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과 국공내전에 대해선 자세히는 아니지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와도 관련있는 부분이니까요.
하지만 얼마 전 제가 알던 사실이 조금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배우고 알고 있던 것은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켰고,
그래서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은 국공합작을 했고,
둘이 힘을 합쳐 일본과 싸웠고,
그런데 국민당군은 부패했고,
공산당군은 일본과 잘 싸웠고,
후에 일본이 패망 한 후의 싸움에서도
공산당군이 이겼습니다.
이거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접한 내용은 중간 내용이 달랐습니다.
사실 공산당군보다는 국민당군이 중일전쟁의 주역이었습니다.
그동안 중국정부에서는
“팔로군이 일본군의 90퍼센트를 상대했다”고
선전해왔습니다.
그리고 마오쩌둥의 ‘유격전’을 치켜세우고,
국민당은 부패했고, 장제스는 일본과의 전쟁을 회피하고 내전에만 집중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마오쩌둥의 말은 다릅니다.
도쿄대학 근대중국사 연구회의 ‘마오쩌둥사상만세’에 따르면,
1964년 일본 사회당의 사사키 코죠우 위원장이 마오쩌둥에게 “중국 국민에게 막대한 손해를 가져와 미안하다”고 인사하자 마오쩌둥은
“그렇지 않다. 일본 군국주의는 중국에 큰 이권을 가져왔으며 중국 인민에게 권리를 되찾아 주었다. 여러분 황군의 힘이 없이 우리가 권리를 빼앗는 것은 불가능했다”
고 말을 했습니다. 또
1972년 중일(中日) 수교 당시, 중국을 방문한 일본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수상에게 마오쩌둥이 한 말이 있습니다
"중공은 일본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만약 일본의 대륙침략이 없었다면 우리는 국공합작이 있을 수 없고, 우리는 발전할 수 없고 최후 승리를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많은 일본사람들이 우리를 만나면 사죄하고 용서를 비는데 내가 보건대 일본의 침략이 없었던들 우리가 어찌 대륙을 정복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가 일본에 감사해야 할 일이지요."
여기에 8년의 항전기간 동안 721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721정책은
공산당은 7할은 내부 세력 확장, 2할은 국민당군과 투쟁 1할의 힘만 일본군과의 싸움에 힘을 써야한다는 내용입니다.
코민테른 중공연안 대표 겸 타스통신사 특파원이었던 피터 브라지미노프는 '연안일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1937년 7월, 일본은 중국과 전면전을 시작하였다. 마오쩌둥은 중공 고위간부들에게 항일 정책에 관한 긴급보고 하였다. 마오는 보고에서 '우리가 항일을 많이 해야 애국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장개석 국민당 정부를 돕는 일일 뿐이다. 중공의 조국도 전 세계 공산당인들의 조국인 소련이다. 우리의 방침은 일본으로 하여금 더 많은 영토를 점령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 장, 일, 우리(蔣,日,我) 삼자가 삼국지와 같은 형국으로 끌고 갈 수 있다. 이러한 구도가 우리에게 유리하다......우리 당의 무장력을 확충하기 위하여 우리는 '一分抗日, 二分應付, 七分發展(항일이 1푼이면, 정부와 마찰 2푼, 내부 확장은 7푼으로 비중을 두라-721정책)'를 고수해야 한다. 그 누구도 나의 방침을 위반해서는 안된다."
일본과 싸우는 일은 장제스와 국민당을 돕는 일이고, 오히려 일본이 중국 땅을 더 점령하게 해야한다고 발언합니다.
하나 더, 우리에게는 625전쟁 때 중공군을 이끈 팽덕회 장군이 있습니다.
이 팽덕회 장군이 일본과의 전투에 임하자
"(팔로군 부총사령관) 팽덕회는 우리 편이 아니다. 백단대전(百團大戰)은 국민당을 도와 일본을 무리쳤던 것인데 이는 장개석군(軍)의 입지를 강화시켜 준 결과를 가져왔다. 이것은 애국이 아니다. 일부 동지들은 처음에 일본이 영토를 적게 점령할수록 좋다고 생각하였던 모양이나 그것은 짧은 생각이다. 일본이 영토를 많이 점령하게 해야 우리측에 유리하다. 그렇지 않으면 장개석의 나라를 애국하는 꼴이 된다. 나라중에 나라 만들고 장개석, 일본, 우리(공산당) 삼자가 각축을 벌리는 ‘삼국지 형국’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고 말합니다.
이는 마오의 비서이며 수력부 부부장, 중앙당 조직부 부부장을 지닌 리루이(李銳)가 저술한 '로산(廬山)회의 실록'에 있는 내용입니다.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의 연구원인 천톄젠(陳鐵健)이 인용한 외교문선에도 비슷한 말이 또 나옵니다.
마오쩌둥이 1950년대에 중국을 방문한 한 일본인에 대해,
“사실, 일본 제국주의는 우리에게 있어서 좋은 표본이 됐다. 첫 번째로 장제스(蔣介石)의 힘을 약하게 해주었다. 두 번째로 우리 공산당의 근거지와 군대를 발전시켜주었다. 항일전쟁 이전, 우리 군대는 30만 명에 달했지만 자체 작전 실패로 2만 명으로 감소됐다. 그러던 중 8년간 항일 전쟁으로 우리의 군대는 120만 명으로 발전했다. 일본이 우리를 도운 게 아닌가?”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대해 중국 정부는 2008년 베이징시 당국의 기관지 ‘베이징일보’를 통해
“마오쩌둥의 일본 침략 감사발언을 정확하게 이해하자”
라는 말을 하며 마오쩌둥이 말하는 ‘감사’는 ‘경쟁자에 대한 감사’와 같은 의미로 마오쩌둥식 발언의 습관 및 특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렇지만 천톄젠(陳鐵健) 연구원은
“항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국민당군을 패배시켜 점령지를 확대해 갔기 때문에 마오쩌둥은 이를 두고 ‘일본이 우리를 도왔다’라며 늘 높이 평가했다”
라며, 감사라는 표현은 일시적인 착상이나 유머가 아닌 마오쩌둥의 진심어린 표현으로, 마오쩌둥의 ‘혁명 공리주의’에서 나온 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본 쓰쿠바대학 엔도 호마레 명예교수의 저서 '마오쩌둥, 일본군과의 결탁 진상'에서는 일본 내부자료와 외무성 전직 관리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중국 공산당이 일본 외무성에 잠복시킨 간첩 판한녠을 통해 군사정보를 제공했다고 말합니다. 국민당과 국공합작으로 중일전쟁을 치르고 있는 와중에요.
일본 외무성 외곽 단체인 이와이공관 설립자인 이와이 에이이찌의 회고록 '상하이 회상'에는 판한녠이 국민당의 군사 기밀을 일본 측에 팔아 넘기고 공산당과 일본군 간에 정전을 요구했다고 적혀있습니다.
이와이는 회고록에서 중국 공산당의 이런 정전 제의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고 술회했다고 했고 이에 대해 중국 당국은 판한녠 등 간첩을 일본 외무성에 잠복시켜 이와이 등과 접촉케한 것은 일본군 정보를 빼내기 위해서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이는 외무성 직원이기때문에 군사 정보와는 관련이 없었는 사실이....
대만국방부가 펴낸 항일전쟁사에 따르면 국민당 장군(將軍)의 전사자는 206명이고 공산당 장군 전사자는 2명이라고 합니다. 그 두 명 중 풍설봉(彭雪枫) 장군은 국민당과의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합니다. 일본과의 전투가 아니라요. 1947년 통계에 의하면 전체 중일전쟁 중 국민당 군대의 전사자가 322만명 전체 사상자는 416만명 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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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공산당에 대한 반감이 좀 컸던 건 김좌진 장군 암살의 영향이 큽니다.
아직까지 암살에 대한 확실한 진실이 의문에 있다고 알고 있는데, 어렸을 적 책에선 공산주의자에 의한 암살이었으니까요.
여기에 자유시 참변까지 더해서
'공산주의자라는 놈들은 당이나 사상이 더 중요하네. 독립이나 민족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여기에 더해 프랑스 공산당도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 지령으로 독일과의 전쟁에서 프랑스공장 생산활동을 방해하거나
공산당 계열 병사들이 독일과의 전투를 거부했다는 사실도 이 생각을 강화시켰죠
(프랑스 공산당이 적극적으로 레지스탕스에 뛰어든 계기가 독소전쟁.....)
그런데 끝판왕은 옆나라 마오쩌뚱이었습니다.
피똥싸면서 일본과 전쟁을 치룬건 장제스인데 중국 대륙의 주인은 마오쩌둥이 된 것이네요.
이 글에서 '국민당군은 사실 부패하지 않았음'을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장제스와 국민당군이 일본과 엄청 싸웠고
마오쩌둥과 공산당은 일본을 돕고, 고마워한 존재들이라는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사실이 있다는 점이요.
ps. 장제스가 불쌍하게 느껴지고 한국의 독립도 도와주었지만 속국으로 만들 생각을 했었다는 점에서는 이놈도 딱히...
============= 출처 및 참고자료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6753059
http://sscn.kr/news/view.html?section=80&category=84&no=753
http://mizibooks.tistory.com/105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001&oid=056&aid=0010331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