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격 살충 호이호이상이라는 만화가 있었습니다. 그 만화의 주인공 메카인 호이호이를 만든 머즈 제약이라는 가상의 회사가 나오는데, 이 회사가 벌인 다양한 짓거리들 중에는 '자신들의 제품으로 잡지 만들기' 가 있었습니다. 만화에서는 회사가 망하는 또 하나의 길로 묘사되었는데, 게임 회사인 컴파일은 이러한 잡지 컨텐츠 중 가장 유명한 disc station을 창조했습니다. Disc station - 이하 DS의 시작은 물론 컴파일만의 컨텐츠는 아니었습니다만, 이 잡지는 컴파일과 유저들의 소통도구이자 컴파일의 자사 컨텐츠 홍보물이 되어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린 88년부터 신세기 직전의 2000년까지 12년동안 27호를 발매하는 장수 컨텐츠가 됩니다. 디스크 스테이션은 적자였습니다만, 컴파일은 디스크 스테이션의 장점과 자신들의 자본력이면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는 자세였고, 실제로 화의신청을 하고 나서야 DS의 시대는 막을 내립니다.
컴파일이 한 다양한 짓거리들 중 긍정적인 것으로 탑을 꼽으라면 역시 한국지사 설립이 있겠습니다. 이 한국 지사 -컴파일 코리아-는 활동 기간이 짧았다는 점을 제외하면 '일본 게임회사의 한국 지사' 라는 의미에서 그 역할을 대단히 충실하게 수행한 지사입니다. 게임의 한글화를 넘어 게임대회이자 컴파일 페스티벌이었던 바요엔 투어의 서울 개최, 더빙의 안정성을 위해 MBC 성우극회와 통째로 계약, 첫 공중파 CF 송출(자기네들 주장에 따르면) 등등. 그리고 이 디스크 스테이션 한글판 발매야말로 컴파일의 지사의 역할의 방점을 찍는 것이었습니다. 잡지의 내용도 일부 KCT - 컴파일 코리아의 모회사 - 선전과 컴파일 관련 취재를 제외하더라도 꽤나 개념찬 내용이 많았습니다. 컴파일 관련 취재도 컴파일 팬 입장에서는 아주 핵심적인 내용이었고, KCT 선전도 저 유명한 날아라 슈퍼보드 - 환상서유기에 대해 4페이지 정도 할애한 터라 이해할 만한 기사. 그냥 두고 읽기에도 좋고 지금 봐도 애니메이션 리뷰 등은 꽤 괜찮은 퀄리티를 보여줍니다. 리나 인버스의 드래곤 슬레이브가 드래그 슬레이브라는 게 널리 퍼진 것도 한국판 디스크 스테이션 5호의 슬레이어즈 기사였었구요. 거기다 한글판이 발매된 시기의 컴파일은 뿌요뿌요 2의 울트라 대히트에 힘입어 발매하는 게임의 퀄리티가 급상승했고, 덕분에 수많은 고전게임의 명작이자 자신들 시리즈의 최고 명작들을 쏟아냈습니다. 그럼에도 판매는 그냥 그랬지만...
아무튼 97년 봄. 창간호가 발매됩니다. 19,800원. 계간이라 제 중고등학교 시절 용돈으로 다 모을 수 있었지 월간이었으면...
* 데빌포스 3
컴파일의 데빌포스 시리즈의 3번째 작품으로, 전작인 1,2와 이어지는 작품. 1과 2의 경우 시나리오 볼륨이나 캐릭터 밸런스 조정에 완전히 실패한 작품이며, 그러한 문제점을 개선시켜 만든 작품입니다. 특징이라면 아군의 동료가 죽은 상태로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면 죽은 동료는 절대 살릴 수 없다는 것 정도. 시나리오는 20스테이지라는 짧은 내용 치고는 울림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한마디도 안하는 터라 더 그럴지도.
* 마도전기 - 엉망진창 기말고사
컴파일의 대표작인 마도물어 시리즈의 당대 최신작이자, 지금까지 나온 모든 마도물어 중 단연 원톱. 스토리, 사운드, 게임볼륨, 캐릭터의 매력을 끌어내는 장치, 그래픽, 시스템, 레벨디자인 등 거의 모든 면에서 10년동안 이어온 마도물어 시리즈의 정수만을 뽑아놓은 게임. 오다 켄지의 시나리오를 통해 마도물어 핵심 구성원들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되고, 예전처럼 캐릭터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네버랜드가 아닌 - 싸움과 낭만이 있는 '판타지'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입니다.
동시에 마지막이기도 합니다. 이후에 나온 마도사의 탑은 외전, 철권 봄방학은 근본적으로 마도물어가 아니고 이것도 사실상 프리퀄, 세가새턴판 마도물어는 분위기를 일소하려다 마도물어의 매력 발산에 실패, 와쿠와쿠 역시 네버랜드형 게임. 개인적으로 컴파일이 이 기조를 잇는 마도물어를 만들지 못했다는 게 너무 아쉽고, 그만큼 컴파일 팬들에게 아련한 게임입니다.
* 봄버 고고 점프 히어로 외전 2
전형적인 고정화면형 액션게임. 점프 히어로의 경우 꾸준히 압박해오는 밑바닥을 피해 얼마나 위로 높이 점프해가는지 겨루는 게임입니다만, 외전들은 전부 그와는 상관 없는 게임입니다. 게임의 난이도는 컴파일이 언제나 그랬듯 쉬운 편.
* 환세쾌진극
컴파일의 오리엔탈 판타지(...) 환세시리즈의 외도작. 그 전까지의 환세 시리즈는 전부 RPG였는데 액션퍼즐로 변신.
전설의 에로책을 찾아나서는 스마슈의 모험담입니다만, 한국에서는 그림책으로 번역되어 스마슈의 캐릭터성이 크게 감소.
* 애플소스 스나이퍼
컴파일의 전형적인 화면 가지고 놀기 게임.
컴파일은 이런 게임을 꾸준히 만들어서 내놓았으며, 게중 일부는 '애플소스' 라는 이름으로 시리즈화하였습니다. 굳이 찾아서 할 정도의 퀄리티 있는 게임은 아니고, 당시 일본 개발자들의 센스가 어땠는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습니다.
* 퍼즐뿌요
디스크 스테이션에 꾸준히 수록되게 되는 뿌요뿌요의 변형작. 특정한 미션을 주고 그것을 뿌요뿌요 플레이를 통해 달성하는 게임으로, 뿌요뿌요 실력 성장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시나리오에 딱 맞춰서 미션을 해내지 않으면 그 다음부터는 똑같은 뿌요만 계속 나와 클리어 자체가 불가능한 점 등 실전에 전혀 먹히지 않는 룰이 가득.
게다가 뿌요뿌요 3에서 퍼즐뿌요의 완전체가 실리면서 더욱 인기가 떨어진 게임.
97년 여름에 2호가 발매됩니다.
* 환세취호전
앞서 엉망진창 기말고사를 표현한 대사를 그대로 환세시리즈에 복붙한 환세시리즈 최고 명작이자, 와레즈로 대표되는 한국 불법공유사이트의 상징. DS 발매 중지 이후 KCT는 DS를 통신판매를 했는데, DS 2호만이 재고가 없어 직접 CD를 복사해서 라벨을 붙여 배송했습니다. 그 사태의 장본인으로 유력하게 추정되는 게임.
심플하고 재밌는 시나리오와 나름 파고들기 요소를 갖춘 것이 게임의 강점. 이 게임을 하고 난 뒤 '다른 환세 시리즈를 해 보자!' 고 나섰던 사람들은 전부 낚였다고 합니다. 냉정하게 재미 없습니다. 사실 이 시기를 벗어난 컴파일의 게임은 대부분 게임이 어설픕니다. 물론 오랫동안 기다려준 한국 게이머들에게 Buggotten Saga를 선물한 손 모 회사보단 낫긴 합니다만...
환세 시리즈는 이 이후 패유기나 외전 무비 등만 남기고 대가 끊깁니다. 마도물어는 어쨌든 정체성을 유지한 외전이 있긴 하니 그나마 낫군요.
* 루루의 철권 봄방학
엉망진창 기말고사의 후속작으로, 마도물어의 형태가 아닌 인터랙티브 노벨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선택지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는 시나리오를 따라가면서 엔딩을 모으는 것이 목적인 게임. 마도물어 시리즈의 스토리를 잇는 정식 스토리 + 루루라는 캐릭터의 프리퀄 스토리 + 개그용 소모성 스토리(...) 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의 마도물어 팬들이 마도물어 캐릭터에 애착을 갖기 시작한 계기가 된 게임입니다.
원래 이 게임으로 전작에 간지를 뿜었던 셰죠와 루루가 조명되고, 인기를 확고이 하는 게 컴파일의 계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작의 퍼즐이 어려운 탓에 이 게임의 인기는 약했고, 같이 나온 환세취호전의 미친듯한 완성도 덕에 DS 2호 등장인물의 인기투표 1위는 아타호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 엘도라도
일종의 퍼즐액션 게임. 스카이림을 극도로 단순화하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예 동떨어진 설정과 캐릭터를 사용한 탓에 인지도도 인기도 없는 비운의 게임. 저는 당연히 해봤습니다만...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은 별로 안드는군요.
* 원숭이천국 2
전작 원숭이천국의 후속작. 전작에 3마리이던 원숭이가 5마리가 되었습니다. 이 원숭이들이 하는 짓을 그냥 구경하는 게임.
정말 구경만 하면 그것도 웃기는 일이니 바나나껍질 등을 설치하거나, 낮에 먹이를 주거나 하는 액션은 가능합니다. 밤에는 꼼짝없이 구경만.
먹이로는 제이슨 가면, 승소확인장, 슈퍼맨망토, 훌라후프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