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수도 있다. 그러나 두번 패하지 않는다”
신세대의 ‘영웅’… 스타크래프트 세계 1위 - 皇帝가 된 꼴찌 임요환
고성표 월간중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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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 세계 1위 임요환. ‘스타크의 황제’ ‘테란의 황제’로 불리는 그는 신세대들에게 ‘우상’이자 ‘영웅’으로 군림한다. 만년 꼴찌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던 그가 ‘황제’가 되기까지의 인생대역전 풀스토리.
컴퓨터게임의 시대다. ‘게임중독증’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컴퓨터게임은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다. 심지어 게임을 ‘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방송에서 게임을 ‘중계’하기까지 하는 시대가 됐다. 스포츠 경기 중계하듯….
이처럼 게임시대가 활짝 꽃필 수 있었던 것은 컴퓨터 기술과 초고속 통신망의 발달 때문이다. 기술의 발달은 첨단기계의 대중화를 가져왔다. 가정마다 컴퓨터가 없는 집이 없고(2대 이상인 집도 많다) 초고속 통신망의 보급률도 전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최고다.
이러한 환경은 신세대들이 컴퓨터게임에 몰두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제공했다. 이런 하드웨어적인 발달에 호응이라도 하듯 소프트웨어도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엉성한 그래픽에 뻔한 시나리오를 갖춘 게임(기껏해야 동네 오락실 수준의 게임)이 사라지고, 어느새 영화 화면과 같은 사실적인 그래픽에 탄탄하고 치밀한 구성을 갖춘 게임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신세대의 ‘우상’ 프로게이머
그 중 대한민국의 신세대를 ‘게임열풍’으로 몰아넣은 주범은 바로 ‘스타크래프트’다. 미국의 세계적인 컴퓨터게임 제작업체인 블리자드(Blizard)사가 1998년 4월 내놓은 스타크래프트는 정교한 캐릭터와 다양하게 운용되는 전술로 단숨에 컴퓨터세대를 사로잡아 버렸다.
스타크래프트는 출시후 3년 동안 게임계의 왕좌를 지켰다. 국내 게임사상 150만장 판매(불법복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라는 초유의 기록을 세워 ‘최다소프트웨어판매왕’이라는 타이틀로 기네스북에 등재(登載)되기도 했다. 현재 국내 동호인만 500만명을 넘어섰다.
그리고… 스타크래프트를 중심으로 신종 직업인 ‘프로게이머’까지 생겨났다. 스타크래프트가 사회적 파급력이 컸던 만큼 이를 ‘특출나게 잘하는’ 프로게이머는 신세대들의 관심의 대상이 됐다.
프로게이머는 오프라인의 스타 못지않은 부와 인기를 누리고 심지어 (어른들은 웃을지 몰라도) 명예와 (문화적) 권력까지 거머쥐게 하는 매력적인 업종이 됐다.
최근 각종 조사에 따르면 거의 예외 없이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프로게이머다.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한 청년은 신세대들이 선망의 대상으로 삼는 프로게이머다. 그는 신세대의 우상이자 영웅이다. 그가 누구인지, 또 어떻게 해서 이름을 떨치게 됐는지 알기 전에 우선 그가 프로게이머로서 누리는 위상과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자.
어떠한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 업적, 성적, 위상을 유지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흔히 왕(혹은 여왕)·왕자 같은 호칭을 붙여 부른다. 그런 호칭이 붙은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실력이나 위상이 뛰어난 사람에게는 극존칭으로 ‘황제’라는 말을 붙여준다. 어느 정도가 돼야 이 호칭을 얻을 수 있을까.
가령 왜 펠레는 축구황제이고 마라도나는 신동(神童)인가. 뚜렷한 어떤 기준에 의해 가름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 기준이 무엇인가를 정하기는 어렵다. 굳이 기준이 있다면 ‘세상 사람들의 마음’정도일까.
‘황제’의 기준을 정하고 따지기는 어렵지만, 세계적으로 그런 호칭을 얻은 사람을 꼽아보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금방 떠오르는 인물로는 골프의 타이거 우즈, 농구의 마이클 조던, 축구의 펠레 정도다.
각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실력과 연륜과 업적이 ‘종합’돼야 ‘황제’반열에 들 수 있을지 짐작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 바로 그런 ‘황제’가 있다. 바로 프로게이머 임요환(23·동아전문대 컴퓨터게임학과 2년)이다. 신세대들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테란(뒤에 설명)의 황제’이며 ‘스타크(스타크래프트)의 황제’다. 물론 그를 앞에서 본 우즈니 조던이니 펠레니 하는 ‘황제’들과 견줄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중년을 넘긴 독자들에게 ‘임요환’이라는 이름은 생소할 것이다.
그러나 사이버 세계는 이미 오래 전에 그를 ‘황제’로 추대했고, 그렇게 부르고 있다. 그는 인터넷과 컴퓨터게임에 익숙한 젊은 네티즌 사이에서는 ‘임요환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유명인사다.
컴퓨터세대에게 임요환은 단순한 프로게이머를 넘어 말 그대로 ‘영웅’이고 ‘우상’이다. 최근 한 일간지는 초등학생들 중 상당수가 ‘존경하는 인물’로 임요환을 꼽았다고 보도했다.
‘이순신 장군’의 자리를 ‘임요환’이 차지해가고 있는 것이다. 게임에 정신을 빼앗기는 것은 어린아이들뿐만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고의 지성을 갖췄다는 서울대 학생들도 임요환을 영웅으로 꼽았다.
서울대의 인터넷 뉴스사이트인 ‘SNUnow’(www.snunow. co.kr)가 서울대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투표에서 임요환이 ‘2001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것이다.
이처럼 그는 10대는 물론이고 20대와 30대 초반의 네티즌들 사이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다음’(www.daum.net)에는 임씨의 팬 사이트만 70여개가 넘는다.
팬클럽 가입 회원만 12만명을 넘는다. 최고 인기 연예인의 팬클럽 회원을 능가하는 수치다. 그의 인기는 가요계의 최정상 그룹인 ‘지오디’(GOD)에 종종 비유된다. 그래서 일명 ‘게임계의 GOD’로 불리기도 한다. 돈도 꽤 벌었다. 지난해 그가 벌어들인 돈은 1억5,000만원 정도다. 20대 초반의 청년이 벌어들인 수입으로는 상당한 액수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그의 명성은 높다. 올해 초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이제 한국이 사이버게임의 세계 수도로 자리잡았다’고 보도하면서 자타가 공인하는 스타크래프트 부문 세계 최강자인 임요환이 리무진을 타고 나타나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경기장에 들어서는 광경을 상세히 소개했다.
또 일본 NHK방송에서는 월드컵 개최 기념으로 제작중인 ‘한국인 특집’에서 ‘임요환’을 주인공으로 선정해 며칠 동안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자세히 취재해 가기도 했다.
"르몽드에서 그런 기사가 나갔다는 소식이 국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사람들은 정말 제가 리무진을 타고 경호원을 대동하고 다니는 줄로 생각해요(웃음). 사이버 세계에서는 ‘황제’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평범한 대학생입니다.”
전통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프로게이머라는 생소한 직업을 통해 이같은 지위와 부, 명예를 누린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그는 어떻게 해서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됐을까. 또 그는 어떻게 해서 오늘날의 위상을 차지하게 됐을까. 이 두가지 질문을 염두에 두고 우선 그의 개인사부터 되짚어보자.
꼴찌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던 학창시절
임요환은 1980년 서울에서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관악초등학교, 봉천중학교, 성보고등학교를 거쳐 현재 동아전문대 컴퓨터게임학과 2학년에 다니는 대학생이다.
그는 현재 그 누구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만 정작 학창시절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그는 이때를 “암울했던 시기”라고 표현한다. 그는 스타크래프트를 접하기 전까지는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공부에 취미가 없어 학교성적은 늘 꼴찌에 가까웠다.
그에게 학교는 어두운 터널 같은 공간이었다. 그 시절 그에게 유일한 돌파구는 오락실과 당구장이 고작이었다. 열등생, 꼴찌는 임요환에게 분신처럼 따라다니던 수식어였다. 공부는 소질도 없었고 하기도 싫었지만 대학입시는 그로서도 피해 갈 수 없는 통과의례였다.
그들만의 잔치에 억지로 초대된 들러리라는 생각만 들었다. 고3 여름방학이 되어서야 그때까지 연필 한번 대보지 않았던 교과서를 들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의 표현대로 피를 말리는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중학교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남들은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공부할 때 저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공부했죠.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었지만 사회는 대학입시 외에 다른 선택을 주지 않았어요.”
하지만 방학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불붙는 듯했던 그의 학구열은 꺼져 버렸다. 수능 공부를 하기 위해 친구집을 찾았던 그는 친구가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됐다.
“그 전에는 컴퓨터게임에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그래픽도 좀 조잡한 것 같았고 단순해 보였거든요. 그런데 스타크래프트는 이전의 게임들과는 차원이 달랐어요. 특히 틀에 박히지 않은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이용해 게임을 풀어 나가는 점이 마음에 들었죠.”
그는 이후 고3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잊을 정도로 게임에 매달렸다. 집에 컴퓨터가 없었기 때문에 방학 때는 거의 친구집에서 먹고 자면서 게임에 열중했다. 개학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야간 자율학습을 끝마친 후 그는 곧장 PC방으로 향했다.
PC방에서 밤을 새우고 아침이면 부수수한 꼴로 등교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오죽했으면 그의 부모가 PC방까지 찾아와 아들을 억지로 끌고가기도 했을까. 임요환은 지금도 그 순간을 얘기할 때면 “망했다”는 표현을 쓴다.
“그런 상황이 되자 사람들은 저를 포기했어요. 들러리로도 마땅찮은 사람이 되어 버린 거죠. 그럴수록 표현할 수 없는 화가 치밀었어요. 내가 정말 꼴찌인가 반문해 보기도 했구요.”
고등학교의 마지막 학기도 그렇게 저물어 갔다. 그리고 마음 속의 상처도 커져만 갔다. 그럴수록 그는 현실에서 도피라도 하듯 더더욱 게임에 빠져들었다.
그는 아는 형이 운영하는 스타크래프트의 한 ‘길드’(동호회)에서 아마추어로서 활동했다. 그가 소속돼 있던 ‘포에버길드’ 소속 회원은 약 30명 정도였다. 거기서 그는 포에버길드의 ‘견습길드’(2군격)로서 80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boxer 길드’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즉, 견습길드원이 상위 길드로 승격할 때 그 실력을 테스트하는 ‘테스터’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길드 생활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길드를 운영하던 ‘캡틴’이 이민가면서 흐지부지된 것이었다. 그후 임요환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혼자 활동했다.
PC방 전전하다 프로게이머로 발탁되다
그러던 중 그에게 인생을 바꿀 운명적인 만남의 순간이 찾아왔다. 프로게이머 매니지먼트회사인 (주)IDEAL SPACE의 대표 김양중씨와 만나게 된 것이었다. 입시는 거의 포기한 상태로 게임에만 몰두하고 있을 때 김씨는 프로게임단을 모집하고 있었고, 입소문을 통해 들은 임요환을 찾아와 프로게이머가 되어볼 것을 권했다.
“제가 프로가 된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어요. 별다른 주목도 받지 못하고 항상 이방인 취급을 받았는데…. 과연 내가 그런 실력이 되는지도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때 만약 주위 사람들의 권유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현재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임요환은 김씨의 관리를 받으면서 좀더 체계적으로 게임을 배워 나갔다. 그리고 얼마 후 당시 전 세계 랭킹 1, 2위를 다투던 신주영과 이기석을 누르며 스타크래프트의 황제로 등극하게 된다.
그후 임요환의 생활은 180도로 변했다.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던 그가 하루 24시간 언론의 주목을 받아 국내 4대 일간지와 잡지에 인터뷰 기사가 실렸고, 공중파와 케이블TV에서는 그의 게임을 중계했다.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나 보니 스타가 되어 있었다.
“프로게이머가 돼 인연에도 없던 최고의 자리에 올라 보니 일등과 꼴찌라는 평가가 얼마나 작위적인지 깨달았어요. 열등생에서 일약 스타가 되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깊어졌죠. 일등도 꼴찌도 결국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준과 틀 속에서 정해지는 것 아닌가요? 한 사이즈의 옷만 만들어 놓고 그것만 입기를 강요하는 격이죠.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이에요?”
처음에는 프로게이머의 길을 가는 아들을 우려의 눈길로 바라보던 임선수의 부모도 이제는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큰 대회의 결승전이 있는 날이면 맨 앞자리에 나와 아들을 응원하는 모습이 종종 카메라에 잡히곤 한다.
“겉으로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체력 소모가 무척 심합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한 경기를 치르고 나면 온통 땀으로 흠뻑 젖을 정도예요. 시력도 많이 나빠졌구요. 원래 1.5 정도였는데 지금은 1.0 이하로 떨어졌어요.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체력관리를 위해 주기적으로 보약을 해주십니다. 재미있는 것은 전에는 ‘게임 좀 그만하고 공부하라’시던 어머니가 이제는 공부 말씀은 안꺼내십니다. ‘왜 게임 연습 하지 않느냐’고 할 정도로 열성적이시니까요.”(웃음)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게임에만 매달려 부모님의 속을 새까맣게 만들었던 수험생 임요환은 이제 최고의 프로게이머가 돼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국내에서 열린 주요 대회 7개를 석권했다. 제1회 게임큐 종족별 팀 리그전 우승, zzgame.com배 프로게이머 32강 초청전 우승, 제3회 게임큐 스타리그 우승,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 GGTV 스타워즈에피소드2 스타리그 우승, 제1회 월드사이버게임즈(WCG) 국가대표 선발전 우승 등 국내에서 열린 7개 주요 대회를 석권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한 1999년부터 치면 지금까지 총 14개의 주요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그는 또 현재 한국프로게임리그(KPGA)가 규정하는 스타크래프트 부문의 랭킹 1위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WCG에 한국대표팀 주장으로 참가, 스타크래프트 부문에서 금메달을 차지해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1인자임을 확인시켰다.
그것은 곧 그가 스타크래프트뿐만 아니라 수많은 컴퓨터게임의 ‘종합 1인자’임을 뜻하기도 한다. 스타크래프트는 국내 동호인만 500만명이 넘는다. 그래서 스타크래프트를 석권하는 사람이 진정한 컴퓨터게임의 지존(至尊)으로 인정받는 풍토다.
임요환이 바로 그 1인자라는 데는 이견(異見)이 없다.
성적에서 드러나듯 그는 분명 스타크래프트를 잘한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게임을 잘하는 선수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게임을 한차원 높은 수준의 엔터테인먼트로 만드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1세대 프로게이머의 선두주자였던 ‘쌈장’ 이기석이 초창기에 스타크래프트 마니아를 양산했다면, 임요환은 소수 마니아들만의 게임이었던 스타크래프트를 대중화시킨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임 전문가들은, 1세대를 지나 2세대에 접어든 스타크래프트가 ‘하는 게임’에서 ‘보는 게임’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한다. 축구 중계를 보듯 게임도 ‘감상’하며 즐기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바로 임씨의 플레이는 ‘보는 게임’의 최고 수준을 제공한다.
‘하는 게임’에서 ‘보는 게임’으로
사실 게임에 관심이 많은 기자도 가끔 케이블 방송 게임채널을 통해 그의 플레이를 보고 있자면 감탄을 금치 못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적군을 무찌를 때 썼던 오묘한 전략과 전술이 문뜩 떠오르기도 한다. 적은 숫자의 군대(유닛)를 운용해 게릴라 전술로 상대 진영을 혼란에 빠뜨리는가 하면 정확한 공격 타이밍에 상대는 제대로 대항 한번 못해보고 무너진다.
또 사마천이 죽은 공명의 위세에 속아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고 군대를 물린 장면을 연상시키듯, 임요환의 군대가 열세에 있는 것이 명백한데도 불구하고 상대는 쉽게 공격하지 못한다. 결국 주저하다 공격 타이밍을 놓쳐 역전당하기 일쑤다. 이런 임씨의 화려한 플레이를 게임 마니아들은 한마디로 ‘예술’이라고까지 극찬한다.
그의 플레이가 게이머들에게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종족’ 선택에 있다. 임씨는 스타크래프트의 세 종족, 즉 테란(terran)·저그(zerg)·프로토스(protos) 중 항상 ‘테란’을 선택해 게임을 플레이한다.인간형 유닛인 ‘테란’(영어사전을 찾아보면 ‘지구인’이라는 뜻을 가진다)은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진화를 거듭해 열악한 환경에서도 최적의 적응 능력을 보여주는 ‘저그’나, 에너지 덩어리를 이용해 가장 진화한 단계에 이른 ‘프로토스’(그리스어로 ‘가장 우선적’이라는 뜻으로, 주요 에너지원 중 하나인 단백질(protein)의 어원이기도 하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는 종족이다. 당연히 유닛간 1:1 대결에서도 가장 약한 종족이 ‘테란’이다.
임씨는 인간을 닮은 약한 종족인 ‘테란’을 이용해 뛰어난 전략과 전술로 훨씬 강한 상대를 무력화시킨다. 보는 이들은 ‘인간’이 외계의 강력한 괴물종족에 당당히 맞서 이기는 모습에 통쾌함을 느낀다.
신기에 가까운 그의 플레이 중에서도 백미(白眉)를 소개하자면 단연 ‘드롭십(dropship) 전술’이 있다. ‘드롭십’은 수송을 담당하는 테란의 공중유닛이다.
즉, 공군의 수송기 정도로 여기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테란은 약하기 때문에 일정 수준으로 힘을 키우기 전에 타종족과 정면승부로 힘싸움을 벌였다가는 패하기 십상이다. 이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나온 것이 바로 ‘드롭십 전술’이다. 적이 최전방 전선에 신경쓰느라 본진 방어에 잠시 소홀한 틈을 타 소수의 병력을 드롭십에 태워 게릴라 작전을 펼치는 것이다.
여기서는 주로 상대의 ‘일꾼 유닛’을 파괴하는데 주력한다(소위 특수부대가 후방의 산업시설을 파괴함으로써 경제를 마비시켜 전쟁 수행을 위한 기반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상대는 이를 방어하기 위해 부랴부랴 전방의 부대를 빼게 되고 이 순간 드롭십은 다시 병력을 태우고 바람처럼 사라진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이런 드롭십 전술은 상대를 심리적으로 초조하게 만듦과 동시에 공격할 타이밍을 놓치게 만든다. 이렇게 시간을 버는 사이 테란이 서서히 힘을 길러 마침내 막강한 수준의 전투력을 갖추게 됐을 때 폭풍처럼 몰아붙인다.
지금은 이 전술이 테란 유저들이라면 누구나 필수적으로 운용하는 전술 중 하나가 될 정도로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불과 1년 전만 해도 임요환의 ‘드롭십 전술’을 보고 게이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급기야 지난해 8월 그의 이런 전술은 ‘임요환의 드롭십’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기에 이르렀다.그의 전술집은 초판이 나오기가 무섭게 매진되는 등 큰 관심을 끌었다. 지금까지도 ‘임요환의 드롭십’은 테란 유저들에게 ‘전략의 바이블’로 통한다.
“테란을 고집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
그는 유독 약한 ‘테란’ 종족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인간에 대한 예의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실 스타크래프트 유저들 대부분은 처음에는 ‘테란’을 선택해 플레이한다. 기본 종족이자 인간과 유사하거나 친숙한 모양의 유닛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약한 종족이기 때문에 게임에서 자주 패하다 보면 결국 ‘테란’을 포기하고 다른 종족을 자신의 주종족으로 고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대로 임씨는 스타크래프트를 처음 접했을 때 가장 강한 종족인 ‘프로토스’로 플레이했다고 한다. 하지만 곧 ‘테란’ 종족이 갖는 매력에 빠져들었다.
“인간을 많이 닮은 종족이기 때문에 친근하기도 했고, 또 약한 종족으로 강한 종족을 이긴다면 더 짜릿하잖아요?
테란은 비록 약하지만 사정거리가 있는 ‘레인지’(range) 유닛으로서의 특성을 잘 살리면서 그에 맞는 전략과 전술을 개발하면 충분히 많은 장점을 가진 종족이죠.”
어찌 보면 가장 약한 종족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그의 왕관이 더욱 빛나 보이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가 이토록 게임을 잘하는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게임에 대한 능력이 선척적으로 뛰어나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게이머보다 연습량이 특별히 많기 때문일까.
이에 대해 임선수의 매니저인 김양중씨는
“많은 프로게이머를 보아 왔지만 그는 누구보다 수를 읽는 눈이 뛰어나다. 동물적 감각을 지녔다”고 말한다.
또 게임 해설자인 엄재경씨 역시
“임요환은 수많은 프로게이머 중에서도 그 천재성이 가장 돋보이는 선수”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기자는 임선수 본인에게 그 비결을 물어보았지만 ‘많은 연습량’ 이상의 답을 얻어내지는 못했다. 굳이 임선수만의 유별난 점을 들자면 그는 자신이 사용하는 전용 키보드에서 불필요한 키를 빼버렸다는 것(과거에 중요한 경기에서 윈도 키를 잘못 누르는 바람에 게임 도중 밖으로 튕겨져 나가는 어이없는 경험을 한 뒤 그는 스타크래프트에 불필요한 키를 모두 빼버렸다), 또 그가 사용하는 마우스는 모 업체에서 7개월의 개발 기간을 거쳐 내놓은 우리나라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마우스라는 점 정도다.
“질 수 있다. 하지만 두번 패하지 않는다”
지금은 ‘황제’의 칭호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가 처음부터 게임의 달인(達人)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남들보다 훨씬 뒤늦게 컴퓨터게임에 입문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그도 승자보다 패자로 있을 때가 많았다. 그는 “지면서 이기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평범하지만 당연한 진리를 몸소 체험하면서 그는 서서히 강자(强者)가 돼 갔다.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왜 고독하다고 하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올라가는 것보다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더 힘들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구요. 전에는 나보다 실력이 뛰어난 특정선수를 목표로 연습하면 됐지만 이제는 모든 프로게이머가 내 전략 전술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약점을 찾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고 있거든요. 타깃이 된 것이죠. 나는 그들이 무너뜨려야 할 대상이 된 거예요.”
그의 말대로 최근 프로게임계에서는 ‘임요환 타도’의 목소리가 높다. 그의 독주체제가 너무 장기간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분야보다 숨은 고수들이 많은 탓에 임요환 선수는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처지다.
그러다 그는 최근 뼈아픈 패배를 맛보았다. 바로 지난해 12월 한해 스타리그를 총결산하는 대회나 다름없는 SKY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였다. 그는 예상했던 대로 어렵지 않게 결승전에 진출했다. 상대는 프로토스의 초고수인 김동수 선수였다. 김선수는 온게임넷 스타리그 초대 챔피언에 오른 경력이 있는 만만찮은 상대였다.
5판 3선승제로 치러진 결승전에서 두 선수는 호각지세의 승부를 펼쳤다. 게임 스코어 2:2에서 마지막 5차전이 치러졌다. 그런데 5차전은 경기 시작 10분여만에 의외로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임요환의 패배였다.
1만5,000명의 관중이 운집한 장충체육관은 환호와 탄식으로 가득 찼다. 경기가 끝난 직후 임선수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돼 있었고, 눈에는 언뜻 눈물도 비치는 듯 보였다. 정상의 자리에 오른 뒤 중요한 경기에서는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던 그였기 때문에 충격은 상당히 컸을 것이다.
‘황제’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어서 그의 우승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팬들도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실망도 컸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내 담담한 표정으로 “경기에서 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두번 패하지는 않는다. 다음 기회에 김동수 선수와 다시 한번 붙어보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당시의 상황을 되새기면서 “황제도 질 수 있습니다. 100전 100승이라면 인간이 아니고 신이겠지요. 저 역시 질 수 있다는 사실을 팬들께서 인정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게임을 즐기세요”라고 말한다.
어쩌면 지난번의 패배가 그에게는 황제의 자리를 더 굳건히 지키는데 약이 될지도 모른다. 항상 이겨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 역시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선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그는
“가장 강력한 적은 내부에 있는 것 같아요. 부담감과 스트레스죠. 마음이 무거우면 당장 손놀림이 둔해지거든요. 그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손쉬운 상대를 만나더라도 이기기 힘들죠. 사실 본경기에서는 연습때 실력의 90%도 발휘하지 못하거든요. 실력차가 크지 않은 선수들 사이에서는 누가 덜 긴장하고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하느냐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것 같아요.”
20대 초반의 어린나이에 임요환이 거둔 ‘성공사’는 우리 사회에서 과연 ‘성공’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전통적인 시각에서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으로 학창시절을 보내는 것도 미덕이다. 하지만 임요환은 그런 전통적인 미덕 외에 새로운 또 다른 길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비단 컴퓨터게임 분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인터뷰 말미에 그가 던진 몇마디 말은 무작정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하는 어린 학생들, 그리고 전통사회의 기준만을 잣대로 해서 신세대들의 문화와 가치관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기성세대들이 한번쯤 되새겨볼 만하다.
“솔직히 아직은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하는 어린 학생들에게 선뜻 이 길을 권하고 싶지 않아요. 게임도 직업으로 하면 그것처럼 고통스러운 것이 없어요. 그만큼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노력과 고통의 단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했거든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아직 직업으로서 완전히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생각하면 안될 것 같구요. 저를 비롯해 지금 활동하는 많은 프로게이머들은 앞으로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하는 후배들을 위해 새 길을 닦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뭔가 확실한 비즈니스 모델이 개발돼 안정적으로 게임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겠죠. 그러기 위해서는 프로게이머인 저도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게임을 대하는 어른들의 인식도 바뀌었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