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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4/25 15:39:39
Name sungsik
Subject [일반] [역사] 세종대왕이 만든 병크 제도? '부민고소금지법'

pgr에 유머 글을 올렸다하면 삭게로 가는군요.
뭐가 이리 엄격한지 조심한다고 수정하고 별의 별 노력을 다해도 삭제 당하네요.
전 그냥 역사글이나 올려야하는 운명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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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민고소금지법이라는 조선시대 법이 있습니다.
부민(部民)이란 관할의 일반 백성을 의미하고, 부민고소금지란 부민은 고을 수령에 대한 고소가 불가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일반 백성은 억울한 일이 생기거나 고을 관리가 부정을 저질러도
그 관리를 고소할 수 없다는 제도이지요.

네... 말도 안 되는 개소리입니다.
그런데 이런 비슷한 개념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걸 법률로 제정해 버린 건 우리 모두가 아는 조선 최고의 성군 세종대왕입니다.

처음 이 법령이 건의된 건 예조판서 허조가 세종 2년 때 건의했으며,
세종이 이를 받아들여 4년에 법령을 완전히 정해버립니다.
법령이 처음 만들어질 때 유정현, 박은, 이은 등은
'이와같이 하면 수령이 더욱 꺼림이 없게 되어, 백성이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하며 반대했지만...

우리 꼬장꼬장한 허조는 당시 살아있었던 태상왕, 즉 세종의 아버지 태종에게
'신은 늙었사오니 만약 윤허를 얻게 된다면, 신은 죽더라도 눈을 감겠습니다.'
라고 울며 고하니, 태종이 감동하여 허락해버립니다.

(그렇다해서 허조가 꼬장꼬장하기만 한 꼰대같은 인물인데 세종이 멍청해 그리 중용했냐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다른 일화를 보면 감옥의 죄인을 다루는 관리가 형벌을 줄이려하는 데 힘쓰지 않아,
죄가 없는 자도 장을 맞는 경우가 너무 많은데 그 때문에 경범자도 중한 형벌을 받는다고
형을 집행하는 것을 신중히 하여 백성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한다고 세종에게 공식적으로 건의합니다.
부민고소금지법 이야기와 비교하면 이미지가 참 상반되죠. 한 마디로 시대의 원칙주의자였던 겁니다.)


말이 좀 샜는데.. 여튼 이렇게 수령을 백성이 고소할 수 없게 만든 법을 제정한 세종대왕.
태종에 의해 통과된 거 같은 이 법은 세종도 분명히 동의했으며,
세종이 죽을 때까지 유지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니 세종에 대한 환상이 산산히 깨져버리죠.
아우. 우린 속았구나. 세종은 악독한 왕이었구나. 백성을 위한 국왕인 줄 알았는데.... 실망이야.
세종도 별 수 없구나...
신분의 기강을 잡고자 수령이 불쌍한 백성들을 잡아 족치거나 마음껏 횡포를 부리는 건 감수해야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구나.. 하며, 배신감을 느끼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먼저 부민고소금지법을 이해하려면 고려와 조선의 가장 큰 차이부터 알아야합니다.
고려는 기본적으로 귀족국가, 호족국가였습니다.
현령이 배치된 현은 수령에 의한 행정권한 행사가 가능했으나,
그렇지 않은 지방의 수많은 속현에는 엄연히 호족들이 직접적인 행정 권한을 행사하던 시대였죠.

반면 조선은 어떻게든 중앙집권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과거시험도 통과하지 못한 자들이 자기 마을에서 힘이 있다고 행정권한을 가질 수 있는 걸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작은 현을 통폐합하며 모든 현에 중앙부처 벼슬아치를 현령, 현감으로 임명해버립니다.


자..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중앙부처에서 고을을 다스릴 관리를 뽑아 내려보내도,
그 지방에서 이미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미 존재합니다.
분명 고을의 수장은 수령인데, 정작 힘을 행사하는 건 향리라는 거지요.

세종이 이 법을 제정한 건 1422년 조선이 건국된지 딱 30년 밖에 안 된 시기였고,
고려 때까지만해도 그런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던 호족들이 조선이 건국됐다고 갑자기 힘을 잃을리가 없었습니다.

실록에서도 고을의 백성들이 수령보다 힘있는 향리를 더 무서워한다고
거기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는 보고서가 종종 보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향리뿐 아니라 향리의 힘을 믿고 그 밑에 있는 노비들까지도 설친다는 거지요.

그 때문에 중앙정부에선 이 관리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었던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게 바로 부민고소금지법입니다.
이에 세종은 종사의 안위를 해치는 것이나, 불법 살인에 관련된 일이 아니면, 부민에 의한 고소를 받지 않는 법을 제정합니다.


이런 납득 가능한 목적이 분명히 존재했지만, 그로 생기는 폐단에 대해 세종은 모를리가 없었습니다.
중앙 관리에게 힘을 실어주고, 지방 유력 향리들의 힘을 줄이기 위한 법이지만
그로인한 부작용 역시 만만치 않았죠.

세종 5년, 이 법에 대해 최사강, 황상등은 계속 비판적인 입장을 내비치고,
허조의 경우엔 이 법을 유지 안 하면 신분질서가 깨진다고 적극적으로 옹호합니다.
그러던 중 지방 관리하나가 심각한 부정을 저질렀습니다.
다시 이 주제가 터져 나올 수 밖에 없지요.

그리하여 세종은 대신들과 의논 후 바로 왕지를 내립니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고, 근본이 튼튼해야만 나라가 평안하다. 내가 어쩌다 외람되게
백성들의 주인이 되었다. 그렇기에 백성들에게 친근한 관원을 선택하고 착한 사람을 뽑아쓰려 노력하지만,
실수가 있을까 무서우니, 최대한 어진 인물을 뽑아 이들로 하여금 백성을 다스리게 하길 희망한다.

다만, 부민이 수령을 고발하는 것을 불가했는데, 이는 조정의 의논에 따라 수령들을 중히 여기기 위함이다.
그러나 수 많은 고을이 있으니, 그 중에 어찌 법을 믿고 탐욕과 잔혹을 일삼는 관리가 없으랴.
이에 대해 조정에서 사람들을 보내 고을을 조사하게 하고 수령들의 감시할 것이다.
일체 백성들에게 억울함과 원통함이 없게 하고 혹 있거든 그땐 백성이 진술하는 걸 허가하라.
그 내용을 본인에게 보내면, 내가 상세히 따져 물어 판단해 처리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 수령들의 힘은 실어주면서, 백성들이 겪을 수 있는 억울함과 고통은 최소화 시켜주겠다는 거죠.



이후 부민고소금지법에 의해 피해를 받는 백성이나 법령을 이용해먹는 수령을 견제하기 위해,
세종은 각도에 찰방을 파견합니다.

이를 정역찰방, 혹은 암행찰방이라 불렀습니다. 암행..암행...어디서 많이 들어본 느낌입니다.
네, 암행어사의 그 암행(暗行)입니다.
물론 암행어사와 역할이나 권한은 다르지만, 그 취지는 거의 똑같다고 볼 수 있지요.
(참고로 암행어사라는 제도는 성종, 혹은 중종 때 처음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찰방을 파견하면서 명하길,

'여러 주현에 가서 염탐하고 여러 촌락의 여염집(백성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을 출입하여,
무릇 수령이 재물을 탐하거나 형벌을 혹독히 하는 일과
민간의 고통스러운 폐단을 상세히 다 방문하여 살펴보고 또한 백성에게 해독을 끼친 자 역시 보고하라.'
합니다.

찰방의 효능은 바로 나타나는데
왕효건, 유지 등의 비리가 드러나 곤장을 맞은 뒤 유배를 가게되고 각 도의 상황들이 속속 올라오기 시작하지요.


세종 7년 찰방이 탄핵한 창원 부사 안종약에 대한 보고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부민이 수령을 고소하는 금지하는 법을 세웠고 나도 그 법이 필요하다 생각하기는 한다.
그러나 탐폭한 관리들이 그 법을 믿고 기탄없이 부정을 자행하기에,
내가 다시 찰방으로 하여금 민간에 가서 탐문하게 하였던바,
그 중엔 비록 죄가 가벼운자도 있긴 하나 그대로 앉혀서 백성을 다스리게 하는 건 문제가 있지 않은가.
내가 미세한 일은 그 죄를 묻진 않겠으나 일단 다 수령직을 직위해제하는 게 맞다고 본다.'

하니, 허조는
'죄가 경할 거 같으면 경솔히 그럴 수 없습니다.'

하니 세종은
'난 하는 게 옳다고 본다' 하며 모두 탄핵시켜 버리고 다른 관직으로 이전시켜버립니다.


물론 부민고소금지가 있어도 부민에 의한 고소가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닙니다.

세종 9년, 안성 군수였던 오을재를 법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사헌부에서 탄핵 요청합니다.
그런데 이 오을재에 대한 고소가 부민 손광연이 자기 노비에게 시켜 이루어진 것입니다.
원래 부민이 수령을 고소하면 고소한 건은 받지 않고 고소한 쪽만 곤장을 100대 맞기로 되어 있는 게 당시 법령이었죠.

그런데 사헌부는 부민의 고소 내용이 맞다 인정하여 세종에게 군수 오을재의 탄핵과 함께
그 죄에 의한 곤장 90대를 요청합니다.
그럼에도 부민인 손광연 역시 부민고소금지라는 법을 어겼으니 곤장 80대를 맞아야한다고 하지요.

이에 세종은 고소건은 받아들이고 고소한 쪽엔 80대가 아닌 60대만 때리라고 명합니다.
이처럼 조정에서도 부민에 의한 고소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법은 법이지만 법의 목적이 수령의 부정부패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고 판단한 듯 하지만,
물론, 이건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이긴 했습니다.


세종 13년, 수령고소금지 법령이 시행된지 10년 쯤 지난 해 세종은 이에 대해 또 논의합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고소하는 것을 금하면, 사람들이 억울하고 원통한 것을 하소연할 곳이 없으니,
자신의 절박한 사정 같은 것은 이를 받아들여 처리해주자.' 하니,

신상, 하연 등은 성상의 하교가 진실로 옳다며 적극 찬성합니다.

그러나....허조...네.. 이 법을 처음 제안한 그 허조 영감님 ㅠㅠ
고소를 금하는 법령을 조금이라도 열어 놓으면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고소하게 될 것이고
법이 의미가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반대하지요.

하니 세종은,

'억울하고 원통한 정을 펴주지 않는 것이 어찌 정치하는 도리가 되겠는가.
수령이 오판하여 백성이 피해를 입게 됐는데 고소를 금지시키면 대체 수령에 대한 죄를 어케 처리하겠는가.
죄가 성립되었는데도 죄를 다스리지 않는다면 징계할 수가 없다.
그런데 죄를 다스린다면 고소를 허용하는 게 되는 것이니 이에 대해 다시 신중히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며 이에대해 나중에 또 논의하자고 합니다.



하지만 세종이 결단하여 이 부민고소를 없애버리기도 참 애매한 상황이 계속 이어집니다.

지방의 유력 부민이 수령을 고소한 뒤에 몰래 다른 사람을 사주하여
수령이 죄가 없는데도 죄를 만들어내는 그런 일이 보고되고,
하다못해 힘있는 부민은 수령을 발로 차고 욕설을 하는 그런 일까지 일어나고 있는 게 당시 현실이었죠.


그 때문에 세종은 이 부민고소금지를 유지하면서
백성들이 수령에게 부당한 처우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같은 해 부민이 어떤 부당한 일에 대해 수령을 고소하면,
고소한 내용만 처리하고 수령을 벌주지 않는 형태로 가면 어떨까하고 제안합니다.
즉, 고소는 받되 백성이 수령을 함부로 해코지하지는 못하게 하면서,
백성의 억울한 일만 풀어주자는 거죠.

그러자 지신사 안숭선은 그럼 수령들이 법을 어김에 거리낌이 없어진다 반대합니다.

어느정도는 맞는 말이지요.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자고 수령들의 범법행위를 방치해버리는 상황이됩니다.
세종은 안숭선의 말이 맞다 바로 수긍하고 다시 또 논의하자 합니다.


그러던 중 세종 15년, 신천 군수 권자안이 현리 최곤을 죽여버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최곤의 아들 최사민은 당연히 억울함으로 고소하였고,
살인사건은 부민고소금지법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때 최사민이 살인 뿐 아니라 권자안의 그간 있었던 악행들까지 동시에 고소를 한 것입니다.

이에 아버지가 죽었기 때문에 고소장을 낸 것으로 수령을 고소하는 다른 예시와 같지 않다.
그 법과 관계되지 않으니 처벌하지 말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아버지가 죽었다는 고소만 했으면 죄줄 수 없는데, 수령의 다른 범죄도 같이 고소했으니
고소금지법에 위반된다. 징계 해야한다는 의견이 더 강하게 주장됐죠.

그러나 세종은 고소한 부민은 죄주지 않고 고소 당한 수령만 처벌합니다.


이렇게 수령고소금지와 그로 생기는 폐단에 관한 논의는 시행시부터 꾸준히 이어집니다.
어떤 식으로든 폐단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을 세종은 계속 찾으려 했죠.
법에 접촉되는 상황이 생기면 상황에 맞는 융통성을 적용하기도 하면서요.

세상에 완벽한 법은 없고, 어떤 법이든 그 폐단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초창기 만들었던 찰방의 파견 조차도 몇몇 찰방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고 수령과 짜고 먹는
폐단이 발생했기에 이 방법도 한계가 있었지요.

세종은 폐단이 생길 수 밖에 없는 현실 인정했고 그 폐단을 최대한 줄이는 쪽으로 나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논의하고 토론하고 의견을 듣고 의견을 말하고 조율하고...
법이 필요한 건 필요한 거지만 그로 생기는 폐단을 무시하지 않고,
정답은 아니지만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한 게 그가 가진 기본적인 정치 철학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세종의 마음은 세종 15년 10월 23일에 나온 논의에서 잘 나타납니다.
이 기사의 내용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치고자합니다.




허조가 아뢰기를,

'부민의 원통함을 호소하는 고소장을 수리하여, 관리의 오판을 죄주는 것은,
존비의 구분을 상실할까 두렵습니다. 원컨데 소신이 이야기한 방법을 따르소서'

하니 세종이 말하기를,

'고금천하에 어찌 약소한 백성의 억울함도 말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 있는가.
경의 뜻은 좋지만 정사로서 실시하기에는 정당하지 않다.' 하였다.

허조가 물러가니, 세종이 안숭선에게 말하기를

'허조는 고집불통이야.' 하니


안숭선이 아뢰기를,
'정치하는 도리는 아랫 백성의 심정을 위로 통하게 하는 것입니다.
(서경의 예시를 들고), 천하에 어찌 억울함을 호소하는 소송을 수리하지 않는 정치가 있겠습니까.'

하니 세종이 웃으며 말하기를,

'그대 말이 내 마음에 꼭 맞는다. 이제부터 수리하여 처리하게 하고,
그 고소장 때문에 관리에게 죄주는 일이 없게 한다면 거의 두 가지가 다 원만할 것이다.
이대로 법령을 실행시키도록 하라.' 하였다.




참고 : 눈시bb님의 실록에서 찾아 본 부민 고소 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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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ordfish
13/04/25 15:46
수정 아이콘
몰랐을 때 뭔 병크 제도인가 했는데
생각해보니 부민으로 고소할 사람의 대부분은 지역 유지라는 생각이 들자 납득이 갔던 법입니다.
물론 폐해는 쩔였지만요.
iAndroid
13/04/25 16:28
수정 아이콘
일종의 면책특권이군요.
대통령은 내란외환죄만 아니면 기소대상이 아니라는 것과 비슷한 취지네요.
13/04/25 17:25
수정 아이콘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현대에도 비슷한 법이 있었군요.-_-;
눈시BBbr
13/04/25 16:57
수정 아이콘
냥냥 ( + +)
13/04/25 17:25
수정 아이콘
이거.. 표절 아니죠? ㅠㅠ;
키스도사
13/04/25 17:22
수정 아이콘
http://www.youtube.com/watch?v=g_pXx961__8
http://www.youtube.com/watch?v=fyzFyeAGXiA

뿌리깊은 나무에서 한석규가 엄청난 연기력을 보여준 장면에서 나온게 부민고소금지법에 대한 논의였지요. 드라마라 실제 상황과 다를수밖에 없지만 세종이 참 멋져보였어요 크크
13/04/25 17:42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드라마에 나온 세종보다 실제 세종이 더 멋져보입니다 흐흐
azurespace
13/04/25 20:13
수정 아이콘
그런데 억울함을 들어주기만 하고 어떠한 조치도 없다면 자연스럽게 억울함을 호소하러 오는 백성도 없어질텐데요. 괜히 수령한테 찍히기나 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정말 수령이 잘못하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이런 경우에 중앙 정부에서 뭔가 조치가 없었나요? 예를 들어서 암행어사를 파견한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GreatObang
13/04/26 09:00
수정 아이콘
역시,, 세종대왕은 닥치고 찬양하는 것이 정답인가요? 흐흐

왕권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엄청난 갭이 있음에도, 당시 백성을 먼저 생각하는 민본주의는 현재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현재와 비교하는 것이 굴욕이 되는 건가요?

매번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13/04/26 14:24
수정 아이콘
제목에 [병크]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는 회원의 신고가 있었습니다.

적절히 제목을 수정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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