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양은 자(字)가 영년(永年)이며 익주 광한군 사람입니다. 키가 크고 용모가 훌륭하다는 장점이 있었고, 동시에 사람됨이 지나치게 교만하고 남들을 깔보는 단점 또한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벼슬을 얻었지만 고작해야 서좌(書左)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말단 공무원이었던 셈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유장을 비방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았다 합니다. 머리를 깎고(髡) 목에다 칼을 씌운 후(鉗) 노역을 하게 하는 벌이었지요. 고대 중국의 오형(五刑) 기준으로는 가벼운 벌에 속합니다만, 당시 사대부로서 머리를 깎인다는 건 상당히 치욕적이며 명예가 떨어지는 일이었습니다. 아마 유장을 어지간히도 열 받게 했던 모양입니다.
이후 유비가 유장과 싸우게 되자 팽양은 유비에게 자신을 써달라고 유세하러 갑니다. 유비를 직접 찾아간 건 아니고 대신 방통을 방문했지요. 방통은 마침 손님과 함께 있었는데, 팽양은 냅다 방통의 침상에 올라가 떡하니 누운 후 이렇게 말합니다.
“손님이 가고 나면 그대와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외다.”
방통은 이 미친놈을 당장 내쫓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손님을 정중히 내보내고 나서 그와 이야기를 하려 했지요. 그런데 팽양은 또 말합니다.
“먼저 식사부터 하고 나서 그다음에 이야기를 하겠소.”
방통은 이 거지새끼를 당장 두들겨 패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식사를 잘 대접했지요.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며칠에 걸쳐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제 추측이지만 아마도 팽양은 익주 토박이가 아니고서는 잘 알 수 없는 여러 정보들을 방통에게 알려준 걸로 보입니다. 예컨대 어느 지역 누구는 유장에게 불만이 많아서 설득하기 쉽다. 또 누구는 유장의 충신이니 그냥 공격하는 게 나을 거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 것들은 본래 익주 출신이 아니었던 법정이 잘 모를 법한 정보고, 더군다나 익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유비에게는 더더욱 귀중한 정보였겠지요.
팽양과 더불어 한참이나 대화를 나눈 후 방통이 내린 결론은 유비에게 이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번 방통 편에서도 언급하였다시피 사람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먼저 취하고자 하는 방통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또 예전부터 팽양을 잘 알았던 법정도 그를 추천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팽양을 데리고 유비를 찾아가지요. 유비 역시 팽양을 높이 평가하여 군사 명령을 전달하고 여러 장수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역할을 맡깁니다.
이후로도 팽양의 지위는 나날이 높아졌습니다. 유비가 익주를 차지하고 익주목이 되자 팽양을 치중(治中)으로 삼는데, 방통이 과거 형주의 치중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거의 방통과 대등한 대우를 해준 격입니다. 한낱 서좌에다가 죄인 출신인 팽양으로서는 그야말로 엄청나게 출세한 셈입니다.
하지만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했던가요. 출세한 팽양은 또다시 예전처럼 교만하게 굴기 시작했습니다. 더군다나 군주인 유비가 자신을 총애하는 걸 아는지라 더욱더 그랬지요. 이런 면은 실로 법정과도 흡사한 데가 있습니다. 하지만 법정이 쪼잔하고 치사하게 구는 걸 눈감아주었던 제갈량도 팽양의 오만함까지는 참을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아니면 팽양의 공로가 법정에 미칠 바는 못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또는 팽양이 하는 짓이 도저히 눈뜨고는 봐줄 수 없는 지경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죠. 여하튼 제갈량은 유비에게 간언합니다. 팽양은 야심이 너무 많은 자라서 경계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나중의 일이지만 제갈량의 안목은 그야말로 정확했습니다.
유비가 아무리 팽양을 아낀다 하나 제갈량만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유비는 팽양을 강양태수로 좌천시킵니다. 비록 좌천이라 해도 무려 태수직이니만큼 여전히 상당한 대접을 받은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팽양에게는 이러한 조치가 너무나도 치욕적으로 느껴졌던 모양입니다. 그는 느닷없이 마초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유비가 노망이 든 것 같으니 그야말로 할 말이 없소이다. 그대가 바깥을 맡고 내가 안의 일을 처리하면 능히 천하를 평정할 수 있지 않겠소?”
팽양의 이 발언은 해석의 여지가 있긴 합니다. 그러나 굳이 마초를 찾아간 정황과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의도가 뚜렷하게 보이죠. 나랑 같이 반란 한 번 해 보지 않겠느냐는 뜻입니다.
물론 마초는 이게 뭔 개소린가 싶었을 겁니다. 그렇잖아도 조조에게 패한 후로 온갖 고난을 겪다가 간신히 유비에게 정착한 마초입니다. 그래서 예전과는 달리 몸가짐을 조심히 하고 있었지요. 그래서 팽양 앞에서는 아무 말 없이 있다가, 팽양이 돌아가자마자 급히 그 발언을 유비에게 고합니다. 팽양은 반역죄로 즉시 체포되었습니다.
옥에 갇힌 몸이 되자 비로소 팽양도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습니다. 이러다 진짜 목이 달아나겠다 싶었는지 제갈량에게 편지를 써서 구구절절하게 변명했지요. 유비가 노망 났다고 말한 건 내가 좌천된 나머지 잠시 정신이 돌아버려서 그런 거다, 마초에게 안과 밖 운운한 건 그저 조조를 토벌하자는 이야기였을 뿐이다, 나 사실 방통이랑 무지 친했는데 걔가 죽고 나니 나를 잘 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슬프다. 너라도 제발 날 좀 용서해 다오. 이렇게 말입니다.
그러나 제갈량은 그런 변명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결국 팽양은 37세의 나이로 처형당합니다.
인격적인 결함이나 형편없는 성격 때문에 재능 있는 자가 임용되지 않는 건, 평화로운 시기에는 흔히 있었던 일입니다. 하지만 난세에는 인재가 필요한 법이기에 그런 이들도 중하게 쓰이는 경우가 많았지요. 삼국지에도 능력에 비해 사람이 덜 된 자들이 무수히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입니다. 자신에 대한 처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아예 반란을 일으키려 획책할 정도의 막장은 드물지요. 그런데 팽양은 바로 그런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하나뿐인 목숨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동정의 여지는 없습니다. 그의 행동은 분명 도가 지나친 것이었으니까요.
팽양이 조금만 더 자중할 줄 알았더라면, 혹은 조금만 덜 교만했더라면, 그는 계속 우대받았을 겁니다. 방통과 법정이라는 거물들이 팽양의 능력을 보증했을 뿐만 아니라 유비 자신조차도 그의 재능을 좋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선을 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일단 선을 넘은 이상, 제아무리 대단한 재능이라도 더 이상은 쓰일 수 없었지요. 날카로운 보검이 적이 아니라 자신을 해친다면 과연 누가 그 검을 휘두르겠습니까? 언제 손에서 폭발할지 모르는 수류탄을 어느 누가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에 팽양은 스스로의 목을 내놓음으로써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삶에 있어 예의와 범절, 겸손과 겸양 등의 미덕은 종종 우리의 편견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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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국의 상장한테 반역제의를 했으니 목이 안 달아났다면 그게 기적이겠죠.
죽기 전에 내걸은 변명도 참... 한직으로 좌천되었다고 유비가 노망들었니 이런 소리 하다가 갑자기 우국충정이 넘쳐서 같이 조조를 토벌하자는 뜻이었다니 유비나 제갈량이 아니라 초등학생 어린애라도 안 속아줄 변명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