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 31전 19승 12패
MW: 8전 1승 7패
OPL: 개인전 - 2전 2패 팀전 - 2전 2패
CTB: 1전 1승
가장 잘 나가는 순간에, 더욱 삼가고 조심해야 하는 것은 역사 이래로 증명이 되어 온 이치가 아닐까. 그를 바라보면서, 그리고 그가 이렇게 허망하게 사라지게 된 그 과정과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그런 생각이 더욱 든다.
그의 과거 이야기, 어쩌면 조금은 좀 그런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이미 떠난 사람에게 또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고 말 할 수 있지만...
그래서, 이제 와서 그 일과 다른 일을 끄집어내면 또 뭐가 달라질까 싶지만...
그래도, 옛 일을 잊는 것은 좀 그렇다.
그래도 우승자인데.
황연택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워3리그의 역사와 함께 한다.
겜비씨 1차리그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고, 온게임넷 1차리그에도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문제는 두 리그에서 모두 평범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는 점이겠다.
겜비씨는 최종 팀플에서 살아남지 못했으며, 온게임넷은 8강에서 자신의 리그 일정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뭐 특징을 잡자면, 온게임넷에서 9승 1패라는 승률로 우승을 거머쥔 전지윤 선수에게 유일한 패배를 안긴 사람이 황연택이라는 정도.
CTB1에서도 그렇게까지 활약상이 큰 것은 아니었다. 접전이었던 Saint와의 경기에서 ReX의 대장으로 나와 전지윤을 잡고, 3:2 승리를 이끈 정도가 유일한 기록이랄까, 당시 CTB1의 ReX의 주력 선수는 오창정과 전영현이라고 보는게 맞을 정도로, 이들의 비중이 컸었고, 그의 경우는 개인리그에 주력을 한 탓인지, 혹은 앞의 두 선수의 위력이 강했던 탓인지, 그 외의 출전이 보이지 않는다.
그의 영광어린 시절의 시작. 그것은 바로 온게임넷 2차리그였다.
겜비씨 2차리그에서는 16강은 통과했지만, 잇따라 2패를 기록하며 탈락.
(전에 언급했듯이, 2차리그는 더블엘리미네이션이었다. 김대호를 잡았지만, 주정규, 봉준구에게 잇따라 무너지며, 그는 탈락했다.)
온게임넷에서는 하지만 선전했다.
16강에서 황태민을 2:0으로 제압. 8강 조별 풀리그에서는 김대호의 오크에게 졌지만, 2승 1패로 4강에 합류하는데 성공. 4강에서 당시 안경쓴 파시어라 불리며 주가를 올리던 오크 정승재를 잡으며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하, 그러고 보니, 당시 암울했다던 오크 유저들이 8강에서 3승으로 조 1위를 차지한 것이 눈에 띈다. 뭐, 결국 4강에서 다 무릎 꿇고 그대로 끝이 나고 말았지만....
하여간 결승은 1차리그에 이어서 나엘과 휴먼의 대립 구도가 되었다. 나엘의 주자가 베르트랑에서 황연택으로 변했고, 휴먼의 대표주자는 지난 대회 우승자 전지윤이라는 이름 그대로라는 것이 달라진 유일한 것일뿐....
결승전은 흠.. 3:0 스코어가 나왔다.
황연택의 우승.
근데, 필자도 나중에 VOD로 보기는 봤는데, 진짜 인상에 남지 않는다.
1경기는 다소 무난했던 그런 양상이었던 것으로 기억에 남고, 2,3경기는 나엘의 전가의 보도였던, 건물러시의 힘을 상당수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해서 이기고 싶을까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금의 이야기이다. 당시에 건물러시는 욕을 먹기는 했어도 게임 상에 있는 그런 것을 가지고 한 전술임에는 부정할 수 없었으니까. 중요한 것은 결승까지 올라온 그 과정이었고, 그 우승자가 그가 되었다는 사실이 아닐지....
프리매치에 왜 그가 출전을 하지 않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타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필자의 기억으로는 몸이 많이 좋지 않아서, 불참을 선택했다고 들었는데, 여하튼 그는 프리매치에는 참가하지 않았고, 대신 HP배 온게임넷 워3리그에 참가하게 된다.
16강, 당시 HP의 일종의 아이콘은 뭐 역시 이중헌이라는 선수가 있었을 것이고, 언데드의 희망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방송리그에 데뷔한 노재욱, 그리고 강성했던 휴먼의 5인방(이른바 아메 5인방이라고 하던가, 사실 아메 5인방과 HP 예선을 통과한 5명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기억한다.)이었으니, 황연택이 16강에서 만나게 된 선수는 바로 바람의 아크메이지, 원성남이었다.
일진일퇴의 공방전, 둘의 경기는 나름의 수준을 가진 경기였기에, 한 번쯤은 봐도 좋은 거 같다. 뭐, HP배의 명경기 열전에 드는 수준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래도, 그럭저럭 괜찮은 경기가 나왔음은 부정할 수 없다. 여하튼 승자는 황연택. 2:1로 힘겹게 누르고 올라갔다. 사실, 8강이 결정이 된 시점에서 그 강성했던 휴먼은 단 한 명, 김병수만 살아남게 되었으니....(김병수 선수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쓸 일이 있을 거 같다.)
어찌되었건 그는 8강에서 2승 1패를 기록하며, 조 1위로 4강에 오른다. 노재욱 선수에게 진 것이 흠이었지만, 김대호, 김승엽 선수를 누르며 4강에 오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와 절친했던 친구 이중헌에게 진짜 관광을 당한다. 3:0 Shutout. 한 마디로 말하자면, 정말 심하게 밀렸다. 패치로 인해서 좀 적응을 못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김대호의 성과가 너무 눈이 부셨고, 말 그대로 실력으로 밀린게 아닌가 싶은.... 뭐, 3위를 차지하면서 ESWC에 출전하게 되었고, 한국 선수 가운데 가장 성적이 좋았던 것은 확실한 사실이지만....
그가 프랑스로 가서, ESWC에 출전하는 동안, 처음 언급한 생각을 들게 하는 사건이 터졌다. 그리고 이 사건은, 결국 그의 게이머 생활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한 계기가 된 것이 아닐까 싶다.
C&C 제너럴, 당시 갓 출시가 되었고, 기대되는 RTS 게임이 홍보를 위해, 그래서 대박을 위해 취하는 수단이 게임리그였으니, 그들도 그랬다. 슈마일렉트론이었나? 하여간 그 곳에서 스폰을 하고, 온게임넷은 제너럴 리그를 출범시켰다. 뭐, 월요일에 생방을 때리고, 그래서 나름대로 가던 경기는, 황연택이 제너럴 리그 결승을 앞두고, ESWC 대표로 프랑스에 가게 되면서, 결승을 녹화로 치루게 된다.
사단은 여기서 발생하니.... 그렇다. 2:0으로 지던 그는 3:2로 역전 우승을 한다. 하지만, 제 4경기의 문제의 고의 다운 의혹. 아마 중국의 건물을 팔면, 게임이 다운이 되는 버그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문제는 그가 불리할 때, 그 버그를 사용했고, 그래서 한 다섯 차례 정도 그렇게 다운을 시켰다는 것. 이 것은 누가(아마 같이 출전한 선수였던 것으로....) 폭로를 하면서 세상에 알려졌고, 황연택은 변명을 하기는 했다. 그 해명이 지금은 정확히 기억에 남지 않는다. 다만, 무의식중에 그랬다는 식의 변명도 있었던 것이 기억에 남고, 또 잘못했다는 내용도 있었던 거 같고.... 문제는 이 이후, 제너럴 리그는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제너럴은 긴 시간과 높은 사양, 밸런스 붕괴(기억에 결승은 다 중국 유저끼리였던 것으로 안다.)로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는데, 방학을 맞아
[email protected]에 밀려 1시간 녹방에 되었고, 워3프로리그의 출범으로 완전히 사라진다. MBC Game의 그것도 아마 비슷한 시점에서 역시 사라지게 되었고.
이 뒤로 그는 사라진다.
워낙 그와는 인연이 없었던 mbc게임 프라임리그1에서 3패로 탈락.(물론, 앞에서 쓴 그 일보다 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온게임넷 프로즌쓰론 1차리그에서는 미소가 아름답던 언데드, 김진성 선수에게 2:1로 역전패.(하긴, 16강 할 무렵에는 언데드의 초초강세였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나엘이 이형주 선수였는데, 그가 우승을 해 버렸다는 것이 특징이기는 하지만...)
프로즌쓰론 이후, 개인리그 예선 통과 전무.
프로리그에 출전했으나, 전패.
그리고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시스템이라는 것, 체계라는 것은 중요하다.
그가 제너럴에서 남긴 구설수는 끝내 그를 좋은 이름으로 기억되지 못하게 만들었다. 분명히 워3 유저 황연택은 패왕 나엘이라 불린 선수였으며, 나름대로 최고의 성적을 위해 노력을 했었던, 그리고 재기와 지략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였다.
하지만, 정상에 있는 순간, 그리고 근접해 있는 순간, 그는 자신을 잘못 관리를 했으며, 그렇게 오명을 쓰고 말았다. 좀 더 자신에게 세심했다면, 비록 게임에 몰두해 무의식 중에 그랬다고 하지만, 그런 일이 없었다면, 우리는 다른 이름으로 기억하지 않았을까.
또 하나, 후에 워3리그를 뒤흔드는, 얼마 지나지도 않는 사건들의 연속, 만약, 권위있는 누군가가 적절하게 그에 관해 개입을 했다면? 과연 그 뒤에 이런 일이 있었을까..... 필자가 KeSPA라는 조직에 대해 신뢰를 보내지 못한 이유는 이 때부터 였다. 그들이 스타 이외의 게임에 좀 더 관심을 보내고, 진작 어느 정도의 개입을 했다면, 지금 뒤흔드는 어뷰즈니, 대리게임이니, 아이디 빌리기니 하는 문제가 나왔을지...
황연택.
안타까운 유저다.
좀 만 더 관리를 잘 했더라면, 우리는 그를 나엘의 강력한 시절의 한 축이었다고, 재기와 지략이 흐르던 조조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그런 선수였다고 기억하고 있을텐데, 그의 이름을 들으며, 바로 우승자의 이름을 떠올린텐데....
ps. 행여나, 당시 그를 좋아하던 팬이나, 혹은 괜한 아픈 기억을 끄집어 내고자 글을 쓴 것은 아닙니다. 그저 그래도 남겨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서일까요. 이런 뜻을 구차하게 밝히는 것도 좀 그렇지만...
ps2. 다음에는 전지윤 선수를 할까 했는데, 워낙 유명하니 좀 제쳐두고, 주정규 선수편을 할까 합니다.
ps3. 선수에 대한 비난보다는, 과거 기억에 대한 회상을 서로 공유하셨으면 합니다. 본래, 그런 의도로 글을 쓴 것이기도 하니까요. (인신 공격성 리플은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