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2/03/26 10:32:19
Name rapier
Subject 새로움, 새롭지 않은 새로움...
글을 남긴다는 것이 무섭게 느껴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저는 보고서로 일상의 양식을 얻는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한정된 사람에게만 제공되는 보고서가 많아, 사소한 실수는 용납해주고 전화로 고칠 것을 알려주고 하는 그런 화기애매한 분위기 속에서 보고서를 작성하지요. 그런 점에서는 저는 복받은 사람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아주 드문 경우이지요. 보고서가 제 품을 떠나고 리뷰과정을 거쳐 공개되면 그 때부터는 자체로의 생명력을 갖고 스스로 진화하기 시작합니다. 저의 의도와는 전혀 관계없이 그 의지를 시현하게 되는 것이죠.

의지의 시현은 글쓴이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로 독자들의 몫이죠. 따라서 글쓴이가 어떤 의지를 갖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제 의지와 관계없는 의도로 글이 읽혀지는 것은 상당히 괴로운 일입니다. 의지가 박약한 저는 그럴 때 술을 마시죠.

전자 공간의 반응속도가 빨라지면서 구시대의 비평들도 진화하여 빠른 속도로 다시 글쓴이에게 돌아오는 국면을 맞이하였습니다. 이러한 진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제게는 이러한 공간에서 글쓰는 작업이 대단한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교정을 볼 틈도 없이, 퇴고를 할 시간도 없이 글은 빠르게 생명력을 획득하고 저 넓은 세상으로 나갑니다. 어이, 넌 아직 생명을 가지면 안되는 존재야. 외쳐 보지만 이미 담배 연기만이 자리를 채우고 있습니다. 괜찮아, 다음 생명에 힘을 기울여 봐. 이미 떠나버린 녀석은 어쩔 수 없잖아. 가능하다면 내가 그에게 전해주지. 아니 됐어,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었는걸...

제가 PGR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어느 날 문득 서핑을 하다가 찾았겠지요. 저만의 공간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언제나 다비님의 글을 찾으면 미소를 띄우고 다가오고, 즐거운 느낌이 필요할 때 항즐이님의 글을 보면서 웃는 일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저만의 공간이 아니기에, 전자공간에서의 의사소통이라는 것은 만퍼센트 간접적이기에...

새로운 일들이 이 공간에서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으면서 약간 우울해집니다. 하지만, 나와 너무나 많이 비슷한 사람을 본 것처럼 우울해지지는 않네요. 그래도 새로움이니까, 나와 같지는 않으니까, 그것만으로도 가끔은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재수생활을 하면서 영어강사분께 이런 의미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여러분이 영어를 한글 문장으로 제대로 번역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지금 생명을 얻으려고 하는 이 글은 얼마나 멀리 날아갈까요? 갑자기 두려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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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3/26 10:35
수정 아이콘
안녕하세요 homy 입니다.
스스로 진화한다.. 저도 지금 일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어쩜.. 똑같은 생각을 하신 분이 있는걸 보면.
그렇게 틀린 생각은 아닌가 보네요. ^^
좋은 하루 되세요.
안녕하세요 rapier입니다.
환대에 감사드리고.. "어쩜.."이라는 단어가 감동적이네요.
오늘 하루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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