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문장을 쓸 때 전치사로 문장을 끝내지 말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야 뭐 영어로 글을 쓰는 기회 자체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이 규칙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이 일반적이겠지만 적어도 미국인들은 학교에서 작문에 대한 교육을 받을 때 선생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나 봅니다.
그런데 이 규칙 자체는 타당한 논리가 근거가 있는 걸까요? 이 규칙을 처음으로 명시적으로 언급한 사람은 17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존 드라이든이었습니다. 그도 처음에는 자신의 문장을 전치사로 끝내는 데 별다른 거부감을 가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자 점점 라틴어의 영광에 자신을 맡기게 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됩니다.
사실 중세시대 혹은 그 이후로도 라틴어가 가진 위상을 봤을 때 드라이든의 라틴어 경도가 이해가 안 가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종교가 사회 전반에 위상을 떨치고 있었을 때는 뭐니 뭐니 해도 복음을 전하는 가장 적절한 언어는 라틴어였고 학문의 언어 역시 라틴어였습니다. 드라이던이 활동하던 시대를 기준으로 봤을 때 영어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배우지 못한 천한 백성들이나 쓰는 언어이던 때가 그리 오래 전이 아니었습니다. 라틴어는 오래 전부터 정교한 문법체계와 표준어휘 체계가 갖춰져 있었고 프랑스어도 한 동안 지배층의 언어로 쓰이면서 표준화가 일찍 일어났지만 그에 비해서 영어는 한때 오늘날 '
right'이라는 단어의 표기가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이어서 77개가 넘는 서로 다른 표기들이 사용되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reght,
reghte,
reht,
reit,
rethe,
reyght,
reyt,
richt,
ricth, 등등...). 라틴어는 오래전에 단 하나의 표기법 '
right (->
rectus)'로 이미 정리가 되어 있었을 때인데 말이죠.
드라이든의 전치사에 대한 이런 집착은 그의 라틴어에 대한 지나친 경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라틴어에는 전치사가 문장의 맨 마지막에 위치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드라이든은 영어 역시 이러한 라틴어의 전범을 따라야 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의 문장 맨 마지막에 위치하는 전치사에 대한 강박관념이 얼마나 심했는지 그는 이전에 자신이 썼던 작품들을 재 발간하는 경우 일일이 전치사로 끝이 났던 문장들을 다 고쳤다고 합니다. 젊은 날의 치기는 나중에라도 반드시 바로잡아져야 했습니다. 'the age which I live
in'은 'the age
in which I live'로 수정이 되었지요. 또 일단 자신이 영어로 쓴 문장은 종종 라틴어로 다시 번역을 해서 이상하지는 않은 지, 우아함을 유지하고 있는 지 점검이 되어야 했고 그 이후에 다시 영어로 재번역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전치사에 대한 증오(?)는 그 뒤 후대의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18세기, 19세기의 작가들도 대체적으로 이런 경향을 따르게 되면서 '영어 문장을 전치사로 끝내지 말라'는 격언 아닌 격언은 일종의 굳건한 규칙으로 점차 자리를 잡아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존 드라이든...전치사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었던 남자...--;;
그러나 드라이든의 이런 라틴어 무한사랑과는 별개로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좀 떨어집니다. 라틴어와 영어는 우선 그렇게 아주 가까운 언어들이 아닙니다. 둘 다 큰 틀에서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영어는 그 가운데서도 게르만어(Germanic languages)에 속해 있고 라틴어는 이탈릭어(Italic languages)에 속해 있는 언어입니다. 두 언어의 문법은 흠결 없이 자연스럽게 일대일 대응으로 섞이기 어려웠습니다.
원래 영어는 전치사를 문장의 맨 마지막에 붙일 수 있는 언어이고 전치사를 문장의 마지막에 붙여도 뜻이 달라지거나 비문이 되거나 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언어입니다. 드라이든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전치사를 문장의 맨 마지막에 남겨놓고도 잘 쓰였습니다. 물론 영어에서도 전치사를 문장의 맨 마지막에 남겨두지 않고 문장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하는 기준이 라틴어에서는 전치사를 문장의 맨 마지막에 쓰지 않기 때문이고 라틴어가 가장 정제되고 아름다운 언어여서 영어도 그것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라면 과연 그런 기준은 타당한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지요.
한 사람의 이상한(?) 집착에서 시작된 근거가 탄탄하지 않았던 규칙은 오랫동안 영어 글쓰기의 세계에 영향력을 끼쳐왔고 이제는 문장의 맨 마지막에 전치사를 쓰게 되면 작문 선생님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일이 되어 버릴 정도가 된 것입니다.
영어로서는 정말 자존심에 큰 상처(?)가 되는 일이 아니었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