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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12/23 10:31:04
Name BibGourmand
Subject [일반] 고기의 모든 것, 구이학개론 #7
지난 시간에는 딱히 영양가 없는 돼지고기 등급제에 대해 짧게 알아봤습니다.
이번에는 영양가 있는 것을 넘어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쇠고기 등급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는 상위 몇 %일까요? 마블링이 많으면 맛이 좋을까요? 건강에는 어떨까요? 그 돈 낼 가치가 있을까요? 수많은 의문들에 대해 이틀에 걸쳐 답을 내 보겠습니다.
구이학개론 쇠고기 등급제 1편,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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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쇠고기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한 등급 차이로 백만원 넘는 돈이 왔다갔다하는 판이니90) 말 그대로 피튀기는 ‘쩐의 전쟁’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대체 이 등급이 무엇이기에 그리도 피를 말리게 한단 말인가? 한 가지 예로 논의를 시작해 보자.

  ‘우리 집은 1등급 소고기만 사용합니다.’ 가끔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내걸려 있는 현수막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웃자고 하는 말인지, 진지하게 하는 광고인지, 낚시성 게시물인지, 그도 아니면 무슨 양심고백인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법한 문구다.
  1등급이면 좋은 것 아니냐, 왜 대체 사람이 그리 꼬여 있냐고 묻는 분들이 계실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챕터 전반부의 목적은 그런 물음을 가진 분들을 저 문구를 보며 웃을 수 있는 정통한 소비자로 바꿔놓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챕터 후반부의 목적은 여러분의 입가에서 그 웃음기를 지워내는 것이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 수능 1등급은 좋은 게 맞지만, 쇠고기 1등급은 아니다. 이제 왜 그런지 알아보도록 하자.

  * 한국의 쇠고기 등급체계 - 밀려드는 수입 고기에 맞서는 방파제
  한국의 쇠고기 등급체계는 1++, 1+, 1, 2, 3, 등외로 나뉜다. 등외는 말 그대로 ‘등급 외’니까 빼면, 총 5등급으로 나뉘는 셈이다. 이제 서두에서 필자가 왜 비비 꼬았는지 아시겠는가? 앞서 말한 ‘1등급 소고기’란 ‘위에서 3번째 등급’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마케팅을 고려해 지어진 명칭인 것은 사실이지만91), AAA, AA, A, B로 나뉘는 캐나다의 예도 있으니 너무 뭐라고 하지는 말자.
  이러한 등급은 육색, 지방색, 마블링, 조직감, 성숙도를 기준으로 매겨진다. 그러나 마블링으로 예비등급을 먼저 매긴 뒤, 나머지 사항에서 별 문제가 없다면 그대로 확정하고, 혹시라도 ‘심각한 결격사유’가 발견되는 경우에만 등급을 깎아내리는 방식을 쓴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마블링이 한우 등급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셈이다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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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 3. 등급이 강등되는 심각한 결격사유> 강등 사유는 맛을 따진다기보다는 너무 늙었거나 도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해 ‘답이 없는’ 경우들에 한한다. 따라서 마블링이 좋다면 대부분 좋은 등급이 나오게 된다. 위의 답 없는 사유들 중 가장 답이 없는 것은 너무 늙은 경우인데, 성숙도 8/9에 해당하는 경우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등급 외’로 강등된다.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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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 4. 소도체 육질등급 최종판정기준> 마블링을 기준으로 예비등급을 우선 판정한 뒤, 표에서 제시된 강등사유가 있을 경우 등급을 깎아 최종 등급을 매기게 된다.94)

  아래 나온 것이 한우 등급 기준표이다. 이를 따르자면, 좋은 고기란 육색이 선홍색을 띠며, 지방색은 우윳빛을 띠고, 마블링이 근육에 촘촘히 고르게 분포하되 떡져 있지 않은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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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16. 한우 등급 기준> 마블링이 8,9에 해당하며 육색이 1,7이 아니고, 지방색이 7이 아니라면 사실상 1++은 따 놓은 당상이다.95)

  우선 선홍색 고기와 우윳빛 지방은 만국 공통의 고기 고르는 요령인데, 육색이나 지방색이 이상하다면 고기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므로 매우 당연한 일이다. 앞선 챕터에서 살펴보았듯, 육색이 창백하거나 너무 진하면 도축 과정에서의 문제를 의심해야 하며, 혹시라도 녹색 빛이 돈다면 100% 상했으니 건드리지도 말아야 한다. 지방색이 이상하다면 너무 늙었거나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경우이니, 역시나 사면 안 된다.
  단, 진공포장한 고기가 거무튀튀한 색을 띠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그걸로 클레임을 걸지는 말자.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기의 색은 근육에 존재하는 미오글로빈에서 온다. 이 효소가 산소와 접촉해야 특유의 선홍색을 띠는데, 진공 포장을 하면 산소와 접촉하지 못하니 색이 죽는 것이다. 포장을 벗겨 잠시 놓아두면 공기와 접촉하여 색이 돌아오니까 걱정하지 말자. 혹여라도 색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앞서 살펴본 Dark firm dry (DFD) 고기거나, 유통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니 (대부분 너무 오래된 고기) 그건 무조건 환불하시라.

  지방은 에너지원이지, 몸을 지탱하는 질긴 구조물은 아니다. 고로 지방이 근육에 고르게 퍼져 있으면 육질이 부드러워지며, 지방 자체가 풍부한 향과 고소한 맛을 제공한다. 지방이 아무리 맛있어도 떡져 있으면 느끼해서 먹을 수가 없으니 당연히 하품이다. 그렇다면 고르고 풍부한 마블링을 보여 주는 고기가 좋은 등급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 등급제는 얼마나 빡빡한 것일까? USDA prime (미국산 최상등급)은 전체의 3% 정도라는데, 1++은 상위 몇 %짜리 고기인 것일까? 우선 정답을 말하자면 9% 짜리다. 2013년 기준으로 1++은 전체의 9.2%에 달하며, 1등급 이상으로 넓혀 잡으면 전체의 61.2%에 달한다 (1++등급 9.2% + 1+등급 21.0% + 1등급 31.0% = 61.2%)96). 앞서 예로 든 ‘1등급 소고기’는 대략 상위 30%~60%에 해당하는 녀석이니, 광고카피로 써먹기에는 참으로 민망한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농가에게 있어 다행스러운 사실 하나는, 쇠고기 등급은 수능과는 달리 절대평가로 매겨진다는 것이다. 우량 소 선별을 통한 유전적 개량 및 비육법의 개선을 통해 한우의 등급은 갈수록 상향평준화 되어가고 있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등급이 상향평준화되는 것을 쉽게 확인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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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7. 1992-2011년 한우 등급별 출현율> 시간이 갈수록 고등급 쇠고기가 늘어나고 3등급 비율은 크게 낮아짐을 알 수 있다. 고등급 쇠고기가 늘어남에 따라, 1+은 97년, 1++은 04년에 추가되었다.97)

  게다가 1+이 만들어진 것은 YS 시절이고, 2002년 꿈★이 이루어지던 당시만 해도 1++은 존재하지 않았다! 기존의 최고 등급만으로는 갈수록 우수해지는 소의 마블링을 충분히 평가할 수 없었기에 등급이 꾸준히 추가되었던 것이다98).

  이과생이라면 질문이 하나 나올 때도 됐다. ‘대체 원뿔이니 투뿔이니 하는데, 대체 그놈의 마블링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있다는 겁니까?’ 훌륭한 질문이니, 답변을 아니 할 수가 없다.
  1+등급 등심의 평균 지방 함량은 13~15%이고, 1등급의 경우에는 9~11%이다. 평균 지방 함량 17~19%를 자랑하는 1++은 말할 것도 없이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이러한 상향평준화는 등급제도 자체가 만만한 탓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적으로 비교하더라도 한국의 1++은 일본 최상등급인 5등급 고기를 제외하면 (지방함량 22.5~31.7%) 세계에서 가장 기름진 쇠고기로 손꼽힌다. 미국 최상등급인 USDA prime (지방함량 8.5~13%)은 한국의 1등급 쇠고기와 비슷한 정도이다. 이는 아래 표를 보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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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5. 한미일 쇠고기 지방 함량표 (아래등심기준)> 미국 최상등급 Prime이 한국 1등급 수준이며, 한국 1++이 일본 4등급 쇠고기와 비슷한 수준의 지방 함량을 나타낸다. 참고로 캐나다 최상등급인 AAA는 미국 Prime보다 낮은 지방 함량을 보인다. 일본 자료는 아래등심 기준으로 환산한 값을 사용하였다.100)
-----------------------------------------------------------------------------
주)
90) 2017년 5월 평균 경락가격: 1++, 21,140원/kg; 1+, 17,902원/kg. 700kg짜리 소를 잡아 피 빼고 머리랑 내장 빼고 등등 하여 400kg으로 계산 시, 무려 1,295,200원 차이가 난다. 자료출처: 축산물유통종합정보센터

91) 원래 1,2,3으로 나뉘던 등급에 1+가 추가되고, 1++가 다시 추가되었다. 등급을 재조정해 1,2,3,4로 만드는 것보다는 1,2,3에 1+를 추가하는 편이 고기 판매에 유리할 것임이 명백하다.

92) “등급판정부위에서 배최장근단면에 나타난 지방분포정도를 (중략) 예비등급으로 판정한다.”
      “소도체의 육질등급판정은 (중략) 예비등급에 대하여 육색, 지방색, 조직감, 성숙도가 다음 각호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별표3의 기준에 따라 최종 판정한다.”
      축산물등급판정 세부기준, 농림축산식품부고시 제2011-4호

93)  축산물등급판정 세부기준, 농림축산식품부고시 제2011-4호, 5조 및 6조

94)  ibid, 별표 3(소도체 육질등급 최종판정기준)

95) ibid, 부도 4(근내지방도 기준), 5(육색 기준), 6(지방색 기준)

96) 축산유통종합정보센터, http://www.ekapepia.com/user/distribution/distDetail.do?nd1906

97) 「한겨레」, 2013.08.19., “1++ 등급 ‘함정’에 빠진 한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600141.html

98)  1997.11.21. 이전까지는 1,2,3등급으로만 나뉘었으며, 2004.11.31. 까지는 1++이 존재하지 않았다. 어릴 때 1++을 먹어본 기억이 없는 것은 부모님이 안 사주셨기 때문이 아니다!

99)  강세주 외, 『소도체 근내지방 발달정도에 따른 BMS기준 세부 설정연구』
    표5는 위 논문의 표3을 발췌, 변형하여 제작하였음.

100)  한국(흉추 13~요추 1번)과 미국(흉추 12~13번)은 마블링이 덜한 아래등심을 기준으로 등급을 판정하는데 비해, 일본은 흉추 6~7번 사이의 꽃등심을 기준으로 등급을 측정한다. 일본 자료에서 BMS 11 지방함량 기준이 40%가 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본 표에서는 흉추 12~13번 기준으로 지방량을 환산한 값을 사용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주99 논문을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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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과호랑이
17/12/23 12:17
수정 아이콘
진공포장되어 온 수입 냉동 돼지고기도 맛있게 구워먹을 수 있는거겠죠?
아하스페르츠
17/12/23 13:19
수정 아이콘
뭐... 맛있게야 먹을 수 있겠습니다만
냉동육을 해동시키면 기본적으로 drip loss가 발생합니다.
수분이 빠져나간 퍽퍽한 고기가 되는 거죠.
마당과호랑이
17/12/23 21:50
수정 아이콘
아쉽네요 ㅜㅜ
BibGourmand
17/12/24 09:06
수정 아이콘
해동을 잘 시키셔야 합니다. 냉동/해동 방법에 따라 크게 나쁘지 않은 고기가 될 수는 있습니다만, 얼리지 않은 고기보다 좋을 수는 없습니다.
액체질소 써서 얼리지 않은 다음에야 [냉동은 빠르게 / 해동은 천천히]가 기본입니다. 진공포장 채로 얼음물에 담가 냉장고 선반에서 녹이시는 것이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 봅니다.
마당과호랑이
17/12/24 10:42
수정 아이콘
해동을 천턴히가 중요하군요. 빨리 해동시키려고 뭐 냄비에 껴두고 이랬는데 그러지 말아야했던거네요. 감사합니다
BibGourmand
17/12/25 02:04
수정 아이콘
2부에서 다루지 싶습니다만, 냉동/해동은 산업적으로는 매우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가정에서는 안 얼리면 그만 아니냐로 나올 수 있고, 육즙 좀 새도 맛 좀 빠지고 마는 일이지만, 1톤을 녹일 때마다 드립 로스로 고기 중량이 10%씩 줄어든다면 끔찍한 일이겠지요.
인내심을 발휘하시면 더 맛있는 고기를 드실 수 있습니다!
마당과호랑이
17/12/25 02:10
수정 아이콘
크.. 올해 본 시리즈 중 가장 잘 보고있습니다! 매편 너무너무 감사하게 보고있네요
유정연꺼
17/12/23 13:16
수정 아이콘
고알못이 질문 하나 올립니다.
지방이 많을수록 등급이 높은 이유는 뭔가요? 그냥 단순히 맛이 더 좋아선가요?
적당하게 들어간 고기가 사실 제일 품질 좋은 고기 아닌가요?
다람쥐룰루
17/12/23 14:58
수정 아이콘
칼로리는 맛의 단위입니다(진지)
지방은 많을수록 좋은것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단백질 함량이 높은 건강한 고기는 등급이 낮으니 이점 참고하셔서 현명하게 선택하세요
BibGourmand
17/12/24 09:04
수정 아이콘
중요한 부분인데요, 오늘 나오는 3부에서 해당 내용을 다룹니다.
결론만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지방질이 높은 고기를 만드는 데는 사료값이 많이 듭니다. 따라서 이것이 비싼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취향의 차이일 뿐 반드시 좋은 고기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원하는 취향에 따라, 원하는 요리의 종류에 따라 [적절한]고기를 고르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보통e스포츠빠
17/12/23 17:25
수정 아이콘
요 근래 가격이 저렴한 파지 베이컨 즐겨 먹는데 특별히 나쁜 고기로 만든걸까요?(맛은 너무 좋아서 끊을수가 없습니다 ㅠㅠ)
BibGourmand
17/12/24 09:13
수정 아이콘
저렴하다면 수입고기가 아닐까 합니다. 베이컨은 뱃살, 그러니까 삼겹으로 만드는데, 서양에서는 이게 싼 부위로 들어가거든요. (외국 사는 저는 행복합니다!) 특성 상 더 저렴한 냉동고기를 쓸 가능성은 높습니다만, 훈제를 하는 이상 고기의 품질이 그렇게까지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훈연 과정을 최소화하는 대신 훈제맛 나는 가루를 뿌리거나 용액에 담근다거나 할 수는 있습니다. 진짜로 훈제를 풀로 하면 돈이 많이 들지요. 훈연이 부패방지 역할을 합니다만, 그 부분은 어차피 보존제로 때울 수 있어서요. 맛이 괜찮다면 그냥 드셔도 무방합니다.
BibGourmand
17/12/25 05:35
수정 아이콘
댓글을 다시보니 파지 상품 말씀하신 거였네요. 피자 베이컨도 있구나 했는데;;;
파지면 제품선별 과정에서 탈락한 녀석들을 싸게 파는 겁니다. 다시 말해 정상적으로 만들었지만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들이지, 작정하고 싸구려로 팔 용도로 따로 만든 것이 아니거든요. 베이컨이라면 대부분 모양에서 짤린 것이니, 길다란 베이컨으로 손님 접대할 게 아니라면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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