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근육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은 불쌍해요
피트니스 문화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유진 샌도(Eugene Sandow, 1867~1925)인데요. 서커스 차력사만의 전유물 같은 근육을 보디빌딩으로 체계화하고 하나의 문화로 만든 인물이죠.
1867년 프러시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 동네를 지나던 서커스단을 따라 가출하면서 괴력사로서 활동을 시작하게 돼요. 샌도의 본명은 프리드리히 뮐러였는데요. 서커스 활동을 위해 그리고 프러시아 군대 징집을 피하기 위해 예명을 사용했죠.
그가 일하던 서커스단은 경영 부실로 벨기에 브뤼셀에서 파산하게 되고, 당시 브뤼셀에 있던 체육 교수인 루이 아틸라(Louis Attila)와 함께 투어를 하기 시작하죠. 당시 사람들은 5~10 파운드 이상의 무게를 들어 올리면 근육 손실이 온다고 믿었는데요. 이들이 이러한 편견을 깨고 고중량 운동으로 패러다임을 바꿉니다.
당시 런던에서 '삼손과 키클롭스'라는 예명의 두 괴력사가 자신들을 이기면 500파운드를 주겠다고 했는데요. 샌도는 이들을 이겨 명성을 얻게 됩니다. 1893년에는 미국에 진출하게 되고, 이듬해 세계 박람회가 열리는 시카고에서 공연을 하게 됩니다. 이 공연에서 샌도는 기존의 괴력을 자랑하던 차력쇼 형태가 아닌, 현재의 보디빌딩처럼 균형 잡힌 근육미를 과시하는데요. 주로 그리스 조각상처럼 포즈를 취했죠. 이는 당시 센세이션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고 합니다.
샌도는 시기도 잘 타고 났는데, 때 마침 발전한 사진술로 인해 엽서로 자신의 몸(?)과 명성을 널리 알릴 수 있었어요. 사진뿐만 아니라 에디슨 스튜디오에서 영상도 찍죠.
그는 1898년에는 보디빌딩 관련 잡지를 발행하고, 여러 운동기구를 직접 고안해 상품화하기도 했으며, 문화 연구소를 열어 일종의 PT(퍼스널 트레이닝)를 했어요. 1901년에는 런던에서 세계 최초의 보디빌딩 대회를 개최하기도 합니다. 1904년에 그가 출판한 책에서 보디빌딩이라는 명칭도 처음으로 등장하죠. 샌도는 명성에 힘입어 남아프리카, 인도, 일본, 호주 등 여러 나라를 방문해 보디빌딩 문화를 전파하고, 1911년에는 영국 국왕의 체육 특별코치로 임명되기도 했어요.
오늘날 세계 최고 권위의 프로 보디빌딩대회인 '미스터 올림피아'의 수상 트로피에는 보디빌딩의 창립자인 유진 샌도의 공로를 기려 그의 모습이 있죠.
#2. 어린시절 내가 멸치였던 건에 대하여 - 찰스 아틀라스보디 빌딩 초창기, 또 다른 아이콘 중 한명은 찰스 아틀라스(Charles Atlas, 1893–1972)입니다. 그의 본명은 안젤로 시칠리아노로 유진 샌도를 롤모델로 삼아 운동을 시작했죠.
그는 1921년과 1922년 보디빌딩 대회에 참가하여 "미국에서 가장 잘생긴 남성", "미국에서 가장 완벽하게 발달한 남성(Americas Most Perfectly Developed Man)"으로 선정되었는데요. 이듬해에 자신의 운동법인 "다이나믹 텐션(Dynamic-tention)"을 담은 책을 출판해요. 이 다이나믹 텐션에는 총 12개의 수업으로 이루어진 맨몸 운동법이 담겨있었죠.
찰스 아틀라스가 유명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광고 캠페인 때문인데요. 그는 자신이 어린 시절 44kg의 약골이었고, 깡패가 모래를 걷어차서 그의 얼굴에 뿌려 괴롭힘 당했던 경험을 가지고 만화 형태의 광고 캠페인을 제작하죠. 세계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100% 미국인이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100% 남자여야 합니다." 라는 식의 캐치 프레이즈를 통해 대중에게 알리기도 했죠.
#3. 가장 성공한 헬창 - 아놀드 슈왈제네거
보디빌딩의 역사에서 이분을 빼먹을 수 없죠. 아놀드 슈왈제네거(Arnold Schwarzenegger, 1947-)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10대부터 보디빌딩을 시작했어요. 그는 21세에 첫 아마추어 미스터 유니버스 타이틀을 획득하고, 이후 미스터 유니버스 타이틀을 3번 더 획득했고, 은퇴하기 전에 미스터 올림피아에서 6년 연속 우승하죠. 게다가 1980년에 미스터 올림피아 타이틀을 차지하기 위해 다시 한번 대회에 복귀함으로써 사람들을 놀라게 했어요.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1970년대부터 할리우드에 진출하는데요. 다큐멘터리 1977년 펌핑 아이언(Pumping Iron)을 시작으로 1984년 터미네이터로 월드 스타가 됩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1980년대 보디 빌딩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죠.
이후로 다들 아시다시피 2003년, 2006년에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당선되죠.
#4. 로이더! 로이더!
1984년, 옥스포드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 출판사에 입사한 26세 청년 샘 푸셀(Sam Fussell, 1958-)은 아놀드 주지사 자서전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보디빌딩을 시작하게 됩니다.
완벽한 몸을 만들기 위해 그는 점차 흑화하는데요. 보디빌딩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직장도 그만두고, 점차 자신의 삶을 포기하죠. 그는 4년간의 운동, 스테로이드 중독, 그로인한 병적인 분노 등의 부작용을 얻게 되는데요. 결국 환멸을 느낀 푸셀은 보디빌딩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1991년 책으로 출판하게 되는데요. 이 책을 통해 이미 당시 퍼져있던 약물 사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기름을 붓게 되고, 보디 빌딩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는 안 좋게 흘러가죠. 이러한 인식때문에 보디빌딩은 에어로빅을 기반으로 한 피트니스와 점점 분리되게 됩니다.
<참고문헌>
김원곤. (2014). 20대가 부러워하는 중년의 몸만들기. Denstory.
J Andreasson, T Johansson. (2014). The Fitness Revolution: Historical Transformations in the Global Gym and Fitness Culture. Sport science review
Jacqueline Reich. (2010). The World’s Most Perfectly Developed Man: Charles Atlas, Physical Culture, and the Inscription of American Masculinity. CMS FACULTY PUBLICATIONS
Sam Fussell. (1991). Muscle: Confessions of an Unlikely Bodybuil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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