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2002/05/24 16:09:02 |
Name |
최동민 |
Subject |
<잡설>2055년, 스타크래프트 3 |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그를 붙잡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기억속의 모든 일들은 마치 남의 것인양 형체를 보여주지 않았고, 자신은 자신대로 매사가 허무해져가는 느낌이었다.
임요환.. 그의 이름이었다. 이제 갓 스물둘..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세상은 말이 없었다. 공중에 붕 떠버린 존재랄까? 작은 목걸이를 제외하곤 그에겐 자신이 이 세상 사람임을 직, 간접적으로 증명해줄 그 무언가가 출생당시부터 아예 없었다. 부모가 누구인지 몰랐기에 형제는 더더욱 없었고, 철없던 어린시절의 파편같은 흔적만이 그의 전부이자 유일함이었다. 유년시절... 그에게 유년시절은 단지 거대한 궁전속의 하루하루로 대표되는 시절이었을 따름이다. 자신이 왜 거기에 있었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로.. 세월이 흘러 자신이 일곱이라는 나이를 먹게 되었을때 자신은 그 궁전에서 나와야만 했다. 아니 강제로 내 쫒겨야만 했다. 왜인지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마치 거개의 그의 인생이 다 그러했듯이.. 대답없는 질문처럼 그의 삶은 언제나 공허했다.
그후로 그는 이곳에서 살아왔다. 정말 힘들고 배고프던 시절.. 이성을 버리고 거의 본능에 가까운 동물처럼 살아온 지 정확히 2년 3개월..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조차 할 수 없었을만큼 힘들고 고되던 시절끝에 그는 이곳에서 백발의 노인 김정민을 만나게 되었다. 어쩐지 낯이 익은 얼굴... 처음 볼 때부터 거부감은 없었다. 이 노인.. 이 노인역시 자신을 친 자식처럼 대해주었다.
햇수로 십년... 노인과 같이 보내온 세월이었다. 그 시간동안 그가 노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시간에 비해 초라한 것들 뿐이었다. 자신과 동갑인 여식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여인역시 스타크래프트에 자질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여인이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 십년간 그는 그 노인 밑에서 스타크래프트를 배웠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스타와 함께 살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른 이들이 과중한 일에 지쳐가는 동안 그는 스타와 함께 살았고, 스타와 함께 놀았다. 십년이란 세월은 그에게 노인과 호각지세를 유지할 정도의 실력을 키워주었고, 그는 노인이 적수가 아닌 한 스타, 특히 자신이 테란을 고르는 한 절대로 지지않는다는 스스로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 가지고 자신이 걸어온 십년을 보상받을 수 있을까? 암울한 이야기였지만 세상에서의 자신은 있지도 않은 존재였다. 아무런 증표도 표시도 없는 그야말로 천애 고아. 아니 부모가 살아있을지 그렇지 않은지도 알지 못하는 그야말로 '땅에서 솟아버린 존재'인 자신...... 어쩌면 그런 자신의 처지에 대한 복수심이 지난 십년의 세월을 견디게 했던 주요한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요환은 그런 존재였다.
그는 목걸이를 움켜쥐었다. 자신의 유년을 어렴풋하게나마 떠오르게 했던 목걸이.. 정말로 배고픔을 못이겨 까무라쳐 있던 그를 노인이 발견케 했던 것도 이 목걸이었다. 지난 십년의 외로움을 달래주었던 것 역시 이 목걸이였다. 스타크래프트와 노인에 대한 기억, 그리고 이 목걸이를 제외하면 자신은 목숨을 다해 성실히 살아야 할 그 무엇인가가 존재하지 않는 그야말로 허상의 인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길... 이 길을 따라가면 노인의 오두막이 보인다. 십년전 굶주림에 지쳐 처음 보았던 그때의 오두막과 전혀 다를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왠지 정들어 보이는 이 오두막이다. 왠지모를 가슴떨림을 심호흡으로 막아보고 문을 열어본다.
끼이익....
"오.. 왔느냐.. 오늘은 너에게 할 말이 있구나."
"..."
"이곳 생활이 답답하지 않느냐?"
"..."
"너같은 젊은이가 살기에 이곳은 적당치가 않은 곳이야. 친구라고는 가
을이밖에 없을 정도로 적막한 이곳이다. 너의 맘에 들리가 없을거야.
세상에 내려가 보거라.. 그리고 그곳에서 너의 꿈을 찾거라."
"하지만 저는 제가 무엇을 해야 할른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곳이 대답해 줄게야. 너 자신에 대한 기억도, 그리고 네가 앞으로
해 나가야 할 일들도.. 모두 그곳에서 찾을 수 있을게다. 이곳은 네가 있어야 할 곳이 못된다."
"그렇다면 어른께서는..."
"나는... 또다른 할일이 있겠지."
"이별이로군요."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正離 去者必反)이라 했거늘.. 인연이 닿으면 만나게 되겠지... 아니, 그렇게 될 게야.. 그런 예감이 드는구나.. 자 그럼 마지막으로 너의 실력을 보자꾸나.."
원인모르게 비장했던 밤... 그 밤이 지나고 요환은 채비를 갖추어야 했다. 어딘가로 떠나기엔 적당한 날씨였다. 하늘은 높고 구름은 말이 없었다.. 햇빛 사이로 가을의 눈물이 살짝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가을과는 별의별 대화는 없었다. 원체가 둘 모두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기도 했거니와 마주치는 일도 별로 없었다. 다만 언젠가 그녀가 노인몰래 전해온 쪽지에서 그녀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자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었던 사람.. 자신도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겠고, 자신도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겠는 처지인데 다른 이의 마음을 받아줄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마음을 가을도 알아주는 듯 했다...
날은 밝고, 달은 높은데
별빛만이 나를 바라보는구나
매일같이 이 길을 걸을 요량이면
차라리 외롭지나 말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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