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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7/01 13:18:53
Name 홈런볼
Subject 낮 술 권하는 청첩장

어제 회사 회식이 늦으막히 끝나고 집에 와보니 우편으로 청첩장이 와 있었다. 청첩장과 함께 딸려온 예쁜 쪽지 하나...

'잘 지내지? 나 결혼해. 축하해줄거지? 꼭 왔으면 해. ^^'

3년 전 헤어진 여자친구의 청첩장이었다. 그 순간 교차하는 감정들이란...... 그게 어떤 감정이었는지는 정확히 표현은 못하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건 아쉬움과 미안함이었다.

대학시절 미팅에서 만났던 여자친구. 그게 벌써 6년전이니까 3년간 사귀었었군... 나에게 진정한 사랑이 무언지 알려줬던 여자. 항상 나에게 헌신적이었던 여자. 나의 빨래, 자취집의 청소는 물론 나에게 맛있는 것을 해주려 이것저것 요리책을 뒤적이던 그 귀여웠던 모습들이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꼭 껴안고 얼굴맞댄채 결혼해서 어떻게 살까하며 오순도순 얘기할 땐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을만큼 행복했는데 이젠 그것도  예전의 미련에 지나지 않는다.

여자에 대한 남자의 마음이란 것이 대부분 그렇지만 정말 간사하다.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른다. 그것이 지나갔을 때야 땅을 치는 적이 대부분이지만...... 나도 역시 그 한남자에 지나지 않았다.

여자친구의 소중함을 모르고 바람을 피웠던 3년전에 난 아무래도 돌았던 것 같다. 아니 돌았다기보다는 그 때 만났던 사람이 진짜 사랑인 줄 착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울며 붙잡던 여자친구를 난 무참히도 버렸다. 왜그리도 잔인했을까? 난 지금도 그 때의 내가 너무 싫고 부끄럽다.

그 후 진정한 사랑이 떠나갔음을 느꼈을 때는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 때 난 왜 그 소중함을 몰랐을까? 떠날때의 서러움과 괴로움도 크지만 보내고 났을 때의 허전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하물며 그렇게 잔인하게 보낸 사람의 마음이란...... 그게 아마도 내가 받는 죄값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난 한동안 허우적거렸다.

지금도 그 때의 마음의 짐이 가끔 나를 짓누른다.

그리고 3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어디서 어떻게 잘 살고 있는지 항상 미안하고 궁금했는데 어제 결혼을 한다고 뜻밖의 청첩장이 날아왔다. 그리고 이유모를 미안함과 아쉬움이 밀려온다. 그리고 이런 마음조차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더 괴롭게 다가왔다.

어젯밤 이런저런 생각 속에 늦게 잠들어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내렸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우울함...... 회사에 가기가 싫었다. 아니 갈 수 없었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회사에 월차를 냈다.

창밖을 내다보니 회색 빛 서울하늘에 비가 내린다.

그녀도 아마 같은 하늘 아래에서 이 비를 바라보고 있겠지?

그녀도 이젠 많이 잊혀졌을 것이고, 아니 잊혀졌어야 하지만 마음속 깊숙히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끝까지 지켜주지 못 해 미안하다고...... 그리고 부디 결혼하여 행복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내가 준 아픔만큼 더욱 행복하길......

오늘은 왠지 낮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못견딜 것 같다. 나가서 라면이랑 소주 좀 사와야지.

장마비가 지루하게 내리는 7월의 첫 날...... 내 가슴속에도 한줄기 시원한 소나기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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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습마도사
05/07/01 13:21
수정 아이콘
여자에 대한 남자의 마음이란 것이 대부분 그렇지만 정말 간사하다.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른다. 그것이 지나갔을 때야 땅을 치는 적이 대부분이지만...... 나도 역시 그 한남자에 지나지 않았다.

여자친구의 소중함을 모르고 바람을 피웠던 3년전에 난 아무래도 돌았던 것 같다. 아니 돌았다기보다는 그 때 만났던 사람이 진짜 사랑인 줄 착각했던 것 같다.

글 읽다가 윗대목에서 감동 주륵 ㅡ.ㅜ
최연성같은플
05/07/01 13:23
수정 아이콘
역시 있을때 감사해야한다는게
05/07/01 13:24
수정 아이콘
......... 여자도 남자의 청첩장을 받을때 그런 느낌이 들때가 많답니다.
역시... 같이 있을때.. 감사해야...
(아무튼 기운 내세요. 푹 쉬시고 마음 다독이시길.)
하얀잼
05/07/01 13:26
수정 아이콘
술 권하는 사회가 생각이 나는..
[NC]...TesTER
05/07/01 13:26
수정 아이콘
통유리가 있는 카페에 가서 비오는 창을 바라다보며 따스한 차 한잔 하세요. 술은 하지 마세요. 그냥 비오는 그 풍경만 바라보세요.
놀라운 본능
05/07/01 13:31
수정 아이콘
아쉬움이 많이 밀려드는 글이네요..

지나봐야 어떤상황이었는지 파악이 되죠;;
Zakk Wylde
05/07/01 13:46
수정 아이콘
여자에 대한 남자의 마음이란 것이 대부분 그렇지만 정말 간사하다.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른다. 그것이 지나갔을 때야 땅을 치는 적이 대부분이지만...... 나도 역시 그 한남자에 지나지 않았다.

여자친구의 소중함을 모르고 바람을 피웠던 3년전에 난 아무래도 돌았던 것 같다. 아니 돌았다기보다는 그 때 만났던 사람이 진짜 사랑인 줄 착각했던 것 같다.

저도 이부분에서 ㅡ_ ㅡ(근데 전 바람은 안 피웠습니다..)

저도 술에 한뻔 흠뻑 취해보고 싶네요..
술도 못하는데..
05/07/01 13:54
수정 아이콘
비오는 날에, 감흥에 젖고 싶으시다면,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드라이브도 좋고, 위에 말씀하신 통유리 건너로 빗방울 떨어지는거 봐도 되고, 이거나 저거나 다 때려치고, 술한잔 하는것도 좋습니다. ... 아아~
물키벨
05/07/01 14:04
수정 아이콘
슬픈사연이네요
이세용
05/07/01 14:09
수정 아이콘
함 가보시죠..-_-;
05/07/01 14:12
수정 아이콘
무한 담배신공도 그리 나쁘지 않아요 ^^
雜龍登天
05/07/01 14:17
수정 아이콘
가셔서 "정말 축하해" 라고 말해 줄수 있으셨으면 해요.
Zakk Wylde
05/07/01 14:22
수정 아이콘
雜龍登天님 말씀처럼 하시는게 좋을것 같아요.
그래도 잊지 않고 청첩장도 보내주었는데..
정말 사랑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주는것도 좋을것 같네요.
행복을 빌어주세요.
하늘높이^^
05/07/01 14:26
수정 아이콘
술을 좋아하시는 분 같네요. 아쉬운만큼...또 아픈만큼...술로 우세요. 그리고 깨끗이 씻어내시고 맘 편히 보내주세요. 축하한단 말과 행복하란 말을 같이 담아서요. ^^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좋은 술친구가 되 줄 겁니다.
견습마도사
05/07/01 14:46
수정 아이콘
Zakk Wylde님
저보다 현명하십니다..최소한 상처는 저보다 덜 주셨을테니....
발그레 아이네
05/07/01 14:50
수정 아이콘
윗 대목에서 감동이ㅡㅜ
雜龍登天님 말씀처럼 가서 축하해 주세요
저도 나중에 그 사람에게 이런 축하를 받을 수 있었음 좋겠습니다...
션 아담스
05/07/01 14:56
수정 아이콘
남자들은 사귀던 여자한테 청첩장을 보내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여자분들은 가끔 사귀던 남자한테 청첩장을 보내는 경우가 있더군요-_-. 어떤 경우엔 사회도 부탁을 할 때가;; 보통 사회는 신랑측 친구가 보는데;;;
와룡선생
05/07/01 15:19
수정 아이콘
젠장... 나도 일단 담배한대 펴야겠군요..
어찌 그리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셨습니까?
전 5년을 사겼었드랬죠.. 정말 곁에 있을땐 소중함을 모르고 언제나 내 곁에 있을줄만 알았죠..
정말 남자라는 동물은 미련하기 짝이 없는거 같군요..
어제에 이어 오늘도 쭉 달리렵니다.. 막걸리로...^^
퇴근시간 3시간전..
WoongWoong
05/07/01 15:55
수정 아이콘
정말 마음이 아프군요 ㅜ_ㅜ
마술사
05/07/01 16:53
수정 아이콘
추게로 ㅠㅠ;
홈런볼
05/07/01 18:26
수정 아이콘
오랜만에 집에 우두커니 앉아 술한잔 하고 음악들으니 좋네요. 처음엔 막 취하고 싶었는데 혼자 마셔서 그런지 소주 한병 마시니까 더는 못마시겠더라구요.
그리고 물론 다음주 결혼식 가려고 합니다. 진심으로 축하하고 행복하길 바랄뿐이구요. ^^
그리고 지금은 모든걸 잊고 듀얼토너먼트 F조 제 2경기에 집중을... ^^;; 비가와서 우울했지만 스타리그가 있어 흐뭇한 저녁입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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