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다 글을 써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되네요. 일단 홍진호라는 사람이 지금 선수로 있는 것도 아니고, 감독으로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자유게시판에 적습니다. 운영진께서 자의적으로 판단해서 처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혼자 놀던 한 고등학생, 홍진호를 보다
시작은 참 우연이었습니다. 룸메이트로부터 스타크래프트를 사람과 하는 법을 처음 배웠던 저는 소등되기 직전까지 룸메이트와 열띠게 스타크래프트를 하곤 했고(물론 공부는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공부할 때 저는 스타크래프트를 파고 있었습니다. 3월쯤부터 파서 계속 피터지게 붙었죠. 백 판쯤 붙어서 한 판 간신히 이기고 다시 몇십 판 깨지고... 그 때가 한창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1이 진행되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폭풍저그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이 바로 그 때였죠.
다른 거 다 집어치우고 멋있어 보였습니다. 끊임없이 몰아치는 방법으로 승리를 따낸다는 것이... 저는 그 때만 해도 한창 중2병에 걸려 있던 시기라(...) 미친 듯한 공격성과 극에 달한 스태미너를 내재하고 있었고, 그래서 딱 맞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제가 홍진호라는 사람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시작은 참으로 보잘것없었습니다. 게다가 그 친구는 주종이 토스였고, 저는 저그가 재밌어보여서 막 저그를 플레이하기 시작한 사람이었습니다.
6월 7일
패했죠. 3:2로 졌습니다. 그게 마지막 스타리그 4강이 될 줄은 그 때로서는 알 수 없었습니다만... 개척시대에서 통한의 지지를 쳤다는 걸 알게 된 건 다음날이었습니다. 몹시 안타까웠죠.
그 때쯤이었을 겁니다. 홍진호라는 사람이 어떤 경기를 했나, 어떤 스타일인가. VOD를 그가 이긴 경기를 중심으로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워낙 오래 전에 전성기가 와서 그런지 찾기가 쉽지 않더군요. 그러다 보니 많이는 보지 못했지만, 두 가지를 봤습니다. 2005년 스니커즈배 올스타전에서 이윤열을 상대로 거뒀던 3:2 승리와, 김준영을 상대로 벌였던 815 혈전. 815 혈전은 그 이후 두고두고 제가 틈날 때마다, 방학 때는 집에서 라면 먹으면서, 개학하고 기숙사에서 주말에 자유시간이 나면 그때 꺼내서 보는 경기가 되었습니다. 뮤탈과 뮤탈이 총천연색으로 물들었던 그 경기의 추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네요. 비록 그 경기가 벌어졌던 2005년에는 스타판 자체를 몰라서 못 봤습니다만.
드론은 인구수 방해. 글쎄 그 말이 언제부터 퍼졌는지는 알 수 없는데, 하여간 저는 쥐어짜내듯 플레이하는 경기를 장기로 써먹기 시작했습니다. 테란 상대로 1.5해처리 레어가 그 당시 제가 틈나는 대로 즐겨쓰던 빌드였죠. 11드론에 스포닝 풀을 짓고 가스를 캔 다음, 가스가 되자마자 레어 올리고 히드라덴 올리고 앞마당에 해처리 펴면서 3럴커 정도로 찌르는... 물론 정찰로 들켜버리면 답이 안 나오는 빌드지만, 그 당시 저로서는 꽤나 쏠쏠하게 먹혔던 빌드였습니다. 보통 터렛을 안 짓고 막 째는 테란을 만나면 1승 감사, 터렛 위치가 안 좋으면 해볼만하다, 그리고 막히면 GG였지만(...) 이 몹쓸(?) 빌드는 훗날 뮤컨을 익혀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경탄할 만한 수준까지 올라간 이후에도 심심하면 써먹고 툭하면 써먹고 하는 빌드가 됩니다. 홍진호란 사람이 저에게 갖는 위치란 그런 것이었습니다.
한동안은
홍진호란 사람의 모습을 방송에서 더 많이 본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선수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예능프로그램에서 등장하는 모습이었습니다. 2007년이었나 연말에 스타 뒷담화에서 박정석 현 나진 감독님과 같이 나왔던 때, 그리고 박태민 해설과 같이 공군에 있을 때 김캐리와 나왔던 것. 그렇게 선수로서의 그는 저에게 엄청난 임팩트를 끼친 건 아니었습니다. 플레이 스타일이라는 것을 저에게 남겼을 뿐... 어쩌면 그게 엄청난 임팩트였을 수도 있었겠습니다만.
6월 20일 김택용을 상대로 단장의 능선에서 거두었던 승리도, 저는 생방으로 보는 영광만큼은 누리지 못했습니다. 일단 그 당시에 제가 기말고사기간이기도 했거니와, 스타판에 흥미가 떨어져 가던 시점이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에 질리기 시작했던 걸지도 모르죠. 그가 공군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기뻐했는데도... 하여간 김택용을 잡아낸 그 경기를 다시 본 이후, 저는 그 이후로는 경기결과 정도만 확인하곤 했습니다. 아 홍진호가 이겼구나, 아 홍진호가 졌구나. 그 시점에서 이미 홍진호의 팬으로 3년을 채우고 4년차에 접어들던 때라 나름대로 올드한 팬이라는 걸 자부하던 저였습니다만, 글쎄요. 그 때는 팬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선수 은퇴, 감독 복귀, 그리고
선수로서의 그의 생명이 종언을 고하던 날,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고, 저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습니다. 팀 단위로도, 개인 단위로도 결국 우승반지를 가져가지 못했던 회한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레전드라 불리던 선수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아쉬움 때문이었을까요. 그날 몹시 우울해하던 기억이 납니다. 이미 대인배를 떠나보냈던 터라 더욱 안타까운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폭풍과 대인배는 제가 스타크래프트를 보게 만들었던 두 별이었는데, 두 별이 모두 진 거죠. 그렇게 이스포츠라는 것에서 저는 멀어지다 못해 아예 관심을 꺼 버렸습니다. PGR만은 못 끊고 있었지만(...)
제가 리그 오브 레전드를 시작한 계기도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일단 제 동생이 북미 시절부터 하던 애라 어 저거 어디서 많이 본 건데 싶기도 했거니와, 그가 제닉스 스톰 감독으로 돌아온다니까 이것 봐라 뭔지는 알아야겠으니 한 번 해봐?라는 식으로 건드렸습니다. 그 결과는 역대급으로 남을 실수였죠(...) 어쨌든 게임은 게임이고, 그가 있었기에 리그 오브 레전드를 보았습니다. 그게 제가 볼 이유였으니까요. 그가 감독으로 있었던 처음은 놀라운 결과였죠. 근데 또 4강에서 3:2로 패전... 3위 따기는 했지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싶었습니다. 그렇게 잘 했는데. 멋진 모습 그렇게 많이 보여줬는데 거기서 깨지다니. 안타깝다 못해서 안쓰러웠습니다. 다음을 기약하긴 했지만 성에 안 차는 건 당연했죠. 그런데 제가 보기 시작해서 그런 것이었을까요? 이상하게 제가 눈여겨보면 선수고 감독이고 팀이고 뭐고 말려드는 일이 많았는데, 제닉스 스톰도 거기서 피해갈 수는 없었나 봅니다. 8강 후에 거짓말같은 추락. 그리고 홍진호도 감독으로 나오지 않는다더라, 감독 생활 접었다더라 하면서 LOL판에서도 조금씩 저는 멀어져 갔습니다.
더 지니어스
그러다가 더 지니어스에 출연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하지만 별로 볼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어요. 여러 이유가 겹쳤는데, 서바이벌 형식이라니까 왠지 또 제가 보기 시작하면 탈락할 것 같았고(...) 뭐가 저렇게 흥미로워서 박은지와 김경란이 유머게시판에도 욕을 먹나 싶기만 했어요(아니, 불판게시판이었나?). 그러다가 유머게시판에서 7회차 홍진호의 놀라온 활약을 보고 전율하게 됩니다. 와 어떻게 이걸 생각한 거지? 이러면서요.
예전만큼 제가 한량으로 있지는 않고 지금도 꽤나 바쁜 삶을 살고 있는 터라, 홍진호의 더 지니어스를 챙겨볼 여유는 사실 없었습니다(방송 시간이 언제인지도 몰랐죠). VOD를 구해서 보고 싶었지만 그것도 참고 넘겼습니다. 두뇌 서바이벌을 표명하다 보니 이런 퍼즐 대단히 좋아하는 저로서는 왠지 한 번 보면 빠져나올 수 없는 건 물론이고, 덤으로 홍진호까지 떨어질 것 같아서 답이 안 나오겠다 하면서 꾹 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홍진호는 우승했죠. 그 때서야 저는 마음놓고 재방을 봤습니다.
방송으로 본 그의 두뇌는 참으로 놀라운 수준이었습니다. 언젠가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제가 어디서 두뇌적 측면에서 밀린다는 말은 거의 듣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두손 두발 다 들었을 정도였죠. 특히 최종결승전의 빠르게 결합 찾는 그 센스는 정말... 그렇게, 어떻게 보면 그 때서야, 저는 홍진호의 팬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홍진호의 팬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던 순간
무엇보다 인터넷에서 가끔 매너홍 이야기가 나왔을 때입니다. 경기보다도. 언젠가 PC 상태가 좋지 않아서 드랍이 걸리고 재경기를 바라볼 수 있었음에도 깔끔하게 GG를 쳤던... 그 이야기는 미담으로 남아 있죠. 지니어스 우승보다도, 6.20 혁명보다도 그를 향한 개인적 칭찬, 예를 들어서 그의 인성이 좋다, 또는 그의 매너가 좋다 등등 이런 이야기가 들려올 때가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이건 아닌데 싶었던 순간
뭐니뭐니해도 김캐리와의 방송사고...라고 해야 할까요. 훗날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만(
http://news.mt.co.kr/mtview.php?no=2013071508553363818&MS), 어쨌든 '민주화'라는 단어를 생각없이 쓴 대가는 어쩌면 그가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할 멍에가 되어버리고 말았죠. 적잖이 안타까웠고 또 어이없기도 했습니다. 팬이라는 것에서 회의감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그 외에도 방송경기에 좀 나와 줬으면 하는데 자꾸 안 나오고 벤치나 달굴 때라던지, 도저히 눈 뜨고 못 봐줄 경기를 보여준다던지 할 때는 정말 답답했습니다. 팬심이라는 게 그런 건지도 모르죠. 내가 아무리 팬이라지만 이런 모습을 보고 싶어서 팬 노릇을 한 게 아닌데 싶은, 그런 거죠.
동력
저를 홍진호의 팬으로서 남아 있게 한 그 동력이라면, '익숙함'이라는 걸 꼽아 보고 싶네요. 몇 가지가 닮아 있었다고 해야 할까요. 왠지 익숙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둘 다 말도 무지하게 빠른데, 플레이 스타일도 비슷하고(이건 제가 배운 쪽에 더 가깝긴 합니다만). 뭔가, 굉장히 익숙했습니다. 그런 익숙함이 저를 장기간 홍진호라는 사람의 팬으로 남아 있게 만든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을 제쳐두고 왜 하필 홍진호란 사람을 그토록 오래 보고 있었느냐 하면, 그 답은 뭔가 많이 익숙해서 그렇다는 거죠.
총평
수많은 일이 있었고, 수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가 부스에서 마우스를 놀리던 모습은 이제 아련한 향수가 되었고, 저 역시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를 자주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팬으로서 실망한 순간도 있었고, 안타까운 순간도 있었고, 기뻐했던 순간도, 즐거웠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홍진호란 사람은 저에게 많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제게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홍진호란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겁니다. 나이는 여덟 살이 차이가 나지만, 상당히 매력있는 사람이죠. 기회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자리에서든,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네요.
팬으로서, 많은 시간을 그를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앞으로 어떨지는 잘 모르겠어요. 일단 어딘가에서 모습이 보여야 응원을 하더라도 할 테니... 그렇지만, 적어도 후회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그의 팬으로 있었던 시간 때문에 후회할 일은 없고, 후회하지도 않으며,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그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답답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홍진호는 홍진호였으니까요.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나아가듯이.
되짚어보면 참 행복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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