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알 똥팔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교육과 매춘의 도시 대치동에서
오늘도 치즈반 쇼킹반 순살을 21000원에 사먹은 리듬파워근성입니다.
1년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https://cdn.pgr21.com/?b=8&n=58463지난 이야기를 짧게 요약하면
태어나서 거의 처음 쓴 영화 리뷰 글 하나 때문에
<영화>랑도 안 친하고
<웹툰>은 딱 두 작품 봤고
<글>을 쓰는 것도 피지알같은 데서 쓴 거 빼고는 해본 적이 없는데
심지어 인터넷도 잘 안하는 제가
무려 <영화> <리뷰> <웹툰>의 <글> 작가가 된 이야기 입니다.
오늘은 그 후 아주 오오랜 시간이 지나
웹툰 작가로서 엣헴 지난 1년간 생존했던 이야기를 들려 드리려고 합니다.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다구!!!!
1.
이 일을 1년이나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첫 계약기간인 3개월을 채우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순간까지도 믿을 수가 없네요.
저 같은 놈이 이 정글같은 세계에서 1년을 버티리라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성당에 들어 '이렇게 될 줄 알고 계셨나요?' 하고 물었지만 성모께서도 혀만 차실 뿐 답이 없으시더라구요.
2.
연재 반년 쯤 지나서 알게 된 사실인데
프로 웹툰 작가가 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개인이 혼자서 만화를 그린 뒤 인터넷에 올리면 당신이 바로 만화가! 지만
정식으로 연재처에서 고료를 받아가며 주기적으로 연재를 하기 위해서는
깐깐한 프로듀서들의 검증을 거쳐
연재처의 아주 혹독한 심사를 마쳐야 비로소 노동의 댓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등단한 이후에도 짧은 계약기간 동안 계속해서 자신의 역량을 증명해야 하는
아주 춥고 무서운 곳인데 그 어디에나 음지는 있듯이
편의점에 담배사러 온 백수처럼 연재를 시작하게 된 저 같은 인간도 있습니다.
갑자기 숙연해 지네요.
3.
만화가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허리디스크, 목디스크, 소화기질환, 탈모, 만성피로, 치질, 운동부족 등의 산재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입니다.
저는 지난 1년 동안 그것을 피하기 위해
가장 사랑하던 중역 가죽 의자를 버리고 시디즈를 샀고
게임용 키보드를 버리고 기계식 키보드를 샀고
커브드 모니터로 듀얼을 만들어 봤지만
결국 게임 환경을 개선하고 있었구나를 깨닫고 더욱 열심히 게임에 매진하는 저를 보면서
나야 말로 만화가와 가장 가까운 사람임을 느꼈습니다.
이젠 더 오래 게임할 수 있어요!
4.
첫 재계약 때 원고료가 크게 올랐습니다.
이런 임금 인상폭을 저는 NBA을 제외하고는 본 적이 없어요.
연봉 5%를 올리기 위해 온갖 똥꼬쇼를 했던 지난 오욕의 세월들이 떠올라 더욱 저를 감동케 했습니다.
이 일은 저의 작가 인생(엣헴) 에 아주 큰 전환점이 되었는데요.
첫 계약기간 동안은 '이게 대체 뭘까?' '이런 걸 쓰면 돈을 준단 말인가?' '세상에 이런 산업이 다 있구나'
하던 제가
그래! 본격적으로 한 번 해보자!
드립의 끝을 보여주마!
이것이 바로 패러디다!
분량을 폭발시키자!
하며 양손을 걷어부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재계약 기간부터 저는 원고에 혼을 싣기 시작했습니다.
5.
그리고 실패했습니다.
이번 원고는 하늘을 뚫을 원고라며 패기롭게 썼던 회차들이 줄줄이 망하면서
저는 첼시를 보는 무리뉴 감독 같은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보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6.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막여우의 가르침을 수없이 되내이며 word 2013에 대고 으르렁 으르렁 으르렁 댔습니다.
어떻게든 웃긴다! 한 놈만 걸려라!
7.
죄 없는 그림 작가님이 먼저 나가 떨어졌고 저도 나가 떨어졌습니다.
8.
오전 10시에 출근해서 저녁 7시에 퇴근.
테헤란로에 해가 저물면 알몸으로 달빛을 흠뻑 받은 채 부업인 웹툰 작가로 변신합니다.
정의로운 패드리퍼를 허락받은 저는 보통 새벽 3시까지 글을 쓰는데요.
이게 처음에는 키보드만 잡으면 원고가 술술 나왔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니터 앞에서 멍때리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디아블로는 왜 이렇게 재밌나요?
9.
머리가 안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것 때문에 더 무리를 하게 되고, 머리를 식힌답시고 디아블로만 하고
결국 몸에 과부하가 걸려 탈진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타고난 천하장사, 영원한 골목대장 같았던 제가 과로로 인한 탈진이라니
자다가도 통탄할 일이라며 책상을 십여 차례 내리쳤습니다.
제 인생에서 잊혀지지 않을 치욕이었지만 사실 그림작가님도 저도 적지 않은 나이였죠.
세 번의 초장거리 출장 와중에 무려 여섯 편의 원고를 썼던 작년 늦여름
저는 결국 길을 걷다 극심한 어지러움을 느끼고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10.
항상 나이에 비해 건강한 신체를 갖고 있다는 소견을 들어 왔는데
불과 1년 사이에 저는 제 나이보다 훨씬 늙은 건강 나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혈관은 만신창이에 부신은 이미 너덜너덜해진 상태입니다.
높은 자리에서 격무에 시달리는 분들이 받는다는 그 클리닉을 이제 저도 받습니다.
뭔지 모를 복잡한 성분의 링겔을 팔뚝에 꽂고 제 자리에는 두툼한 약봉지가 쌓여 갑니다.
11.
예전 저의 저녁은
퇴근 후에 스2를 보고 친구도 만나고 데이트도 하고 피지알에서 찌질대기도 하고
심심하면 인터넷에서 야... 아니 제가 지금 무슨 소리를... 일본.. 아니 키보드가 왜이러징...
주로 서재에 앉아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행복한 저녁을 보냈는데
퇴근 이후 모든 시간이 이 부업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마감이라는 단두대는 꼬박꼬박 찾아왔고
결과물은 매주 대중에게 평가되고
해내고 싶은 것은 하늘 위에 있는데
정작 내가 만들어낸 것은 지렁이가 밟고 지나가는 수준.
아침 거울 앞에서 면도를 멈춘 채
그저 재밌겠다고 시작한 이 일이 과연 내 자신을 즐겁게 하고 있는가
나의 능력부족 때문에 무고한 다른 사람들을 고생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 걸까
저는 아주 근본적인 물음에 마주쳤습니다.
12.
그 때 팬레터가 왔습니다.
13.
팬레터가 계속 왔습니다.
팬아트도 왔구요.
놀라지 마십시오. 아이스크림 쿠폰도 왔습니다.
계속 옵니다.
오! 주식에서 대박이 나셨군요?!
와! 포르쉐 사셨어요?
아, 저요? 저는 팬레터 받는 사람입니다.
제가 모르는 누군가가
제가 모르는 곳에서
매주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제 부신피질을 끊임없이 일으켜 세웁니다.
14.
힘드냐구요? 전혀요.
이 일을 왜 하냐구요? 퍽퍽헉헉 이 맛에 합니다.
저의 퇴근 시간은 갈수록 늦어지고 머리는 계속해서 안 돌아갈 것이며
커피와 담배를 붙잡고 모니터 앞에서 내일도 모레도 끝없이 멍때리겠지만
15.
저는 이제 알아요.
저는 지금 근성의 영역에 있고 이 영역에서 저는 절대로 지고 싶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조금이라도 더 잘하고 싶어요.
거의 일년 치가 쌓인 저희 만화 목록을 보며 저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건강도 잘 관리할 거고 본업도 더욱 잘할 겁니다. 부업도 반드시 잘 해낼 겁니다.
단 한 마리의 토끼도 놓치지 않을 겁니다.
제가, 저희 만화가
어디로 갈지, 어떻게 끝날지는 모르겠어요. 그러나 어디서 왔는지는 잊지 않을 겁니다.
저는 그저 '거 참 재밌겠다' 싶은 무책임한 인생의 주사위로 결정을 내렸지요.
그 결정을 반드시 잘한 결정으로 만들 겁니다.
제 인생이 어디로 갈지 미궁에 빠졌을 때 저는 가장 행복하니까.
어떤 선택도 어떤 결과도 저는 받아들일 겁니다.
16.
저는 영화 리뷰 웹툰의 글 작가입니다.
그리고 살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