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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5 10:16
딱 임진년에 조선에 출병한 다이묘들 기준이군요.
일본역사에도 관심이 있다면 아시겠지만.. 저기 등장하는 다이묘들이 대부분 히데요시의 직계부하들이었고.. 전부 일본에서의 영지가 규슈 아니면 서국에 있는 다이묘들이었죠(모리가출신만 3명)
20/01/15 11:58
모리 데루모토,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모리 요시나리 이렇게 해야 셋일 것 같습니다만, 모리 요시나리는 고니시, 가토, 후쿠시마처럼 히데요시 부하로 밑에서부터 올라온 케이스입니다. 성도 원래는 모리(森)인데 나중에 히데요시가 모리(毛利)로 고치라고 해서 고쳤습니다.
20/01/15 10:18
일본이 임진왜란에서 더 좋은 결과를 만들었다 한들, 그 이후까지 감당하기엔 정치체제가 너무 후졌었죠. 대륙에선 수백년전에 사라진 봉건주의를 고수하고 있었기에 이미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구닥다리 봉건주의로 회귀하긴 어렵죠. 봉건주의 체제는 각 영주간의 전쟁이 심할수 밖에 없고, 그 끝없는 전쟁을 유지하기 위한 높은 세금으로 지옥도가 펼쳐지죠. 저렇게 갈리면 봉건주의 특성상 저 8도는 끝없이 서로 전쟁을 하게 됩니다. 이건 수천년간 고립되어 있었던 섬나라 일본에서야 가능하지만, 서쪽으로 북쪽으로 큰나라들을 상대해야 하는 조선에선 그냥 모두가 함께 자멸하는 정치체제일 뿐이죠.
20/01/15 11:37
저런 형세면 누루하치가 입관하는 대신에 남하해서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낮은 한반도를 차지했을지도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겠죠.
특정 사람들이 좋아하는 만주 + 한반도 통합국가가 생겼을지도.... 대신 머리는 변발이었을 테지만요.
20/01/15 10:26
고니시 가토는 일본내에서 영지가 각각 24만 17만 석고정도였고, 그 마저도 히데요시가 규슈정벌후 시마즈에게 빼앗아서 새로 나눠준 신규다이묘였습니다.
(이 둘이 히고국을 각각 나눠서 분봉받음. 이때가 임진왜란 5년전) 반면에 같이 등장하는 모리가나 코바야카와, 우키다(히데요시의 조카)는 히데요시에게 항복(?)하기전에도 최소 1개국을 차지했던 50만석~100만석급의 대영주 였죠. 저 계회대로라면 고니시랑 가토는 바로 100만석급으로 한두단계 상승하게 되는것입니다.
20/01/15 11:10
저기 나온 모리가 일문이나 히데요시 양자이고 어마어마한 총애를 받았던 우키다, 히데요시의 일급 참모였던 구로다 간베에의 아들인 나가마사에 비하면 둘의 급이 좀 떨어지는건 사실이라... 저 둘 입장에서는 저것도 출신 성분 생각하면(고니시는 상인 출신, 가토는 히데요시네 친척 조카였어서 평민) 엄청난 출세죠.
20/01/15 14:53
위에서 많은 분들이 말씀해주셨지만, 사실 가토랑 고니시는 히데요시 '유스'라고 불릴 차기 멤버였으니 기존 중견 다이묘들 사이의 논공행정에서는 저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서일본의 패권이 동일본에게 완전히 넘어가는 세키가하라와 에도 막부의 무자비한 숙청이 기다리고 있었지요. 조상님들이 일본의 출정(?)에 대해 의구심을 끝끝내 떨치지 못한 이유가 무지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아니 통일해놓고 정권 말아먹으려고?'라는 이성적인 추측도 한 줄기 한다고 요즘 학설들은 말하더군요.
20/01/15 11:40
조선치다 실패하고 죽어서 일본에서 평가가 말년에 노망이 났다 정도지, 만약 조선정복 성공했으면 희대의 영웅이자 정복자로 기록됬겠네요
20/01/15 12:18
역사를 보면 어떤 경계는 마치 하늘 정해놓은 것처럼 아무리 강한 군사력을 동원해서 점령해도 다시 복원되곤 하죠.
중국과 한반도-수십차례 침범했으나 한반도에는 독립국가가 끝까지 존재함. 한반도와 일본-임진왜란 7년,일제 40년 결국 복원. 영국과 유럽대륙(프랑스,독일)-영국이 프랑스를 점령할뻔 했으나 잔다르크 등장하고 복원, 2차대전시 독일의 막강한 군사력에도 영국 침공 실패 유럽과 러시아-유럽 최강시절 나폴레옹, 히틀러 침공 실패 유럽과 아시아-몽골이 유럽 기사단 몰살시키고 점령직전 본국사정으로 철수. 유럽과 회교권-회교권이 로마를 멸망시켰으나 이베리아 반도까지 진출했다가 복구됨. 유럽이 7번의 십자군원정에도 회교권 장악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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