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야쿠르트 하나를 6만원에 사먹어 본 사람이라면, 혹은 그런 사람을 안다면,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에 대한 것인지 대강 감을 잡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아주 드물고 또 알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6개월 전에 그런 사람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야쿠르트 하나를 6만원에 사먹는 바로 그런 사람이 되었다.
지금부터 나는 지난 6개월 동안 있었던 일을 쓰려고 한다. 그리고 이 일련의 사건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그러니 믿지 않는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어쩌면 믿고 싶으나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런 경우라면, '의심하지 않는 사람보다 의심하는 사람이 진실에 더 가까이 있다' 라는 약간은 수수께끼 같은 요령을 알려주고 싶다.
반년 전쯤에 나는 취업준비생이었다. 말도 안되는 논문으로 겨우 졸업을 하고서, 취업에 빌빌대고 있던 나는 따끔따끔하긴 하지만 확실한 동기부여 따윈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면접에서 두 번 떨어진 건설회사에게 세 번째 도전장을 내밀 준비를 한다곤 했지만, 사실 골목 카페에 앉아 담배를 태우며 길 위의 사람들을 쳐다보는 게 전부였다. 바쁜 일상에 카페인을 채우는 직장인들. 그리고 내 취업노트가 괜히 멋쩍은 나머지 카페 옆의 ‘들꽃 향기’라는 꽃집 앞까지 가서 니코틴을 태우는 나. 그런데 문득 들꽃 향기가 나야할 꽃집에 내 담배 냄새를 머물게 하는 것은 민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이 해괴하다고 느끼면서도 또 다시 자리를 옮길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확실히 도로 근처가 내 담배 냄새에 더 어울렸다.
그 때 내 시선에 야쿠르트 아줌마가 들어왔다.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횡단보도 신호등아래에 서있는 아줌마에게 막 손님 한 명이 찾아온 참이었다. 머리가 벗겨진 중년의 남자손님은 두 개라고 손짓 하는 듯 했다. 나도 어릴 적에 저 아줌마한테서 야쿠르트를 사먹곤 했던 기억이 났다. 초등학생 때는 인사도 곧 잘 나누었는데 나이가 먹어가면서는 인사는 커녕 마주치는 적도 몇 번 없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중에 나는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아줌마는 분명 야쿠르트 두 개와 요플레 두 개를 손님에게 줬는데, 손님은 물건 값으로 6만원을 건네 준 것이다. 나는 순간 내가 5천원 권을 5만원 권으로 잘못 봤다고 생각했지만, 더 이상한 점은 돈을 건네 준 손님은 봉지를 손에 쥐자마자 쌩 하니 가버렸고, 아줌마 역시 돈을 손에 쥐자마자 자리를 떴다는 것이다. 나는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야쿠르트에도 바가지를 씌우는 사람이 있나? 거스름돈은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내가 못 봤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내가 착각했거나. 하지만 내가 놓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모든 과정이 매끄러웠고, 자연스러웠지만 동시에 모든 과정이 의심스럽고 수상쩍었다. 나는 잠자리에 들어서도 그 이상한 거래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리고 야쿠르트의 비밀을 스스로 알게 된 극소수의 사람들 중에 내가 들어갔다는 사실은 한참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다음 날, 꽤나 늦게까지 카페에 남아 있었는데도 그 야쿠르트 아줌마를 다시 볼 수는 없었다. 저녁 무렵 나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내가 본 이상하기 짝이 없는 그 야쿠르트 거래를 가장 친한 친구 2명에게 말해주었다. 역시나, 그 거래에 의구심을 갖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대금이겠지, 뭐.”
내 친구 K의 말이었다. K는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보통 야쿠르트 시켜먹는 사람들은 달마다 시켜놓고 먹지 않냐? 때 되면 한달 치 몰아서 내잖아. 근데, 와, 진짜 의심쟁이다. 진짜.”
“시켜 먹는 사람이 왜 찾아가서 대금을 내? 그리고 그 사람들은 서로 한마디도 안 했어. 대금이면 대금이라고 했겠지.”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그러자 다른 친구 M이 뒤질세라 반박했다.
“마. 그냥 지나가다 만났겠지. 아니면 사전에 얘기가 됐거나. 고마 헛소리 하지말고 잔이나 비아라, 으심재이야.”
나는 잔을 비우면서도 이야기를 그만 둘 수 없었다.
“내 말은, 그게 정말 당연하다는 듯이, 요구르트 두 개하고 요플레 두 개를 6만원에 사는게 정말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했다니까? 아무 말도 없이. 이게 안 이상하냐? 아, 니들이 그걸 봤으면 내말이 이해가 갈텐데.”
“어휴, 너는 그런 것 좀 하지 마, 진짜. 그렇게 살면 안 피곤하냐?
K가 내 잔에 소주를 채우면서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뭔가 말을 하려다 말았다. K는 항상 그랬다. 유독 나한테만 까칠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면 니는 그게 머라꼬 생각하는데?”
“몰라.”
거짓말이었다. 감이 잡히는 게 있었지만 굳이 논쟁을 더 일으킬 필요는 없어보였다.
M은 코웃음을 비슷한 소리를 내면서 알탕 그릇을 자기 앞으로 가져왔다.
“새끼, 대답 한 번 훌륭하네. 내가 장담하는데 니는 앞으로 대단한 음모론자가 될끼다.”
“아니면 빨갱이가 되거나.”
나는 M의 말을 넙죽 받아쳤다.
그랬다. 나는 학교 다닐 때부터 항상 ‘의심하는 자’ 였다. 친구들은 사소한 일이든 큰 일이든, 정치적인 문제든 일상적인 일이든 간에 내 의심을 잘 받아줬다. 하지만 이 ‘의심 없는 자’ 들은 한 번도 내 말을 우스갯소리 이상으로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나는 더 이상 군말 않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는데 동의했다. 나는 술자리가 파할 때까지 한 번도 야쿠르트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야쿠르트에 대한 생각마저 머릿속에서 지우지는 않았다.
며칠 후부터는 다른 야쿠르트 아줌마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 의아한 교체에 의아한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그마저도 오래 관찰할 수가 없었다. 아줌마는 그 자리에 길게 머물지 않았다. 잠깐씩 서있다 다른 곳으로 옮길 뿐이었다. 물론 그 사이에도 몇 번 야쿠르트를 사가는 손님이 있었기에 나는 기대에 차서 담배를 피러 나가곤 했다. 허나 번번히 천원 이나 오천원 한장으로 야쿠르트 몇 개를 사가는 평범한 손님들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거스름돈마저도 착실하게 받아갔다. 면접이 점점 다가오는 만큼 내 의혹은 점점 옅어졌고, 나는 굳이 그 다른 아줌마를 따라가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그리고 면접 역시 일주일 정도 남은 어느 날 나는 원래의 그 아줌마를 다시 볼 수 있었다. 이상하게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아줌마를 관찰해야 한다는 요상한 의무감만 없었어도 당장에 야쿠르트 몇 개를 사먹었을 듯 했다. 정확히 내가 이상한 거래를 본 그 시간에, 아줌마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는 왠지 모르게 이번에 다시 그 특별거래가 이루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사실 그보다는 특별거래가 꼭 다시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하지만 이십 분이 지나도록 야쿠르트를 찾는 이는 없었다. 주변에는 횡단보도를 기다리는 회색 법복 차림의 스님 한 분 밖에 없었다. 삼십 분쯤 지나자 아줌마는 수레를 밀고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 맞은 기분이 들었다. 스님 역시 발걸음을 옮겼는데, 바로 아줌마가 가는 곳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그 즉시 가방을 챙겨 스님을 따라 나섰다. 멀리서는 알아보지 못 했지만, 나는 곧 스님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심안스님이었다. 스님은 우리 집 근처의 담벼락에서 천막 같은 걸 쳐놓고 사주나 관상을 봐주는 일을 했다. 나도 한 두 번쯤 거기서 신년 운세를 본적이 있었다. 운세의 결과 같은 건 오래 전에 까먹어 버렸지만 희한하게도 스님 이름과 얼굴 정도는 기억이 났다. 아마도 스님의 귓속 털이 너무 무성하게 자라서 밖으로 적어도 몇 센티미터는 삐져나와 있던 충격적인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다시 떠올리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는 천천히, 그러나 놓치지 않을 정도로만 스님을 따라갔다. 누군가를 미행한다는 것은 게임에서밖에 해보지 않았지만, 보기보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대상이 머리를 박박 민 노년의 스님이라는 것은 정말 오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 야쿠르트 아줌마는 번잡한 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하지만 너무 후미지지는 않은 정말 야쿠르트 장사를 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처럼 보이는 어느 가로수의 아래에 자리잡았다. 내 직감대로, 스님은 곧장 야쿠르트 아줌마에게로 다가갔다. 나는 발걸음을 서둘러서 그들 근처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들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어차피 두 사람은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아서 내가 줄곧 따라온 줄도 모를 테니, 아예 가까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옆이나 뒤에서 슬쩍 지켜볼 요량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스님은 주머니에서 오천원 한 장을 꺼내 아줌마에게 내밀 뿐이었다. 나는 낙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걸 보기 위해 따라온 나 자신이 한 없이 멍청하다고 여겨지는 그 때, 내 입이 딱 벌어졌다. 나는 내가 본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스님은 오천원 짜리 한 장을 건넨 것이 아니었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살짝 돌아서서 지폐를, 말 그대로 ‘펼쳤다’. 내가 오천원이라고 생각했던 누런 돈 바로 아래에 지폐 몇 장이 더 있었던 것이다. 나는 경악했다. 율곡 이이가 그려진 오천원 바로 아래에는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이 그려진, 너무나 확실해 보이는 5만원 권 두 장이 있었다. 아줌마는 순식간에 다시 지폐들을 간추려 오천원 권이 맨 위로 보이게 했지만, 이제 나는 알고 있었다. 착시효과처럼, 한 장이 아니란 걸 알게 되자 밑에 감추어진 오만원권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껏 이 허접한 속임수에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분노와 경악이 뒤섞인 얼굴을 숨기기 위해 뒤돌아 서야했다. 내가 저번의 그 거래에서 내가 무언갈 눈치챘다는 걸 알고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나한테서 어떤것도 숨기지 않으려하는 듯 보였다. 아니, 오히려 보여주는 것에 가까웠다. 나를 농락하고있는 건가? 바로 그 때 였다.
“김 군!”
“네?”
거친 호통소리에 무심코 대답한 나는 화들짝 놀랐다. 내 입으로 내뱉고도 내가 왜 대답했는지 몰랐다. 그리고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던 것은, 심지어 나는 김 군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는 이씨였다. 스스로가 그보다 더 멍청하게 느껴질 수는 없었다.
“이리 와보게.”
나는 숨이 턱턱 막혔다. 감히 뒤돌아 볼 수가 없었다.
“김 군은 왜 우리를 따라왔지?”
스님의 힘있는 목소리가 내 귀에 묵직하게 박혔다. 나는 여전히 당황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머릿속이 하얘지기 보다 머릿속이 깔끔해졌다. 이 상황을 타결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내가 공격에 나서는 수 밖에 없다는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참 이상한 거래네요.”
나는 뒤돌아서며 말했다. 도무지 종 잡을 수 없는 표정의 두 사람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게 내 질문에 대한 답인가?”
스님의 얼굴이 무표정인지, 아니면 살짝 미소짓고 있는 표정인지는 알 수 없었다.
“ 실은 아주머니가 파시는 야쿠르트 가격이 너무 터무니 없어 보여서 따라왔습니다.”
나는 최대한 또박또박 말하려고 애썼으나, 조금 떨리는 것을 숨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스님께 야쿠르트 하나 가격이 170원 인 걸 알려드리려구요.”
나도 조금 미소지어 보려고 했으나 잘 되지는 않았다.
“그건 나도 알고 있지. 허나 자네는 이 야쿠르트가 조금 특별하다는 건 몰랐을 테고.”
스님이 손에 든 야쿠르트 하나를 살짝 흔들며 말했다.
“경찰이라면 특별하게 생각할 것 같네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나도 손에 든 전화기를 살짝 흔들며 말했다.
“ 내 보기에 자네가 무언갈 착각하는 것 같구먼. 자네도 더 알게 되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네.”
“저는 마약 같은 건 안합니다.”
나는 최대한 단호한 어조로 말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스님은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이건 그런 시시한 마약 같은 것도 아니거니와, 설령 약이라 해도 우리는 잡히지가 않으니, 그게 무슨 소용이겠나.”
야쿠르트를 손에 들고 사뭇 진지하게 말하는 스님의 모습에 나는 픽하고 웃어버렸다. 스님은 내가 비웃는 것이라 생각한 듯 보였다. 스님은 웃으면서 야쿠르트 아줌마에게 말했다.
“ 16번하고, 흰 거 하나하고, 그렇게 두 병 더 줌세.”
“네, 16번하고 은박이요.”
아줌마는 상자에서 야쿠르트 두 개를 골라 스님께 건냈다. 하나는 평범한 야쿠르트처럼 보였고 또 다른 하나는 초록색 껍질 대신 은색 껍질이 붙어있었다. 스님은 야쿠르트 두 개를 어떤 삼베 주머니에 넣고는 덧붙였다.
“두 병 중에 한 병은 안 마시고 돌려줄 테니 하나 값만 달아두시게.”
“네, 알겠습니다.”
스님이 내 옆을 지나가면서 말했다.
“진실을 알고 싶다면 따라오게.”
진실이라. 야쿠르트의 진실. 나는 푸핫 하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야쿠르트 아줌마도 입을 가리며 웃고 있었다. 내 의심은 틀리지 않았지만, 어쩌면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 같았다. 하긴. 야쿠르트에 뭐가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 왠지 나쁜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아줌마한테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스님의 뒤를 졸래졸래 따라갔다. 그래. 도대체 그 진실이 뭘까.
“전미개오에는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뒤따르는 법.”
“예?”
우리집 앞 담벼락 밑, 스님의 천막 아래 앉은 나는 선문답 같은 말씀에 되물었다.
“깨달음을 위해서는 신중한 선택을 해야한다는 말이네. 개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깨달음도 있으니.”
내가 잠시 말씀을 곱씹는 사이 스님은 아까 그 삼베 주머니에서 야쿠르트 두 개를 꺼내 탁자에올려놓았다. 스님은 평범한 초록껍질 야쿠르트를 오른손에 쥐며 설명했다.
“이 16번 야쿠르트는 자네가 야쿠르트에 대해 더 깊게 알도록 도와줄 걸세.”
그 말에 자세히 들여봤지만 별 달리 특이한 점은 없었다. 내 눈에는 평범한 야쿠르트와 똑같이 보였다.
“야쿠르트 자체가 알려주기보다는 자네가 알고 싶어한다는 걸 확인하는 의미이지. 이걸 택한다면 일이 끝난 후 자네의 궁금증을 대부분 해소될 것이네. 반면에 이 야쿠르트는……”
스님이 은색 껍질의 야쿠르트를 왼손에 쥐며 말을 이었다.
“더 이상 야쿠르트에 대한 의심 없이 살도록 도와줄 걸세.”
나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잘 나오지 않았다. 그저 입을 약간 벌리고 야쿠르트와 스님을 번갈아 쳐다볼 뿐이었다. 스님이 하시는 말씀을 주의 깊게 들었지만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자네는 영화도 안 보나? 선택은 자네 몫일세.”
영화? 영화…… 설마 그 영화를 말하는 것일까.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이게 스님의 센스인가. 아니,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다 중요한 건 내가 바로 지금 기로에 서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후회하지않을 선택이라. 나는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았다. 어쩌면 인생에서 야쿠르트에 담긴 무언갈 알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치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도 모르겠지. 그래, 진실 없이 사는 인간은 평생토록 야쿠르트 한 번 못먹어 본 사람 같은 거야. 그리고 나한테는 내 눈 앞에, 내 손 앞에 그 기회가 있지. 이건 말 그대로 기회야, 라고 생각했다. 나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앞으로 닥쳐올 미래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지 못한 채, 평범해 보이는 16번 요구르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내가 야쿠르트를 쥐는 순간, 스님은 내 손을 번뜩 잡으며 소리쳤다.
“책임도 자네 몫임을 잊지 말게!”
선택도 나의 몫, 책임도 나의 몫. 이런 류는 항상 이렇지. 나는 비장하게 끄덕였다. 무엇에 홀린 듯이 야쿠르트의 초록 껍질을 까고 누런 내용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야쿠르트는 야쿠르트 맛이구나, 하고 생각한 그 순간 갑자기 몸에 이상한 기운이 감도는 것을 느꼈다. 영화에서 묘사한 것처럼 금속같이 차가운 느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따뜻함이 감도는 느낌이었다. 나는 곧 온몸에 온기가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굳이 묘사를 하자면, 손 끝과 발 끝까지 구석구석 뜨거운 야쿠르트가 뻗어나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왠지 모르게 내가 새롭게 태어나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묘한 황홀감이 나를 휩싸는 듯 했다. 마약을 해본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마약을 마신 것은 확실히 아니었다. 나는 야쿠르트를 마셨다. 하지만 조금 특별한 야쿠르트. 그리고 이제는 야쿠르트의 비밀, 아니, 진실을 알 차례가 왔다.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스님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내게 다가올 야쿠르트 세계의 거대한 그림자를 알아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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