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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5/31 16:30:17
Name meson
Subject [일반] 『오염된 정의』 - 김희원의 정의는 깨끗한가?
※대선 국면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글이지만, 정치 이야기가 많이 나오므로 선거 게시판에 씁니다.

김희원의 『오염된 정의』는 한국 정치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책이다. 윤석열, 한동훈, 이재명, 조국, 홍준표, 원희룡, 윤희숙, 이준석을 비롯한 현역 정치인들은 물론 유시민, 김어준, 민경욱, 가세연 같은 정치 스피커들까지 모두 비판한다. 전반적으로 문체가 좋았고 문장도 깔끔해서 읽는 맛이 있었다. 비판은 날카로웠고 때로는 통쾌했으며, 원론적으로 수긍하지 못할 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간추려 평하자면 이 책은 ‘정치 고관여층이라면 누구든지 흥미롭게 읽을 만한 비평서’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12·3 이전에 출간되었음을 감안하고 본다면 분명 그렇다.

다만 이 책에 대해 한 가지는 지적하고 싶다. 책을 읽은 시점이 문제였을지도 모르나, 현 시국을 생각하지 않고 보더라도 마음에 걸리는 점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일관성이다. 저자가 언론인으로서 기계적 균형과 양비론을 취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좋다. 그런데 이 책의 표현대로, 말이 “힘을 발휘하려면 발화자가 자격이 있어야 한다”(1부 中, 「자격 없는 두 사람의 정치」). 어떤 주제에서는 양비론을 취하면서 또 다른 주제에서는 한쪽 편을 든다면, 그런 저자의 말에 힘이 실릴 수는 없다. 도리어 은밀하게 정치적 입장을 표출한다는 의혹을 사기 쉽다.

그런데 저자는 이 책에서 그런 태도를 보인다. 예컨대 이 책은 메갈리아를 “충격요법으로 여성혐오에 대한 문제제기에 성공한 인터넷에서의 일대 사건”(1부 中,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이라고 평했다. 워마드에 대해서는 “남초 커뮤니티에서 ‘남성 혐오’의 원흉으로 꼽히는, 결국 페미니즘이 문제라는 주장으로 이어지는 키워드”(2부 中, 「이준석, 여성혐오라는 새 정치」)라고 지나가듯이 언급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남성 혐오’라는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지와는 상관없이”(2부 中, 「이준석, 여성혐오라는 새 정치」)라고 적으며 이들에 대한 지적을 회피했다.

여기까지야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대남 집단이 페미니즘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인식 자체가 허구적”이라고도 했다(3부 中, 「이미 도래한 포퓰리즘」). “남성중심주의와 성차별은 어디에나 있고 매일 반복된다”(3부 中, 「성범죄 조장 국가, 대한민국」)고 규정했다. 이런 강경한 발언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된 유일한 실증적 근거는 “한국 여자들은 남자 임금의 68.8%(29개국 평균 88.1%)를 받고 일하며 국회 의석의 19.1%(평균 33.9%)만을 차지한다”(2부 中, 「이준석, 여성혐오라는 새 정치」)는 이코노미스트의 2023년 유리천장지수 자료뿐이었다.

이 책은 위 비율 차이에 의지하여 “성차별 경향이 공고”하다고 선언하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외쳤다(2부 中, 「이준석, 여성혐오라는 새 정치」). 그리고 “내가 글을 쓰는 기준은 언제나 공익적 가치였고 페미니즘 또한 그런 인류 보편의 가치라고 믿는다”(3부 中, 「페미니즘을 여자들에게 맡겨두신 분들께」)고 말했다. 이런 전제를 가지고 있으니 여성운동 세력에 비판적인 언급이 나올 공간은 당연히 없었다. 저자는 “안산 선수 논란의 핵심은 남성 혐오 용어 사용”이라는 정확한 지적을 “왜곡된 논평”이라고 일축했다(2부 中, 「이준석, 여성혐오라는 새 정치」).

이러한 입장이 반드시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언론인이라면 언제나 기계적 중립만 취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저자 본인의 견해가 이와 다르다는 데 있다. 이 책은 유시민이 “자신의 정의에 부합하는 사실은 사실이라 말하지만, 부합하지 않는 사실은 무시하거나 왜곡하기를 서슴지 않는다”(2부 中, 「유시민에게 진실이란 무엇인가」)고 비판했다. “정치적 신념에 사실을 굴절시키는 한 유시민의 사실, 균형, 정의는 상대주의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길이 없다”(2부 中, 「유시민에게 진실이란 무엇인가」)고 맹공했다. 스스로의 기준을 이렇게 세운 것이다.

그렇게 주장하고 있기에 저자에게도 비판점이 생긴다. 이 책은 왜 메갈리아와 워마드의 폭력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는가? 왜 여성운동에 불리한 사실은 숨기고, 유리한 사실만을 진실로 포장하는가? 왜 결과의 평등이 무조건적인 선(善)이라고 전제한 채로 논지를 전개하는가? [ 유시민을 비판할 때와는 태도가 다르지 않은가. ] 이 편향성으로 말하자면, 저자는 자신에게 “‘도대체 집게손이 뭐냐’ ‘남성 혐오를 주장하는 단체가 정말 있는 거냐’라며 메갈리아에 대해 물은”(3부 中, 「페미니즘을 여자들에게 맡겨두신 분들께」) 남자 선배 기자보다도 더 게으른 언론인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저자는 책 내에서 시종일관 심판자를 자처한다. “한쪽의 잘못으로 다른 쪽 문제를 지울 수 없고 남의 과오를 내 정당성의 알리바이로 삼을 수 없다”(2부 中, 「조국의 반성할 용기」)고 말하며 양비론을 전개하고, 국민의힘을 공격할 때만큼 날카롭게 민주당을 비판한다. 그 비판들은 물론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하지만 여성운동을 지지하기 위해 유리천장지수를 근거로 삼는다면, 과연 양당 중에 고소득자·자산가·대기업·전문직·군부의 지지를 더 많이 받는 쪽이 어디인가? 그 비율의 차이를 짐작할 수 있음에도 양비론을 펼치는 것은 자기모순이 아닌가.

이러한 비일관성은 옳음과 다양성에 대한 이 책의 입장에서도 역시 드러난다. 저자는 “옳고 그름을 젖혀둔 채 득실 분석만 하는 언론의 ‘논객질’이 나는 지겹다”(1부 中, 「얼어 죽을 ‘관전 포인트’」)고 했다. “다양하기만 하고 옳은 방향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닐까”(3부 中, 「페미니즘을 여자들에게 맡겨두신 분들께」)라고도 적었다. 그런데 이재명에 대해서는 “민주당을 쪼그라뜨렸다”며, 당내에 “다양성”이 실종되었다고 비판했다(2부 中, 「이재명의 진짜 문제」). 민주당이 “민심과 멀어져갈 때 제동을 걸 수 있는 다양성”(4부 中, 「양념이라는 이름의 파시즘」)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양성이 좋다는 것인가, 옳음이 좋다는 것인가. 민주당에는 다양성이 있어야 하지만, 성평등 문제에서는 페미니즘의 입장만이 옳다는 것인가. 전자든 후자든 개별적으로는 누구나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논지에 정합성이 있으려면 둘 중 하나만을 취해야 한다. [ 굳이 둘 모두를 택하고 싶다면, 적어도 저자 자신을 심판자로 의식하지는 말아야 한다. ] 스스로의 정치적 신념상 정당에는 다양성이 중요하고, 성평등에서는 페미니즘이 중요하다고 믿는다면 그것까지 교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신념을 공식적인 포폄의 기준으로 사용해서는 곤란하다.

실제로, 기준이 자의적일 때면 비평도 억지스러워졌다. 저자는 이재명의 팬덤 정치로 “결국 민주당 지지기반이 협소해”졌다고 쓰면서도, 그런 정당이 어떻게 “총선 압승”에 성공했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4부 中, 「양념이라는 이름의 파시즘」). 이재명이 “금융투자세마저 폐지키로 했다”“아연할 노릇”이라고 개탄했지만, 동시에 상법 개정을 추진한 사실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4부 中, 「양념이라는 이름의 파시즘」). 조수진 변호사가 총선에서 “성범죄 가해자 변호 논란으로 사퇴”했다고 비판했을 뿐, 그 논란이 오보로 인한 것이었음은 적시하지 않았다(4부 中, 「양념이라는 이름의 파시즘」).

우스운 꼴이 아닌가. 특히 조수진 변호사의 사퇴는 언론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음에도 이 책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저자는 성찰은커녕 보도준칙의 존재를 강조하며 “이런 기준이 있어 마구잡이 의혹 제기와 오보를 막는다”(2부 中, 「유시민에게 진실이란 무엇인가」)고 언론의 진실성을 엄호하기 바빴다. 이래서야 말에 무게가 실리겠는가. 당시에 한국일보 역시 조수진 논란을 사설에서만 2회 공격했는데, 한국일보 뉴스스탠다드실장이라는 저자가 이런 치부를 그냥 넘어가도 되는 것인가. 바로 여기에 이 책을 마냥 호평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종합하자면 『오염된 정의』는 정론(正論)의 입장에서 모두를 비판하는 책이 아니다. 그런 분위기를 풍기지만, [ 실은 명백히 저자 개인의 정치적 신념에 기반해 자의적인 기준으로 정치인들을 포폄하는 책이다. ] 그리고 저자의 정치적 입장은 양당에 모두 비판적인 진보 언론인의 전형에 가깝다. 사회·문화적 현안에서는 늘 강자와 약자를 구분하고 한쪽만을 옹호하면서, 유독 정치 분야에서는 양당을 대등하다고 전제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진보 의제에 대한 양당의 수용성에 명백한 차이가 있음에도, 그나마 전향적인 민주당에만 비판을 가하는 것까지 똑같다.

그런 태도가 반드시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사안별로 상이한 입장을 가질 수야 있다. 하지만 그런 이중잣대를 보편타당한 기준처럼 원용한다면 문제가 된다. 적어도 자신이 원칙과 상식의 편이라고 확신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 책의 표현처럼, “내가 용납하기 어려운 건 자기 생각이 틀렸다고 한 치도 의심하지 않는 오만이다”(1부 中,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이런 문장을 적으면서도 자신의 이중잣대는 문제없다고 믿었다면 우스꽝스럽지 않은가. 그렇기에 나는 유시민의 편향성을 꼬집은 저자에게 다음의 문장을 돌려주고 싶다.

“나 자신이 내가 조롱했던 그 사람이 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2부 中, 「음모공동체, 김어준과 민경욱」)

그나마 유시민은 자신의 정파성을 누차 인정하기라도 했으나, 저자는 스스로를 중립이라고 믿는 듯하니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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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5/31 16:46
수정 아이콘
결국 본인의 잣대로 본인을 재어봐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책이군요.

글 잘 읽었습니다.
25/05/31 16:50
수정 아이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른한우주인
25/05/31 19:13
수정 아이콘
갈라치기 시작인건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책을 굳이 가져와서 이야기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25/05/31 22:26
수정 아이콘
자유게시판에 서평을 쓰려다가 정치인 언급 때문에 선거게시판에 올린 건데... 이게 갈라치기 시작이 되는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전기쥐
25/05/31 19:14
수정 아이콘
진중권식 모두까기 비슷한 논조네요.

중립, 중도는 허상입니다. 아예 정치 무관심층이 아닌 이상..
25/05/31 19:30
수정 아이콘
손석희의 질문들 유시민,김희원으로 검색해 보시면 어떤 분인지 대략 느낌이 옵니다.
25/05/31 23:47
수정 아이콘
진영논리에 빠지는 것 까지는 이해할 수 있고 중립적이지 않을 수 있는 것도 당연한데
자신의 정치적 스탠스에 대해서 메타인지가 가능한지.. 아니라면 최소한 그걸 하려는
노력이라도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최소한 선악의 이분법을 조장하는 이들에게
놀아나지 않으려면 말이죠.. 나이가 들수록 더 쉽지 않은 문제 같습니다.
25/05/31 23:48
수정 아이콘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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