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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08/06 17:15:26
Name 타임머슴
Subject ‘필살기’와 ‘기본기’
모처럼 소개팅이 있는 날.
여자는 미리 사둔 최신 유행의 투피스를 입고 미용실에 갑니다.
풍성하게 드라이를 하고 화장까지 미용사에게 맡깁니다.
생전 안 해보던 볼터치에 속눈썹까지 붙이고 여자는 아주 화려하게 변신합니다.
-나에게 첫눈에 반하게 만들겠어!!

‘초전박살’의 필살기를 준비하고 자신만만하게 약속장소에 가서 남자를 만납니다.
이렇게 여자의 각오는 단단했는데, 아뿔싸…. 남자가 박사학위 받은 정우성이네요. (미모와 지성이 퓨전한 것이죠.) 그는 너무 바빠서 넥타이도 못 매고 왔다는데, 풀어헤쳐진 셔츠 사이로 보이는 탄탄한 가슴이 더욱 섹시합니다.

여자는 준비한 자신의 필살기가 그의 기본기에 눌리는 것을 느낍니다.
진한 화장 아래 숨겨진 여드름이 불안하고, 속눈썹이 떨어질까 불안합니다.
차라리 그냥 평소처럼 청바지에 머리 묶고 나왔으면 이렇게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았을텐데 스스럼없이 편안한 그 남자 앞에서 자신의 향수냄새에 자신이 숨막혀옵니다.

결국 자신에게 반하게 만들고 말겠다던 여자의 의지는 꺾여 버리고 남자는 ‘다음에 한번 연락하죠’라는 말을 던지고 사라집니다…..필살기가 통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우리는 필살기를 준비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왠지 자신의 평소 실력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에서, 그리고 그만큼 그 일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그렇게 필살기를 준비하는 것이 과연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주는 것인지 회의가 들 때가 많습니다.

최근의 몇몇 스타 경기에서도 그런 것들을 봅니다. (박정석 선수나 박용욱 선수의 경우가 떠오르네요) 필살기, 새로운 전략….그러나 통하는 경우보다 안 통하고 막혀서 결국 패배로 이어지는 경우……그때마다 그 선수가 그냥 평소 스타일대로 경기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평소 스타일대로 하되, 대신 기본기를 더욱 충실히 하는 것. 스타에서의 기본기라면, 꼼꼼한 정찰과 방어, 성실한 유닛 컨트롤, 그리고 충분한 물량을 위한 멀티의 노력이라고 해야 할까요.

자기 스타일을 버리고 특정 전략에 올인하는 것은 위의 여자처럼 어색한 화장과 스스로도 역겨운 향수냄새에 자신이 질려버리는 일이 되는 것은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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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비
04/08/06 17:21
수정 아이콘
오..현란한 비유군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04/08/06 17:25
수정 아이콘
멋진비유와 완벽한 벨런스의 Enter신공..
죽이는군요^^
구웃~ 추게로 고고고고고잉~
비의종소리
04/08/06 17:34
수정 아이콘
그래도 필살기는 없으면 안되죠... ㅎ
발업리버
04/08/06 17:35
수정 아이콘
하지만 너무 기본기만 가지고 살면 그걸 바라보는 상대는 권태감에 사로잡히겠죠. 너무 자주는 안좋지만 가끔은 필살기도 섞어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기본기만 믿고 기본적인 운영만 하는 경기는 재미없거든요.)
04/08/06 17:46
수정 아이콘
언제나 평소 스타일대로하는 정석적인 운영은 솔직히 최근의 스타리그서 우승은 절대 못합니다...
최근에 우승한 박성준 선수도 좀 불리한 맵이거나 테란하고 상대할때는 필살기를 썼죠...
쏙11111
04/08/06 17:46
수정 아이콘
너무나 좋은 비유네요..^^
저도 이번 질렛배 스타리그결승 마지막 머큐리경기에서 느꼈었거든요..
본진에 갇힌 박정석선수의 몰래 3게이트...하지만 상대방은 1000개의 눈을 가졌다는 박성준 선수였기에 발각되고 게임은 원사이드하게 끝나
너무 아쉬움을 남겼었죠...
물론 정석이 안 통한다고 생각하였기에 나온 필살기일수도 있지만....아쉽다는...
그리고 필살기를 기본기화 해버린 선수는 우리 나도벙 나도현선수가 있죠..^^
04/08/06 18:02
수정 아이콘
멋진글인데요^^
바꾸려고생각
04/08/06 18:24
수정 아이콘
좋은글이네요. 그래도 필살기를 자연스럽게 사용할 정도가 된다면 그게 기본기가 되겠죠?^ ^
클레오빡돌아
04/08/06 19:23
수정 아이콘
전 좀 다른 생각입니다.
모든 선수가 평소 기본기 대로만 해왔다면.. 아마도 전 스타프로게이머들에게 빠지지 않았을껍니다.
SNU medic
04/08/06 19:25
수정 아이콘
랭킹 상위권 선수들을보면 필살기를 잘 사용하죠 문제는 필살기 기본기의 문제라기보다 가위바위보 싸움같네요... 김창선 해설위원의 말대로 필살기를 잘못썼다간 완전 망하는상황이 발생하기도하죠..
역전안나옵니
04/08/06 19:28
수정 아이콘
좋은글이네요..
Trick_kkk
04/08/06 19:53
수정 아이콘
비유가 참 재밌네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필살기로 망하는 수도 있지만 필살기로 흥하는 수도 있죠. 시기적절한 필살기는 전 언제나 환영입니다. 카멜레온처럼 자신의 색깔을 변화시킬수 있는 선수가 이 바닥?에서 더 오래 살아남을 것 같습니다.
타임머슴
04/08/06 21:21
수정 아이콘
필살기를 쓰지 말자는 것은 아니구요....준비해온 필살기에 스스로가 압도되어서는 안된다는 거죠....모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어떤 상황에서는 상대에 따라 자연스러운 대처를 하는 편이 더 나은데도, 준비해온 전략을 쓰기 위해 부자연스러운 대응을 하는 경우도 보이는 것 같아서요...
클레오빡돌아
04/08/06 21:33
수정 아이콘
아.. 그런뜻이였군요 ^^;
근데 자신의 스타일 자체가 필살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케샤르
04/08/06 21:47
수정 아이콘
매우 좋은 비유인거 같네요.
탄탄한 기본기에 간간한 필살기까지,
개인적인 생각으로 연인의 마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사로잡을 플레이어는!
최연성 선수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세상만사
04/08/07 03:49
수정 아이콘
벙커링 성공할 것 같은 선수 랭킹을 뽑는다면...예전에 어디선가 하는 걸 봤는데 김정민-최연성-서지훈 선수가 꼽히더군요. 안할 것 같은 선수들을 뽑았다나요^^;; 탄탄한 기본기를 가진 선수들이 필살기를 익히면 정말 무서워질 것 같습니다.
타임머슴
04/08/07 09:20
수정 아이콘
세상만사님//그 세 명의 선수들이 비밀리에 벙커링을 최적화될 때까지 연습한 후, 깜짝쇼를 보여준다면 재미있겠네요..그렇다면 그것은 일회용 으로 붙이는 속눈썹이 아니라 깊고 진한 속눈썹을 심는 것(?)이 되겠죠^^
04/08/07 10:39
수정 아이콘
박사학위 받은 정우성이라...
^0^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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