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소변이 마려워 잠에서 깼습니다. 잠에 취해 화장실로 가다가 물병을 엎어버렸네요. 누구의 잘못도 아닌 제가 한 잘못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육두문자를 뱉어냈습니다.
일단 급했던 볼일을 보고 쏟은 물의 뒷처리를 하고 나니 집에 마실게 없었습니다. 짜증이 한 번 더 욱하고 올라와 물통을 집어 던지고 어차피 잠도 살짝 달아난김에 집 앞 편의점으로 향했습니다.
야심한 밤에도 편의점에는 여자 손님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근데 평범하지 않아 보이네요. 보통은 모자라도 쓰고 오지 않나 싶을 정도의 프리한 머리와 얼굴, 잠옷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그녀는 알바생과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물과 음료수를 고르는 잠깐의 시간동안 들려오는 대화로 미루어봤을 때, 그녀는 새벽에 잠깐 집 밖에 나왔다가 도어락 건전지가 방전되어 집에 들어가지 못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알바생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었지만 알바생은 예기치 못 한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뿐이었죠.
무슨 이유였을까요? 이 야심한 밤에 젊은 여자가 집에 못 들어가서 곤란해 하는 것에 대한 동정심이었을까요? 아니면 네모난 9V 건전지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는 걸 너희는 모르고 나는 알고 있다는 우월감 때문이었을까요?
9V건전지와 4개들이 AA건전지를 집어들어 계산하면서 여자분에게 건내주며 도어락을 여는 방법을 설명해주었습니다. 감사의 인사와 함께 연락처를 물어보는 여자분에게 쿨하게 잘 해결되면 알바생한테 음료수나 사주시라 말하고 집에 왔습니다.
집에 와서 휴대폰을 보니 10,200원 결제 문자가 와 있네요. 회사에서 받는 돈, 제가 입는 옷, 먹는 음식 그 무엇하나 국민들의 피와 땀이 아닌게 없다돈 만원 이하인게 없는데, 요즘 그것들이 너무나 무의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자신도 가치없는 인간이라 폄하하고 있었죠.
오늘 고작 만원으로 오랜만에 제 자신이 쓸모있는 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기분이 오래가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는 활기차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s. 필 받아서 쓰다보니 5시네요. 오늘 하루가 활기차긴 개뿔 벌써 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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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사족인데, 도어락중에서 터치방식이 전기를 많이 먹는 것 같습니다.
지금 집에 이사오기 전엔 터치 방식이었는데, 배터리 8개를 꽉꽉 채워도 한 1년이면 밥달라고 노래했거든요. 출입자는 나밖에 없는데..
근데 지금 집은 슬라이드 열고 누르는 버튼식인데, 배터리 4개만 있는데도 2년이 되어가는 아직 밥달라는 소리를 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