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리디에서 구입한 만화책(e북)이 대략 2천 권쯤 됩니다. 오늘은 비교적 최근에 산 책들 중에서 권할 만한 책을 추려서 짤막한 감상과 함께 올려 봅니다. 완결작만 소개하려다 마음을 바꿔서 미완결작도 같이 언급합니다. 순서는,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대략 위에 있을수록 추천도가 높다고 생각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데드데드데몬즈 디디디디디스트럭션] 아사노 이니오 / 12권 완결
학원물로 시작해서, 코스믹 호러가 되었다가, 노골적인 사회정치물이었다가, 결국 SF답게 끝난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혐오와 따스한 애정이 공존하는 기묘한 작품.
[어른이 되어도] 시무라 타카코 / 8권까지 출간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주변을 파멸로 이끄는 여자라면, 그녀야말로 진정한 팜므파탈이 아닐까. 비현실적 현실 속에서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놓는 솜씨가 가히 일품이다.
[원나잇 모닝] 오쿠야마 케니치 / 11권까지 출간
제목만 봐서는 흔해 빠진 성인만화 같은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따뜻한 작품인 걸까. 인간의 본능인 식욕과 성욕을 매개로 하여 다양한 변주를 선보이는 옴니버스 식 만화.
[별마다 피어나리] 손장원 / 단권
SF와 백합은 어째서 이다지도 어울리는 소재란 말인가. 설정놀음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면 걸작이 나온다는 사실은 톨킨이 증명했고, 지적유희를 극단적으로 끌고 가면 걸작이 나온다는 사실은 에코가 증명했는데, 둘 다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작품.
[록은 숙녀의 소양이기에] 히로시 후쿠다 / 5권까지 출간
유구한 전통을 지닌 마리미테 식 백합물의 우아한 배경 속에서, 락을 향해 냅다 풀악셀을 밟는 격렬한 만화. 타오른다 하트, 불타오를만큼 히트!
[뱀피어즈] 아키리 / 8권까지 출간
정적인 그림체로 그려내는 애정행각. 뭔가 묘하게 갈피를 잡기 힘든데, 바로 그 점이 매력적인 만화다.
[추락 여고생과 폐인 교사] sora / 18권까지 출간
남교사와 여학생 조합은 너무나 식상하다 못해서 지난 세기에 죄다 멸종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좋은 의미로 그런 편견을 깨준 작품. 개그를 단순한 양념이 아니라 균형감각을 잡는 재료로 잘 활용한 덕분에 장기 연재 중에서도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았다.
[메카니컬 버디 유니버스], [백야드 정크 유니버스] 카토 타쿠지 / 각 단권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짤방으로 더 유명한 작가의 작품집. 설정의 즐거움만으로도 돈 주고 살 가치가 확실하다. 다만 정식으로 연재되는 후속작들은 하나같이 미묘함.
[충사] 우루시바라 유키 / 10권 완결
전개가 다소 허술하고, 그림체는 올드하며, 딱히 궁금하지도 않은 설정을 등장인물이 떠들어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독특한 몽환성을 잘 살린 작품. 작품 전반에 흐르는 담담한 분위기만으로도 읽어볼 가치가 있다.
[학생회에도 구멍은 있다] 무치마로 / 8권까지 출간
오직 캐릭터의 힘으로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화장실 유머의 극한. 이런 만화는 캐릭터의 힘이 빠지는 순간 나락으로 가기 일쑤인데 아직까지는 잘 버티고 있다.
[철야의 노래] 코토야마 / 20권 완결
약간 개성 있는 러브코미디였다가, 갑자기 배틀물로 전환할 태세를 보이더니, 스릴러로 바꿀까 말까 간을 보다가, 다시 러브코미디로 복귀하는 꽤나 기묘한 작품. 아무래도 작가가 편집부와 몇 차례 싸운 게 아닌가 싶다.
[깨끗하게 해주시겠어요?] 하토리 미츠루 / 10권 완결
세탁소라는 다소 특이한 공간을 소재로 한, 너무나 흔한 일상 이야기. 하지만 그 일상의 무게가 균형을 갖추어 지나치지 않다. 다만 작가는 그저 예쁜 주인공을 그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무르시엘라고] 요시무라 카나 / 14권까지 출간
원펀맨에서 주인공의 성별을 바꾼 후 막나가는 센스와 지저분한 아저씨 개그를 두 숟갈씩 첨가하면 나올 법한 만화. 오늘 언급한 만화 중에서 짧게 설명하기 가장 어려웠다.
[그 비스크 돌은 사랑을 한다] 후쿠다 신이치 / 14권까지 출간
러브 코미디를 근간으로 한 코스프레 만화. 대략 13권쯤에서 마치 스머프 세계관에다 진격의 거인을 쑤셔 넣은 것처럼 무리수를 던지는 바람에 작품 전체를 말아먹을 만하다가 간신히 되살아난 느낌.
[코타로는 1인 가구] 츠무라 마미 / 10권 완결
사랑해서 마침내 가족이 되다. 식상한 소재와 뻔한 패턴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늘어지지 않고 10권이나 이어지는 건 캐릭터들이 살아있기 때문. 행복해지고 싶을 때 권하고 싶은 책.
[4월은 너의 거짓말] 아라카와 나오시 / 11권 완결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바로 아래 작품의 남녀 버전. 소재는 피아노.
[너와 잇는 물거품] 유아마 / 6권 완결+번외편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바로 위 작품의 여여 버전. 소재는 소설.
[나를 먹고 싶은, 괴물] 나에카와 사이 / 7권까지 출간
침울한 분위기와 음울한 괴물을 엮어내고 그 위에 아름다움을 끼얹은 작품. 다만 7권을 보면 이후 전개에 따라 작품 전체의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릴 수 있는 분기점에 서 있는 기분이다.
[지옥에 떨어져, 오빠] 네지가 나메타 / 3권까지 출간
정신병자들이 서로 사랑하고 증오하면서 괴로워하는 이야기. 나는 이런 미친 이야기가 좋다.
[매월 정원과 집주인 포함] 요도카와 / 4권까지 출간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5단계에서 ‘위기’를 빼 버리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백합물. 위기가 있다면 그건 항상 극복 가능한 작고 조그만 위기일 뿐. 예쁜 여자를 보는 것으로 약간의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이 부끄러운 건 아니잖아?
[최근 고용한 메이드가 수상하다] 콘부 와카메 / 8권 완결
식상하면서도 나쁘지는 않은 개그물이지만, 3권쯤으로 끝냈어야 할 분량을 8권으로 늘리다 보니 재미있으면서도 지루하다.
[봄을 쓰다, 벚꽃 피는 이 방에서] 토쿠오츠무 / 2권 완결
죽은 연인을 떠나보내는 이야기. 살아 있는 자는 살아가야 하는 법.
[해피 엔드] 아리타 이마리 / 5권 완결
동글동글 귀엽고 독특한 그림체와, 상반되는 그로테스크함으로 엮어내는 서스펜스. 다만 뒤로 가면서 작가 자신조차도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린 기색이 역력해서 아쉽다.
[소설가 후미의 낙원] 사토마루 마미 / 2권 완결
단지 꼴림을 위한 만화라는 본질적 한계를, 순수하게 그림의 힘으로 돌파하는 작품.
[파티피플 공명] 오가와 료, 요츠바 유토 / 19권까지 출간
처음에는 확실히 재미있었지만 이제는 그저 관성으로 사는 작품. 갈수록 변죽만 울린다. 내 공명은 그러지 않아!
[나의 소년] 타카노 히토미 / 9권 완결
그림이 아름답다. 하지만 나는 만화를 보고 싶었던 거지 일러스트를 보고 싶었던 게 아닌데.
[부르잖아요, 아자젤씨] 쿠보 야스히사 / 16권 완결
적당히 줄을 타다가 급기야 도를 넘어버린 바람에 맛이 가 버린 만화. 그러나 엔딩은 좋은 의미로 감탄이 나온다. 정말 미쳤구나.
[대전 감사합니다] 에지마 에리 / 6권까지 출간
시작은 괜찮았는데 왜 뒤로 갈수록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걸까. 이러다간 전형적인 용두사미가 될 듯.
[우사야마 여고 2학년 1반!!] 유키 시미즈 / 3권 완결
평범하다 못해 평이한 개그물. 내용도 잘 기억 안 남.
[마법소녀 오브 디 엔드] 사토 켄타로 / 16권 완결
기괴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에 반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작가의 설정놀음과 자뻑으로 완결되었다.
[내 최애는 악역 영애] 아오노시모, 이노리 / 8권까지 출간
설정과 캐릭터의 힘으로 시작되는 작품은 연재가 길어지면서 서사를 도입하는 순간 망가지기 일쑤다. 유감스럽게도 그러한 사례집에 들어갈 만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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