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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2/26 16:31:39
Name 세이시로
Subject 늦은 결승후기 - 장충체육관에 다녀왔습니다. ^^
이번 결승전. 장소가 서울인데도 갈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도 안서고 갈까 말까 했었는데 저랑 같이 가는 사람이 세게 잡아끌어 결국 4시 50분에 택시를 타고 장충체육관으로 향했었죠.^^; e-sports의 역사가 써진 장충체육관에 실제로 오는 것은 처음이라 굉장히 두근두근했었죠. 사실 장충체육관으로 향하면서도 대진이 대진이고 장소도 좁으니 들어갈 수나 있을까? 들어가도 앉을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도착해보니 의외로 사람이 많지 않더군요. 무대를 가운데 설치해서 그만큼 그 자리에 있던 관중석이 사라진거고, 또 스탠드에도 빈 자리가 많아서 결과적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지 않았더군요.

한가운데 설치되어 사방에서 볼 수 있었던 무대는 상당히 신선했습니다. 정면은 VIP석이 있어 그런지 일반인은 못앉게 하고 나머지를 T1과 KTF응원석으로 반씩 채웠는데 T1쪽 자리가 좀 더 사람도 많고 분위기도 좋더군요. 사측에서 준비한 현수막도 KTF는 '열광하라 승리하라!', 'Return of Lords'같은 애매한 문구를 사용한데 비해 T1은 '트리플 크라운의 영광', 'SKY Proleage 2005 최고의 팀'같이 확실한 문구들을 썼더군요. 정면 쪽엔 강도경 선수의 은퇴를 기념한 현수막도 있었는데 강도경 선수 사진 밑에 '그라나도 에스파다'광고가 있는 걸 보고 한빛 쫌 너무한다-.- 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날 경기장의 또 하나의 볼거리는 치어리더를 대동한 조직적인 응원이었습니다. 대표적인 대기업팀인 이 두 팀 정도 되니까 치어리더 맞대결도 가능하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아무튼 대형 스피커로 참여를 유도하며 치어리더가 흥까지 돋구는 응원 분위기는 지금껏 e-sports에선 보기 힘들었던 것이라 꽤 좋았었습니다.^^ 그런데 그 열기가 지나쳐 중요한 엔트리 발표를 할때까지 중단이 안되어 조금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죠.

엔트리 발표를 보니 지금껏 두 팀이 써왔던 전략과는 상당히 다른걸 알수 있더군요. T1이 강한 맵에 강한 선수를 배치하는 정공법을 써 최고의 무대에 최고의 멤버로 임하겠다는 각오를 보여줬다면, KTF는 선수기용과 맵 배치에서 모두 신경을 썼고 이기겠다는 각오도 남달라 보였고 박정석, 강민이 개인전에 나오지 않는 모습도 이채로웠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개인전 3, 5경기는 T1쪽 우세로 보였고, 팀플레이는 2:1정도로 KTF가 우세한 걸로 보여, 첫경기를 임요환 선수가 이기면 4:1로 T1승, 그렇지 않으면 7경기 에이스 결정전까지 가서 박태민 대 강민의 경기가 나오지 않을까, 그러면 KTF도 해볼만하다, 이런 예측을 했었죠.

엔트리 발표 후에는 강도경 선수의 은퇴식이 있었죠. 꽃다발들을 건네받고 강도경 선수의 눈가가 반짝이는 모습을 보니 뭉클하더군요. 부디 앞으로도 e-sports계에 있어 든든한 존재로 남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후엔 김신배 케스파 회장이 축사를 했는데 맹형규 전 의원(서울시장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사퇴했는데 자막엔 계속 국회의원이라고 나왔죠)과 홍준표 의원까지 온 모습은 좀 속보이는 일이긴 했습니다. 선수들이 무대인사를 따로 한 뒤에 본격적인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1경기 알포인트 임요환 대 이병민

상대로 누가 나와도 자신있다는 정공법 엔트리를 쓴 티원팀. 1경기부터 임요환 선수가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듯했습니다. 이에 맞서 KTF는 희망과도 같은 이병민 선수를 내보냈죠. 임요환을 예상하고도 플토를 내보내지 않은 건 의외지만 알포인트에서 테란이 좋기 때문에 테테전으로 확실히 꺾겠다는 생각으로 나온 듯 했습니다.

가로 방향으로 출발한 두 선수. 초반부터 양팀의 신경전과 응원전이 치열해 임요환 선수의 첫 벌처가 언덕위 마린 2마리에 가로막히는 장면만으로도 환호성이 나왔죠. 빌드는 이병민 선수가 평범하게 2팩으로 간 반면 임요환 선수는 원벌처 더블로 꽤나 갈려버렸죠. 언덕위에서 계속 막았어도 힘들었을 판에 언덕 아래에서 벌처를 많이 잃은 통에 이후 이병민 선수의 벌처가 계속 본진에 난입해 마인을 심고, 임요환 선수는 그것을 원팩에서 나오는 탱크와 레이스 한대로 근근히 막아내는 공방전이 펼쳐졌었습니다. 속업벌처로 계속 밀어붙였으면 끝날 수도 있을 상황이었는데 임요환 선수도 컨트롤을 잘했지만 이병민 선수도 멀티를 하더군요.

겨우 막아내고 레이스 두대로 견제까지 해봤지만 임요환 선수의 언덕 아래에는 이병민 선수의 탱크 라인이 자리를 잡아 아예 내려갈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임요환 선수의 유일한 희망은 드랍쉽! 센터를 앞마당이 아닌 본진 바로 위에 붙은 멀티로 내리고 드랍쉽으로 탱크와 SCV를 내려 자리도 잡고 해서 상황이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투드랍쉽에서 내린 임요환 선수의 4탱크가 이병민 선수의 본진과 앞마당을 동시에 포격할 수 있는 위치에 시즈모드를 하면서 이병민 선수를 상당히 흔들어줬었죠.

꽤 상황이 좋아진 임요환 선수, 팩토리를 이른 시점에 늘려 모은 병력으로 자신의 언덕 아래 라인을 돌파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임요환 선수의 SCV과 탱크가 언덕 아래로 내려가려다가 일부가 엉켜버리고, 더군다나 생각지도 못했던 이병민 선수의 레이스 몇기가 오는 바람에 분위기 좋던 경기가 완전히 꼬여버리고 말았습니다. 돌파를 실패한 것은 물론 레이스에 탱크를 거의 다 잃어버렸죠. 클로킹까지 하는 레이스와 더욱더 강해진 조이기라인에 한두마리씩 나오는 골리앗까지 잡히고 탱크수비라인도 전부 터지니 임요환 선수는 결국 허무하게 지지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기세를 잡으려던 임요환 선수는 상당히 아쉬워했고, 그와 반대로 이병민 선수는 연신 싱글벙글이었습니다.


2경기 우산국 고인규/윤종민 대 홍진호/강민

양 팀다 초반부터 초강수로 나왔죠. T1은 우산국 최강조합이자 팀플 최강조합! KTF는 그 유명한 날콩조합 출동이었죠. 개인적으로는 강민의 뭔가 깜짝 전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이 경기까지 KTF가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아주 특별한 전략까진 아니고 마메 조합을 상대할 사업 드라군이더군요. 강민 선수의 드라군과 홍진호 선수의 저글링이 중앙에 나서기 시작할 때부터 고인규 선수의 마메는 어떻게 역언덕을 뚫고 중앙으로 진출할까? 궁금했었는데... 팀플은 역시 윤종민?!! 먼길을 돌아와서 마메와 합류한 저글링의 힘으로 멋지게 중앙으로 진출합니다. 그후로도 윤종민 선수의 저글링 움직임은 너무나도 좋더군요. 강민 선수의 드라군이나 리버나, 고인규 선수의 마린메딕보다 윤종민 선수의 저글링이 더 무서워 보일 정도였으니까요.

아무튼 중앙이 잡힌 이후로 강민 선수가 리버도 써 보지만 홍진호 선수는 결국 밀리고, 저글링과 마메의 미칠듯한 협동 플레이에 혼자 남은 프로토스는 병력을 다 잃고 지지를 치고 말았습니다. 홍진호/강민의 이름값도 고인규/윤종민의 우산국 경험과 자신감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걸 보여준 한판이었죠. 삼성칸의 임채성/이재황 조합도 있듯이 개인전 주전이 아닌 선수들도 이렇게 멋진 경기를 보여줄 수 있다는 데에 팀플레이의 재미와 감동이 있지 않나 싶었습니다.


3경기 러시아워2 최연성 대 조용호

엔트리 발표시 인터뷰에서는 정수영 감독이 모든 엔트리를 맞췄다고는 했지만, 솔직히 3,5경기의 매치업은 그렇다고 보기엔 좀 힘들었습니다. 러시아워2에서 테란 최연성을 상대로 저그 조용호...? '우승자' 조용호, '챔피언' 변길섭을 거론했지만 그건 그냥 선수 개개인에 대한 믿음일 뿐, 결과적으로 맵과 종족상성에 맞는 엔트리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경기는 시작됐고 조용호 선수는 다행히 문제의 11시는 아니었죠. 초반에 최연성 선수가 8배럭을 올려 벙커링을 시도했는데 조용호 선수가 드론을 한마리도 잃지 않고 잘 막아냈으며, 벙커링은 페이크였는데도 벙커를 완성시키는 실수를 해서 초반 기세는 저그가 괜찮았습니다. 예상대로 페이크를 준 후 바로 더블을 하더군요. 조용호 선수는 일단 러커. 최연성 선수의 더블커맨드가 앞마당에 착륙한지 얼마 안되어 조용호 선수는 러커 에그 변태와 동시에 1시 가스멀티를 하는 좋은 판단을 했습니다.

이후 조용호 선수는 뮤탈 다수를 확보하면서 빠른 하이브를 갔고, 최연성 선수는 더블 후 테크는 조금 늦게 올리면서 4배럭을 빠르게 갔습니다. 한번 병력이 나가겠구나 싶더니 역시 조금 뒤 그동안 쌓인 병력이 1시 가스멀티를 향해 진출하더군요. 빠른 하이브를 가는 통에 병력이 거의 없이 어찌어찌 막아야 하는 상황. 스캔과 함께 러커부터 잡히고 많이 쌓아뒀던 뮤탈도 다 잃으면서 뚫리나 싶은 순간에 인스네어가 뿌려지면서 마린메딕을 무력화시켰죠. 구사일생으로 막아내면서 11시 몰래멀티까지 하는 조용호 선수. 뮤탈을 거의 다 잃긴 했지만 일단은 빠른 가디언을 준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최연성. 11시 언덕위 러커를 무시하고 난입해 드론도 잡아내고, 이제는 거칠 것 없이 마린메딕 물량으로 중앙을 활보하며 9시 미네랄 멀티까지 먹고 병력은 상대의 앞마당으로 보냅니다. 마침 가디언이 변태하고 있는 상황. 깨느냐 못깨느냐였는데 결국 저그의 앞마당은 깨지고 말았습니다. 변수는 있었는데 가디언의 숫자가 생각보다 많다는 거였죠. 그대로 테란의 앞마당까지 쳐들어오는 가디언+디바우러를 상대하기 위해 부랴부랴 모으는 레이스의 클로킹 개발을 하면서 앞마당은 일단 들었습니다. 물론 9시 멀티가 있으니 전혀 상관없었을 걸로 생각했지만요.

가디언이 러커와 함께 들어오는데도 마린메딕도 잃지 않고 추가되는 탱크 레이스와 함께 어찌어찌 막아내고 그새 베슬이 포함된 주병력이 1시 가스멀티를 치러가는 판단은 정말 눈부셨습니다. 상대의 본진공략도 실패하고 자신의 핵심 멀티들도 밀려서 조용호 선수의 상황이 급격하게 나빠졌죠. 더군다나 가디언을 막으려고 나온 레이스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해 11시 멀티의 드론과 본진의 드론이 전부 잡혀버리고, 스포어 2개가 있는 앞마당만이 그나마 돌아가는 암울한 상황, 그때 최연성은 앞마당 다시 앉히고 9시 가스멀티까지 돌리고 있어 누가 봐도 전세는 테란 쪽이었습니다. 저그는 러커게릴라도 해보고 다크스웜으로 저항도 해보지만 레이스와 베슬이 쌓이니 속절없이 지지를 치고 말았습니다.

조용호 선수도 초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는데 역시 최연성! 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경기였죠. 자신만만하게 부스 안으로 들어가 이긴 후 손을 번쩍 들면서 나오는 모습에 저게 바로 에이스다! 라는 찬사를 보낼 만 했습니다. 첫경기 기선을 제압당하고도 두경기를 연달아 따내는 모습에서 티원의 저력을 다시한번 느꼈었구요.


4경기 루나더파이널 김성제/윤종민 대 이병민/조용호

루나더파이널에선 박정석/홍진호 조합이 최강의 조합이었는데 플레이오프 GO전에서 패배해서 그런지 이병민/조용호라는 신생 조합을 내세웠습니다. 오히려 티원에서 고인규/윤종민 대신 김성제/윤종민의 플토저그 조합으로 나왔죠. 일단은 플토저그가 좀 더 낫지 않나 생각을 하고 경기가 시작되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시작되자마자 김성제 선수가 테란 진영 앞에 전진건물을 하더군요. 물론 정찰이 아직 되지 않던 타이밍이라 꼭 테란 앞에 해야겠다는 건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게이트와 포지를 건설하고 틀어막았습니다. 그리고는 두명이 조용호 선수를 견제하러 갔는데 윤종민 선수가 이상하게 저글링 손해를 자꾸 보고 김성제 선수도 조용호 선수를 그다지 압박하지 못하긴 했습니다. 그새 이병민 선수는 마메를 모으며 시즈탱크를 빨리 준비했고, 김성제 선수는 리버테크를 탔죠.

아까부터 조용호 선수의 본진에 SCV가 머물러 있다 싶더니 어느새 지어진 스타포트! 김성제면 리버다 이거죠. 역시 리버는 조용호 선수의 본진을 향하고, 오는 길에 잡지는 못했지만 윤종민 선수의 저글링과 대규모로 공격해 들어가려는 찰나에 셔틀이 요격되어 리버는 제대로 활약을 하지 못했고, 결국 조용호 선수는 방어를 해냈습니다.

그동안 탱크와 마메로 포톤조이기를 뚫고 나온 이병민 선수의 병력은 바로 윤종민 선수의 본진으로 향했고, 이제 막 드라군을 뽑기 시작한 김성제 선수는 도와줄 길이 없었습니다. 윤종민 선수가 무너지고, 추가 리버도 레이스와 마린에 잡히고 드라군은 뮤탈 저글링 마메에 싸먹히며 지지를 치고 맙니다.

이병민 선수의 활약이 놀라웠던 한판이었죠. 1경기도 그랬는데 중요한 순간에 나타난 레이스 때문에 티원팀플이 뭘 해보지를 못했습니다. KTF의 구세주와 같은 이병민 선수의 활약으로 2:2 동점을 만들며 KTF가 이번엔 뭔가 다르다! 라는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줬고 마지막 7경기까지 갈 수 있겠단 생각이 강하게 들게 되었습니다. 티원 응원석이 침울해지고 KTF응원석이 난리난것은 말할 것도 없었지요.


5경기 네오레퀴엠 박용욱 대 변길섭

정공 엔트리를 쓴 티원에서는 박정석을 거의 예상하고 박용욱이 나오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노리는 대진보다는 박용욱의 플플전 감각을 최고로 끌어올려 힘대결을 펼쳐 보겠다는 생각이었겠지요. 그런데 KTF는 뜻밖에도 변길섭 카드. 박용욱을 예측했다고는 하지만 속내는 암만봐도 박태민을 좀 더 노리고 나온 거였습니다. 후기리그 결승에서도 박태민 선수가 프로토스를 노리고 나왔었고, 박용욱 선수의 최근 분위기가 안좋아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티원이 좋게 됐지만 박용욱 선수의 레퀴엠 테란전이 1승 3패라는 점이 걸리긴 했었죠.

그러나 경기는 무난하게 박용욱의 페이스로 흘러갔습니다. 본진에 코어와 2게이트, 파일런이 3개째 건설될때까지도 정찰을 가지 않던 박용욱 선수의 프로브는 첫 정찰에 12시 변길섭 선수의 진영을 발견하는 행운을 얻습니다. 변길섭 선수는 원팩 원스타를 올리며 드랍쉽 플레이를 하려 했는데, 세 마리의 빠른 사업드라군에 첫 탱크를 잃으며 출발부터 꼬이고 말았습니다. 겨우 시즈모드가 완료되어 막아내긴 했지만 SCV도 다수 잃고 언덕 위에서 견제도 여전했죠.

이때 먼길을 돌아온 마린이 프로토스의 본진으로 진입해 리버테크를 확인하는 엄청난 전과를 올리고, 수비 후 스타포트에 애드온을 달던 변길섭 선수는 황급히 취소를 하고 레이스를 눌렀습니다. 그러나 셔틀과 레이스가 엇갈리고 질럿리버와 드라군 압박에 변길섭 선수는 또한번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어쨌든 테란이 살길은 드랍쉽밖에 없었는데 박용욱 선수는 아예 앞마당을 하지 않고 맵의 가장 구석에 미네랄멀티를 해버립니다. 가스섬멀티까진 몰라도 미네랄멀티까진 생각하지 못한 변길섭 선수의 드랍쉽은 할 게 없어졌죠. 박용욱 선수가 6시 스타팅까지 가져가서야 변길섭 선수도 앞마당을 내렸습니다.

유리한 상황이었는데도 역시 악마의 프로토스답게 가만 놔두지를 않는 박용욱! 속업셔틀이 본진과 앞마당을 왔다갔다하며 SCV를 사냥하고, 변길섭선수는 여기서 심하게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탱크도 있고 레이스도 있는데도 리버에 너무 피해를 입은 것은 아쉬운 측면이었죠. 뒤늦에 이곳저곳으로 보내본 벌처드랍도 별 소득없이 막히고, 박용욱 선수는 견제를 해주며 게이트 물량도 뽑고 캐리어까지 뽑을 수 있었습니다.

스타게이트를 4~5개까지 늘리며 쏟아지는 캐리어에 벌처탱크밖에 없었던 변길섭선수는 마지막으로 중앙으로 나와보지만 토스의 강력한 조합병력에 대패, 결국은 지지를 치고 말았습니다. 이경기가 정말 마지막이 아닌가, 하고 생각될 정도로 마무리 박의 악마스럽고 단단한 경기지배력은 엄청났습니다. 한경기 앞서갔을 뿐인데도 티원 응원석의 박수와 환호가 그렇게 클 수가 없었죠.


6경기 철의장막 전상욱/성학승 대 박정석/홍진호

5경기를 티원이 압도적으로 이기며 분위기를 끌어오긴 했지만 결국 6경기를 KTF가 잡고 에이스결정전까지 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철의 장막에서는 박정석/홍진호 조합의 경험과 자신감이 충분하다고 봤기 때문이죠. 그렇게 되면 7경기 네오포르테니 박태민 대 강민의 리매치가 벌어지겠구나, 그럼 KTF도 해볼만한걸 하다고 생각하며 6경기가 시작되는 걸 지켜봤습니다.

스타팅 위치는 같은 팀이 같은 대륙. 후반으로 가면 테란이 있는 쪽이 시즈탱크로 철의 장막을 장악할 수 있으니 박정석/홍진호가 노련하게 초중반에 끝내야겠다고 봤습니다. 일단 저그는 양쪽다 빠른 뮤탈로 갔는데 박정석 선수의 빌드가 다소 의외였습니다. 템플러 아카이브를 숨겨 짓는 것이었습니다. 뮤탈을 빨리 아콘으로 방어하겠다는 건가, 제공권은 커세언데, 그렇다고 다크를 태울 셔틀까지 뽑기에는 시간낭비가 심한데 등등의 생각을 했습니다. 전상욱 선수가 레이스로 홍진호 선수를 괴롭히는 동안 박정석 선수는 일꾼을 이용한 미네랄 밀치기로 다크를 넘기더군요. 그다지 효율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어쨌든 넘어간 다크의 활약을 보려 했는데 넘기는 장면부터 오버로드에게 들켜버렸습니다. 전상욱 선수는 그때까지 디텍터가 없긴 했지만 입구를 배럭으로 막아두어 고치는 새에 스캔과 터렛이 지어져 충분하게 다크를 막아냈고, 성학승 선수도 성큰과 오버로드를 두어 막아냈습니다.

이렇게 되니 티원팀이 좋더군요. 이미 전상욱의 레이스가 모였는데 박정석 선수는 아무것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새 중앙 가스멀티 쪽에 포톤을 지으려 했는데 오버로드로 보고 있는데 될 리가 없었죠. 다크로 시선을 끌려고도 했지만 별 소득이 없으니 포톤이 지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늦게나마 나온 커세어로 공중싸움을 걸며 포톤을 완성은 시켰으나, 그새 멀티를 한 전상욱 선수에게서 발키리와 시즈탱크가 나오며 승기가 넘어가고 맙니다. 발키리가 추가되니 공중으로는 KTF가 상대가 되지 않고, 중앙 포톤도 탱크에 부서지고, 티원팀은 본격적으로 중앙 쪽에 확장을 시작했습니다.

티원이 계속해서 공중장악하고 센터는 탱크로 버티니 KTF로서는 뭘 할래야 할 게 없었습니다. 뮤탈도 셔틀도 모두 격추당하고, 어떻게든 하이테크로 해법을 찾으려 디파일러도 뽑아보고 히드라러커로 전환하고 다크아콘도 뽑고 하긴 했지만, 탱크의 벽이 둘러쳐진 철의 장막은 견고하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오히려 성학승 선수가 오버로드 대량드랍으로 히드라 디파일러 조합을 건너편으로 넘겨서 전투를 했죠. 상대방 진영보다 멀티가 2개나 많으니 마음놓고 물량소모를 해 줄 수 있었으니까요. 엄청난 히드라를 두명이서 막기도 버거운데 어느새 쌓인 전상욱 선수의 베슬이 EMP까지 날려대니 KTF는 점점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어갔습니다. 질새라 다크아콘으로 피드백을 걸었지만 역부족이었죠.

테란이 캐던 미네랄이 점점 줄어들자 그전까지 대치와 소모만이 반복되던 경기가 종반으로 치달았습니다. 결국 미네랄이 뚫리는 순간, 경기장은 함성과 탄식으로 가득했죠. 이미 200을 채운지 오래인 전상욱의 마린메딕 부대가 이동하고, 탱크도 시즈모드를 풀고 한꺼번에 장막을 넘어오는 모습에 가히 전율이 흘렀습니다. 긴긴 2005 프로리그의 결말을 지으러 장벽을 헐고 정복의 깃발을 꽂으러 오는 위풍당당한 모습은 프로리그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렇게 6경기 승리로 SK텔레콤 T1이 4:2로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KTF로서는 7경기까지만 가면 박태민 대 강민으로 해볼만했을 건데 상당히 아쉬웠을 겁니다. 2승으로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도 진 이병민 선수도, 자신을 이긴 박태민에게 전기리그 MVP를 넘겨주고 이번에도 후기리그 MVP를 안겨주고 만 변길섭 선수의 아쉬움도 정말 컸겠지요. 아무튼 KTF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T1은 더할나위없이 잘했지요. 개인전 압도에 팀플까지 압도하니 이런 팀을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주전들이 고르게 출전해 승리를 따내오는 모습은 이것이 바로 최고의 팀, Team First 다 라는 걸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벌써 세번째 우승하고 티셔츠를 갈아입은 티원팀이 샴페인을 터트리며 세번째로 우승상금 5천만원을 가져가며 스카이 프로리그 2005의 대단원의 막이 내렸습니다.

선수들 모두 좋은 경기 보여줘서 고맙습니다. 승리하기 위해 끝까지 치열함을 보여주는 여러분이 있어 우리 팬들이 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See you at 2006 se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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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26 16:45
수정 아이콘
그러고보니... 전기와 그파 MVP는 모두 변길섭 선수를 이긴 선수가 탔었군요... 오호...
utopia0716
06/02/26 16:48
수정 아이콘
경기 후기 정말 잘 쓰셨네요. ^^
게임리포트 게시판으로 가야겠어요.
06/02/26 17:28
수정 아이콘
후기 정말 잘쓰셨네요.

가장 수준높은 경기는 3경기.

가장 인상적인 것은 철의 장막이 무너져 내리는 장면.
unipolar
06/02/26 19:59
수정 아이콘
후기 정말 잘 쓰셨습니다. 긴 글을 꼬박 다 읽었네요.^^ 현장에 계셨다니 부럽습니다.
하얀잼
06/02/26 20:46
수정 아이콘
잘읽었습니다! 선수들의 플레이가 눈에 선하네요. 이긍 보고싶어라
하늘하늘
06/02/26 21:19
수정 아이콘
몇번이나 본경기인데도 글을 읽으니 새롭게 느껴지네요.
정말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세이시로
06/02/26 21:43
수정 아이콘
잘 쓴 글도 아니지만 그래도 좀 더 보기 좋게 경기제목에 굵은 포인트를 넣었습니다.
읽어주신 분들 감사드리구요. ^^
06/02/27 00:03
수정 아이콘
정말 초 장문이군요..-_- 정말, 꾸물꾸물거리며 미네랄 1덩어리 사이를 통과하는 마린, 옆에 있는 미네랄도 다 캐어져서 넓어지자 역시 꾸물거리며 통과하는 탱크, 그들이 한데 모여 시즈를 변신하고 떡 버티고 있던 모습! 정말 가슴깊이 새겨질 것 같네요. 왠지 전상욱한텐 어울리지 않는 경기였습니다.

사실 철의 장막보면서 저 센터 미네랄을 다 캐내서 넘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하며 후기리그를 보곤했었는데 이제서야 그랜드 파이널에서 볼 수 있게 된다니. 감동이었습니다.
터치터치
06/02/27 13:44
수정 아이콘
아~~ 재밌다.. 잘봤습니다.^^
06/02/27 14:22
수정 아이콘
에이스 게시판으로 추천이요~^^
좋은 글이 눈살 찌푸리게 하는 글들에 묻힐까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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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62 오늘 그랜드 파이널은 포커 한게임과 같았다. [7] Figu3399 06/02/26 339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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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60 2006 KTF의 스토브리그에 대한 생각 [15] 가승희3464 06/02/26 3464 0
21258 가가 가가? [5] 백야3236 06/02/26 3236 0
21256 오늘 방송을 보며 느낀 이스포츠의 문제점...... [22] 홈런볼4471 06/02/26 447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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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51 새벽이 오려면 어둠이 깊어야 하는 법. [2] 타이거즈3800 06/02/26 3800 0
21250 GO에게 돛을 달아주세요. [13] withsoul3574 06/02/26 357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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