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2/08/26 11:20:55
Name aura
Subject [일반] 롯데샌드 (수정됨)

와플, 크로플, 마카롱.

나는 이따위의 무척 달고 맛있는, 하지만 비싼 간식들을 좋아했다.

그래서 한적한 할머니 댁 시골을 가길 싫어 했는지도 모르겠다.



새벽과 아침에는 습기를 타고 짙은 풀 냄새가, 밤에는 고즈넉하게 귀뚜라미가 우는 곳이었다.

CU, GS25, 세븐일레븐 같은 편의점은 커녕 동네 구멍가게 조차 족히 1시간을 넘게 걸어야 찾을 수 있는 외딴 시골.

도시에서 나고자라 문명의 이기에 익숙한 나에게는 도통 익숙해질 수도 없는 그런 곳이었다. 할머니 댁은.



유년 시절, 세상물정 모르던 나와는 달리 부모님께선 치열하게 맞벌이를 하셨다.

그것이 어떻게든 험난한 세상의 풍랑을 견디고, 살기 위한 것임을 몰랐던 어린 나에게는 야속함이 되었다.

모두가 함박 웃음을 짓는 방학식이 내게는 그다지도 기쁘지 않았다.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은 고단한 양육을 할머니께 맡기곤 하셨으니까.



떨떠름한 표정으로 할머니 댁에 도착하면, 할머니께선 항상 쭈굴쭈굴 주름진 양손으로 고사리 같은 내 손을 잡고는 말했다.

아이구 우리 강아지.

사실 나는 할머니가 그렇게 싫지 않았다. 맞벌이 하느라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한다 착각했던 내게 할머니는 따뜻했으니까.

다만, 마치 육지 속에 섬처럼 고립된 시골이 싫었을 뿐.



어린 나이였다. 제 감정도 모르고, 속 편히 생각나는 대로 짜증을 부리고, 응석을 부렸던.

스무 날 밤을 하고도 하루 뒤, 참고 참았던 짜증을 할머니께 할퀴었다.

달고 맛있는 간식 대신 나온 찐옥수수가 그리도 얄미워 보였기에.



할머니는 와플, 마카롱도 몰라? 과자 사이에 잼이나 크림을 넣어 만든거!

옥수수좀 그만 가져와. 배부른 데 자꾸 무슨 옥수수야!



죄송할 것은 나였는데도 할머니께선 늘 나의 이유 없는 짜증에도 안절부절 하셨다.

그 모습에 나는 더욱 의기양양해져 안 해도 될 투정을 부렸었다.



이튿날, 할머니가 사라졌다.

점심 상을 차려주시고는 해가 져서 어둑해지는 데도 보이질 않았다.

그제야 할머니께 부렸던 날선 날카로움이 나를 푹푹 찔렀다.



밭이며, 산이며 할머니가 있을 법한 곳을 돌아다니고 이윽고 밤이 와도 할머니가 오지 않자

나는 죄송하다며 울먹였다. 제멋대로 말썽이나 피우며, 짜증만 내니까 할머니도 내가 싫어지셨나 보다.

어린 나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따름이었다.



상실감과 우울함이 잠겨 펑펑 울던 그때, 대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할머니가 나타났다.

죄송한 마음은 온데간데 없이 어딜갔다 왔냐며 어리석게도 할머니를 쏘아 붙였다.

내 야속함을 알아주길 바라면서도 큰 안도감이 들었다.



우리 강아지, 할미가 미안해. 미안해.

등을 토닥이는 따스한 손길에 더 큰 안도감이 느껴졌다.

그제야 할머니 손에 들려있던 검은 봉다리가 들려있었다.



부스럭.

롯데샌드.

할머니는 주름져 있지만, 세상 무엇보다도 따뜻한 그 손으로 롯데샌드를 꺼내 보이셨다.



우리 강아지 주려고 사왔지.



구멍가게 조차 젊은 사람이 걸어서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

굽어진 허리를 굽이진 지팡이에 의지하여 오고 갔을 할머니의 시간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났다.



누가, 누가 이런 것 사오라고 했어...

야속함은 없었다. 그저 눈물 젖은 과자를 쓰게 삼킬 뿐.

짜고, 썼지만 와플이니 크로플이니 하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달았다.



이제는 할머니를 여의진 10년이 넘었음에도

내가 잊지 못하고 8월 즈음이면 롯데샌드를 한 두 번씩 찾는 이유는 이런 나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해당 글은 Fiction입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안철수
22/08/26 11:29
수정 아이콘
롯데샌드는 파인애플맛이죠
그럴수도있어
22/08/26 11:47
수정 아이콘
전 외할머니께서 차려주는 밥이 너무 먹기 싫어서 멸치 가시가 목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미안해하시면서 어쩔줄을 몰라하시던 할머니께 끝까지 죄송하다는 말씀을 못드렸습니다.

어릴때는 어머니 가슴 후벼파는 얘기를 했던적도 있고.. 어릴땐 왜그랬나 몰라요. 주말에 찐한 애정표현 한 번 해드려야 겠어요.
신류진
22/08/26 11:52
수정 아이콘
롯데샌드 파인애플 최애 과자입니다.
22/08/26 12:32
수정 아이콘
롯데샌드 다양한 맛이 있던데,
저도 원조 파인애플이 제일 좋아요 흐흐
ANTETOKOUNMPO
22/08/26 11:55
수정 아이콘
담 번에 마트갈 때 롯데샌드 사야겠네요...
22/08/26 11:56
수정 아이콘
참 할머니 관련 추억은 넘 많은데 치매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셔서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초등학교 방학때 가면 온다고 하루종일 늙은 호박 긁어서 구워주시던 호박전은 아마 다시는 먹을수 없겠지요.
Cafe_Seokguram
22/08/26 12:05
수정 아이콘
할머니께서 생전 마지막으로 끓여주신 라면을 배가 불렀음에도 군소리 않고 맛있게 먹었던게 자랑입니다...

그거 안 먹었으면 평생 후회했을 거예요...
아영기사
22/08/26 12:11
수정 아이콘
아.. 영화 "집으로" 가 생각나네요.
해달사랑
22/08/26 12:16
수정 아이콘
저도 너무나 집으로 생각이
22/08/26 12:37
수정 아이콘
어릴 적 외할머니께서 읍내에서 함양 시골마을까지 사오신 다 녹은 월드콘이 생각나네요. 참 맛있었습니다.
22/08/26 13:10
수정 아이콘
롯데샌드보단 크라운산도.

저는 할머니 댁이 같은 시내에 있었기 때문에 저런 기억이 없네요. 조부모님이 일가 전부를 데리고 상경하셔서 다른 친척들도 다 근처에 살았고...
흘레바람
22/08/26 15:17
수정 아이콘
흐흐 저희 아들의 외할머니는 관광지에서 슈퍼+관광용품판매(비행기 모형, 장난감)하십니다.
요새 코로나 때문에 놀러가도 손님이 없어서 아들의 최고의 놀이터죠.
구슬 아이스크림 다섯개먹고.. 장난감도 종류별로 다 갖고 놀고
할머니집 최고라고 외치는 세살..
키스 리차드
22/08/26 15:35
수정 아이콘
막줄뭐야..........ㅜㅜ내감동돌려내요
22/08/26 15:38
수정 아이콘
와 방금 일하다가 사무실에 있는 자판기에서 롯데샌드 뽑아먹었는데!
휴머니어
22/08/26 15:41
수정 아이콘
누가 치킨을 물에 빠뜨리래!!! 집으로가 생각나네요.
*alchemist*
22/08/26 16:08
수정 아이콘
롯샌 맛있죠. 파인애플맛은 고전입니다 흐흐
22/08/26 19:24
수정 아이콘
혹시 유승호세요?!
토피넛라떼
22/08/26 20:09
수정 아이콘
크로플이나 마카롱이 대중화된 시기가....? 라고 생각하다가 막줄을 읽었네요
22/08/27 01:57
수정 아이콘
이런 글 너무 좋네요.
호머심슨
22/08/27 10:25
수정 아이콘
집으로2
살려야한다
22/08/27 10:59
수정 아이콘
왜울려요

나쁜사람 ㅠㅠ
답이머얌
22/08/27 11:13
수정 아이콘
마카롱은 너무 최신이죠. 픽션이라는 말에서 안심했습니다.
nathan-mosman(AU)
22/08/28 11:37
수정 아이콘
픽션이건 픽션이아니건 잠시나마 돌아가신
할머니의 모습을 생각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6451 [일반] [눈마새/피마새] 두 새 시리즈에서 사람 종족의 의미 [28] 닉언급금지10037 22/08/27 10037 11
96450 [일반] 음악에 대한 검열, 이 나라에서 다시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60] 에이치블루14434 22/08/27 14434 14
96449 [일반] 잭슨홀 미팅 요약: 오냐오냐하면 버릇나빠진다 [50] 김유라14336 22/08/27 14336 11
96448 [일반] 여러분은 어떤 목적으로 책을 읽으시나요? (feat.인사이트를 얻는 방법) [23] Fig.156049 22/08/27 56049 20
96447 [일반] 넷에서 돌고 있는 한국 출산률에 대한 PIIE 보고서 [284] 류지나23038 22/08/27 23038 12
96446 [일반] 너는 마땅히 부러워하라 [29] 노익장10975 22/08/27 10975 40
96445 [정치] 요즘 말이 많은 윤대통령 외교관련 뉴스같은걸 쭉 보다가 [45] 능숙한문제해결사16629 22/08/26 16629 0
96444 [일반] 혼자 엉뚱한 상상 했던 일들 [33] 종이컵11791 22/08/26 11791 21
96443 [일반]  인터넷 변태 이야기 [16] 마음에평화를12321 22/08/26 12321 2
96442 [정치] 최근 나온 월가 리포트와 외신의 한국평가의 무서움 [196] 빼사스30383 22/08/26 30383 0
96441 [일반] 아~ 시원~하다! [34] League of Legend14562 22/08/26 14562 11
96440 [정치] [속보] 법원, 주호영 與 비대위원장 직무집행 정지 [459] 카루오스48580 22/08/26 48580 0
96439 [일반] 롯데샌드 [23] aura11285 22/08/26 11285 21
96438 [정치]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른 국내 전기차 피해와 정부의 무대응 [101] 가라한21692 22/08/25 21692 0
96437 [정치] 심심해서 제멋대로 써보는 윤석열 한동훈 조선제일검 감별 [79] 라떼는말아야16939 22/08/25 16939 0
96436 [일반] 한강뷰 아파트에 대한 생각 [70] Right14509 22/08/25 14509 1
96435 [일반] 출산율 얘기가 지겹게 나오는 이유 [94] 부대찌개16514 22/08/25 16514 14
96433 [일반] 출산율로 미래 인구 시뮬레이션 해보기 [99] 헤일로16341 22/08/25 16341 10
96432 [일반] 심야 괴담회 보십니까?? [31] Anti-MAGE13492 22/08/25 13492 5
96431 [일반] [역사] 이북에 두고 온 인연, 이북에서 되찾아온 인연 [3] comet2111381 22/08/25 11381 7
96430 [정치] 당헌 개정안 초유의 부결…'이재명 독주' 견제 작동 [81] 마빠이19370 22/08/25 19370 0
96429 [일반] T-50/FA-50 이야기 마지막편 - (개발사6) 꿈은 이루어지지만…. [25] 가라한10302 22/08/25 10302 35
96427 [일반] Слава Україні! [16] 후추통11843 22/08/24 11843 18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