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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8/21 01:32:28
Name DEICIDE
Subject 스타크래프트소설 - '그들이 오다' 40~42화
2005년 5월 8일 1시 38분
서울특별시 잠실종합병원 병실


  용호도, 병실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그만 입이 얼어붙어 버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거세게 요환을 응원하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을 다물거나, 벌리고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용호는 저그 유저였지만, 저그라는 종족이 저주스러웠다. 그리고, 스탑 럴커라는 기술 또한 원망했다.

  “임요환 선수 추가되던 병력 거의 전멸입니다.”

  TV에서 정일훈 캐스터의 힘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스탑럴커가 4기나 버로우되어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 상황에서 나와서는 안 되는 변명이었고, 곧 여기저기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아, 임요환 저X끼 진짜!!!”
  “저 병X, 스캔 한번 안뿌려보고 뭐하는거야? 베슬은 왜 아직도 안나와?”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분통을 터뜨렸지만, 그것마저 오래 가지는 못했다. 극심한 허탈감과 좌절감이 병실의 공기에 눅눅하게 젖어들었다. 사람들의 입에서는 깊은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고, 그것은 용호도 마찬가지였다.

  “휴우……”

  저그 유저인 용호가 볼 때에도, 저그에게 너무나 유리한 상황이었다. 저그는 갓 확장한 3시까지 세 개의 가스멀티를 돌리고 있었고, 테란은 앞마당 멀티도 가져가지 못한 채 병력 손실이 매우 컸다. 지금 요환에게 있는 유일한 밑천이라고는 지금 6시 지역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바이오닉 2부대 병력이었다. 요환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을 터였고, 그곳의 컨트롤에 전력을 다 해주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자, 잊을건 빨리 잊어야 합니다! 임요환 선수, 6시 터렛 지역에서의 싸움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터렛 3기의 백업을 받으며, 요환의 바이오닉 병력은 달려드는 뮤탈리스크와 저글링에 맞섰다. 파이어뱃이 저글링으로부터 마린을 엄호했고, 마린은 터렛과 함께 뮤탈리스크 3부대 가까운 병력과 접전을 벌였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테란이 도저히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그 때, 요환의 본진에서 유닛 하나가 날아왔다.

  “아, 임요환선수 베슬! 베슬 나왔습니다!”
  “아아, 임요환 선수! 베슬이 있는데 왜 추가병력이 베슬과 함께 전진하지 않았나요!”

  뒤늦게 나타난 사이언스 베슬을 보고 정일훈 캐스터와 김동수 해설은 매우 아쉬워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금싸라기같은 베슬이었다. 이윽고, 똘똘 뭉쳐 있는 뮤탈리스크 부대의 정 중앙에 이레디에잇의 녹색 방사능 구름이 피어났다. 병실 안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야아!”

  이레디에잇을 맞은 뮤탈리스크는 잘 뭉쳐져 있던 동료들의 틈새로 비집고 들어갔다. 빠른 속도로 체력이 깎여나가면서 잠시 뮤탈리스크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스팀팩 마린의 가우스건은 한층 더 거세게 불을 뿜었다.

  “샤하악~!! 두두두두두두!!”
  “키에엑! 키에엑!”

  용호는 죽어 나가는 뮤탈리스크들을 보며 왼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여전히 상황은 어려웠지만, 용호는 요환과, 그의 언밸런스 마린들을 믿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 믿을 것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었다.



2005년 5월 8일 1시 40분
서울 여의도 본사, MBC 경기장


  “럴커가 내려옵니다!”

  뮤탈리스크도, 바이오닉 병력도 반수 정도가 남았다. 이때 요환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던 럴커 4기가 요환의 병력에게로 달려 내려왔다.

  “두두두두두두두!!!”
  "커헝! 커헝!“

  요환은 일점사로 버로우중인 럴커 2기를 잡아내었다. 하지만 위쪽에서는 럴커 2기, 아래쪽에서는 뮤탈리스크에 결국 쌈싸먹히듯 진출 병력이 모두 잡혀버렸다.

  “꺄아악!!”
  “으아악!! 아악!!”

  바이오닉 부대가 장렬히 전사했고, 전투는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요환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방금 전 전투로 인하여 얻은 소득이 너무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본진 포함 4가스인 저그를 상대로 멀티 하나 깨지 못하고 진출병력이 전멸당했다. 안타깝게도 흘러가고 있는 시간은 요환의 편이 아니었다.

  “임요환 선수, 지금은 멀티를 하더라도 이미 늦었습니다. 어쨌거나 지금 나와있는 병력으로 승부 봐야해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임요환 선수에게는 어렵습니다!”

  요환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발 밑에 질척이는 느낌이 다시 민감하게 느껴졌고, 비릿한 피비린내가 올라왔다. 가슴을 옥죄는 듯한 압박감과 메스꺼움에 요환은 미간을 찌푸렸다.

  ‘요환이형……!’

  ‘이길 수 없다’ 라는 생각이 자꾸만 마음속에서 떠오르자, 진호는 그런 자신마저 싫어졌다. 이런 잔혹한 상황에서 외로이 등을 보이고 있는 요환의 뒷모습을 더 이상 쳐다보지 못하고, 진호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요환은 돌아오지 못할 마지막 바이오닉 병력을 출발시켰다.

  “임요환 선수 병력이 다시 언덕을 오릅니다! 마린, 메딕 병력이 세 부대 가량 되는 병력!”
  “바로 지금이 저그의 병력과 맞상대 할 수 있는, 임요환 선수의 마지막 기회입니다! 어디를 칠 것인가 결정해야죠! 임요환 선수, 제발 이기길 바랍니다!”

  김동수 해설의 응원을 힘입으며, 사이언스 베슬 2기를 동반한 3부대의 마린메딕 병력이 지체없이 전진했다. 이것을 본 저그는 3시 멀티 지역에 성큰 4개를 동시에 지었다. 저그의 뮤탈리스크 부대가 전진하는 마린메딕 부대를 툭툭 건드렸지만, 공2, 방1업 되어 있는 마린의 화력에 쫓겨 결국 후퇴했다.

  “저그의 뮤탈리스크 병력이 많이 모이지 않았습니다? 저그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건가요?”

  옵저버가 저그의 본진을 찍어보자, 그레이트 스파이어가 업그레이드중인 모습이 잡혔다. 정일훈 캐스터가 ‘아, 가디언이네요!’ 라고 말하려는 찰나, 저그의 앞마당에서 변태에 들어가는 열 기 가까운 럴커를 확인하고 경악했다. 해설진도, 경기를 관람하는 모든 지구인들도.

  “아아! 저 럴커 완성되면 이길수가 없는데요! 임요환선수!!!”
  “지금 세시쪽으로 가면 무조건 집니다! 최대한 빨리 앞마당으로 달려가서, 저 럴커들 한꺼번에 잡아 줘야 해요!”

  요환은 저그의 앞마당에 성큰 여부를 확인하려고 스캔을 뿌려보았다. 그런데, 변태중인 럴커의 에그들이 보였다. 요환은 거의 반사적으로 바이오닉 병력에 스팀팩을 주입시키고 달리게 했다. 스탑 럴커의 위험이 있었지만, 베슬과 함께 전진시킬 상황이 아니었다.

  “샤하아악~!!!”

  마린, 메딕 부대가 엄청난 속도로 밑으로 내려왔다. 저그는 테란이 3시 멀티를 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뮤탈리스크와 소규모 저글링 부대를 그 부근에 대기시켜 놓았고, 이전의 교전에 남아 있었던 럴커 2기는 행방을 알 수 없었다. 득달같이 달려온 테란의 병력들은 순식간에 변태중인 럴커를 둘러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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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8일 1시 45분
서울 여의도 본사, MBC 경기장


  “두두두두두두두!!”
  “끼아아악!”

  저그의 뮤탈리스크 두 부대가 에그를 공격하는 마린 메딕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여지없이 뮤탈리스크 부대의 정 가운데로 이레디에이터가 꽂혔다. 결국 뮤탈리스크들은 후퇴해 나갔고, 김동수 해설이 테란 본진의 무엇인가를 발견한 것도 그 때였다.

  “지금 테란의 본진 지역에 드랍 공격 들어갑니다!”

  옵저버가 테란의 본진을 클릭하자, 아까 남아있었던 럴커 2기의 행방이 드러났다. 수송 업그레이드만 마친 느릿느릿한 오버로드가 럴커 2기를 테란의 본진에 내려놓았다. 럴커 2기는 이제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테란의 미네랄 뒤편으로 스믈스믈 다가갔다.

  “임요환 선수 위험합니다!! 앞마당에는 럴커 완성됐나요?”

  미네랄 뒤에 럴커가 버로우하기 직전, 요환의 SCV가 타이밍 좋게 썰물 빠지듯 앞마당 미네랄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바로 그 때, 앞마당의 럴커 9기가 완성되었다.

  “샤하아악!! 두두두두두두!!!”
  “퍼어엉! 펑! 퍼어엉!”

  요환의 마린들이 다시 한 번 약기운에 취한 괴성을 질렀고, 버로우 하던 와중에 럴커 3기가 순식간에 터져 나갔다. 그리고 나머지 6기의 럴커가 버로우하자, 요환의 마린들이 순간적으로 럴커에서 떨어져 나가며 산개했다. 요환의 마린은 후퇴하면서 한 기의 럴커를 추가로 잡아내었다.

  “두두두두두두!!”
  “퍼허엉!!”

  요환은 4기의 럴커를 잡아내면서 마린은 한 기도 잃지 않았다. 감탄할 사이도 없이, 화면은 다시 요환의 본진으로 돌아갔다. 미네랄 뒤편에 버로우되어 있는 럴커 2기가 테란의 커맨드 센터를 두드리고 있었다.

  “임요환 선수, 탱크가 없어서 이거 정말 괴롭습니다! 본진에는 베슬 한 기와 마린병력 소수가 전부인데요.”

  베슬로 럴커를 볼 수는 있었지만, 미네랄 뒤편의 좋은 위치에 버로우한 탓에 럴커를 잡아내기 매우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 때, 미네랄 위, 아래로 SCV 2기씩이 럴커에게로 접근해갔다. 그와 동시에 마린 한 기가 스팀팩을 쓰고 럴커들의 오른쪽으로 달려들었다.

  “샤하아악~!”
  “촤좌좍! 촤좌좍!”
  “치이익, 치익……”

  럴커의 가시가 마린을 향해서 날아들었다. 하지만 마린은 위, 아래로 빠르게 움직이면서 절묘하게 럴커의 공격을 피했고, 그 동안에 럴커에 달라붙어 있는 SCV들의 핵융합 절단기가 럴커들을 지졌다.

  “이야아!”
  “이야아!! 임요환 선수!!”

  경기를 보는 해설자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마린은 총 3번의 스팀팩을 쓰면서, 2기의 럴커에서 뻗어나오는 가시 공격을 계속해서 이리저리 피했다. 이윽고 붉은 장밋빛 피를 터뜨리며 럴커 두기가 차례로 터져나갔다.

  “우와아아아!!!”
  “이야아! 임요환 선수의 컨트롤!”

  해설자들도, 프로게이머들도, 경기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도 탄성을 질렀다. 하지만 정작 요환은 기뻐할 사이도 없이, 진출해 있던 병력을 3시 방향으로 바삐 진격시켰다.

  “어어? 임요환 선수, 3시 지역으로 내려가버리면 안됩니다! 럴커 때문에 저 병력 저기에 갇혀버리죠! 성큰 개수도 많습니다!”

  다시 슬금슬금 모이기 시작한 뮤탈리스크들이 3시 지역을 지키러 날아왔다. 그러나 요환의 병력은 3시 지역 언덕 위에서 더 이상 내려가지 않고 멈추었다. 언덕 위에 있던 5기의 럴커가 버로우를 푼 것도, 7시 섬멀티에 드랍쉽이 도착한 것도 그 때였다.

  “이야! 임요환의 드랍쉽입니다! 7시 멀티 공략하는 임요환!”
  “3시쪽으로 공격하는 액션을 취해서 뮤탈리스크를 묶어둔거죠!”

  성큰 한 개뿐인 7시 멀티는 요환의 드랍쉽 한 대로 파괴되어 나갔다. 이에 맞서서 저그는 더 이상 휘둘리지 않고, 럴커와 뮤탈리스크, 저글링 다수 병력을 위쪽으로 진군시켜 나갔다. 이제 간신히 앞마당 커맨드 센터를 완성시킨 요환에게 저그의 공격은 뼈아팠다.

  “저그 병력 임요환 선수의 앞마당으로 들어갑니다!”
  “아, 이거 막기 힘든 공격인데요!”

  요환은 앞마당 앞에 벙커 세 개를 짓고 버텼지만, 럴커와 뮤탈리스크, 아드레날린 저글링의 공격에 순식간에 방어선이 뚫렸다. 파도처럼 밀려 들어오는 저그의 병력을 보며, 요환은 이를 악물며 본진의 건물들을 리프트(lift) 시켰다.

  “아! 임요환 선수! 건물 띄웁니다! 엘리미네이트 싸움!”
  “엘리전은 좋지 않습니다, 뮤탈이 너무 많아요! 결정적으로 이 맵에서 저그가 드론 비비고 섬멀티를 할 수가 있거든요?”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병사에게는 전진밖에 없다. 요환의 바이오닉 병력은 6시로 공격을 들어갔고, 대동하던 베슬 4기는 본진쪽으로 날아갔다. 상황은 급박한 엘리전으로 치닫고 있었다.

  

2005년 5월 8일 1시 49분
서울 여의도 본사, MBC 경기장


  “드랍쉽! 드랍쉽 위험합니다!”

  정일훈 캐스터의 다급한 목소리가 경기장에 가득했다. 7시 멀티를 파괴하고 저그의 본진쪽으로 출발하던 드랍쉽에 스커지 4기가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임요환 선수! 임요환 선수 저 드랍쉽 잃으면 안돼요! 엘리전이 벌어진 이상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아아아!”
  “퍼펑!”

  스커지 3기가 들이받으며 병력을 가득 태운 드랍쉽이 속절없이 공중폭파되자, 해설을 하던 김동수 해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한편 테란의 본진에서는 벙커를 짓고 터렛을 수리하며 SCV들이 저그의 병력에 처절하게 맞서고 있었다. 대여섯기씩 벙커에 달라붙어 수리를 하던 SCV들은, 럴커가 버로우해서 공격하자 한꺼번에 터져 나갔다.

  “두두두두두두두!”
  “촤좌좌좌좍!”
  “퍼퍼퍼펑! 퍼펑!”

  그 때, 베슬 4기가 도착해서 뮤탈리스크에게 이레디에잇을 걸어주기 시작했다. 뮤탈리스크들이 분산해서 공격해 들어왔기 때문에, 아까보다는 이레디에잇의 효율이 많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이레디에잇 4방의 위력은 상당했다. 이레디에잇을 맞은 뮤탈리스크 아래에 있던 저글링들도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임요환 선수, 이레디에이터! 뮤탈리스크 우왕좌왕합니다!”
  “끼아아악!”

  상처입은 뮤탈리스크들이 괴성을 지르며 베슬에게 달려들었다. 이레디에잇을 걸고 빠르게 후퇴했지만 결국 도망친 베슬은 한기뿐이었다.

  “샤하아악~! 두두두두두!!”
  “퍼허엉!”

  한편 저그의 앞마당을 쓸어버린 요환의 병력은 저그의 본진으로 먼저 내려갔다. 주요 건물들을 먼저 파괴해버리기 위해서였다. 럴커 두 기와 저글링 한 부대와의 교전이 펼쳐졌다. 이 병력을 상대하고, 본진에 있는 성큰 세 기를 깨뜨리는 동안 요환의 바이오닉 병력도 두 부대 정도로 규모가 줄어들었다.

  “두두두두두두두!”
  “퍼어억! 촤하악!”

  저그의 스파이어, 히드라리스크 덴, 해처리와 하이브가 차례로 순식간에 파괴되어 나가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저그도 위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저그의 상황을 알아챈 김동수 해설이 급히 외쳤다.

  “임요환 선수! 3시지역에 병력이 필요합니다! 지금 섬멀티 견제수단이 없거든요! 저그가 드론 비비기로 섬멀티 못하게 해야해요!”

   한편, 테란 본진의 방어라인은 모두 궤멸되었다. 저그도 지상군은 전멸했지만, 두 부대가 넘는 뮤탈리스크들이 테란의 본진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지상의 모든 유닛과 건물을 파괴시킨 저그의 병력은, 이제 공중에 날아다니는 테란의 건물들을 하나씩 찾아내어 파괴시키고 있었다. 정말로 목숨을 건 혈전이었다.

  “어어, 3시지역에서 드론들 움직이네요? 임요환 선수의 마린도 출발합니다!”
  “임요환 선수! 지금 3시지역에 오버로드도 없습니다! 어떻게든 드론 비비기만 막으면 임요환 선수 이길수 있어요!”

  그러나, 옵저버가 3시 지역의 입구를 보여주었을 때, 해설자들은 큰 소리로 감탄했다. 파이어뱃 2기가 단단히 입구를 틀어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하, 파이어뱃! 임요환 선수 3시 입구를 파이어뱃으로 막아두었군요!”
  “아하! 임요환 선수 센스!!! 아까 3시멀티를 치러 갔을때 파이어뱃 2기를 세워둔거죠!”

  하지만 테란의 건물 역시 뮤탈리스크가 거의 모조리 파괴시키고 있었다. 테란에게 남아있는 건물은 12시 지역으로 날려보낸 배럭스 둘, 맵 중앙으로 날려보낸 팩토리 하나 뿐이었다. 그나마 배럭스들은 뮤탈리스크들이 발견, 공격당하고 있었다.

  “임요환 선수, 남은 건물 팩토리뿐이거든요! 팩토리 지켜야 합니다!”  

  6시 지역의 라바까지 깨끗하게 청소하고 올라온 바이오닉 병력들이 맵 중앙의 팩토리를 엄호했다. 마침내 12시의 배럭스들도 모두 파괴되고 나자, 요환에게 남은 것은 바이오닉 병력 2부대, 사이언스 베슬, 그리고 이 팩토리 하나가 전부였다. 팩토리를 수리할 SCV 하나 남지 않은 상황에서, 3시 지역을 빨리 공격해야 하면서도 팩토리를 보호해야만 하는 요환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자, 테란과 저그의 자원상황이 궁금한데요! 지금 자원상황이 어떻게 되죠?”

  김동수 해설이 자원상황을 묻자, 곧 화면에 테란과 저그의 자원상황이 표시되었다. 요환의 자원은 미네랄 70에 개스 200가량, 저그의 자원상황은 미네랄 300정도에 개스는 두 자리 수였다. 3시 지역에는 성큰 콜로니 4기와 해처리, 익스트랙터, 그리고 드론 대여섯 기가 미네랄만 캐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경기를 보는 사람의 입장이었고, 상대 상황을 전혀 알 수 없는 요환으로서는 답답할 따름이었다. 게다가 3시지역에서 오버로드를 생산해서 드론을 나르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요환은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남은 사이언스 베슬을 저그 진영으로 날렸다.

  “저그, 오버로드가 생산되었습니다! 때맞추어 임요환 선수의 베슬이 날아드는데요!”

  갓 생산된 저그의 오버로드가 드론을 싣고 1시 지역의 섬멀티로 천천히 움직여갔다. 바로 그때 날아든 요환의 베슬이 오버로드에 이레디에잇을 걸었고, 오버로드는 싣고 있던 드론을 도로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 오버로드는 피안개를 뿌리며 터져버렸지만, 베슬 또한 뮤탈리스크들에 의해 파괴되어 버리고 말았다.

  “아아, 임요환 선수! 베슬 잃습니다!”
  “임요환 선수의 팩토리는 맵 중앙의 십자가 지형 바로 아래를 지나고 있습니다!”

  오버로드보다 이동속도가 빠르다는 건물이지만, 요환과 그것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그 때, 베슬을 파괴한 뮤탈 부대가 입구를 막고 있던 파이어뱃 2기를 쳤다.

  “퍼펑!”
  “아! 임요환 선수, 파이어뱃 잡혔어요!”

  파이어뱃 2기는 순식간에 파괴되었고, 곧바로 6기의 드론 전부가 언덕 위로 출발했다. 섬멀티를 허용하면 무조건 패배다. 요환은 눈을 부릅뜨고, 팩토리를 남겨두고 드론들을 잡아내기 위해 바이오닉 병력을 출발시켰다.

  “샤하아악~!!!”
  “끼아아악!!”

  마린과 뮤탈이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달려나갔다. 뮤탈은 팩토리가 있는 곳으로, 마린은 저그의 앞마당으로. 요환의 마린이 간신히 도착했을 때, 저그의 드론들은 벌써 미네랄에 붙고 있었다. 김동수 해설과 정일훈 캐스터가 악을 썼다.

  “드론!!! 드론 잡아야 합니다, 임요환! 드론!!! 보내면 안돼요!”
  “보내면 안됩니다!!! 임요환!!! 드론 잡아야돼요!!!”

  요환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마린들이 다시 한 번 스팀팩을 쓰며 달려들었다. 벌써 미네랄을 통과하기 시작하는 드론들에게로, 가우스건의 스파이크가 쏟아져나갔다.

  “두두두두두두!!”
  “파학! 파학! 파학!”

  연약한 드론들이 삽시간에 터져 나갔다. 그러나, 맨 처음 미네랄을 통과하던 드론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안돼요, 임요환!!!”

  마린 한 기가 미네랄에 바싹 붙더니 다시 한 번 사격을 가했다.

  “두두두!!”

  그러나, 체력이 반 이상 깎인 드론은 결국 마린의 사정권을 벗어났다. 아득하게 멀어지며 워포그 속으로 사라지는 드론을 따라, 손에 잡힐 듯 했던 마지막 한 줄기 희망도 그렇게 멀어져갔다. 요환의 입술에서 피가 맺혔고, 눈앞이 흐려지는 것만 같았다.

  “끼아아악!! 파파팡!!! 파파팡!!!”

  뮤탈리스크 부대는 요환의 하나 남은 팩토리를 일점사하고 있었다. 벌써 체력은 노란색까지 떨어졌다. 요환이 바이오닉 병력을 돌려서 팩토리를 공격하는 뮤탈리스크를 쳤지만, 뮤탈리스크는 아랑곳하지 않고 팩토리만 공격했다.

  “두두두두두두!!!”
  “키아악!! 키아악!!”

  뮤탈리스크가 녹아내렸지만, 팩토리의 체력은 급격하게 떨어졌다. 마지막 한 마리의 뮤탈리스크가 산화했을 때, 요환의 팩토리의 체력은 기어이 붉은 색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이미 390대로 내려간 테란의 건물은 빠르게 그 숫자가 떨어져만 갔다. 경기를 보고 있는 지구인들은 아무도, 아무 말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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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8일 1시 58분
서울 여의도 본사, MBC 경기장


  “두두두두두두!!!”
  “아아악! 아악!”

  요환은 GG를 치지 않았다. 팩토리는 불을 뿜고, 저그는 섬멀티를 가져갔지만, 요환의 바이오닉 병력들은 3시 저그의 성큰 라인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성큰 라인을 다 깨기도 전에, 7시 섬멀티에 드론이 해처리를 펴기 시작했다.

  “샤하악! 두두두두두두!!”

  성큰 4기로 인해 요환의 바이오닉 병력도 반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성큰 라인을 돌파하고, 저그의 본진을 두드리며, 저그의 자원상황을 알 리 없는 요환은 제발 저그가 엘리미네이트 되기만을 바랬다. 하지만, 저그가 자원이 없다면 그렇게 필사적으로 섬멀티를 가져가려 했을 리가 없다. 해처리까지 부순 테란의 병력은 저그의 익스트랙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촤아악!"
  “……”

  침묵 뿐이었다. 해설진도, 경기를 보는 많은 수의 지구인들도, 요환의 메시지창에도. 결국, 마지막 익스트랙터를 파괴했지만, 엘리미네이트 메시지는 뜨지 않았다. 7시 섬멀티이든, 아니면 다른 곳이듯, 어디엔가 저그의 건물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

  요환의 손이 조금씩 마우스에서 미끄러졌다. 어떻게든 더 버티고 싶어도, 요환의 남은 생은 이제 200 가까이 내려간 불붙은 팩토리의 체력과 비례하여 줄어들고 있었다.

  ‘팩토리.’

  미끄러져 내려가던 요환의 손이 다시 마우스 위로 올라갔다.


2005년 5월 8일 1시 59분
서울시 중구 태평로, 시청 앞 서울광장


  “임요환 선수의 병력이…… 언덕을 올라옵니다……”

  시청 앞 광장은 암흑 같은 적막만이 감돌았다. 모두들 괴로움에 지쳐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힘이 빠질 대로 빠진 해설진들의 목소리를 듣는것마저 괴로웠고, 벌써부터 눈을 가려버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저…… 저기.”

  그때, 요환의 마린 4기와 메딕 1기가, 레퀴엠 3시 앞마당 미네랄의 움푹 패인 곳으로 정렬해 들어갔다. 그 움직임은, 어떻게든 미네랄 안쪽으로 들어가려 안간힘을 쓰는 처절한 몸부림이 아니었다. 그 등뒤로 불붙은 팩토리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어……?”

  대형 스크린을 보며, 시청 앞 광장 사람들은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엇에 홀린 듯한 멍한 표정으로 일어나는 사람들, 그들이 일으키는 술렁임이 작은 파동처럼 전해져갔다.

  “끼이잉- 푸슝-”

  팩토리가 미네랄 바로 옆에 안착했다. 그리고 애드온을 달자, 마린 메딕이 마술처럼 미네랄 안쪽으로 밀려 들어갔다. 이윽고 우뢰같은 박수와 함성이 터져나왔다.

  “이야아아아!!!!! 임요환 선수! 애드온으로 비벼넣기!!!!!!!”
  “우와아아아아!!!!!”
  “이야아아아!!!!”

  굉음으로 정신이 멍해질 정도였다. 엄청난 환호성과 비명에 가까운 감탄사가 시청앞 광장을 뒤흔들었다. 미네랄 안쪽으로 들어간 마린 4기와 메딕 1기는 인류를, 그리고 요환을 구원하기 위해 그 걸음을 재촉했다.

  “아아아!!! 임요환 선수! 팩토리의 애드온으로 마린 메딕을 밀어넣습니다!”
  “자, 달립니다!! 팩토리 부서지기 전에 해처리 부숴야 합니다!”

  해설진도 경악과 흥분에 사로잡혔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팩토리의 붉은 체력은 150이하로 내려갔다. 무서우리만치 빨리 숫자가 줄어들고 있었지만, 아무도 마린의 공격력, 해처리의 체력, 팩토리가 부서지는 시간 등을 생각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샤하악-!! 두두두두두두!!!!”
  “파학! 파학!”

  해처리에 도착하자 마자 다시 한 번 스팀팩을 쓴 요환의 마린들은, 철모르고 미네랄을 캐고 있던 드론 2기를 터뜨렸다. 그리고 해처리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공 2업 마린!!! 스팀팩을 쓰고 해처리를 두드립니다!!!”

  화면에는 줄어드는 팩토리의 체력과 해처리의 체력이 번갈아가며 나왔다. 요환은 계속해서 스팀팩을 쓰면서, 해처리를 두드렸다. 드디어 해처리의 몸체에서 뭉클 뭉클 붉은 피가 솟아나오기 시작했다. 해설자들도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깨뜨릴 수 있어요!! 해처리가 먼저 깨집니다!!!”
  “임요환!!! 임요환!!!”

  그 때, 요환의 마린 3기가 추가로 도착했다. 애드온을 취소하고, 한번 더 애드온을 사용해서 마린 병력을 밀어넣은 것이었다. 테란의 화력은 한층 그 기세를 더했다.

  “두두두, 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
  “촤하아악!!!”

  팩토리의 체력이 60까지 떨어졌을 때, 마침내 저그의 해처리가 터져나갔다. 곧 화면에는 노란색 메시지가 떠올랐고, 몸을 뒤로 젖히며 두 주먹을 치켜드는 요환의 모습이 나오자 다시 한 번 시청 앞 광장은 거센 함성의 폭풍으로 휘몰아쳤다.

  <2 was eliminated.>

  “우와아아아아!!!!!!! 임요환 파이팅!!!”
  “이야아아아아!!!!!!!”

  그 함성 틈 사이로, 정일훈 캐스터의 쉰 듯한 고함 소리가 메아리쳤다.

  “임요환 선수!!! 자신의 손으로, 자기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 내고, 인류에게 귀중한 1승을 자신의 힘으로 일구어냅니다! 임요환 선수!!!”



2005년 5월 8일 2시 00분
서울 여의도 본사, MBC 경기장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요환은 헤드폰을 벗었다. 그리고, 동료 게이머들과 중계진 외에는 무섭도록 조용한 경기장 분위기에 놀랐다. 이전까지의 소란스럽고 시끌벅적했던 외계인들은 모두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조용히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환호성보다도 통쾌한 침묵이었다.

  “요환이형!!! 진짜 최고야!!!”
  “임요환 최고다!!! 이야아아!!!”

  동료 프로게이머들이 펄쩍 펄쩍 뛰면서 고함을 질러댔다. 그런 동료 게이머들에게, 요환은 오른손 주먹을 번쩍 치켜들며 화답했다.

  “쿵, 쿵, 쿵!”

  바로 그 때, ‘사형 집행관’ 외계인 둘이 거칠게 걸어왔다. 그들의 손에는 몽둥이 같은 것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키야아악!!”
  “퍼걱! 퍼걱! 퍼억! 퍼어억!”

  그들은 몽둥이로 사정없이 요환의 반대편에 앉아 있던 외계인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그가 앉아있던 의자마저 부서져버렸고, 길쭉한 머리의 외계인은 알아듣지 못할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요환은 그 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키아아아악!!! 캬아아아악!!!”

  ‘저러다가 완전히 부서져 버리겠다’ 할 정도로 무섭게 내리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부서지고 깨져 나가도록 ‘사형 집행관’ 외계인들은 패배한 외계인을 몽둥이로 내리쳤다. 바닥에 널부러진 외계인의 몸뚱이가 내려 칠 때마다 박살나기 시작했다.

  “퍼걱! 팍! 파직!”

  외계인의 체액도 붉었다. 붉은 것들이 사방으로 튀어올랐고, 그럼에도 외계인들은 몽둥이질을 멈추지 않았다. 패배라는 것에 대한 응징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만약 패배했다면 자신의 저 모습이었을 거라는 사실에, 요환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후우……”

  요환은 뒤돌아섰다. 운이 많이 따라 주었지만, 어쨌든 승리해 냈다. 너무 긴장한 탓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제 시작이다. 이제부터는 내 동료들이 해 낼 것이다. 요환은 문득 검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곳에, 민재가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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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어트
05/08/21 02:05
수정 아이콘
임요환 팩토리 애드온으로 밀어넣어란 말이야!! 하면서 읽었는데 진짜 그래되다니... 은근히 즐겁네요...;;
그나저나 애드온말고 그냥 팩토리가 내려 앉아도 마린이 밀려나지 않나요??
쿠우~★
05/08/21 02:10
수정 아이콘
이디어트// 마린이 밑에 있으면 리프트 한다음에 아예 다시 랜드가 안되지 않나요?;;
이디어트
05/08/21 02:15
수정 아이콘
쿠우~★ 님// 내리는 도중에 마린이 끼어들면 밀려나는걸로 아는데...
전 처음에 저걸로 생각을...;;
쿠우~★
05/08/21 02:31
수정 아이콘
이디어트//실험해본 결과 왠만하면 팩토리는 안내려지는 것 같더라구요..도중에 마린이 끼어들어도;; 게다가 어쩌다 타이밍이 좋아서 들어가게 되도 에드온 비비기보다 훨씬 비효율적이죠.;; 들어가는 머린 숫자도 1기밖에 될 수가 없을 것 같구요. 허나 에드온은 3시 앞마당 미네랄 움푹파인곳에 유닛을 바글바글 갔다놔도 에드온 자리가 아니라 팩토리 내릴 자리만 확보해주면 에드온 위치에서 대기하고 있는 유닛의 대부분을 비비기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용~
이디어트
05/08/21 02:37
수정 아이콘
쿠우~★님//그렇게까지 실험 안해보셔도-_-;;
그냥 농으로 듣고 넘기셔도 될걸 그렇게 실험을...;; 괜히 죄송 해지네요;;
지수냥~♬
05/08/21 09:23
수정 아이콘
이디어트/쿠우 스갤에 이 장면 관련 짤방있습니다 검색해보시길
FreeComet
05/08/21 10:49
수정 아이콘
-_-ㅋ 위치에 따라선 팩토리만으로 마린 비벼넣기도 충분히 가능하죠. 근데 다만 소설에서 묘사된 부분의 미네랄 배치상 팩토리로는 굉장히 힘들지만, 에드온으로라면 초보자라도 쉽게 할 수 있죠.
05/08/21 11:31
수정 아이콘
팩토리가 내려갈때 마린넣으면 되죠 ㅋ
05/08/21 11:38
수정 아이콘
정말 멋지네요..
아케미
05/08/21 12:40
수정 아이콘
어느새 42편까지 올라왔군요. 이제 본편과 속도가 얼추 맞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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