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미녀와 야수] 시사회 후기입니다. 정식 개봉일은 내일입니다. 1991년 원작 애니를 보신 분들은 전혀 스포가 아니고 애니를 보지 못한 분에게는 글의 '4번 파트'가 약간의 스포로 될 수 있습니다.
1. "Spectacular, Spectacular!"
- 정말 화려합니다. 이 리메이크 버전 만의 장점을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영상미를 꼽아야 할 것입니다. CG와 미술, 의상, 카메라 워킹까지 상당히 역동적이고 에너지가 넘칩니다.
특히 91년 판 애니에서도 가장 화려한 넘버였던 'Be our guest'는 26년이 지난 이번 작품에서 더 빛납니다. [겨울왕국]의 'Let it go'나 [라라랜드]의 엔딩 파트가 담당했던 뮤지컬 영화의 방점을 또 하나 찍으려 노력한 흔적이 묻어납니다. 물론 감동은 그 두 작품에 미치지 못하나 화려함만 놓고 보면 그 못지 않습니다. '스펙타큘러! (화려한 쇼)'를 외쳤던[물랑루즈]에서 바즈 루어만 감독이 구현한 이미지를 떠올리시면 됩니다.
조명의 빛과 어둠을 강하게 활용해서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심리를 부각하는 것에 공을 들이기도 했습니다. 러닝 타임 내내 명암을 최대한 번갈아가는 연출 기조를 이어갑니다. 주인공인 '벨' 역의 엠마 왓슨의 얼굴이 그 덕분에 타 영화보다 더 예쁘게 비치는 이득을 얻기도 했습니다.
다만 영화 전체가 현란한 카메라 워킹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며 화려함의 강약 조절을 유려하게 하지 못한 부분은 아쉽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에겐 상당히 어지러운 영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즈 루어만의 또 다른 작품인[위대한 개츠비]에서 느꼈던 피로감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게다가 노래가 아닌 액션 시퀀스에서는 이런 '화려함'이 그다지 유용하게 쓰이지 못하면서 긴장감을 크게 형성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곤 합니다.
2. 음악, 구관이 명관
- 영상 쪽에서 균형을 잡는 것에 아쉬움이 있었다면 영화 속 넘버들 대부분은 2시간 내내 귀를 즐겁게 해줍니다. 그중에서 91년 판 애니보다 인상적인 곡이 있다면 '개스톤' 입니다. OST 대부분이 91년 때보다 편곡 면에서 소위 '빠방'해졌습니다. 그 중에서 최신식 때깔을 가장 잘 섭취한 넘버가 '개스톤'입니다. 넘버들 중 드물게 3/4박자 왈츠 곡으로서 우아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아름다움을 현현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91년 버전과 마찬가지로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담당한 넘버 'Beauty and the beast'는 영상미 면에서 과거에 비해 오히려 심심해졌습니다. 덕분에 가사 내용과 음악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만듭니다. 이것이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애니보다 만듦새가 떨어져서 그런 것인지는 관객 각자의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외에 수록된 대부분의 곡이 수십 년 전 구닥다리 노래로 이뤄졌지만 곡의 생명력은 전혀 상하지 않았습니다. '인어공주'나 '라이언킹' 같은 90년대 타 디즈니 애니 노래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상대적으로 적게 소비된 까닭에, 리메이크 넘버지만 신선하게 들리는 효과를 얻습니다.
애니와 큰 차이점이라면 이번 넘버는 대부분 배우가 직접 불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애니의 '전문 뮤지컬 적 발성'이 다소 거슬렸던 저에겐 이번 작품이 더 좋았습니다. 엠마 왓슨이나 엠마 톰슨 모두 무난하게 소화해내고 다른 남자 출연자들 역시 대부분 담백하게 자신만의 색깔을 노래합니다.
반면 이번 영화에서 새로 만든 곡들은 기복이 있습니다. 야수의 테마 곡인 'Evermore'은 노래도 귀에 잘 안 꽂힐뿐더러 노래 시퀀스는 플롯에 굳이 없어도 될 정도로 이물감과 이질감이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영화 주제곡 격인 'How Does A Moment Last Forever'는 여러 번 영화에 등장할 정도로 양질의 멜로디와 고개가 끄덕여지는 가사로 이뤄져 있습니다. 특히 91년 판과 마찬가지로 주제곡을 부른 셀린 디온의 버전은 대단히 빼어납니다. '26년'이라는 시간 차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디온의 목소리는 영화가 얘기하는 '불멸의 아름다움'을 대변해주는 듯 합니다.
영화는 아직 미개봉 상태이나 OST는 이미 발매 중이니 지금도 들을 수 있습니다.
3. 죽은 캐릭터는 살리고, 살려야 할 캐릭터는 죽이고
-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를 꼽는다면 벨의 아버지 '모리스'입니다. 애니 판에 비해 '괴짜'스러운 면보다 멋진 아버지의 모습이 더 부각됩니다. 어쩌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남자 캐릭터 중에서 가장 멋지다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외모가 전보다 업그레이드된 까닭도 있겠지만 역할을 맡은 케빈 클라인의 연기가 좋습니다.
소위 티키타카를 담당하는 '개스톤-르푸', '양초-시계', '포트-칩'의 플레이 점수를 매기자면 이름을 나열한 순서대로 호감입니다. 개스톤-르푸 콤비는 애니 때와 비교해서 생동감이 증가했고 나머지 두 커플은 91년도 버전에서의 모습이 더 낫습니다. 특히 '칩'은 91년 버전에서 씬스틸러에 가까운 매력도를 지닌 목소리 연기였지만 이번 영화에서 그만큼의 폭발력을 기대하시면 실망할 확률이 높습니다.
문제는 남녀 주인공 두 사람이 큰 매력을 지니지 못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우선 '야수'는 야수 본능과 싸우고 고뇌하는 모습이 애니 판 보다 적게 나옵니다. 벨의 캐릭터 설명은 과거 판보다 상세히 묘사되나 그 캐릭터 완성도가 종반 부까지 이어 가지 못합니다. 이런 언발란스로 인해 두 사람이 서로 사랑에 빠지는 여정이 크게 와닿지 않습니다.
이번 버전이 '사랑'보다는 자유, 평등, 용기 등 다른 가치를 부각해서 중반부까지의 대사를 만들었기 때문일까, 전반적으로 사랑의 과정을 묘사하는 데에 취약합니다. 설상가상 종국엔 사랑으로 매조지 됩니다. 이 오락가락하는 형국에 투 톱 주인공 모두 캐릭터 성을 잃고 맙니다. 각자의 개성을 발아시키기 위해 한 사람은 '클로즈업에서 롱쇼트'로, 다른 한 사람은 '롱쇼트에서 클로즈업'으로 대조시켜 영화의 포문을 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영화 속 '장미'처럼 시들어버립니다.
4. 또 하나의 '뷰티 인사이드' (구 애니를 보지 않으신 분은 약간의 스포가 될 수도 있습니다)
- 91년도 버전의 이야기 구조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이 메시지를 만드는 과정은 여러 의문을 낳게 합니다. 만약 야수가 수만 개의 어떤 것을 가진 왕자가 아니거나, 야수와 그의 성이 지금처럼 '노동을 하지 않아도 밥이 나오는 시스템'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또는 '미녀'의 외모가 예쁘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영화의 시작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중히 여겨야 한다는 일침으로 시작되나 정작 야수와 벨이 사랑을 이루고 완성하는 단계에서 내면의 미는 크게 부각되지 않습니다. 이건 앞서 말한 '캐릭터 성'의 부재가 가져온 현상이기도 합니다. 원작 동화가 수백 년 전에 만들어졌음에도 이유가 있고요.
원인이야 어떻든 결국 '어떤 얼굴'인가가 최고의 관심사로 등극하도록 작품이 흐른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야수가 사람으로 변할 때 우리 모두는 그가 어떤 외모로 등장할까 집중합니다. 마법 풀린 도구들이 실사 인간으로 변할 때도 우린 어떤 '배우(의 얼굴)'인지만 기대하게 합니다. 이건 한국 영화 [뷰티 인사이드]나 [써니]가 빠졌던 함정과 같습니다. 관객들의 마음을 영화의 주제나 메시지에 갖다 놓지 못하고 (바뀌는) 외모에만 관심이 가도록 만듭니다.
물론 영화 속에서 인간의 내면을 외모에 구애받지 않고 가시적 형상으로 구현하고 판단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다만 수백 년 지난 원작 동화를, 그리고 26년 전 작품을 리메이크하며 'Beauty'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취지의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면 예전보다 진화된 메시지 전달 방식을 장착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0. 추천 여부
- 저는 추천합니다. 좋은 음악을 가지고 만든 뮤지컬 영화라서 음악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은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5점 만점에 3점 정도의 평점을 주고 싶습니다.
- 영상은 91년 당시 삭제되었다가 이후 확장판에 실렸던 넘버 'Human Again'입니다. 이미 발매된 2017년 버전 OST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번 실사판에서도 이 곡이 빠져있습니다. 힘이 넘치면서도 인간이 되고픈 간절한 감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아하는 곡입니다. 왜 이번에도 이 시퀀스를 제외했는지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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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말 예약했는데 왓챠에서 보니 제 예상평점이 3점 나오더군요.
시사회 후기도 다 뻔한 광고식이라 실제로 어느정도일까 궁금하던차에 좋은 글 감사합니다.
결론은 영상/음악빨로 영화관에서 보기 좋은 영화. 제 예상평점도 기본 3점에 눈/귀호강하면 0 .5 점더해서 최종 3.5점을 주지 않을까 싶군요. 크크
그리고 왓차 예상평점이 왜이래.. 라고 찾아봤더니 이영화의 감독인 빌 콘돈(음란마귀야 물럿거라!) 감독 작품에 브레이킹 던 part1/2 가 있네요. 맙소사 크크크크크크크
음 그 정도 나오실 거라 예상되네요. 크크.
다른 영화랑 비교했을 때 물랑루즈 보단 확실히 못하고 위대한 개츠비 보단 낫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라라랜드는 고스링의 피아노 곡과 엔딩 곡 외의 노래들이 그리 와닿지 않았는데 미녀와 야수는 대부분 고르게 좋습니다.
본문에도 썼듯이 셀린 디온의 목소리가 가장 좋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