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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09 17:53
그런데 저렇게 배려해준 아들은 나중에 단종 몰아내고 죽이는데 앞장을 서게 되니....
나중에 왕족들 데리고 단종 사사시켜야 한다고 앞장섰던게 양녕대군이죠. 영조가 사도세자 살려줬다면 나중에 양녕대군처럼 패악질을 했을수도..
15/10/09 17:55
그래서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인거라는게 대체적인 해석이죠.
그냥 폐세자만 시키면 세손(정조) 즉위 후 "살아있는 임금의 아버지"가 무슨 패악질(아예 왕위를 내놓으라 할 수도 있고)을 저지를지 모르니.
15/10/09 18:02
사도세자는 영조때문에 그렇게 되었고 분명 불쌍하긴 하지만...
사람을 백명 이상을 죽인 살인마였다는걸 알게된 후부턴 도저히 용서가 안되서 영조가 잘 죽였다고 봅니다. 아마 살려뒀다면 양녕의 패악질과는 급이 다른 살인귀가 됐을 것 같네요.
15/10/10 09:55
과도한 갈굼질로 인한 정신이상이 살인귀를 만든거죠.
애초에 그렇게 갈궈서 아들 정신상태를 이상하게 만들지만 않았어도 그런 일은 없었을듯.
15/10/09 17:59
개인적으로 안재모씨의 이방원보다는 용의 눈물 유동근씨의 이방원이 이방원이라는 역사적 인물과 싱크가 더 맞는 느낌이어서...
지금도 이방원하면 유동근씨가 더 떠오르네요. 저는 아직까지...
15/10/09 18:24
저도요
용의눈물이 사극최초로 시청률 10퍼센트가 넘었다고 난리가 났었는데 거기엔 출연진들의 명연기가 큰 힘이었죠. 배우들 다 좋았지만 유동근의 이방원은 임팩트가 걍 막!!! 특히나, 용의 눈물 거의 마지막 즈음에 태조가 죽고 나서 '소자가 잘못했사옵니다. 소자가 잘못했사옵니다' 오열하는 장면은 지금도 선명히 기억납니다. 더불어, 유동근에게 전혀 밀리지 않던 최명길씨도 좋았습니다.
15/10/09 19:30
저는 둘다 장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용의눈물 이방원은 너무 초인적이라...물론 유동근씨의 연기력은 정말 최고였다고 생각합니다.
15/10/09 19:36
용의 눈물은 사실상 태종이 태조 정도전 양녕과 태그매치전 하는 거였죠. 당대 최고 배우들과 번갈아가며 대립하며 극의 중심에서 훌륭히 이끌었으니까 아직도 그 이미지가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당시 기억에 별로 안 남은 충녕 역 안재모가 이제 태종이 되어 화제가 되었죠. 그럼 그 충녕보다 기억에 남아 아직까지도 양녕에게 우호적 평을 주는 이미지를 만들고 그 태종역 유동근씨와 맞붙어 전혀 기세가 밀리지 않는 엄청난 젊은 배우는? 바로 이민우죠. 그동안 연기한 가장 계급 낮은 사극 배역이 암행어사인 이몽룡이었다는 그 이민우입니다. 그래서 좀 더 연기를 자주 봤으면 해요.
15/10/09 23:19
저도 이민우씨가 사극에 일가견이 있다고 보는데, 댓글 보며 그 느낌이 어디서 왔는지 명확해지네요.
패악질하면 양녕도 한따까리 하는데, 용의눈물을 본 세대로서 양녕은 대인배라는 이미지밖에 없었거든요.
15/10/09 18:07
만약에 양녕의 아버지가 태종이 아니라 영조였다면........................... 뒤주속에 들어가는 걸로 끝나지 않았을지도;;;
15/10/09 18:24
패악질에서 비교가 안 됩니다... 왕과 왕세자를 포함하여 자신의 손으로 직접 살인을 한 건 건국초기 인물인 이성계나 이방원 빼곤 사도세자가 유일합니다.
15/10/09 20:43
내시 김처선이 "늙은 몸이 네분의 임금을 섬겨왔으나 고금을 돌이켜도 이토록 음란한 왕도 없었사옵니다"라고 돌직구를 날리자 연산군이 김처선에게 활을 쏘고 칼을 휘둘러 죽였습니다.
15/10/10 01:45
그렇네요. 제가 연산군을 깜빡 했군요.
그런데 연산군이 김처선을 직접 죽였다는 기록은 그래도 야사의 기록인데, 사도세자의 경우에는 본인이 직접 죽였다는 내용이 실록을 포함한 많은 곳에서 나온다는 차이가 있다면 있달까요..
15/10/09 18:22
글쎄요..굉장히 너그러워 보이는 태종으로 그려지지만, 사실 태종도 양녕대군을 상당하게 압박했습니다.
글 제대로 못 외운다고 양녕대군을 보살피는 내시를 매질한 건 기본이고, 그에 내시가 세자에게 자기가 왜 맞아야하냐며 대들기까지 했을 정도니까요. 밥 먹는데 식사예절 안 지킨다고 호통치기도 하고... 사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영조가 행했던 세자 교육 정도는 사실 거의 모든 왕세자가 겪는 모습이었어요. 그리고 양녕대군의 경우 14살의 나이에 황제의 부름으로 명나라 황제까지 만나러 다녀왔고, 15살부터는 명나라 사신 접대를 담당했을 정도로 실제로 능력이 있었던 인물이라 태종이 미련을 못 버린 것도 있죠. 게다가 패악질의 정도가 양녕대군과 사도세자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의 갭이 있습니다. 양녕대군이 그냥 커피라면 사도세자는 TOP랄까..
15/10/09 18:26
양녕대군은 세자시절 딱히 인륜을 저버린 막장행위는 하지 않았더군요. 양녕이 한것중 가장 문제가 된게 어리와 간통사건 정도니...
사람죽인 사도세자와는 급이 다르네요. 다만 양녕대군은 후에 인륜을 저버린 막장행위를 했으니 자기 아들 첩을 빼았아서 이때문에 아들이 반쯤 미쳐서 자결시도 하고 그 휴유증으로 사망....
15/10/09 23:49
정도전역 고김흥기씨도 빠질 수 없죠. 요샌 정도전을 여러분이 연기하며 이미지가 희석되었지만 그 전에 정도전 하면 떠오르는 교과서적 이미지를 확고히 잡아주셨던 분이죠. 엄청나게 배역공부 하신 걸로 압니다.
15/10/09 20:16
저렇게 아들 바보인 이유가, 양녕위에 아들이 세명 있었는데 셋다 어릴적에 죽고 한창 정도전한테 세력이 밀려서 집에서 허송세월 할때 양녕이 태어났다고 하더라고요.
보통 군왕은 아들한테 정붙이기 힘든데, 실세한테 밉보인 왕족이라 집에서 애보면서 지내다보니 정이 듬뿍 들었다고....
15/10/10 09:50
그리고 애가 "죽이고 싶은 다섯살"이 되자 육아에 지친 방원이(32세, 무직)는 더이상 못견디고 "으아 나 뭐라도 일할래!"하면서 삼봉 선생한테 매달렸지만 왕자들의 세력화를 두려워한 삼봉이 끝까지 "안알랴줌" 이러자 분노하여 쿠데타를 일으키게 되고...
15/10/09 21:58
그냥 태종과 영조의 입장이 많이 달랐던거 아닌가 싶습니다.
영조는 왕권을 강화하는 과정에 올라와 있었고 태종은 왕자의 난 두 번으로 이미 다 쓸어버린 뒤에 왕위에 올랐고...랄까...
15/10/09 23:56
이게 맞겠네요
영조는 유일한 후계자니깐 갈구는 걸로 끝내다가 새로운 후계자(정조)가 생기니깐 증오해 마지않던 아들을 그냥 죽여버렸..
15/10/10 05:42
흥선대원군만봐도 살아있는 대원군이 있다는거 랑 왕의형이 있는거랑 레베루가 다르죠.
말년에 고종하고 대원군하고 권력다툼있었던걸 생각해보면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수 없는건데 하물며 원래 세자였는데 자식한테 밀려 폐세자가 된다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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