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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12/04 21:56:33
Name 공룡
Subject 거울 속의 나
1년 반 정도 같이 일하고 있는 직장 동료가 몇 있습니다.
워낙 이직률이 높은 직업이다 보니 지금까지 직장 동료들을 진지하게 사귄 적이 없었죠. 내성적인 성격 탓도 있지만 상대 직장 동료들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더군요. 같이 마음 터놓고 술자리를 한 직원도 없었고, 속내를 비쳐본 적도 없었습니다. 1년이나 2년 뒤면 헤어지게 되고 연락이 그대로 끊기는 경우가 다반사였으니까요. 가벼운 만남이 이어졌고, 그것이 삭막한 직장생활의 당연함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2년쯤 전에 더 굳어졌죠. 처음으로 형이라 부르며 따르던 직장동료가 급하게 쓸 곳이 있다며 돈을 빌렸고, 퇴사와 함께 연락이 끊기더군요. 상당한 상실감이었습니다. 그래서 과하게 친한 척 하는 동료들은 우선 경계부터 하게 되더군요. 물론 그건 마음 속 생각일 뿐이었고, 다른 직장 동료들이 보는 저는 성격 좋고 점잖으며 조용한 사람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1년 반쯤 전에 회사를 옮기게 되면서 직장 생활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습니다. 비슷한 연배의 동료로 이루어진 팀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들의 솔직함에 놀라게 되었습니다. 겨우 한 달 정도 만에 우리들은 수 년을 사귄 친구처럼 친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다른 직장에서는 한 번도 써보지 않았던 반말 어투도 중간 중간 섞기도 했고,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젊은 친구들이나 하는 장난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사이에 저도 그들과 동화되었고, 큰 소리로 웃고 떠들게 되었죠. 출근이 즐거워졌고, 업무 사이의 티타임이 너무나 기다려졌습니다.

점심시간에 같이 모여 스타를 하기도 하고, 가끔 저녁에 모여 술자리도 가졌습니다. 집에도 자주 초대했죠. 그렇게 즐거운 직장생활을 1년 반이 넘게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 동안 결혼도 했죠. 행복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허물어진 마음의 벽돌 조각들은 때론 상대를 찌르는 흉기가 된다는 사실을 최근에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친구처럼 허물이 없어지자 우리는 정말 친구들끼리 할 수 있는 말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친구라도 상처를 주는 말은 조심했어야 했지요.

어느 날 한 직원이 던진 말에 저는 표정을 닫고, 입을 닫았습니다. 너무 상처가 되는 말이었죠. 그 뒤부터 일주일 가까이 그 직원과 눈도 잘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그 직원 역시 뒤늦게 실수를 했다며 돌려서 사과를 했지만 쉽게 풀어지지 않았죠. 그렇게 입을 다물고 있다가 문득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제게 상처를 주었던 말은 대화 도중에 자연스럽게 나온 말이었습니다. 즉, 그 직원이 상처를 주는 말을 했다는 것은 저 역시 그 직원에게 비슷한 말을 했다는 말도 되는 것이었죠.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무의식중에 함부로 했던 말들이 하나 둘 떠오릅니다. 분명 당시의 말은 그 직원이 심한 것이었지만 그런 말이 나올 때까지의 과정 중에는 저의 잘못도 있었다는 것이지요. 상대의 말과 행동은 바로 거울 속에 비치는 내 모습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상대가 그런 말이 나왔다면, 그리고 상대가 그런 행동을 했다면 먼저 자신을 돌아봤어야 했죠. 우리는 친구이기 전에 직장동료였고, 넘지 말아야 할 선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벽을 허물어 일반적인 직장 동료를 넘어선 친구의 관계를 형성했지만, 벽이 허물어졌더라도 벽 반대편의 주인 허락도 없이 너무 깊숙이 들어와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제 앞에서 미안해하지만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그 직원을 보면서 도리어 미안해졌습니다. 하지만 마땅히 화해할 방법을 찾지 못하겠더군요. 그래서 비겁한 방법을 쓰게 되었습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 직원과 더 눈을 마주치고 의견을 존중해주는 몸짓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느 사이에 자연스럽게 그 일을 잊어버린 것처럼 하기 위해서요. 정말 비겁한 짓입니다. 그냥 술 한 잔 하면서 깔끔하게 끝내면 될 것을 내성적 성격 탓에 쉽게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크리스마스 카드에 조금이나마 마음을 담아 글을 적어 보내려 합니다. 글은 직접 만나서 말할 수 없는 것도 가능하게 해주니까요. 정말 고마운 녀석이죠. 그러나 그 카드 속에 적을 글의 내용은 여전히 고민입니다. 그 어떤 때보다도 힘들게 적어나갈 카드의 내용이 될 것 같군요. 한 자 한 자 아주 무겁고 무거운 무언가를 손에 달고 쓰게 될 것 같습니다.

그만큼 글쓰기는 참 무거운 것이기도 합니다.
전 늘 피지알에서 자주 이야기되는 ‘글쓰기 버튼의 무거움’에 대해 생각합니다. 글쓰기 버튼의 무거움은 사실 피지알에서만 통용되는 것은 아니죠. 어떤 곳에서건 글쓰기 버튼을 누르는 것은 항상 힘든 일입니다. 감정의 발산이 자유로운 디시와 같은 특별한 곳을 제외하고 말이죠.

글쓰기 버튼의 무거움에 대해 해석하는 것이 각자 모두 다르겠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글쓰기 버튼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대중이라는 거울에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글쓰기 버튼을 누른 순간 자신의 생각과 사상은 수많은 사람들과 1대1로 마주하게 됩니다. 그것은 댓글이라는 이름을 가진 거울이 되어 다시 읽혀지게 되죠. 이 거울을 마주할 용기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전 늘 두렵습니다. 댓글 속에서 내 진실로 추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구요. 생각해 보면 댓글이 무서워 글쓰기 버튼이 무겁게 느껴진다는 분들의 말도 공감이 되는 것 같습니다.

글쓰기 버튼을 누른 뒤부터 저는 그 글에 대해 계속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비춰진 제 모습에 대해 생각합니다. 두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며 그 사람을 생각했으니까요. 글 속에 보이는 그 사람의 생각과 사상에 대해 평가해왔으니까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평가를 그 글들을 보고 했으니까요. 그래서 조금은 비겁한 글쓰기를 해왔는지도 모릅니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거울을 여기저기 던져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거울에 비친 사람들이 모두 제 모습을 좋아하고 웃어준다면, 글쓰기 버튼의 무거움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모두 다르고, 같은 글이라도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됩니다. 그래서 아무리 가벼운 글도 막상 글쓰기 버튼을 누르려 하면 무거워집니다. 조금이라도 가벼워질 수 있는 방법은 되도록 모두가 보고 즐거워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칭찬문화가 있던 피지알에 글을 많이 썼나봅니다. 물론 요즘은 거의 쓰지 않지만요^^;

이곳에 글을 쓰면 수 년 전 키보드워리어였던 제 과거가 떠오르곤 합니다. 지금은 그 게시판의 글들이 모두 없어졌지요. 파란이었나요? 과거 하이텔에서 자신이 썼던 글을 찾아주는 서비스가 있었습니다. 저는 차마 그 서비스를 신청하지 못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당시 저를 평가했던 수많은 거울들이 바로 제 자신의 모습임을 알지 못했던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피지알이 아닌 다른 사이트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가끔 함부로 글쓰기 버튼을 눌러대는 제 손을 보며 깜짝 깜짝 놀라곤 합니다. 그리고 거울이 되어 날아오는 제 추한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그래도 소용이 없네요. 후회와 반성의 연속입니다. 하긴 성인군자가 되기에는 한참 부족한 사람이니까요^^ 그래도 피지알에서 쓴 글들은 저만의 공간을 만들어 저장해두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말이지요. 피지알이 나중에 없어진다고 했을 때, 제 글들을 버리고 싶은 마음이 없을 정도로 비교적 마음에 드는 글을 썼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오늘도 오랜만에 와서 비겁한 글 하나 놓고 사라집니다. 사실 요즘 김정민 해설위원 해설 잘 듣고 있고, 군대 간 우리 강도경 선수, 임요환 선수, 최인규 선수 등 안부 묻고 이런 글 쓰려 했는데, 이야기는 이상한 곳으로 흘러버렸네요. 스타 커뮤니티에 왔으니 스타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어쩌다보니 자기반성의 거울을 하나 흘려놓은 것 같네요. (물론 잘난 척도요^^)

늘 즐거운 하루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ps : 사실은 그 직원이 요즘 스타에 푹 빠져 있는데, 피지알에 들러 이 글을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쓰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제가 많이 사과하고 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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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 Garden
06/12/04 22:01
수정 아이콘
역시 공룡님.
오랫만에 추게를 외쳐봅니다.
06/12/04 22:01
수정 아이콘
공룡님 안녕하세요 (_ _)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요즘 댓글 달다가 스스로 헉 하는 일이 많아서 많이 찔리는군요.
그 동료분이 오셔서 글 보셨으면 좋겠네요. :)
jjangbono
06/12/04 22:04
수정 아이콘
역시 공룡님.. 오랜만에 글 쓰신거 같은데....
추게 고고싱을 외치고 싶네요.
체념토스
06/12/04 22:08
수정 아이콘
공룡님 글 너무 따듯하군요.

좋은 글이예요 잘봤습니다!

저도 그동료분이 이글을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앞으로 더욱 좋은 일만 많으시길 빌겠습니다.

(추게로!)
My name is J
06/12/04 22:09
수정 아이콘
뭔가 제가 아직 어리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시는 글입니다.
아 기분 좋아요...으하하하-(나는야 상큼한 나이~ 응?)

그러니까 우리모두 한점부끄러움이 없는 삶이란 얼마나 요원한 일인가요....(으하하하==;;;;)
어쨌든 고민하는 삶이 맞는 것이겠지요. 어떤방향이든 어떤주제든.
06/12/04 22:13
수정 아이콘
......정말 공룡님 글을 읽으면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듭니다.
아름다운달
06/12/04 22:48
수정 아이콘
언제나 공룡님의 글에서는 따뜻한 훈기가 모락모락 뿜어져 나오네요.
공룡님도 언제나 좋은 하루하루 일궈나가시고 동료분 이글 꼭 보셨으면
합니다 . 사회에서나 여기 피지알에서의 제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하십니다. ^^
다시이곳에
06/12/04 22:55
수정 아이콘
이런 글... 참 고맙습니다. 덕분에 자꾸만 못되지려는 마음 다잡아봅니다.
06/12/04 22:59
수정 아이콘
잘쓰시네요...
06/12/04 23:13
수정 아이콘
이런 글쏨씨를 지니신 분들마져 글쓰기 버튼에 무거움을 느끼시는데..
입으로 주절거리는 것은 잘해도 필력이 따라주지 않는 저같은 사람은 맘편히 눈팅으로 댓글만 달아보려합니다.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ps. "그 직원이 상처를 주는 말을 했다는 것은 저 역시 그 직원에게 비슷한 말을 했다는 말도 되는 것이었죠." 잘 배워갑니다.
연식글러브
06/12/04 23:34
수정 아이콘
요즘 같은 주제로 반복되는 자게들 글에 짜증과 현기증이 났는데 이런글을 보니까 편안해지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당연히 추게감!!
Zergling을 믿습
06/12/04 23:38
수정 아이콘
^^ 우리반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 주어야 겠습니다..
맨날 싸우는데..이유는 "저애가 ~~했어요."라더군요.
그래서 '너는' 이라고 물으면... 조용해 지거나....가만히 있었다고 화내죠.
남과 싸울때나 남에게 안좋은 일을 얻게 된다는 것은
나한테도 이유가 있는 법~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네요.^^
깔릉유
06/12/05 00:43
수정 아이콘
정말 공룡님 글 많이 기달렸는데..^^
좋은 글좀 많이 써주세요.~!

아참 그리고 추게로~!
새벽의사수
06/12/05 01:33
수정 아이콘
오랜만에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狂的 Rach 사랑
06/12/05 01:50
수정 아이콘
밤에 따뜻한 글 하나 보고 가네요 ^^
모두 따뜻한 밤 되세요~(추게로!!)
제법무아
06/12/05 04:53
수정 아이콘
pgr게시판에 더욱 더 훈훈한 글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추게로~
쪽빛하늘
06/12/05 09:47
수정 아이콘
공룡님 오랫만에 뵙네요(물론 전 모르실테지만요 ^^)
멋진글 잘 읽었습니다.
06/12/05 10:08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__))
PsychoBox
06/12/05 10:23
수정 아이콘
아니 공룡님 이 얼마만에ㅠㅠ 추게로~
06/12/05 12:18
수정 아이콘
많은것을 배울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반성반성.. 그분이 꼭 이 글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은 꼭 전해질꺼라고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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