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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8/21 15:02:00
Name DEICIDE
Subject 스타크래프트소설 - '그들이 오다' 43~45화
2005년 5월 8일 2시 02분
서울 여의도 본사, MBC 경기장


  “쫙!”

  요환과 강민이 멋지게 하이파이브를 그렸다. 마주친 손을 붙잡으며, 두 사람은 환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최고다, 진짜!”
  “하하하, 고맙다.”

  강민의 칭찬에 머쓱해하던 요환은, 그 옆에 서 있는 정민과는 두 손을 공중에서 맞부딪혔다.

  “쫙!”
  “진짜 잘했어, 형.”
  “고마워.”

  정민은 요환의 어깨를 툭 치고서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요환은 정민에게 같이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고는, 진호의 앞에 섰다. 웃음을 머금고 있던 진호는 요환과 눈이 마주치자 씩 하고 미소지었고, 그런 진호를 보고 요환도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리고, 두 프로게이머는 말없이 서로를 꽈악 끌어안았다.

  “툭, 툭.”

  요환도, 진호도 서로의 등을 두드렸다. 잠시 후, 진호가 요환의 등을 퍽 하고 조금 세게 치며 말했다.

  “죽는줄 알았잖아. 이겨도 꼭 그렇게 이겨야돼?”
  “야, 야, 아퍼.”

  홍진호를 끌어안은 요환은 가슴이 아파왔다. 나는 사지(死地)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진호는 다시 사지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그 괴로움이 어떤 것인지 뼛속까지 느끼고 돌아온 요환이었기에, 더더욱 진호를 보내는 것이 안타까웠다. 요환은 진호의 어깨를 잡고, 진호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진호야.”

  진호는 눈으로만 이야기할 뿐, 별다른 대답이 없었다. 그런 진호를 보며 요환도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오른손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진호도 눈을 한번 천천히 깜빡이며 오른손을 높이 들었다.

  “짜악!”

  밤하늘에 맑게 울리는 하이파이브 소리와 함께, 진호는 경기석으로 성큼 발걸음을 내딛었다.



2005년 5월 8일 2시 05분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 시청 앞 서울광장


  ‘그 사람이다. 그 사람 차례다.’

  아가씨의 눈은 화면에 나오는 청년에게 그대로 멎어버렸다. 그의 손이 화면에 나왔다. 내 바로 옆에서, 터치패드와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던 바로 그 손이었다. 스타 유닛을 하나 하나 설명해주던, 목소리까지 아직 생생하다. 그 말 한마디 한마디를 생각하느라, 요환의 승리로 흥분해 있던 사람들의 따가운 소음들도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윤열과 외계인의 피로 피범벅이 되어 있는 경기장 한 가운데에 앉아, 천천히 마우스와 키보드를 셋팅하고 있는 청년.

  “아……”

  청년의 얼굴이 다시 화면에 나왔다. 자주 웃던 모습과는 달리,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나조차 이렇게 가슴이 떨리는데, 저 자리에 앉아 있는 저 사람의 심정은 어떨 것인가.

  “꾸깃.”

  문득, 아가씨의 손에 종이의 감촉이 느껴졌다. 내려다보니 그가 적어준 종이다. <Good luck, Black-Bean>. 자기 별명을 적어서 주다니, 어지간히 장난기가 많은 사람인가 보다. 잠시 헛 하고 헛웃음이 나왔지만, 웃음이라기보다는 탄식이었다. 아가씨는 문득, 청년과 헤어질 때의 말들이 생각났다.

  ‘제 이름은 경기할 때 알려 드릴게요.’
  ‘왜, 왜요?’
  ‘제가 반드시 경기에 나가겠다는, 아가씨와의 하나의 약속이죠.’

  이름은 이미 알아요. 홍진호. 폭풍저그 홍진호. 잠시 도망쳤지만, 결국 모든 약속을 지켜 낸 사람, 홍진호. 나하고의 약속도, 자기 자신과의 약속도.

  ‘또 보게 되길 바랄게요.’

  그런데…… 왜 다시 보게 될 거라는 건 약속하지 않았죠?

  “여러분, 홍진호 선수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 주십시오!!!”
  “우와아아아아!!!”
  “홍진호 파이팅!!!”

  시청앞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게서 터져나오는 함성이 귓전을 때리자, 아가씨는 회상 속에 젖어들던 자신을 추스렸다. 주위의 사람들이 펄쩍 펄쩍 뛰면서 팔을 흔들고, 박수를 치고, 고함을 지르며 흥분하고 있었지만, 아가씨는 두 손을 꼬옥 모으고 입술에 댔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꼭 이겨요. 꼭.”



2005년 5월 8일 2시 10분
서울 여의도 본사, MBC 경기장


  “꼭 이길게요.”

  진호는 혼잣말을 했다. 외계인이 아닌 사람이 무서워서 도망쳤었는데, 용기를 내어 돌아가게 해준 것 또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 그 아가씨. 다시 보게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진호는 그런 생각을 했다.

  “상대편 외계인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스피커로 들리는 정일훈 캐스터의 목소리에, 진호는 목을 길게 빼고 상대를 보았다. 진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키가 진호의 허리춤정도 밖에 되지 않는 작고 기분나쁘게 생긴 외계인이었다. 외계인이 등장하자, 아니나 다를까 관중석에 있던 외계인들이 기괴한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크와아아아앙!!!”
  “캬하아악!!! 크하하하하!!”
  “캬르르르르…… 크아아!!”

  패한 다음이어서인지, 외계인들의 괴성은 한층 그 흉폭한 기세를 더하고 있었다. 사냥감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기 직전의 야수처럼, 그것을 듣는 사람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울부짖음이었다. 진호는 그것을 듣기 싫어서 헤드셋을 쓸까 잠시 생각했지만, 곧 상대 종족이 발표될 시간이어서 그럴 수도 없었다. 눈을 감으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정일훈 캐스터가 상대의 종족을 발표했다.

  “예, 3경기에 홍진호 선수가 맞서 싸우게 될 외계인의 종족이 전달되었습니다. 외계인의 종족은…… 테란(Terran) 입니다!!!”

  선수 대기석 쪽이 잠시 웅성거렸다. 진호는 눈을 감았다. 테란이라. 테란.

  “프로토스, 저그, 그 다음엔 테란인가.”
  “그러네. 요환이형은 랜덤 상대이긴 했지만.”

  강민이 자그마하게 한숨을 쉬며 말하자, 김정민이 대답했다. 내심 조금은 진호가 상대하기 편한 프로토스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저그라도 자신감있게 상대할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테란이라니…… 진호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차라리 진호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흠.”

  하지만, 진호도 정민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쉽다는 생각을 애써 떨쳐버리려 했지만, 그럴수록 머리칼에 붙은 껌처럼 그런 생각들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위축되지 말자. 상대가 테란이라고 왜 내가 위축되어야 하는가. 그러지 말자.

  “다음은 맵이 선택되어지겠습니다! 30개의 맵 중에서 무슨 맵이 선택되어질지요!”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갔다. 진호가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긴장되는 마음을 푸는 동안, 어느새 그 옆에 맵 선택 화면이 띄워졌다. 타타탁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한 번 30개의 맵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제껏 프로게이머 선수들의 맵은 괜찮게 결정된 편이었습니다. 홍진호선수도 할 만한 맵이 결정되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맵 이름과 사진이 빠른 속도로 바뀌어가자, 김동수 해설은 앞서 결정되었던 두 맵처럼 진호에게도 좋은 맵이 선정되어지기를 바랬다. 저그에게 유리한 맵이 꽤 섞여있었기 때문이었다.

  "타타타타타타……“

  진호는 이상하게 가슴이 계속해서 두근거렸다. 심장에 손을 대 보자, 빠르게 쿵쾅거리는 박동이 느껴졌다. 진호는 가슴을 탕탕 치면서,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바뀌어져 가는 맵을 노려보았다.

  “타타타타…… 탁.”

  맵이 정지했다. 진호는 맵의 사진을 확인하고, 맵의 이름을 보았다.

  “……”

  진호는 번갈아가면서 다시 한 번 맵의 사진과 맵의 이름을 보았다. 진호의 입이 조금씩 벌어지다가, 곧이어 씨익 하고 웃었다.

  “훗.”

  진호는 머리를 긁적이고, 헤드셋을 썼다. 아가씨의 얼굴과, 아가씨에게 준 쪽지가 떠올랐다.

  <Good luck, Black-Bean>

  지금도 그 종이를 가지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헤드셋을 쓰고 마무리 준비를 하고 있는 진호에게, 정일훈 캐스터의 떨리는 목소리가 겉돌았다.

  “라…… 라그나로크(Ragnarok)입니다.”

  진호의 쓴웃음은 좀처럼 그의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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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8일 2시 15분
서울 여의도 본사, MBC 경기장


  경기석에 앉아있던 선수들의 표정은 말 그대로 ‘망연자실’ 이었다. 저그로 테란을 상대하는 맵이 라그나로크라니. 선수들 중, 이 맵에서 진호와 인연이 있는 사람중의 하나인 요환은, 진호의 얄궃은 운명이 못내 원망스러워졌다.

  “아……”

  진호는 목덜미를 손으로 주무르며, 약간의 피로감을 느꼈다. 벌써 시간은 두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진호뿐만이 아니라, 경기를 기다리고 있던 정민도, 강민도 엄습하는 피곤함과 싸우고 있었다. 극한 긴장상태가 지속되다 보니, 그들에게 가중되는 스트레스는 여느 중요한 경기에서 오는 것 보다 몇 배에 달했다.

  “탕! 탕!”

  피곤함 탓일까, 아니면 맵이 라그나로크라는 불운 때문일까. 심하게 긴장하고 있는 자기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긴장하지 말고 침착하라고 명령을 내리는데, 떨리는 손과 가슴은 그럴수록 더 불안해져갔다. 자신의 가슴을 두 번 거세게 탕탕 치며, 진호는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진호가 많이 긴장되나봐.”
  “담력이 약한 녀석은 아닌데……”
  “그래도, 그래도 라그나로크는 너무한걸.”

  대기석에 있던 선수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을 던진 그 때, 진호는 목을 뒤로 젖히며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이렇게 하늘을 올려다본 것이 언제였던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눈을 감고 크게 심호흡을 두 번 한 다음, 진호는 천천히 목에 걸려 있던 헤드셋을 썼다. 그에게 지금 마음의 위안을 주는 사람은 단 한 사람 뿐이었다.



2005년 5월 8일 2시 18분
서울시 중구 태평로, 시청 앞 서울광장


  어느새, 대형 화면에는 조인창이 띄워져 있었다. Player ‘3’ 과 옵저버가 이미 조인해 있었고, 진호의 조인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차라리 저그가 아닌 다른 종족을 가지고 플레이하면 낫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만, 규정상 그렇게 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홍진호 선수. 라그나로크에서 테란을 상대하게 되었어요.”
  “물론 상대는 한 명이지만, 1:1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테란이라는 ‘종족’ 과, 라그나로크라는 ‘맵’. 2:1로 싸워야 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라그나로크라는 괴물은, 이제껏 희망을 전달하던 해설진의 해설에 담겨있던 장밋빛 기대마저 잔인하게 집어삼켜 버렸다. 해설진도, 주위의 사람들도, 모두들 불안에 떠는 모습이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아가씨는 스타크래프트에 대해 약간만 알고, 라그나로크라는 맵은 더더욱 모르지만, 이제는 그 이름만 들어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아…… 안돼. 제발 이겨라 홍진호!”
  “으으으…… 제발!”

  응원인지, 탄식인지 모를 소리들이 사람들에게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희망이 전혀 없는 것만은 아니었다. 김동수 해설이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힘차게 말했다.

  “하지만 홍진호 선수! 이 맵에서 테란을 상대로 승리한 경험이 있는 선수에요! 승산이라는 것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이 10%건, 1%건, 완전히 0이 아니라면 최선을 다해서 홍진호 선수를 응원해야죠!”
  “김동수 해설의 말씀이 맞습니다. 이제껏 홍진호 선수가 걸어왔던 길이 순탄치 않은 길이었단 말이에요. 홍진호 선수가 유리한 상황에서만 계속해서 승리한 건 아니었습니다. 불리하고 또 절망적인 상황에서 자기 스스로를 자기 힘으로 구해 내는 것이 홍진호 선수였거든요?”

  자기 스스로를 자기 힘으로 구해 낸다. 그렇다. 지금 진호를 도울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오로지 이 사지(死地)에서 살아 돌아갈 방법은 자기 자신의 두 손으로 이겨야만 하는 것이다. 아가씨는 그제서야 진호의 마음이 느껴졌다. 진호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어쩌면 평생에 경험해보지 못했을 저 깊고 어두운 고독 아닐까. 아무도, 그 어떤 도움도 없이 혼자라는 그 고독.

  “홍진호 선수가 조인했습니다!”

  순간, 아가씨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진호의 아이디도 [NC]...YellOw 가 아니었다.

  “그런데 홍진호 선수, 낯선 아이디로 조인을 했군요?”
  “홍진호 선수도 아이디를 바꾸어 조인했습니다. 임요환 선수가 ‘Emperor of Terran' 이라는 아이디로 조인을 했었는데요.”

  해설진들도, 사람들도, 모두들 진호가 아이디를 바꾸어 조인한 이유를 추측할 뿐이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한다면. 작은 글자였지만, 아가씨는 확실하게 읽을 수 있었다.

  <YellOw with Black-Bean>

  아가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진호를 뜻하는 아이디 YellOw 와, 자신에게 만들어준 아이디 Black-Bean.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with 라는 알파벳이 눈에 들어왔다.

  ‘……혼자가 아니었군요,’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며 서 있는 수많은 사람들 틈에, 한 아가씨가 엷은 미소를 띄우며 서 있었다. 그 아가씨의 볼에서 눈물 한 방울이 굴러 떨어졌다.



2005년 5월 8일 2시 21분
서울 여의도 본사, MBC 경기장


  <starting in : 5 seconds>
  <starting in : 4 seconds>
  <starting in : 3 seconds>

  줄어드는 숫자를 보며, 진호는 자신이 다루고 있는 저그라는 종족을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오랜 세월 동안 드론과 함께 호흡했고, 저글링과 함께 달렸다. 펼쳐지는 크립처럼 꿈을 키워나갔고, 피흘리는 유닛들과 함께 눈물을 쏟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탐욕스럽고 파괴적인 이 괴물 종족이, 아이러니하게도 외계인의 손아귀에서 인류를 구해 내야 한다. 그래, 어디 한번 마음껏 싸워보자.

  <YellOw with Black-Bean>

  자신의 아이디도 눈에 들어왔다. 검은 콩이라…… 이런 중요한 순간에 철없이 장난기 어린 행동을 한 것은 아닌가 했지만, 아가씨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미처 하지 못한 약속을 하고 싶었다. 다시 함께 있자고. 꼭 다시 보고 싶다고. 그러니, 꼭 이길테니 두고봐요. 진호는 굳게 입을 다물었고, 이윽고 화면이 열렸다.

  “슈웅-”

  너무 오래간만에 플레이하는 맵이라, 미네랄의 배치를 보고서 진호는 자신의 스타팅 위치가 어디인지 잠시 혼동되었다. 그러나, 곧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깨달았다. 왼쪽 아래에 바싹 붙어 있는 미네랄. 11시였다.

  “꽤애액!!”

  진호의 오버로드가 1시 방향으로 서서히 날아갔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떤 전략으로 상대해야 이 저그의 무덤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한 진호의 머릿속이, 복잡하고도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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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8일 2시 22분
서울 여의도 본사, MBC 경기장


  “지난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전 때와 똑같은 위치가 나왔습니다.”

  김동수 해설의 말대로, 위치는 가로방향이었다. 진호는 11시, 외계인은 1시. 그때 그 순간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불길한 것을 생각하는 것 조차 불경스러운 것처럼 여겨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홍진호 선수, 홍진호 선수의 전략이 궁금합니다. 과연 무슨 전략을 사용할까요.”
  “필살기성 전략을 준비할 수가 없는 상황인데다가, 맵 자체도 저그에게 불리한 맵. 이 상황을 저그가 어떻게 타계해 나갈…… 어?”

  김동수 해설이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변화는 테란의 진영에 있었다.

  “SCV 한 기가 빠르게 정찰을 나갑니다!”

  아직 서플라이 디팟을 짓기도 전이었다. 김동수 해설은 직감적으로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혹시나 센터 8배럭스 같은 것은 아닙니까? 본진에 서플라이 올라가나요?”

  그러나 동수의 우려와는 달리, 테란의 본진에서는 서플라이 디팟이 건설되고 있었다. 하긴, 굳이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는 맵이기도 했다.

  “단순한 빠른 정찰일 수도 있습니다. 저그가 무엇을 하든 다 막아내고 안정적으로 플레이하겠다는 것일 수 있어요. SCV는 가로방향으로 정확하게 정찰을 오고 있습니다.”
  “자! 홍진호 선수의 전략은 9드론인데요!”

  화면은 다시 저그의 진영으로 넘어갔다. 진호는 오버로드를 생산하지 않고 스포닝 풀을 건설할 자원을 모았다. 정일훈 캐스터가 조금씩 흥분하기 시작했다.

  “홍진호 선수, 설마 그 전략을 그대로 사용할 생각일까요? 9드론 발업 저글링 이후에 앞마당 성큰 러쉬. 모르고 당하면 먹히는 전략이라는 확신이 있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어어? SCV 한기 더 나갔습니다?”

  홍진호의 전략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먼저 출발했던 SCV는 저그의 본진에 거의 당도했고, 두 번째로 출발한 SCV는 맵 중앙지역에 다다르고 있었다. 진호의 드론 정찰은 아슬아슬하게 두 번째 SCV를 보지 못하고, 비껴서 7시 지역으로 내려갔다.

  “홍진호 선수의 드론은 SCV를 보지 못했습니다. 자, SCV가 저그의 진영을 확인하러 올라가고 있습니다.”
  “어? 그런데 왜 SCV가 크립만을 확인하고 발길을 돌리죠?”

  SCV는 저그의 크립을 확인하자마자 급히 방향을 선회했다. 그리고, 저그의 본진 오른쪽 위 구석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작전을 펼쳤다.

  “치익- 치이익-”

  순간, 해설진들이 경악했다. 경기를 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아!!!! 이게 뭔가요!!!!!”
  “아아아아!! 저그 본진에 전진배럭하는 테란!!!”

  그 때, 두 번째 SCV도 본진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호의 정찰병인 오버로드는 무심히 12시 섬멀티 지역을 지나 1시로 서서히 날아가고 있었고, 드론도 7시 지역으로 정찰을 들어가고 있었다. 뒤이어 올라온 SCV가 두 번째 배럭을 건설하기 시작했고, 상황은 갑작기 긴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홍진호 선수, 이거 빨리 파악해야 합니다!!! 알기만 하면 막는거거든요!”
  “지금 정찰병이 모두 엇갈렸는데요. 저 지역 일부러 정찰하지 않으면 발견되기 힘듭니다. 아아, 홍진호 선수!!! 좀 발견했으면 좋겠는데요!!!”

  해설진은 발을 동동 구르다시피 하며, 안타까운 상황을 중계했다. 선발 선수들도, 경기를 보는 사람들도, 어떻게든 저 사실을 진호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애타는 사람들의 마음과는 달리 아무것도 모르는 진호는 스포닝 풀 건설 다음에 익스트랙터를 짓고, 차분하게 9드론 발업 저글링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 홍진호 선수! 오버로드가 1시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고요, 드론도 이제 5시지역으로 정찰을 가고 있습니다. 가로방향으로 드론정찰만 보냈더라도 금방 확인할 수 있는건데요! 홍진호 선수 아쉽습니다!”

  중계하는 김동수 해설도 속이 새카맣게 탔다. 물론 저 전략을 당한다고 해서 무조건 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처럼 긴장되는 상황에 갑작스러운 기습을 당하게 되면 침착하게 대응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 놀라고 당황해서 크게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테란의 첫 번째 SCV는 임무를 마쳤다. 배럭스에 불이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아아…… 테란, 배럭스는 완성되고 마린 생산 들어갑니다! 홍진호 선수!!! 어떻게든 저기를 좀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홍진호 선수! 9드론의 처음 6저글링이 테란의 본진쪽으로 달려가면 망하는겁니다. 테란의 의도는 아주 노골적이거든요? 저그의 저글링들이 들어올때까지 마린들 모으며 참고 기다렸다가, 저글링이 들어닥칠 때 센터 띄워서 섬으로 날려버리고 SCV와 마린으로 저그의 본진을 초토화시키겠다는 계산이에요. 이거 막기 힘들 수 있습니다, 홍진호 선수! 모르고 당한다면 말이죠!”
  “성큰이 본진에 필요합니다, 홍진호 선수! 오버로드가 1시에 도착하고 있는데 어서 눈치챘으면 좋겠는데요!!!”

  진호의 본진에 지어진 배럭스 2개에서, 마린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진호의 저글링 6기가 튀어나왔다.

  “키게게겍!!”

  드론이 5시까지 정찰하였다. 가로방향이었다. 진호는 지체없이 6기의 저글링을 1시 지역으로 보냈다. 바쁘게 언덕을 뛰어 내려가는 저글링들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 테란의 마린은 끝내 어둠 속에서 숨죽이고 있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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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h열혈팬
05/08/21 15:17
수정 아이콘
"화면은 다시 저그의 진영으로 넘어갔다. 진호는 오버로드를 생산하지 스포닝 풀을 건설할 자원을 모았다. 정일훈 캐스터가 조금씩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 부분에서 '오버로드를 생산하지' 와 '스포닝' 사이에 '않고'가 빠진것 같습니다^^


음...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가는군요.
못된녀석..
05/08/21 15:52
수정 아이콘
우와.... 내용이며 전개며 문장이며... 정말 S급의 소설이네여...
정말 감동+_+,,, 저두 이런 멋진 소설을 구상중이랍니다~히히
sur le stage
05/08/21 16:05
수정 아이콘
완결되면 한꺼번에 보려구 기다리고 기다리다 끝내... 한참을 울었네요.
저도 모르게 ckcg 4강에 오른 이윤열의 이름을 보고 '아 살아있었나...ㅠ.ㅠ' ...
소설속에 빠져 현실과 혼동하다니... 그만큼 쓰신분이 대단합니다. (제가 바보인건가...요..??)
하이맛살
05/08/21 16:40
수정 아이콘
슝이.......
05/08/22 00:02
수정 아이콘
이 소설 pgr에 뜬거 처음 본날..
dc에 링크타고 가서 그때까지 올라온거 다 봤어요.
정말 재미있더군요.. ^^

사소한 태클(?)을 걸자면.. ^^;
코카콜라배 결승에서 임요환선수와 게임할때는 홍진호선수 7시가 걸린걸로 알고있어요.
11시 1시는 김정민 선수와의 경기였죠.
또 9드론 빌드라면 머린보다 저글링이 먼저 나오죠.
그냥 장난스런 태클이니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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