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동안 수영복과 헬스복을 제외하고는 내 아랫도리와 바지를 팬티라는 중재자 없이 직접 접촉시켜본 적이 없는 나로써는 '노팬티'란 단어는 낯설기만 했다. 굳이 하고 싶지도 않았고 평생 할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말이다.
막상 해보니 나쁘지 않았다. 찝찝할 줄 알았던 촉감은 나름 시원하게 다가왔고 팬티라는 감옥에 갇혀 평생을 느껴보지 못할 뻔 했던 바지라는 재질의 촉감도 생으로 느끼니 신선했다.
화장실에 가서도 바지만 한번만 내리면 되는 걸 없는 속옷까지 두번 내리려는 헛손질도. 오후쯤 되니까 사라졌다. 그리고 뒤처라도 팬티라는 중재자가 없으니 더욱더 꼼꼼이 닦았다. 아 물론 자크도 조심히 올렸지. 그게 그렇게 아프다메?
혹자는 덜렁거리는 자유가 좋다고 하던데 느껴보진 못했다. 내가 일하는 곳이 좀 춥다.
썩 괜찮은 느낌과 함께 하루를 보내고 퇴근해서 바지부터 세탁기에 넣었다. 아무리 잘 닦았어도 찜찜할 터였다. 더구나 팬티를 뚫고 직접 닿았으니.
예전에도 방귀를 가장한 진짜가 나와서 당황한 적은 있었지만. 막상 가서 까보면 팬티에도 안묻거나 묻어도 실선이였다. 그런데 이번엔 뭔가 달랐다. 묵직했다. 엉덩이를 흔들면 흔들렸다. 처음 느껴보는 무게감에. 이대로 집에 갈까. 내차니까 세차하면 괜찮겠지 같은 생각을 하다가. 오늘 출근을 못하는 이유가 출근은 했는데 내리는 도중 지려서 옷 갈아입으러 집에 갑니다. 라고 했다간 차라리 교통사고를 내는게 나을 것 같아서 일단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한손엔 물티슈와 한손은 뒤를 가리고 잰걸음으로 회사 화장실로 가서 처리를 했다.
제일 비참했던 순간은 옅은 노란색의 물티슈 덩어리와 질척한 속옷을 손에 들고 화장실에서 나와 건물 중앙 로비 쓰래기통 까지 가서 아무도 없나 주위를 살펴보고 또 제일 위에 놓으면 티가 날까봐 제일 위에 있는 쓰레기를 들추어 사이에 넣고 다시 덮은 다음 다시 화장실로 돌아와 비누로 손을 씻고 있는 내 모습을 거울로 볼 때였다.
그러니 건물 경비아저씨에게 가서 아무리 요즘 시대가 시대라지만 화장실에 쓰레기통 하나 없는게 말이되냐고. 좀 불편할 때도 있지 않을까요? 라고 소심하게 말할 수 밖에 없었겠지. 뭐가 불편한데 라고 묻는 대답에는 답하지 않았다.
퇴근하면서 문득 비상용 속옷을 차에다가 하나 가져다가 놓을까 라는 아주 기특한 생각을 떠올렸지만. 잠시 고민 후 그러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노팬티가 나름 괜찮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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