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 7전 2승 5패
MW: 15전 6승 9패
OPL: (팀플) 4전 4패
CTB: 5전 2승 3패
휴먼의 계보를 정리하자면, 어떻게 정리가 될까.
가장 큰 줄기, 그러니까 우승자만 놓고 보면, 휴먼 킹 전지윤과 휴먼 마스터 박세룡이라는 큰 흐름으로 정리가 가능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두 사람은 전자는 ROC를 대변하고, 후자는 TFT를 대변하니, 그들의 업적을 추적하는 형식으로 휴먼의 역사를 따라가면, 그 큰 줄기는 나올 것이다.
허나, 나무에는 큰 줄기만 있는 것은 아니며, 휴먼은 이 두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다. 비록 결승이라는 큰 문턱과는 다소 인연이 없었다고 해도, 자신의 명성을 날린 선수들이 있었으니, 그들을 잊는다는 것은 어쩌면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는 그런 행동이라고 보아도 좋다.
ROC와 TFT를 넘나들며 꾸준했던 브레이브 팔리딘 오창정, 지금도 여전히 휴먼의 한 축인 산적휴먼 김태인, 한 순간 화려하게 피운 불꽃으로 4위에 오른 강철휴먼 김병수, CTB의 올킬 청부업자 차순재, ROC 말기 휴먼을 지배했던 영웅들, 김병준, 김성연, 지병걸, 원성남.... 그리고 행여나 혹시 필자가 빠뜨린지도 모른 무수한 휴먼의 전사들....
필자가 다루는 사람은 전지윤 뒤에 휴먼의 패권을 짧게나마 잡았던, 자신만의 스타일이 강했던 사람, 주정규다.
세상이 그를 칭하여, 그에게 준 별호가 있으니, 그것은 풋맨러시의 대가라는 칭호다.
그를 회고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가 사용한 전술 중에 가장 극단에 위치한 것은 3배럭에 아메만 뽑고, 배럭에서 나온 풋맨으로 거칠게 밀어붙이여 승리를 따내는 것이었다고 하니까,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확실히 그런 전술은 특색이 강하며, 사람들의 기억에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 있는 훌륭한 모습이었음을 부정하기 어려우리라.
주정규라는 이름은 그렇게 스타일리시한 휴먼이 되었다.
경기의 미학은, 글쎄 평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많은 이들에게 인상을 남기는 수준이었음은 분명하리라. 그리고 미학과 승리가 거리가 있는 것 역시 아니라고 본다. 그랬다면, 아름답지만 이기지 못하는 전술만 구사했다면, 그가 4위에 올라서 휴먼으로 두 번째로 4강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 선수가 되었을까.
불행히도 조금 안타까운 것은 역시나 그가 더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mbc게임의 동영상이 지금은 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정도가 아닐까. 물론, 그는 온게임넷에서도 꾸준한 출전을 기록했기에, 그나마 덜 아쉽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의 데뷔는 온게임넷이었다. Sesila.WeRRa 공승용과의 휴휴전에서 승리하며, 16강을 통과한 그. 하지만 거기까지다. 온게임넷 1차리그에서 그가 거둔 성적은 16강 다음인 8강이었다. 그것도 8강에서 성적은 허무한 3패. 같은 시점 열렸던 겜비씨의 1차리그에서도 평범한 성적으로 만족을 한 그. 김대호 선수와 짝을 이루어 팀플에 도전을 했지만, 결과는 2승 1패 재경기에서 탈락. 그렇게 시즌을 마감을 했다.
하지만 그리고 나서, 그가 맞이한 대회는 바로 겜비씨의 워3 2차리그. 이 리그에서 그는 화려하게 비상하는데 성공한다. 경기는 그에게 휴먼의 대표주자라는 어떤 느낌을 주는데 성공한다.
『봉준구 선수는 선 마운트킹을 생산하며 2배럭 풋맨을 중심으로 경기 초반을 운영. 주정규 선수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풋맨의 운영을 극도로 끌어 올리며 크립 사냥을 진행해 나가는 가운데 조우하게 된 봉준구 선수의 마운트킹과 풋맨. 이 전투에서 주정규 선수는 아크 메이지의 집요하며, 뛰어난 컨트롤로 본진 깊숙이 필사적으로 몸을 피하던 봉준구 선수의 마운트 킹을 잡아내며 경기의 흐름을 자신의 것으로 가져오는데 성공. 이후 프리스트와 소서리스의 메지컬 휴먼 체제를 선택한 봉준구 선수에 맞서 주정규 선수는 풋맨과 나이트라는 파워 유닛으로 밀어 붙이며 적절한 네게이션 완드의 사용과 매스 텔레포트의 운영으로 봉준구 선수를 압도. 제 3경기는 1차리그와는 전혀 상반된 모습을 보이며, 진정한 '휴먼의 베이직'을 보여준 주정규 선수의 승리.』
첫 경기 봉준구 선수와의 경기를 평한 장재혁PD의 글이다. 계속 그의 글을 통해 경기를 추적하자. 같이 휴먼으로 진출한 오창정과 전지윤이 패자조로 추락한 가운데, 그의 항해는 더욱 빛을 발했다. 그의 과감한 러시와 운영도 함께. 그리고 맞이하게 되는 황연택과 승자 8강전.
『러쉬 거리가 먼, '작지만 큰 섬' 아일 오브 드레드에서, 기동력이 떨어지는 휴먼 주정규의 카드는? 빠른 정찰과 '풋맨으로 끝장을 보는 하드코어 풋맨' 러쉬. 그리고 황연택의 카드는? 빠른 정찰을 통한 '하드코어 풋맨 러쉬'에 상극의 카드인 빠른 멀티. 주정규, 풋맨으로 다시한번 말하다! 풋맨의 엄청난 압박, 그리고 본진에 엄청난 타격을 입으며 간신히 막아낸 황연택 선수가 숨을 고르기도 전에, 그리고 역전을 현실화 시킬 수 있는 힘과 지략을 가진 황연택 선수로부터의 일말의 역전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주정규 선수의 크리핑과 히어로의 레벨업, 라이플맨 체제. 그리고 역전의 가능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황연택 선수의 섬 정상에서의 무리한 욕심. 브론즈 드래곤이 떨어뜨리는 아이템을 획득하기 위한 데몬 헌터와 키퍼의 무리한 움직임과 사망. 이후 주정규 선수의 지속적인 압박에 경기 종료. 제갈 풋맨이 섬에서 조조를 공포에 몰아넣다. 제 2경기 주정규 승.』
두 차례의 승리로 그가 도달한 공간은 승자 4강이었다. 그를 맞서는 것은, 그래 오크이지만 오크가 아니었던 이중헌이었고, 거기서 그의 기세는 꺾인다. 0:2로 패배. 그리고 다시 만난 봉준구의 랜덤과 처절한 사투를 벌인 끝에 3:2로 승리. 4강에 입성한다. 그리고, 임준영과의 경기에서 첫 경기를 승리하고 3경기를 무너지며, 1:3 패배. 그의 항해는 4위로 마감하게 되었다.
보자, 그는 같은 시점 St의 주축으로 CTB1에서 정말 고군분투했다. 사실, 이 시점의 St는 St 클랜원분들에게는 참 죄송스런 말이지만, 기록의 희생양이었다. 이형주 선수가 기록한 최초의 올킬의 희생양이 바로 St이었고, 공교롭게도 그는 그 경기의 선봉이었다. 오창정을 빛나게 한 그 최초의 역올킬, 그 희생자도 바로 St였으며, 그 경기의 선봉으로 먼저 2승을 따낸 선수가 바로 그, 주정규였다. 단단한 운영, 기본기에 충실한 사냥과 전술, 그리고 유연한 변화 등을 선보였지만, 무언가 약간 부족한 것이 있었을까.
그의 마지막 개인전은 바로 온게임넷 프리매치였다. 그 경기는 하지만, 그에게는 별다른 성과가 없음으로 끝이 났으니, 뭐라 할 말은 없다. 당시 유일한 언데드로 참가를 한 봉준구 선수에게 지난 겜비씨 2차리그의 복수를 허용하며, 1:2로 패배했으니, 그것의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적어도 개인전에서는... 그렇다. CTB2에서 St의 중심으로 활약했지만, 팀의 대세를 준 사람은 그와 같은 종족인 차순재였고(필자의 기억으로는 당시 St가 얻은 2승은 차순재의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일종의 정신적 지주랄까, 그런 역할이 더 강했다고 본다.<찾아보니, 실제로 출전한 적은 없다.>
프로즌쓰론 이후, 그가 워3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필자가 그와 인터뷰를 한 것도 아니니까. 마지막으로 그가 워3 무대에 나간 것이 슈마배 프로리그였다. KTEC Plus의 일원으로, 그와 함께 워3 초기부터 St의 동료였던 St_Rori 정승재와 함께 팀플을 전담하게 되었다. 근데, 좀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당시 KTEC은 좀 급조된 느낌이 팍팍 드는 팀이었고, 무언가 조금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실제로 필자 기억에는 이긴 세트가 딱 하나인 것으로 안다.) 여하튼 그는 팀플에서 전패를 기록한다. 이게 진짜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어떤 모습으로 기억이 되는가는 의외로 중요한 문제다.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그를 다룬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했던 반응에서 글의 실마리가 출발을 했고, 필자는 그 실마리를 따라왔을 뿐이다. 많은 이들의 기억, 그는 한 시대의 휴먼을 짊어진 적이 있었던 사람이자, 자신만의 스타일로 자신을 지배했고, 리그를 품었던 사람이었다.
비록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늘 그래도 꾸준히 분투한 그에게 박수를 아낄 이유는 없다. 꾸준함이란 쉽지 않은 가치이다. 그가 자신의 역량을 새로운 포맷에서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한 시절, 자신의 힘을 떨친 모습,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준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그를 기억해야 한다. 지금 그의 풋맨러시를 다시금 볼 수 있기를 바란다면, 그리고 그 방식에 대한 회상에 잠겨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그에 대한 어떤 그리움을 가졌다고 말하는 것은 아닐지.
그가 어느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던지, 그에게 항상 행운이 깃들기를 바라며....
ps. pgr 게임 리포트 게시판의 장재혁PD님의 옛 글을 인용했습니다. 미리 양해를 못 구한점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집니다.
ps2. 다음 편은 박외식 선수를 가지고 할 생각인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