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결혼 연락을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고 어렵고 민망하기도 해서 질문을 남기려고 했는데요. 알 수 없는 가을감성과 새벽감성이 더해져 오랜만에 글을 써버렸습니다.

예전부터 사람들에게 연락하는 것이 참 어려웠다. 스무살을 앞둔 때쯤이었나, 이런저런 고민들이 참 많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 고민을 말하는 것이 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철저하게 속내를 감추고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게 되었다. 여러 의미에서 아싸에 가까운 성향도 큰 몫을 했다.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은 유독 피로했다. 잘난 것도 없어서 SNS도 계정만 만들어놓고 한 적이 없다. 실제로 대학을 졸업하고 너무 힘들고 오래 알아온 구성원에게 실망하는 등의 이유로 작은 모임과 아예 연락을 끊기도 했다. 나답게 무슨 칼같이 끊진 못하고 피하면서 끊게 되었다. 연락이 오는 것은 주로 반갑지만 나를 몹시 피로하게도 한다. 어릴때부터 가족들끼리 연락을 자주 하는 문화도 아니었고, 생일도 챙기지 않았고, 연락이 어려운 원인에 대해 나름대로의 분석을 더 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보니 별 관련이 없는 것 같아서 생략해야겠다.

연락하는 것은 참 어렵다. 지금은 일할 시간이니까, 쉬어야 할 점심시간이니까, 이제 퇴근할 시간이니까, 어느새 저녁시간이니까, 더 지나면 어떤 사람들은 잠들 시간이니까. 연락을 해서 답장이 오지 않으면 상처받을테니까. '그냥 연락'한건데 반가운 대답 대신 용건이 뭔지,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볼까봐. 혹시 귀찮아할까봐, 그 미묘한 귀찮음을 섬세한 내가 느낄까봐. 갖가지 이유로 연락을 해보려다가도 다시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휴대폰 연락처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쉽게 연락할 사람이 없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딱히 연락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만, 연락이 오면 난 늘 반갑다. 간혹 많이 반갑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 반갑게 연락에 응한다. 많은 경우 나는 '미리 연락을 드렸어야 하는데 생각만 하다가 연락을 못 해서 죄송'한 마음도 표현한다. 어쩌면 나는 무심한 것도 맞고 다른 사람들에게 큰 관심이 없는 것도 맞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 연락이 오면 반갑고 재밌는 것은 다시 말하지만 사실이다. 따라서 나는 읽씹도 안읽씹도 절대 하지 않고, 일부러 안 읽다가 늦게 답장을 하는 일도 거의 없으며, 대부분의 대화에서 마지막까지 답장을 한다.

어느덧 주변 사람들이 결혼한다고 종종 연락해왔다. 연락이 끊긴(애초에 난 연락도 하지 않지만) 동기들에게 결혼 연락이 올 때도 나는 성심성의껏 축하와 격려의 답장을 보냈다. 내 마음 속에는 '다들 이럴 때만 연락하네'가 있었던 것도 같다. 정확하고 솔직하며 과격하게 표현하면 결혼을 위해 수금하려고, 하객 1인이 필요해서 연락하는구나, 결혼하고 나면 왜 다른 결혼식에는 더 이상 오지 않을까 따위의 생각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어느 순간 무슨 깨달음을 얻었나, 최근 몇년 사이에는 오랜만에 연락하는 당사자는 얼마나 어렵고 민망하고 수고스러웠을지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었다. 내가 곧 결혼을 하게 되어서가 아니라(진짜 아님), 누구보다 연락을 안하는 나는 특히나 그렇게 연락의 어려움을 이해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허나 지인이라고 하기에도 어려운 누군가의 성의가 부족해보이는 모바일청첩장을 받고 의례적인 그러나 친절한 대답을 한 다음 고민 끝에 축의도 참석도 하지 않은 적도 딱 한 번 있다. 문제는 그 뒤로 그를 마주칠 일들이 있었다는 것인데, 세상에 참 쉬운 일이 없다.

결혼식을 하기로 결정한 중요한 이유는 다름 아닌 연락이었다. 결혼식을 안하고 살아도 그만이고 간단하게 가까운 일가친척과 극소수의 친구(친구가 그다지 많지도 않음)만 불러서 작은 호텔 연회장?에서 결혼식을 할 생각이 있었다. 요새 말하는 작은 결혼식이 아니라 사실상 안하는 수준으로 하려고 했다. 주목받는게 달갑지 않아서 결혼식을 안해도 괜찮았고, 딱히 주인공이 되고 싶지도 않고, 여자친구가 결혼식에 대한 환상도 없었다. 오히려 결혼식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것이었다. 무엇보다 여기저기 연락을 안해도 되니까. 그런데 유독 근래 결혼 적령기여서 그런지 오랜만에 (특히 나이대가 있는)누군가를 만나 근황을 주고받다보면 여자친구가 있다는 나의 대답에 결혼에 대한 질문이 자동으로 나왔다. 그때마다 '저는 이런저런 이유로 여자친구와 생각이 같아서 결혼식을 안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아니 결혼식을 왜 안해, 그래도 결혼식은 해야지', '좋은 소식 있으면 꼭 연락해라.'가 연출되었다. 결혼과 결혼식은 분리될 수 없나? 같은 고찰은 불필요한 것 같고, 이런 관심들은 당연히 너무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호텔 연회장 결혼식'을 한 다음에도 비슷한 질문들이 이어질 것이 예상되었다. '혹시 결혼했어?', '저희는 결혼식을 이렇게 작게 했어요', '왜냐하면 결혼식을 딱히 하고 싶지도 않고', '내가 축의라도 할게', '아뇨 이미 끝났고 축의는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그 뒤로 긴 대화들. 오랜 기간 같은 질문을 듣고 반복적인 답변을 할 생각을 하니, 이를 예방하기 위해 '호텔 연회장 결혼식'을 하고 감사편지처럼 '우리가 이렇게 결혼을 했습니다'라고 알리는 '연락'을 할까, 혹시 답장으로 축의금 계좌를 알려달라고 하면 알려줘야하나, 차라리 감사편지에 축의금 계좌를 써야하나 그건 좀 아닌데, 온갖 고민을 하다가 결국 결혼식을 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대충 말하자면 나는 결혼식을 연락 때문에 하기로 결정했다고 봐도 될 것이다.

결혼식장에서 결혼 날짜를 잡고 나오며 바로 찾아온 것은 연락에 대한 고민이었다. 한참 결혼식이 남은 지금부터 미리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야할까? 그렇다고 몇 달 뒤 다시 결혼 연락을 하면 결국 그때 결혼하려고 미리 연락한거라고 생각할텐데. 그건 그렇고 처음에 연락을 하면 근황토크를 할텐데, 결혼식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말을 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결혼 때문에 연락한 것이 아닌 것처럼 매우 중대한 근황은 숨겨야 하는 걸까? 나중에 결혼한다고 연락하면 지난 번 연락할 때 왜 결혼 이야기는 없었는지 오히려 부자연스럽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이따금 하다가 사실상 아무에게도 연락은 하지 않고 어느새 나의 결혼은 5주 앞으로 다가왔다. 더 이상은 피할 수 없는 연락. 나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연락을 하지 않는 편이다. 사람들에게 먼저 가능한대로 전화를 하자. 전화를 하기 전에는 불쑥 전화를 그것도 오랜만에 거는 것은 무례할 수 있으니 문자를 보내자. 나이대가 있는 분들에게는 종이청첩장을, 직접 뵙지 못해도 의사를 묻고 우편으로라도 보내자. 모바일청첩장은 1~2주 정도 간격을 두고 따로 보내자. 결혼식에 축의나 참석을 해주신 분들에게는 반드시 감사연락을 하되, 너무나 판에 박힌 것처럼 하기보다 가능한대로 이름이라도 바꿔서 마음을 나타내자. 이래서 내가 연락을 안? 못 하나 싶다.

그런데도 연락은 참 어렵다. 어디까지 연락을 해야 하는 것일까. PGR21 질문게시판을 찾아보니 애매한 사람들에게는 연락을 하는 편이 낫다는 것 같다. 그러니까 결혼 소식을 전하지 않아서 서운해하는 경우를 만들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게 중론이었다. 연락, 이왕 한다면 제대로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누구에게 연락할지 목록을 만들고 나니 연락을 안했는데 벌써부터 피곤하다. 결혼을 이미 한 친한 형과 통화를 하면서 여러 가지 경우의 연락사례들을 듣는다. 서로 아는 사람들이 많이 겹쳐서 형이라면 OOO에게 연락하시겠어요?, 물어도 본다. 원래라면 더 재밌게 듣겠지만 이제 내 일이어서 마냥 웃기진 않는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내가 지금 이 순간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격언을 떠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어렵지만 이건 정말 해야'만' 하는 연락이다. 오랜만에 연락해줘서 고마워요, 축하해요, 대답을 기대 안하는척 기대하면서. 떨리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연락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