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선 저는 마블이나 디씨 코믹스를 거의 안 봤습니다.
저에게 배트맨의 이미지는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 3부작 (특히 다크나이트)와 게임 배트맨 아캄 시리즈의 모습이고
슈퍼맨의 이미지는 그 조차도 명확하지 않은 설정들을 주워듣거나 어렸을 때 몇번 봤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의 모습이지요.
굳이 말하자면 저는 슈퍼맨의 팬이긴 합니다.




[1] 전개가 끊어진다는 것, 이런 의미일 줄이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스토리(서사)라고 한다면 부드럽게 이야기가 한줄기 흐름으로 흘러가는 것이 이상적인 스토리라고 할 텐데요.
많은 비평가들이나 PGR에서 먼저 보신분들도 지적한 바와 같이 뱃대슈는 얼개가 모두 토막나 있습니다.
그 장면 장면들은 보면 납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장면이 다음 장면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식으로 박혀있어요.


가령, 초반부에 로이스가 취재를 위해 군벌의 캠프로 들어갔다가 일행이 CIA의 스파이인 것이 들통나 처형당하고 인질로 붙잡힌 씬을 봅시다.
로이스가 붙잡히자 슈퍼맨은 말 그대로 광속으로 달려와서 로이스를 구출합니다. 그리고 장면 전환.
다음 장면은 '슈퍼맨이 나타나자 시가지가 파괴되었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고 법정에서 증언하는 장면입니다.
저는 보면서 "잉?" 하는 소리밖에 안 나왔습니다. 아니 대체 왜?

이 영화는 안 그래도 설명해야 하고 나열해야 할 게 많기 때문에 저런 장면에 해석을 더 달아주는 장면은 안 나옵니다.
기껏해야 나중에 로이스가 장관을 귀찮게 만들어서 '사실 그건 렉스 루터가 꾸민 짓이었다' 한 마디 정도 듣는 수준이에요.
시청자들이 "아니 렉스 루터가 뭘 어떻게 했길래 군벌에 자기 수하를 파견했고, 로이스는 어떻게 슈퍼맨의 애인인줄 알아냈는지, 정부에 대체 무슨 힘을 가지고 있길래 그 곳에서 새 총탄의 시험장으로 쓸 수 있는지" 같은 의문은 전혀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세부적인 부분도 그런데, 장면 이어넘는 부분은 가관입니다. 슈퍼맨은 쓩 하고 사라졌는데 "슈퍼맨이 사람을 죽였다!" 라는 거에요.
도저히 납득이 안가죠. 슈퍼맨이 등장하면서 사람을 다 때려잡는 장면이나, 아니면 하다못해 건물이 무너지고 시가지가 파괴되거나, 군벌의 수하들이 난동을 부리는 장면이라도 잠깐 나왔다면 몰라도요.


이 영화는 다 이런 식입니다. 인체로 비유하자면 뼈와 뼈 사이에 연골이 없는 수준이에요.
뼈끼리 서로 부딪쳐서 까드득하면서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데 중간에서 부드럽게 이어줄 그것이 없습니다.



[2] 어이없는 대립. 배트맨 v 슈퍼맨

이 영화는 초반부가 상당히 깁니다. 기승전결로 치자면 '기' 부분의 비중이 상당합니다. 이유가 있지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방식을 보니 이 영화는 DC 저스티스 리그의 출범을 얘기하고자 하다보니 'DC 코믹스를 전혀 모르는' (예컨데 저처럼) 사람에게도 배트맨이 어떤 캐릭터고, 슈퍼맨이 어떤 캐릭터다는 것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길어지는 거죠.

문제는, 저라면 한번 설명했으면 되었겠지 싶은 부분도 계속 동어반복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배트맨. 어렸을 때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신 트라우마로 CEO와 범죄자를 처단하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슈퍼맨. 신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지만 사랑하는 부모님과 애인이 있는,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그의 힘을 불안해한다.

딱딱 핵심만 짚어서 간결하게 넘어가고, 본격적으로 뱃 대 슈가 대립해야 할 이유를 그럴듯하게 만들어주면 될텐데
정작 배트맨 대 슈퍼맨의 캐릭터 잡기에 계속 열중하다보니 진짜 중요한 '왜 두 초인이 싸워야하나?' 를 굉장히 빈약하게 만들었어요.


물론 영화에서도 계속 실마리는 줍니다. '기자'로서 슈퍼맨은 배트맨의 일방적인 범죄자 재판에 비판적이며, 상당히 잔혹한 방식도 서슴치 않는 모습을 경멸합니다. 크립토나이트를 추적하는 배트카를 뻥 차버리고 "넌 오늘 이미 죽은거다" 드립을 쳐놨으니 이미 서로 굉장히 불편한 기색임도 보여줬구요.

배트맨은 과거 슈퍼맨의 싸움에 휘말리는 것만으로도 근처가 초토화된다는 기억 때문에 저런 초인의 존재 자체를 싫어하고 있으며 만약 그가 마음을 바꿔먹기만 해도 인류는 굉장히 위험해질 것임을 우려합니다. 거기에 개인적인 악감정도 가지고 있구요. (뉴스에서 슈퍼맨은 우상화되고 배트맨은 공포의 존재로 묘사되는 걸 굉장히 껄끄러워하죠)

그런데 그 뿐이라면 두 초인이 '생사결전'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방아쇠는 렉스 루터가 당겨줍니다. 슈퍼맨의 얼마 안되는 약점인 '마음을 준 상대'를 인질로 잡는 방식으로요. 슈퍼맨의 어머니인 마사를 인질로 잡고 배트맨의 목을 가져오지 않으면 화형시킬거라고 협박합니다. 뭐, 여기서의 슈퍼맨은 흔들리는 인간의 마음도 가지고 있으니 이해는 합니다.

정작 배트맨은 슈퍼맨을 왜 '죽여야하는지' 에 대한 답을 안 들고 있습니다. 그냥 증오에요. 그 이유를 들어주기 위해서 슈퍼맨이 의회에 출석한 장면을 끼워둔 거지만, 아무리 봐도 슈퍼맨이 그 자리를 터트린게 아닌데 (그리고 이 사실은 작중 인물들도 다 압니다) 그 잘못으로 슈퍼맨은 죽어야 한다? 넌 존재만 해도 재앙이니까? 배트맨은 슈퍼맨의 대화 시도조차도 거절합니다. 사실 여기서 대화로 풀어버리면 영화 제목도 엉망이 되고 액션씬도 꺼낼 수가 없기 때문에 영화의 존재 의의 자체가 사라져버리겠죠. 이해합니다. 하지만 스토리에서 그럼 단서를 달아줘야죠.

이렇게 서로 '왜 죽여야 하는가' 에 대한 이유도 제대로 달고 있지 않은 두 초인의 싸움은 액션만 보면 훌륭합니다.
다만 듀나는 "둘의 결투가 작위적이고 목적도 없다" 라고 평했는데요. 그럴수밖에요. [영화의 스토리 내적에서, 서로를 죽이기 위해서 싸우는게 아니라 영화의 흥행을 위해서 두 초인이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싸우는] 장면이니까요.

슈퍼맨은 불살의 캐릭터니 배트맨을 죽일수 없는 건 그렇다 칩시다. 배트맨은 슈퍼맨이 보면 손가락 하나로 짓눌러질 보통 인간이기 때문에 기회를 한번 잡았다면 망설임없이 칼을(이 경우엔 창을) 빼들었어야 했을 겁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니들 왜 그렇게 서로 내팽개치고 주먹다짐하냐?' 라는 거에요. 슈퍼맨은 그 잘난 힘을 가지고도 슈트도 제대로 파괴시키지 않거나 배트맨의 관절을 빼놔서 거동이 불가능하게 만들지도 않습니다. 배트맨은 크립토나이트 분말탄으로 슈퍼맨을 무력화시켰으면 곧장 창을 가져와 찔러야 하는데 여기서도 슈퍼맨을 왕창 두들깁니다. 어떻게 보면 배트맨의 감정이 담긴 사적제재같은 방식으로.

아무튼 이런 '보여주기 위한 액션'을 좀 화려하게 하고 나서 마침내 슈퍼맨을 제압한 배트맨이 슈퍼맨을 죽이려는 찰나, 아뿔싸. 여기서 모든 관객들이 공감하는 '대체 왜 어머니 이름이 같다는 것 만으로 배트맨이 슈퍼맨을 죽이지 않는가?' 라는 부분이 나오네요. 그렇습니다. 배트맨은 슈퍼맨이 창에 찔리기 직전 '마사를 구해줘'라는 소리를 듣고 자기 어머니 이름과 똑같은 그 이름에 혼란을 일으키다가 슈퍼맨을 죽이지 않습니다. 여기서 미친듯이 의문이 생깁니다. 쟤는 대체 뭘 하는 것인가?

개인적으로 최대한 호의적으로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배트맨은 과거 어머니의 살해 사건으로 엄청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데 슈퍼맨의 마사를 구하라는 말에 마치 과거의 어머니를 구하지 못한 자신이 오버랩되며, 과거의 배트맨이나 현재의 배트맨 모두 신체적으로는 성장했으나 정신적으로는 아직도 성장하지 못하여, 슈퍼맨같은 존재도 포용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회의감이 일어났을 겁니다. 특히 슈퍼맨은 자기가 죽기 직전에도 민간인을 구조하려고 말하는데 말이죠. 어쩌면 지금 자기가 창을 찌르면 구할 수 있는 마사라는 여인도 구하지 못할지도 모르는데 '마사를 포기하고라도' 슈퍼맨을 죽여야 하는가?

문제는 저게 다 저의 망상입니다. 제가 영화에서 보이는 희미한 단서들로 지어낸 얘기지, 영화는 저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배트맨이 "마사가 누구야!!" 로이스 : "슈퍼맨 어머니에요" 하고 나서 배트맨이 약간 고민하더니 창을 옆으로 던지는 걸로 끝입니다. 이래서야 도저히 관람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뱃 대 슈라는 타이틀은 완전히 실패다. 이 영화는 슈퍼맨이 왜 배트맨을 죽여야하는지, 배트맨은 슈퍼맨을 왜 죽여야 하는지, 둘은 왜 치고박고 육탄전을 벌여야하는지, 마지막에 승리한 배트맨이 왜 결국 슈퍼맨을 죽이지 못하는지 하나도 제대로 설명하고 있지 않아요.



[3] 리부트인가, 캐릭터 붕괴인가? 부제 : 슈퍼맨 진영에 찾아온 대재앙같은 이 영화

뭐, 미국 만화는 그릴 때마다 작가가 맘대로 설정 갖다붙이면 그게 공식이 되고, 또 맘에 안들면 그냥 '리부트 합니다' 라고 한마디 하고 새 설정을 붙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 보이는 이 슈퍼맨과 배트맨도 다 리부트된 것이죠. 배트맨은 놀란의 배트맨에서 벗어난 모습, 슈퍼맨은 맨오스로 이미 리부트된 캐릭터죠.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지켜야할 최소한의 캐릭터성 몇몇은 있는 법입니다. 가령 배트맨 슈트는 박쥐와 연관되어있다거나, 슈퍼맨은 항상 붉은 망토와 가슴에 S를 달고 있다던가... 외모적인 모습 만큼이나 중요한 설정도 좀 있는거 같은데... 까놓고 얘기하자면 이렇습니다.

[배트맨은 불살의 캐릭터가 아니었나?]

제가 아는 배트맨은 제 아무리 악인이라도 결코 사살하는 것이 아니라 체포하여 신체를 억류할 뿐인 캐릭터였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냥 아주 시원하게 죽이더군요. (물론 직접적으로 '살해'하는 장면은 안 나왔습니다만) 기존의 배트맨이 "제압은 하지만 죽이진 않겠다" 라면 이번 작의 배트맨은 "비키지 않으면 죽는다. 알아서 사려라. 죽으면 할 수 없고" 라는 느낌으로 난동을 부렸습니다. 설마 그렇게 폭발시키면서 그 안에서 적들이 '살아있기를' 비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그래도 어차피 설정이야 갖다붙이기 마련이니까 하고 저는 그냥 혼자서 삭였습니다. 그런 이상한 몇몇 부분을 뺀다고 하면 나름 배트맨은 새로운 배트맨으로서 새 출발을 잘 한거 같긴 합니다.

그런데 슈퍼맨은... 좀 안쓰러울 정도로 심하게 까이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네요.

얘를 들면 이렇습니다. 초반에 로이스와 같이 반군 지역에 잠입했다가 죽는 캐릭터가 "지미 올슨"이라고 합니다. 저는 잘 모르지만 슈퍼맨 진영에서 아주아주 중요한 캐릭터라고 하는데 이름도 안나오고 단역처럼 죽네요.

슈퍼맨의 연인인 로이스도 영화에서 아주 이상한 버프를 받았습니다. 완전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요. 총알 한 발만으로 장관에게 찾아가서 따지는 패기는 그렇다쳐도 로이스가 깽판부리면 아주 설명이 다 됩니다. 마지막에 크립토나이트 창을 물에다 던져놓는 장면은...... 뭐랄까요. 정말 깨요. 아니 대체 왜 저기에 던져놓는단 말인가? (사실 엄밀히 얘기하자면 저 창을 처리안해놓고 떠난 배트맨의 잘못입니다만)  이 영화가 전반적으로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여러번 지적이 되었습니다만 로이스는 이 영화에서 가장 설득력이 없는 캐릭터입니다.

렉스 루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절대적인 힘을 가진 초인이 만약 우리편이 아니라면?" 이라고 고민하는 기믹은 렉스 루터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 기믹을 고스란히 배트맨이 가져갔어요. 물론 계속 나오는 루터의 연설씬등에서 그런 자신의 철학을 설파합니다만 아무리 봐도 저건 '찌질이' 기믹입니다. 렉스 루터의 호평이 많던데, 저는 연기는 몰라도 저 렉스 루터의 기믹 자체가 매우매우 불편했습니다. 소위 '모든 것을 난 다 안다'는 느낌으로, 조드의 지문을 떠낸것도 루터, 파괴된 우주선에서 둠스데이를 만든 것도 루터, 슈퍼맨이나 원더우먼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초인은 다 수집하고 있는 루터...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다크나이트의 조커의 광기와 비교할 수 밖에 없네요. 같은 광기 캐릭터니까. 그런데 역부족이에요. 원래 슈퍼맨 단독의 빌런이었던 렉스 루터가 뱃 대 슈라는 곳이 끌려나오면서 자신의 기믹을 배트맨에게 강탈당하고 아무 의미가 없는 캐릭터가 됐습니다. 거기에 마지막 모습을 봐도 원 설정의 루터가 될 거 같진않군요.

슈퍼맨 본인에 대해서도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군벌에서 로이스를 구출한 다음 장면 전환 컷, 로이스가 위기에 처한건 눈치채도 어머니가 위기에 처한 건 눈치 못채는 것,  의회에서 상당히 긴 시간 위화감이 있었는데 폭탄이 있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여러모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슈퍼맨을 너프한 결과 '물리적인 힘은 쎄지만 그냥 인간' 수준의 초인으로 격하된 느낌입니다. 이게 이 저스티스 리그의 슈퍼맨이라고 하면 어쩔 수 없겠습니다만...

요약하자면, 슈퍼맨에게는 대재앙, 배트맨에게는 나쁘지 않은 새 출발, 원더우먼은 짧지만 강렬한 첫 등장. 정도라고 봐야겠네요.



[4] 기타

둠스데이는 아주 좋았어요. 둠스데이가 나온 씬들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등장은 좀 시시했습니다만 곧바로 보여준 엄청난 포스가 아주 그냥... 둠스데이와 초인들의 액션씬은 그냥 좋습니다. 약간 짧은 감이 없지않아 있습니다만. 다만 배트맨이 이런 싸움에서 쩌리가 되는 건 어쩔수가 없네요.

"배트맨, 초능력이 없는 우리는 둠스데이랑 싸울 때 뭘 할 수 있죠?"
"우린 쓸모가 없다. 팝콘이나 가져와라 로이스"


이러저러한 비판을 냈지만 눈요기 영화 자체로는 얼마든지 기대하고 가도 되고, 또 그런 영화입니다.
사실 300을 보면서 '실제 전쟁은 어땠고저땠고' 하는 게 아무 의미가 없듯, 이 영화도 그런 류의 영화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