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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28 00:11
창천항로의 한 구절이 생각나네요.... "우리 형제의 꿈은 이제 불멸로 남으리라"
아직까지 읽히고 있는 것 보면.. 그 말이 사실이 된거 같네요.
18/09/28 00:29
미방이 통수만 안쳤음 생각외로 괜찮았을지도...
그 뒤 제갈량이야 어렵지만 그나마 가정서 있던 1차북벌이 기회였는데 산악인... 그 뒤는 뭐 할수있는게 없었죠
18/09/28 00:29
만약에 형주를 빼앗겼더라도 관우가 살아있었다면 오가 정말 형주를 침략한 것을 후회할 정도로 개박살이 났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관우를 앞세워서 재침공 해오는 촉을 두고 위도 오를 먹기 위해서 입맛을 다시고 있었을 테니까요. 관우를 잡아 죽인 것은 정말 손제리 신의 한 수였어요.
18/09/28 06:35
관우야 우금 군 깨트린 것 이외에는 승리 기록이 거의 없다시피한데 큰 영향이야 있었겠습니까?(조조의 명을 받고 장기말이 되어 움직여 개인의 무술 실력을 발휘해 안량을 죽인 거 이외에 자신이 군을 직접 움직여 세운 공은 이것뿐이죠.)
개인적으로 관우는 무예 실력(물론 이것도 젊었을 때의 한정)을 바탕으로한 돌격 대장 역할로는 뛰어나지만 나이먹고 대군을 총지휘하는 역할로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장수로 생각합니다.
18/09/28 10:41
그렇게치면 유비군에서 제갈량 장비 정도를 제외하면 유비 죽을때까지 군단으로 승리한 장수가 없죠. 애초에 세력 자체가 작아서 군단 운용 자체가 불가능한 유비 세력의 영향이 크다고 봐야..
18/09/28 14:57
네 그래서 위나라에서 유비 죽었을때 저긴 끝났다 라고 무시하다 제갈량의 북벌에 식겁했다고.... 제갈량 평가가 그때 확 오른걸로 압니다 크크
18/09/28 00:46
중간과정에서 실책이 있었을지언정, 관우 하나를 위해 모인 전력만봐도 관우의 이름값이 어느정도인지 알수있겠군요.
이제 한편만 남았군요. 항상 잘보고있습니다.
18/09/28 00:53
근데 꼭 길로 가야하나요? 저렇게 뒤도 볼 것 없이 패배한 상황에서는 그냥 완전 해체해서 산 올라가면 모를 것 같은데. 병력 보존하며 후퇴해야하는 상황 아니면.
18/09/28 06:45
우리나라 수준이면 가능해도 대륙수준이면 안되지 않을까요?
군용로나 지형 숙지의 축척이 아예 단위가 다를거라 해체후 등반해서 길 잃는 순간 영원히 전력외가 될듯 합니다
18/09/28 08:20
그 당시 산길은 말이 길이지 그냥 자연 그대로 남겨진 수준이라 그런 게 아니었을까요? 들짐승도 있고 말은 고사하고 사람도 안전을 장담하기 어려웠을 거 같네요
18/09/28 11:24
해체해서 산을 올라가는 행위가 바로 뿔뿔히 흩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 당시 병사들이 딱히 국적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요. 누군가는 멀리 갔더라도 다시 유비진영으로 돌아올 수도 있고, 누군가는 항복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대로 멀리 달아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고향으로 갈 수도 있겠죠. 거기에 해체해서 올라간다는 건 단체로 움직이는 것보다 눈에는 더 띄일 테고, 흩어진 상황에선 더더욱 적의 공격에 대응하기 어렵죠.
18/09/28 11:25
길이 없는 산을 안 타보셨군요...
당장 제가 며칠 전 추석날 묘사 가는 길에, 나무가 우거지고 길이 가팔라서 고작 30미터를 전진하지 못하고 결국 도로 내려와야 했습니다. 이십 년이 넘도록 다니던 길이었는데도요. 더군다나 그런 길을 수십 수백 킬로미터나 간다는 건 인간으로써 불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돌산이어서 나무가 적다면 상대적으로 수월할 테고, 그런 정신나간 짓을 자행했던 등애란 인간도 존재하지만요.
18/09/28 11:29
사람들의 추측으로는 관우에게 처벌받을 것이 두려워 오나라에 항복했다고들 하는데...... 참으로 글러먹은 이유죠.
설령 군수물자 태워먹은 게 죽을 죄라 해도, 아무리 관우가 절월을 받았다 해도, 미방의 목을 날릴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18/09/28 01:53
그당시 오나라는 왜 관우를 쳤을까요 당시 국력이 위나라가 가장 앞서있다고 알고있는데 오나라가 촉나라 관우를 공격하는순간 위나라 통일은 거의 확정이 아니였을까요?
18/09/28 06:30
삼국지 게임도 아니고 오나라가 천하통일을 목표로 해야할 당위는 없죠. 그저 자기 선조 때부터 갖고 싶었던 형주를 취할 가장 좋은 찬스였고 그 찬스를 놓치지 않았을 뿐입니다.
18/09/28 07:19
삼국의 정세를 알고 역사를 아는 우리야 그런 답변이 나오지만 당시 오나라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한 선택이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전 조금씩 드네요. 당시 오나라는 진출할 자리가 없었죠. 서주에서 장료라는 희대의 인재가 가로막고 있었고 설사 장료를 어찌어찌 뚫는다고 하더라도 (근데 그 뚫는 것도 불가능했었죠) 서주는 평야지대였기때문에 밀려오는 위를 상대로 지킬 거라고 장담을 못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남은 길은 형주인데, 글쎄... 궁금하긴 하네요 만약 노숙이나 주유가 있었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최소한 관우 뒤통수 치진 않았겠죠) 그리고 전 윗분과 생각이 다른데 천하통일을 목표로 하는게 아니라 현상유지자체가 안되기때문에 오나라도 천하통일을 노릴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위나라와 오나라로 나누어진 천하 이분지계가 이루어져도 위나라와의 싸움을 장담못하는데 삼국으로 나눠진마당에 오나라가 그냥 현상유지만 한다? 절대 못버티죠 그건 역사가 증명한 사실입니다. 제갈공명의 북벌역시 그렇기때문에 전 현상유지라도 할려면 공세를 취해야한다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찌됬건 삼국 역사를 알고 삼국상황을 아는 우리야 야 저걸 공격하면 안되는데 라고 알지만 당시 사는 사람들이 그걸 알 수 있을 순 없었을 겁니다. 손권은 서주로의 진출이 막히니까 형주로 밖에 길이 없었을꺼고 당시 한중왕으로 등극한 유비의 기세가 두렵기도 하고 관우와의 관계 또한 시원치 않으며 다른 곳으로 진출할 곳도 없고 형주는 자신의 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손권이 관우 뒤통수를 때린건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고 할 수밖에없죠. 다만 손권이 몰랐던점은 관우를 죽임으로써 촉나라의 보복이 왔다는 점과 그 보복은 이릉대전을 통해 대승을 했지만 그 대승이 아이러니하게 촉과 오가 위나라를 꺽을수 있을지도 몰랐던 최후의 기회를 날려버린게 되었죠. 오나라는 이릉대전 이후 북진을 할만한 여력도 의지도 없었고 촉은 북진을 할만한 의지는 있었으나 여력이 안됬고. 어찌됬건 지금 역사를 보는 우리입장이니까 그리 생각했지, 삼국상황과 역사를 몰랐으면 대부분 다 그렇게 행동했을겁니다. 다만, 왜 관우를 죽였을까 하는 의문은 남네요. 처형한걸로 봐서는 손권 본인이 죽이겠다는 의지가 분명했을것같은데, 관우를 죽이면 촉나라가 반드시 쳐들어올거라고 모르진 않았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규모로 쳐들어올거라고 생각을 못한건지. 아니면 그만큼 관우는 위협이니 죽여야한다고 생각을 한건지..
18/09/28 07:27
그말이 저도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엔 노숙이 살아있었으면 관우 뒤통수 안때리지 않았을까 싶은데, 지금은 과연 그랬을까 싶네요. 노숙이 살아있건 주유가 살아있건 관우는 위협이였을테고 서주는 난공불락이였을테니, 오나라 입장에선 관우 뒤통수를 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만... 다만 노숙이 살아있었으면 촉나라와의 관계 유지를 위해서도 죽이진 않았을 것같기도 하지만... 의미없는 추측이겠죠
18/09/28 07:52
지도를 보면 서주를 빼앗는다고 하더라도 오나라가 지킬 수가 없더군요.
건업에서 너무 멀고 위의 주요 도시와는 너무 가까워서 병력 충원에서 상대가 안됩니다. 최소 10만명 이상은 상시 주둔해야 하는데 오가 그만큼 국력이 안될뿐더러 위가 서주와 건업사이를 기병으로 막고 포위하면 답이 없죠.
18/09/28 08:38
말씀하신대로 서주는 진출로의 옵션이 되기 힘들었을겁니다. 오나라가 싸움을 잘해서 전투마다 승승장구를 했어도 힘들었을테니까요. (근데 심지어 그것도 아니였음) 소설이지만, 제 생각엔 결국에 노숙과 주유도 형주를 진출로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걸 관우를 죽이는 식이 아니라 다른형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둘 모두 결국 최후의 적은 위나라라고 확실하게 꿰뚫어보고 있었을텐데... 정말 궁금하네요 그들이 살아있었다면 어떤식으로 해답을 냈을지.
18/09/28 11:27
다르게 생각하면, 위가 워낙 강세니까 빨리 촉을 무너뜨리고 흡수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죠. 역사야 어쨌든 오가 촉을 배신했지만, 촉이 오를 배신할 수도 있는 것이고요.
18/09/28 06:23
전 몰랐다가 글곰님 글 보며 알게된 부분인데 관우가 7군 수몰하고 유비 회군에 맞춰 퇴각하여 방비를 굳건히 했다면 진짜 어떻게 됐을지 몰랐겠네요
촉에게 아쉬운 점이 이릉전투랑 1차북벌이었는데 또 하나가 늘었군요...아쉽네요ㅜ
18/09/28 06:29
만인지적을 사로잡아 역사서에 이름을 올린 반장의 부하였던 사마 마충 덜덜덜... 보통 병력빨로 사로잡았으면 그 시대의 서술에 따르면 당연히 반장의 공으로 기록되고 마충이 역사서에 이름 올릴 기회는 없었을텐데요. 병력 빨로 잡은 게 아니라 본인의 기량을 발휘해 잡았나 봅니다.
삼국지 최강이라 불리우던 관우를 잡은 마충을 기립시다. 껄껄껄
18/09/28 08:19
유비가 관우 사망 복수하고 형주 되찾는다는 명목으로 동원가능한 모든 자원 다 동원해서 오를 쳤다가 압도적으로 깨지고 병력의 대다수랑 수많은 인재들을 다 잃어버려서 칠 엄두를 못내고 한참 지난 후에 다시 오랑 동맹맺고 끝납니다.
18/09/28 08:43
형주는 사실 촉에게 있어서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사실 오의 공세는 미미한 수준이였고 촉은 갖추어진 위를 상대로 한중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만큼 공격로를 두개로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형주는 사실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죠 촉에게는. 위에는 관우는 군재가 없다라고 평가하신 분이 계신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유비는 삼국지에서 그 누구보다도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난 인물이였고 설사 자기를 따르는 개국공신있었더라도 다른 능력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과감히 기용하던 사람입니다. 그런 유비가 관우에게 형주를 맡겼던건 관우를 인정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그만큼 중요하다 라는 의미이기도 했을겁니다.
실제로 관우가 죽고 형주를 잃어버린 촉의 유일한 공격로는 북벌인데, 공격로가 두개인것과 한개인건 전략적으로 하늘과 땅차이죠. 어디로 올지 뻔히 아는것과 둘중 하나 고르는건 천지차이니까요. 하지만, 촉은 형주도 탈환하지 못하고 북벌만 주구장창하다가 멸망하게 됩니다.
18/09/28 09:39
미축이 이때 동생의 배신으로 인해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고 하죠..
평생을 부끄러워 하면 살았다고 하던데 ㅠㅠ
18/09/28 11:57
조운, 제갈량이 막아도 뒤도 안돌아보고 이릉대전을 일으킬 정도로 눈이 뒤집혔던 유비인데
관우 죽음에 결정타를 날린 미방의 형 미축을 오히려 위로했다고 하는 기록을 보면... 미축의 영향력은 대단했다고 보입니다.
18/09/28 16:57
보통 사람들이 제갈량이 이릉대전을 막으려고 했다고 생각하는 근거가
삼국지 법정전에서 '제갈량이 탄식하며 말했다, “법효직이 살아 있었다면 능히 주상을 제지해 동쪽으로 가시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령 동쪽으로 가셨다 하더라도 필시 경위(傾危-형세가 위태로워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부분인데 글곰님께서는 이부분이 제갈량이 이릉대전을 막으려고 생각했던건 아니라고 보시는 건가요?
18/09/28 17:10
이런. 제 잘못부터 짚고 넘어가야겠네요. 법정전에 그 기록이 남아 있는데도 제가 그걸 잊고 기록이 없다고 단언하는 헛소리를 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ㅠㅠ
18/09/28 10:19
장료 하나도 못 뚫는 쥐라는 게 증명 되고, 제갈량이 사기캐여서 그렇지
만약 정말로, 촉나라, 오나라가 힘을 합쳐서 위나라를 잡고 싶었으면(게임에서처럼 파기가 더럽게 어려운 동맹이었으면) 촉은 한중 쪽으로 진격하고, 오는 형주쪽으로 진격하는 게 맞는 판단이죠 공격로가 2개인 것과 1개인 것 천지 차이인데 그 공격로를 2개 유지할 병력 자원이 촉나라, 오나라는 없었으니까
18/09/28 11:26
근데 그게 가능했을까 싶습니다.
첫번째로 신뢰의 문제인데 손권은 항상 촉나라에 대한 야욕이 있었고, 설사 그게 없었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정보교류가 활발한 시대에도 못믿는데 그때처럼 제한적인 정보와 제한적인 만남을 가지고 완벽하게 서로를 신뢰할 수 있을 까 라는 회의감이 듭니다 두번째로는 설사 첫번째의 조건이 충족되더라도 과연 얼마만큼 잘 연계가 되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오나라가 서주를 공략할 당시에도 촉나라와의 정보공유가 있는 상태에서 공략을 했지만 전부 막혔습니다. 이건 희대의 명장인 장료가 막고 있었기도 하지만, 오나라의 군사 통솔력에 대한 의문점도 있고, 또 그 이상으로 위나라가 전력을 분산시켜도 강하다 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냥 단순히 서로 한쪽을 공략한다는 개념보다는 서로 확실하게 어느정도의 진척을 만들어줘야지 됬을텐데 이것도 글쎄요... 차라리 한머리 아래에서 움직이는 게 어설프게 두머리에서 움직이는 것봅다 낫지 않았을까싶네요. 어찌되었던간에 이 형주공방전이 촉/오/위 세 나라에게 정말 중요한 기회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것같습니다. 관우라는 만인지적의 장군이 위를 밀어넣으면서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몰랐던 것. (물론 사실 오나라가 뒤통수 치지 않았더라고 하더라도 꼭 촉이 승기 잡았을거라는 말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나라의 국력은 강했으니...)
18/09/28 11:47
첫번째와 두번째를 인정해버리면
형주공방전 자체의 의미가 사라지고 오가 뒤통수를 치든 안 치든 어차피 촉나라와 오나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미래는 없다라고 결론 짓기 쉬우니까요 촉나라 하나였으도 형주 한중 양쪽에서 치고 나가는 건 불가능했으니까요 한중은 제갈량이 캐리하고, 형주는 관우가 캐리해야 될까 말까인데 그정도 전공을 기대할만한 급은 중국 전체 역사에서도 올타임 급은 되야 되죠. 못해도, 백기, 한신 급은 되어야 하니까요
18/09/28 12:04
글쎄요. 통일은 못했어도 바로 뒷시대인 환온이 형주에서 치고 올라가서 낙양을 수복했었고 위연의 자오곡 계책을 따라서 써보다 패배해서 장안은 못먹었는데요. 동진 정부가 환온의 권력이 커질 걸 경계해서 북벌을 은근히 방해해서 요 정도에 그쳤지 북벌을 지원했으면 훨씬 더 큰 성과를 거뒀을 겁니다.
환온 말고도 환온 바로 뒷세대인 유유는 북벌해서 산둥반도, 낙양, 장안까지 모두 수복하며 정권 찬탈의 명분은 얻으며 유송을 건국했구요. 이후 양나라 때의 장수 진경지도 북벌을 통해 엄청난 전과를 거두며 낙양까지 먹었습니다. 뒷세대 남조 국가들의 북벌을 보면 그저 제갈량과 관우의 군재가 이들보다 떨어지는 것이지 꼭 올타임 쌍벽인 백기랑 한신이 아니면 안된다고 하기는 무리네요.
18/09/28 15:18
현실적으로 위 6 , 오 2 , 촉 1 인 전력비에서 오가 촉을 믿고 위를 치는 건 어려웠겠죠.
주유는 천하 이분을 꾀했고, 노숙은 촉오 겸병을 말했지만, 육손은 그냥 현상유지만을 바라기도 했구요.
18/09/28 11:33
솔직히 익주에서 유비가 5년간 뭐했나 싶습니다 =_=
아무리 관우가 믿음직하기로서니 동오와의 외교를 모조리 관우에게 떠넘기다시피 했으니 원... 제갈공명도, 동오가 그렇게 못 미더웠으면 뭔가 대책을 세우긴 했었어야 되는거 아닌가 싶어요. 일이 이리되니 손부인을 인질로 꽉 잡고 있는게 좋았을텐데 싶고 =_=... 이게 다 유비가 익주공략 상중하 중에 중을 골라서 그런겁니다! 걍 성도로 바로 치고 들어가지! 방통 지못미
18/09/29 15:40
하.. 진짜 어차피 익주 먹을 야심이 꽉 차 있어놓고선 상책을 두고 중책을 취해 희대의 책사 한명 죽이고 병력 말아먹고 형주에서 관우 뻬고 전부 동원하고...
방통 죽으면서 천하통일 가능성은 거의 물건너갔다고 봐야죠.
18/09/28 11:43
어느 만화였는지는 기억안나는데 여포의 죽음이라는 장면에서 여포가 살기위해서 구걸하면서 병사를 어머니라고 불렀던 만화 (기억이안나네요 크크)에서 조조가 그런말을 하죠.죽은뒤의 영광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살아있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 여포 자네야말로 영웅일세. 맞는말이긴하지만 동시에 유관장 삼형제는 영원하게되었죠. 삼국시대는 사실 역사의 수많은 무대중 하나일뿐인데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회자가 되고 게임으로 음악으로 책으로 만화로 기억이 되는걸 보면, [유관장은 불멸이다]가 정답같습니다.
18/09/28 11:49
역설적이지만, 당시 손제리라는 악당이 존재하였기에 비로소 관우는 불멸로 남을 수 있었다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는 촉빠고, 손제리 따위가 무슨 생각을 했든 알 바 아니고, 촉빠로서 손제리는 무조건 나쁜 놈이니, 걍 승상 덕질이나 하면서 손제리나 까야겠다고요. 굳이 손권의 행동의 당위성을 논하고 싶지 않아요. 그건 중립적인 시각이 필요한 역사가들에게나 맡겨 두죠 뭐,
18/09/28 11:46
시대의 영웅들이 우연히 도원에서 만나 함께 꿈꾸었던 꿈이 산산히 깨지는 순간.
삼국지는 동양의 그리스로마 신화 같아요. 인간 같지 않은 재능러들이 명확한 한계에 좌절하는 그런 신화.
18/09/28 11:49
저 당시를 지금 우리 기준으로 전략적으로 사고하면 안되는게
아직 조조 생전이고 漢의 마지막 황제가 있던 시절이라, 각 세력이 실질적으로 독립해있지만 명목상으로는 모두 한 황실의 신하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손권도 합비에 꼴아박기 전이고 유비의 한중정벌도 명목상은 장로 토벌이라... 생각보다 명분이라는게 중요한 시기였죠. 쥐새끼 입장에서 형주는 어쨌든 유비와의 협상에서 자기가 받기로 했다는 명분에 유비가 한중에 가있어서 신경쓰기 어렵다는 점. 관우가 본진을 비웠다는 점에서 최고의 명분과 최적의 타이밍으로 치고 들어온 거는 맞습니다. 문제는 그리고 죽을 때까지 합비로 들어가는 명분과 타이밍이 안나왔다는거죠.
18/09/28 12:46
저 당시 관우가 탈출을 끝내 못 한 것이 가장 아쉽더군요
그랬다면 유비도 화가 나지만 제갈량을 비롯한 신하들의 말을 들어서 위부터 친다는 계획은 유지했을 것 같고, 이 당시 죽은 사람들이 많지만 그래도 이릉 때 없어질 자원들이 관우, 장비까지 합쳐져서 위와 일전을 벌였으면 했어요 손권은 후환을 없앤다고 관우를 죽였는데, 유비가 위를 없애도 다음 차례는 오라는 사실은 뻔해서 당연히 할 만한 행동이긴 했었죠 다만 관우 죽이면 유비가 반드시 찾아올 거라는 생각이 못 하고, 관우 목을 조조한테 보내는건 점수 깍이는 일 같긴 해요
18/09/28 14:01
사실 관우 성격을 생각해보면 형주 뺏기고 촉으로 돌아오는데 성공했다면 위나라를 치기 보다는 오히려 오 정벌전에서 선봉으로 서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18/09/28 14:41
긁적. 어릴 때 윗 분 말마따나 관우가 죽었다는 거 자체가 좀 충격적이었죠.
만화에서도 그렇고. 역사가 아니라 이야기 속의 주인공 중 하나로 받아들였기에, 그 충격의 정도가 더 컸던 것 같기도 합니다.
18/09/28 18:13
아무나 신이 되는게 아니죠.
출중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고생하면서도 항상 변치 않는 의리의 사나이가 정말로 뭔가 제대로 보여주고 더 보여줄 찰나에 통수로 안타깝게 사망했으니......후세 사람들의 아쉬움의 대상이 될 완벽한 롤 모델이 된 것이 당연하다고 해야겠죠. 괜히 남자의 로망이 아닙니다. 삼국지 처음 읽었을때 한중 정벌에 불타오르고, 관우의 시원한 위군 털기(화살 독 긁기로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화끈하게 복수까지)를 보고나니 이제 허도만 털면 된다...라고 생각했는데.ㅜㅜ 아무튼 쥐는 까야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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