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식은 땀 나는 물건을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바로 두 줄이 그어진 분홍색 플라스틱 막대기! 23살인 수빈은 이 사태가 막막하지만 남자친구인 강웅은 별 걱정이 없어 보입니다. 마냥 싱글벙걸 뭐가 정해진 것도 아닌데 자기네 엄마한테 전화해서 자랑인지 선언인지 모를 알쏭달쏭한 통화를 하고 있어요. 밝고 희망찬 남편과 예비시부모님들의 지원을 받고 이들은 결혼을 서두릅니다. 나쁘지 않았어요. 행복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배가 불러오면 불러올 수록, 시집살이에 날짜가 더해질 수록 수빈의 하루하루는 까끌거립니다. 남편도 시어머니도 나쁜 사람이 아니고, 곧 우리 아가가 밖으로 나올텐데, 왜 그런 걸까요.
영화의 장르는 다큐멘터리입니다. 애를 뱄을 때부터 애가 나오고 자라나기까지의 자신의 인생을 직접 찍어낸 결과물이죠. 애 낳고 키우는 게 힘들다는 거 누가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가 다큐멘터리에 담기면서 소위 "레알"이 됩니다. 말로만 들었던 이야기들이 눈 앞의 스크린 속에서 펼쳐지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고역입니다. 아마 얘를 키워보신 분이라면 전쟁 같은 그 일상을 충분히 아시겠지요. 모르던 사람들에게는? 충격과 공포입니다. 갓 태어난 인간은 정말 번거롭기 짝이 없는 생명체입니다. 육아가 얼마나 고되고 짜증나는 일인지 그 실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픽션을 능가하는 감정을 줄 겁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애를 낳으면 안되겠다 할 정도로요.
애 키우는 게 다가 아니죠. 애 키우는 와중에도 생활이 계속 됩니다. 안 그래도 피곤하기 짝이 없는 일상이 중노동으로 변합니다. 수빈은 학생이고, 원래는 뮤지컬 조연출 일도 했고, 집에서는 번역일도 했습니다. 그런데 애를 키워야 하니까 뮤지컬 쪽은 일단 포기, 집에서는 번역일만 하고 학교는 짤리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나가야 하죠. 그리고 한 집의 며느리이자 아내이자 엄마로서 집안일도 해야 합니다. 노는 것도 아닌데 일에 일이 끼어듭니다. 빨래를 개고 있으면 안방에서 애가 울고, 애를 도닥이는데 갑자기 토하고, 토한 거 치우고 빨고 좀 누워있다 보니 아까 개던 빨래 생각이 나고. 번역일은 언제 다하죠? 그리고 남편이 들어와서 야단칩니다. 왜 이렇게 집안이 어질러져 있어?
이 영화는 여성의 실존을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산후우울증은 특별한 병이 아닙니다. 아무리 성스럽고 거룩하다지만, 애 젖 물리고 빨래하는 게 인생의 꿈인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엄마가 된다는 건 이름대신 누구 엄마로 불리고, 하고 싶은 일은 다 접고, 잠깐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다가도 이유식 끓는 냄비로 후다닥 튀어가야 하는 걸 뜻합니다. 김수빈이라는 개인은 한없이 옅어지죠. 임무와 책임이 있고 그 모든 것이 아기에 집중되는, 부차적 존재가 됩니다. 암만 애가 이쁘고 사랑스러워도 이 공허함은 달랠 길이 없어요.
남녀노소 누구나가 봐야 할 작품입니다. 집안일부터 해서 육아까지, 이 모든 게 당연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는 영화죠. 그렇지만 심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속없고 천진해서 별 이야기를 다 한다며 멋적은 웃음이 계속 새어나오는 이야기에요. 명랑하지만 가볍지 않은 이 고민을 듣다보면 어떤 식으로든 엄마를 생각하게 될 겁니다. 나를 키운 엄마가 됐든, 내 아이의 엄마가 됐든, 엄마로서의 나 자신이 됐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