 기초적인 설명까지 곁들이게 되어 농구광이 아니더라도 쉽게 만화에 빠져들게 한다.
만화 속의 주인공들은 고등학생에 불과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현란한 플레이는 거의 NBA 수준이다. 슬램덩크, 앨리웁, 2중 점프 레이업 슛 등 농구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묘기들이 경기 때마다 터져 나오기 때문에 독자들은 농구의 매력에 단숨에 빠져들 수 밖에 없다. 때마침 불어온 NBA의 열풍은 <슬램덩크> 선풍과 맞부딪쳐 엄청난 농구 붐은 만들어내기도 했다.
작가 스스로가 말하듯 <슬램덩크>의 가장 큰 매력은 다양하고 멋진 캐릭터이다. 농구는 전혀 모르지만 천재라는 자만심으로 가득한 강백호, 농구 외에는 여자든 뭐든 아무 관심 없는 서태웅, 멋진 상대가 있으면 열심히 싸우지만 최고가 된다든지 하는데 큰 집념없는 윤대협 등 인물 하나하나의 개성이 이처럼 살아있는 작품을 보기는 어렵다.
주인공들의 성격이 과거에 전형적으로 생각하던 주인공의 인물형과 전혀 다르다는 것도 큰 몫을 한다. 도덕적 자제력, 겸손함, 순종적 미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강백호나 모든 일에 무관심하고 무표정한 서태웅은 과거의 만화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주인공들이다. 북산고교의 5명 뿐 아니라 그들이 맞붙는 상대팀의 선수들까지 명료한 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딱히 주인공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전지전능하고 착한 하나의 주인공에만 익숙해있던 독자들일수록 이처럼 다양한 인물들로 구성된 만화가 전해주는 새로움은 더욱 컸을 것이다.
<슬램덩크>에 나오는 인물들은 크게 3가지 스타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독자들로부터 가장 사랑 받는 미남형 스타들이 있다. 서태웅, 정대만, 윤대협, 김수겸, 정우성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두 번째는 성격파 스타들인데 이들은 NBA 농구 선수들로부터 외형을 빌려오는 경우가 많다. 북산의 채치수는 데이비드 로빈슨, 산왕의 정성구는 스코티 피펜, 신현철은 샤킬 오닐을 모델로 하는 식이다. 이들은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 플레이 스타일까지 비슷한 경우가 많다. 세 번째는 만화형인데 ‘백호군단’이라고 불리는 강백호의 친구들이 대표적이다. 강백호는 이 세 가지 스타일 모두에 걸쳐 있다. 성격이나 플레이 스타일은 데니스 로드맨을 닯았고, 외모는 개성있는 미남형으로 그려졌는데, 만화전반에 있어서 가장 황당하고 만화적인 행동을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작가는 만화 전반에 걸쳐 이 인물들을 사실적이고 입체적인 그림체와 희화화된 만화체 두 가지 기법으로 그린다. <슬램덩크>의 기본적인 그림은 <드래곤 볼>시대의 평면적이고 희화적인 그림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이는 현대 일본 만화의 한 흐름이기도 한데, 인물들의 신체 비례나 외형을 현실의 사람과 비슷하게 그린다. 사진과 영화에 익숙해져 있는 세대에게 인물들을 보다 사실감 있게 느끼게하는 장치다. 배경은 거의 사진에 가까울 정도로 정교하게 그린다. 농구 경기를 하는 역동적인 신체를 그리기 위해서도 이와 같은 사실적인 화풍은 불가피했을 것이고, "멋진 롱다리" 농구 선수들의 신체적 매력을 한껏 뽐내는 수단도 되었을 것이다.
주인공들이 이렇게 폼만 잡는다고 <슬램덩크>가 그토록 엄청난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까? 이 멋진 사내들은 곧잘 만화형의 얼굴로 바뀌어 독자들의 뒤통수를 때린다. 허풍을 떠는 강백호, 그 옆에서 군시렁대는 서태웅은 신비한 능력을 가진 스타들일 뿐만 아니라 언제나 가까이 할 수 있는 귀여운 친구들이다. 이 귀여운 얼굴들은 바로 멋진 캐릭터 상품으로 변신한다.
부진을 면치 못하던 북산고가 채치수의 "고릴라 덩크"로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순간, 주위는 조용해지고 골대만 삐걱거리며 오랫동안 흔들린다. 잠시 한 호흡을 고르고 관중들의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온다. 작가는 농구 경기의 흐름과 그에 따라 변화하는 선수와 관객과 독자의 심리를 어디에서 당겨주고 어디에서 풀어주어야 할 지를 안다. 각 인물의 개인적인 체험이 어떻게 플레이 "하나"를 만드는지를 보여주는데 혼신의 힘을 다한다. 탁월한 연출이라고 밖에 설며되지 않는 이런 명장면들이 <슬램덩크>의 수준을 보통의 만화와 다른 것으로 만들어왔다. 그리고 잠시 후, 이 명장면을 만들어낸 "신비"의 주인공들은 귀여운 "만화"로 바뀌어 낄낄대며 독자들을 웃겨준다.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슬램덩크>는 1부로 연재를 마치고 어제 2부가 시작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연재 중단은 갑작스러운 것이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 예견되기도 했다. 연재 초반부에는 북산고 농구부를 구성하는 다섯 명이 갖추어지고 강백호가 처음 농구에 눈뜨게 되는 과정의 풍부한 사건들, 즉 경기 외적인 요소가 이야기를 탄력있게 이끌어갔다. 그러나 연재 후반에 오면서 이런 요소들은 많이 줄어들고 이야기가 농구 경기 자체에 집중된다. 연재 마지막을 장식하는 산왕과의 경기는 무려 6권째 이어진다. 다큐멘터리식으로 경기를 진행해 나가면서 계속 역동적으로 사건을 전개해 나가긴 했지만, 경기만의 긴장이 긴 호흡을 유지하긴 어렵고, 다양한 재미를 주진 못했다. 연재 초, 중반의 풍부한 맛이 사라진 것이다.
<슬램덩크>의 사령탑, 이노우에의 가장 현명한 판단은 경기를 끝내야 할 적절한 타이밍을 알았다는 것이다. <드래곤 볼>이 연재를 이어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스케일을 확장하여 독자들을 실망시킨 것과는 달리, <슬램덩크>는 자신의 수명을 제대로 알고 끝내야 할 때 끝낼 수 있는 결단력을 보여 주었다. 작가는 1부를 마친후 좀더 공부를 하여 시리즈를 이어가겠다고 한다. 어쩌면 연재 도중 정우성과 서태웅, 강백호가 말하듯 주인공들이 미국으로 가 NBA를 배경으로 시리즈가 계속될지도 모르겠다.
이 만화에 심오한 주제같은 것은 없다. 가르쳐주는 게 있다면 스포츠는 아름답고, 강백호처럼 주변에서 뭐라 그래도 낙천적으로 살아가면 모든 일은 잘되고 세상은 즐거워지리라는 것뿐이다. TV 도쿄에서 집계한 1996년 상반기 인기 만화 베스트 10에 <슬램덩크>는 27권이 1위, 28권이 3위를 차지했다. 당당한 승자로 권좌에서 물러선 <슬램덩크>에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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