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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08/20 22:21:07 |
Name |
DEICIDE |
Subject |
스타크래프트소설 - '그들이 오다' 37~39화 |
2005년 5월 8일 1시 00분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 시청 앞 서울광장
시청 앞 광장의 분위기는 침통했다. 너무도 충격적이고 잔혹한 장면이 그대로 생중계되었기 때문이었다. 수만 명을 헤아리는 사람이 모여 있음에도, 시청 앞 광장은 마치 찬물을 끼얹어 놓은 듯 그 어느 누구도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단지, 시청 앞 광장에 설치된 대형 스피커에서 중계진의 톤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말……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중계진인 저희로서도 정말 안타깝고 괴로운 상황입니다……”
정일훈 캐스터가 많이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김동수 해설은 거의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윤열의 죽음을 완전히 실감하기도 전에, 다음 경기는 그대로 진행되었다. 다시 한 번 정일훈 캐스터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 전 세계의 모든 여러분. 이럴 때일수록 다시 한 번 힘을 모아 응원해 주십시오. 자신의 목숨과 인류의 운명을 걸고 싸우는 이 젊은이들을 응원해 주십시오. 그럼, 다음 선수를 소개하겠습니다.”
정일훈 캐스터의 말이 끝나자, 화면에 인류가 내보내는 두 번째 선수가 나왔다. 바로 그 순간, 누군가가 두 주먹을 번쩍 치켜들며, 울부짖는 듯한 사력을 다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야아아아!!!! 임요환 파이팅!!!!!”
그 소리를 기점으로, 여기 저기에서 목청이 터져라 임요환을 응원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잠시 후,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고함소리와 박수소리가 시청 앞 광장을 뒤흔들었다.
“임요환 파이팅!!!!!”
“으아아아아아아!!! 이겨라!!!!”
“이겨라!!! 임요환!!!”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각자 무엇인가를 부르짖었다. 그 처절한 응원의 소리를 들었을까, 화면에 비친 임요환의 눈매가 순간 매서워졌다.
2005년 5월 8일 1시 06분
서울 여의도 본사, MBC 경기장
“상대방의 종족은는 랜덤(Random) 입니다.”
임요환에게는 그다지 좋지 않은 소식이 들어왔다. 그의 앞에 앉은, 세로로 여섯 개의 눈이 달린 길쭉한 머리의 외계인이 선택한 종족은 랜덤이었다. 경기석에 앉아서 장비를 점검하는 중이었던 요환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후!……”
요환은 주위를 둘러보고서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컴퓨터 등 장비는 새 것으로 교체되었지만, 주위에는 여전히 피가 흥건했다. 외계인들이 윤열의 시체만 치우고서는 의도적으로 정리를 하지 않은 것이다. 발 밑에 질척이는 느낌과 함께 피비린내가 확 끼치자, 요환의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요환이형이 진정을 해야 할텐데.”
선수석에 앉아 있던 진호가 그런 임요환의 뒷모습을 보고 걱정스레 말했다. 대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진정을 하라는 거야. 하는 반문이 진호 스스로에게도 떠올랐다.
“랜덤이라니. 진짜 어떻게 하라는……”
강민이 말꼬리를 흐렸다. 상대 선수의 정체와 맵도 모르는 가운데 랜덤이라는 것은 심리적 압박감이 너무도 컸다. 또한, 손가락 부상중인 강민이 느끼는 불안감은 나머지 경기를 기다리는 선수들과는 전혀 달랐다. 그런 일이 있으면 안되지만, 정말로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되지만 앞으로 한 명만 더 패배하면 경기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것도 모든 것이 걸려있을 마지막 5경기를. 그러는 사이 정일훈 캐스터의 목소리가 커졌다. 맵이 결정되어지는 순간이었다.
“다음은 맵이 선택되겠습니다! 30개의 맵 중에서 임요환 선수가 플레이하게 될 맵은 무엇일까요?”
아까와 같이 맵 선택 화면이 나타났다. 요환도 고개를 돌려 그것을 바라보았다. 30개의 맵들의 사진과 이름이 빠르게 전환되고 있었다.
“타타타타타타……”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와중에도, 익숙한 맵들이 눈에 띄었다. 고전맵인 플레인스 투 힐, 비프로스트같은 맵들이 스쳐 지나갔다. 언뜻 머큐리도 있는 것 같았다. 과연 어느 맵이 선택되어질 것인가.
“타타타타…… 탁.”
순간 맵이 정지하고, 한 맵이 선택되었다. 맵의 가운데에 있는 푸른색 십자가를 확인하는 순간, 요환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2005년 5월 8일 1시 15분
서울 여의도 본사, MBC 경기장
“타탁, 탁.”
요환은 NEW ID를 클릭하고,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씩 자신의 ID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SlayerS_`BoxeR`>
입력하기를 마치고, 엔터를 누르자, 슈웅 하며 화면이 열렸다 닫히더니, Games 창에 ‘2’ 라는 제목으로 게임이 하나 만들어져 있었다. 여기에 조인하면 곧 게임 시작이다. 상대방 선수와 옵저버가 모두 게임에 조인해 있는 상태였고, 요환의 조인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요환의 마우스 포인터가 천천히 숫자 ‘2’ 로 가까이 다가갔다.
“……”
요환의 마우스 포인터가 방제 위에서 멈추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시 한 번 피비린내가 코를 자극했고, 윤열의 마지막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리고 외계인이 들이대던 윤열의 머리. 채 감지도 못한 눈. 피, 피, 피.
“……”
너무도 많은 생각이 요환을 스쳐 지나갔다. 공포. 부담감. 나를 바라보고 있는 시선들. 나의 실력. 스스로에 대한 신뢰. 믿음. 불안. 학살. 인류.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외계인. 죽음. 외계인에게 죽음. 민재. 민재.
‘민재……?’
순간 요환은 ESC 키를 눌렀다. 그의 화면은 다시 ID 입력 화면으로 돌아왔다. 요환은 다시 NEW ID를 누르고, 새로운 아이디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타탁, 탁.”
그리고, Enter를 누르고 거침없이 방에 조인해 들어갔다.
“삑, 삑, 삑, 슈웅-”
“드디어 임요환 선수가 게임창에 조인…… 어?”
김동수 해설이 새로이 창에 조인한 ID를 보고, 말을 꺼내려다가 순간 머뭇거렸다. <SlayerS_`BoxeR`> 라는 임요환 고유의 아이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그 아이디가 해석되자 김동수 해설은 ‘아아’ 하고 탄성을 뱉었다. 그 때, 게임 안에 있는 그 누구보다 먼저, 임요환 선수가 채팅 메시지를 날렸다.
<Emperor of Terran: 시작>
그러자, 잠시 후 ‘2’ 라는 아이디로 조인해 있던 외계인도 메시지를 띄웠다.
<2: 시작>
요환은 종족을 Terran 으로 선택했다. 외계인의 아이디 옆에 있는 Random 이라는 글귀가 눈에 거슬렸지만, 더 이상 신경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사소한 것에 흔들리지 말자. 제 4의 종족 따위는 없다. 테란, 저그, 프로토스만 존재할 뿐이다. 어차피 그 셋 중의 하나를 상대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요환은, ‘뚜’ 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렸다.
<starting in : 5 seconds>
요환은 민재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당신은 언제나 최고입니다. 항상 최고였고, 앞으로도. 그러니 힘내십시오.’
최고. 그래, 질 수 없다.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 내 모든 것, 최선을 다 해 보겠다. 이기자.
요환의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는 순간, 슝 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이 열렸다. 누구를 위한 진혼곡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네오 레퀴엠에서의 테란의 황제는 손수 그 첫 악장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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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8일 1시 20분
서울 여의도 본사, MBC 경기장
“두 선수 경기시작됐습니다! 9시와 6시. 먼저, 테란 임요환 선수의 진영……”
“아, 저그에요!!!”
정일훈 캐스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동수 해설이 외쳤다. 미니맵의 6시 지역에,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푸른 점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 즉시, 옵저버가 움직이고 있는 오버로드를 비추었다.
“아, 그렇군요! 상대편은 랜덤을 선택해서, 저그가 나왔습니다. 임요환 선수의 붉은색 테란은 9시, 파란색 저그의 진영은 6시입니다.”
저그의 오버로드는 요환이 있는 9시 지역으로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지만, 정일훈 캐스터가 밝아진 목소리로 김동수 해설에게 말을 걸었다.
“자, 저그입니다. 임요환 선수의 대 저그전. 말이 필요 없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에요!”
“네. 참 기막히게도 맵도 임요환 선수가 강한 네오 레퀴엠, 상대 종족도 지금의 임요환이라는 프로게이머를 있게 했다고도 할 수 있는 저그가 나왔는데요. 분명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윤열도 로스트템플에서 프로토스를 상대로 패했다. 무엇인가를 장담할 만한 상황은 절대 아니었다. 게다가 상대는 랜덤이었다. 임요환은 지금 당장은 3개 종족을 모두 염두해 두어야 하는 것이다.
“자, 이런 면이 있습니다. 임요환 선수는 상대방 종족을 모르기 때문에, 빠른 배럭스를 가져가지 못합니다. 그걸 알고 있는 저그는 자신감있게 12드론 앞마당 해처리를 가져갈 확률이 7~80% 이상입니다. 그런데 역으로 생각해 볼 때, 만약 임요환 선수가 과감하게 8배럭을 가져간다면, 지금 위치 상황으로 볼 때 벙커링이 굉장히 위력적일 수 있습니다.”
“자, 과연 임요환 선수가 어떤 선택을 할 지……”
“어, 어, SCV 한 마리 움직이죠.”
해설자들이 요환의 전략을 예측하고 있는 와중에, 요환의 SCV가 입구쪽으로 서서히 움직여갔다. 8번째 SCV임을 확인한 김동수 해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정말 8배럭인가요 임요환 선수!?”
하지만, SCV는 건물을 짓지 않고 그대로 언덕을 올라가서 12시 방향을 향했다. 그리고 요환은 자신의 미네랄 바로 아랫부분에 서플라이 디팟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아, 아니군요. 예. 상대방이 랜덤이니까 빠른 정찰을 나가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렇죠. 상대방의 종족을 모르는 상황에서 8배럭은 너무 불리한 도박이죠.”
이에 맞서는 저그는 오버로드로만 정찰을 하고 드론 정찰은 나가지 않았다. 테란이 정찰할 때까지 자신의 종족을 들키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그리고 해설자들의 예상대로, 저그는 오버로드를 생산한 다음, 12드론까지 만들고 나서 앞마당 멀티를 가져갔다. 요환은 정석적인 10배럭스를 입구 아래쪽에 가져가기 시작했다. 언제라도 서플라이 디팟으로 입구를 막을 수 있는 위치였다.
“자, 저그는 12드론 앞마당 해처리, 임요환 선수의 SCV는 12시를 거쳐 3시지역으로 가고 있고, 저그의 오버로드는 테란의 진영을 발견합니다.”
저그의 오버로드가 테란의 서플라이 디팟을 확인하는 즉시 방향을 선회했다. 하지만, 3시 지역으로 내려가려던 SCV도 급히 방향을 선회하여 6시로 향했다. 임요환도 오버로드를 본 것이었다.
“임요환 선수, 오버로드 봤죠? SCV의 모습으로 봐서는 본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이제 상대의 종족이 저그라는 것을 확인했는데요.”
“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임요환 선수?”
화면에 요환의 얼굴이 비추어졌다. 하지만 임요환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마치 저그일 줄 알고 있었다는 듯, 요환은 그대로 자신의 플레이를 진행시켰다. 그렇게 임요환의 SCV가 저그의 앞마당까지 도착했고, 변태중인 해처리를 흘끗 확인한 후 6시 본진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임요환 선수, 이제 SCV가 상대편 본진을 정찰합니다. 스포닝 풀을 확인한 임요환 선수.“
그 때, 미니맵을 주시하던 김동수 해설이 급히 말했다.
“자, 테란의 본진에서 무언가 나옵니다. 뭐죠?”
옵저버가 테란의 본진을 클릭했다. 마린 한 마리가 언덕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자, 자, 마린이 움직입니다, 임요환 선수! 서플라이 먼저 가져갔다고 해서 벙커링 하지 말란 법 없는거죠!“
스포닝 풀이 절반 정도 지어지는 것을 확인한 요환의 SCV는 다시 언덕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해처리 옆에 벙커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해설진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아! 임요환 선수 벙커링 들어갑니다!!! 저그 드론들도 모두 언덕 위로 튀어 나옵니다!!!”
저그의 드론들이 황급히 달려 나오더니, 일부는 벙커를 짓는 SCV를 공격하고, 일부는 내려오는 마린 병력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퓩! 퓩!”
드론이 SCV와 마린에게 서너기씩 달라붙어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요환은 내려오던 마린을 후퇴시켰고, 짓고 있던 벙커는 건설을 중지시키고 SCV를 다시 저그의 본진 쪽으로 내려 보냈다.
“아, 임요환 선수. 벙커링 더 이상 들어가지 않습니다."
"예, 스포닝풀이 생각보다 빨리 완성되어서, 결국 생산되는 저글링때문에 실패한다는 거죠. 만약 임요환 선수가 마음먹고 하는 벙커링이라면 SCV도 함께 대동했을 겁니다. 일종의 벙커링 페이크라고 봐야겠지요.“
앞마당에 방어하러 나온 드론들은, 짓다 만 벙커를 계속해서 공격했다. 결국 요환은 벙커를 취소시켰고, 드론들은 일부는 앞마당 미네랄로, 일부는 본진으로 돌아갔다. 잠시 긴장감이 고조되었던 레퀴엠 6시 앞마당 지역은 다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자, 아직은 상황을 속단하기엔 이릅니다. 저그는 랜덤을 선택했기 때문에 비교적 무난하게 앞마당 멀티를 가져갔고요, 임요환 선수도 서플라이를 먼저 지으면서 가난하지 않게 출발한 다음, 벙커링 페이크로 상대편 드론을 한동안 일을 하지 못하게 묶어 두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김동수 해설은 내심 불안했다. 나쁜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만족스러운 상황도 아니었다. 이렇게 심리적 긴장감이 클 때에 눈에 띄는 이득을 챙기지 못했다는 것은 결국 요환에게는 압박감이 가중될 터였다.
‘힘내라, 요환아. 저 나쁜 놈들을 제발, 제발 이겨 버려라.’
동수는 속으로 요환을 애타게 응원했다. 저그는 레어가 올라갔고, 테란은 아카데미가 지어지고 있었다. 폭풍 전야와 같은 적막이 흐르는 레퀴엠 전장에서는, 평화롭게 노닐고 있는 맵 중앙의 Scantid 와 Ragnasaur 들의 움직임마저 불안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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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8일 1시 25분
서울 여의도 본사, MBC 경기장
“테란의 병력이 저그의 앞마당을 압박합니다!”
투배럭스에서 꾸준히 병력을 생산한 요환은 마린, 메딕, 파이어뱃으로 저그의 앞마당을 압박해 들어갔다. 하지만 이미 저그의 앞마당에는 성큰 4개가 완성되어 있었고, 크립콜로니 2개가 더 버티고 있었다. 요환은 더 들어가지 못하고 주춤했고, 바로 그 때 요환의 본진으로 뮤탈 6기가 날아들었다.
“끼아악!!”
뮤탈리스크들이 괴성을 지르며 서플라이 디팟을 짓던 SCV를 향해 초록색 산 스프레이를 날렸다. SCV는 폭발했고, 조금 더 전진하던 뮤탈리스크는 터렛의 미사일과 스팀팩 마린들이 달려들자 주저없이 후퇴했다.
“테란의 병력이 회군합니다! 뒤이어 드론 비비기로 7시 섬지역 멀티를 가져가는 저그!”
뮤탈리스크의 견제를 의식해서, 요환은 전진해 있던 병력을 다시 회군시켰다. 그 사이 저그는 하나의 개스 확장기지를 더 가져갔다. 조금 마음이 조급해진 김동수 해설이 애타는 듯 말했다.
“자, 임요환 선수.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착실하게 앞마당 멀티 가져가는 판단이 어떨까 합니다. 테란의 한방 병력이 진출해서 그것이 막혔을 경우에는 너무도 상황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하지만 동수의 바람과는 달리, 요환은 팩토리의 애드온을 달고 시즈모드 업그레이드를 하고 있었고, 스타포트까지 짓고 있었다.
“임요환 선수 멀티 준비하지 않는데요? 대신 테크트리를 올리고 병력을 모으고 있습니다!”
“아…… 임요환 선수! 가까운 러시 거리를 믿고 있고, 또 자신이 가장 선호했던, 저그를 잡는 가장 고전적인 방법인 타이밍 러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다시 위쪽에서 저그의 뮤탈리스크들이 날아들었다. 굉장히 잘 뭉쳐 있어서 숫자를 파악하기 힘들었지만, 무서운 속도로 터렛을 파괴하는 것으로 보아 한 부대는 족히 될 만한 숫자였다.
“저그의 뮤탈리스크가 날아듭니다!”
“임요환 선수, 탱크 조심해야 해요! 탱크 지금 어디 있습니까?”
김동수 해설의 말을 들었다는 듯, 팩토리 옆에 우두커니 서 있던 시즈 탱크를 발견한 뮤탈리스크들이 무섭게 날아들었다. 요환의 마린들도 다급히 스팀팩을 주사하고 탱크를 보호하러 달려갔다.
“파파팡!”
“키에엑!”
뮤탈리스크들이 날아가며 일제히 시즈탱크를 공격하자, 순식간에 시즈탱크의 체력이 노란색까지 깎여버렸다. 하지만 다행히도 마린들이 달려들어 뮤탈리스크들은 두 번 공격하지는 못하고 후퇴했다. 요환은 후퇴하는 뮤탈리스크를 일점사해서 한 기를 잡아내었다. 해설진들의 해설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자, 임요환 선수가 진출하기가 매우 곤혹스럽습니다! 저그의 7시 멀티는 이제 완성되었는데요. 곧 활성화 될 거란 말입니다.”
“임요환 선수, 진출 타이밍 빨리 잡아야 합니다. 저그는 지금 3시 멀티도 시도하고, 럴커로 체제변환 하는 중이거든요? 베슬까지 갖추고 나가기 위해서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이대로 완전히 갇혀버리는 수가 있어요!”
시간이 없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요환이었다. 저그의 앞마당 상황을 스캔으로 확인하고 나서, 탱크 2기가 되자 요환은 바이오닉 부대와 함께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진출하죠! 임요환 선수, 진출합니다! 그런데 위에서 뮤탈리스크, 뮤탈리스크 날아옵니다!”
뮤탈리스크가 언덕을 오르고 있는 테란의 병력을 급습했다. 목표는 시즈 탱크였다.
“파파팡! 파파팡!”
“퍼펑!”
“샤하악~ 두두두두두두!”
요환도 재빨리 대처했지만, 똘똘 뭉친 뮤탈리스크가 치고 빠지는 컨트롤을 하자 탱크 1기를 잃고 말았다. 저그는 뮤탈리스크 3기를 잃었지만, 탱크를 줄인 것은 큰 성과였다. 김동수 해설이 안타까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임요환 선수! 탱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데요!”
“자, 임요환 선수! 계속 내려 갑니다!”
요환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팩토리에서 곧 시즈 탱크 1기가 추가되자 진격을 다시 시작했다. 시즈탱크 2기를 동반한 바이오닉 두 부대 가량 되는 병력이 저그의 앞마당으로 치고 내려왔다. 저그는 앞마당의 성큰을 마구 늘렸고, 그와 함께 저그의 히드라리스크 네 마리가 3시 쪽으로 돌아 나갔다.
“끼이익- 끼이잉- 퍼펑!!”
“시즈탱크가 성큰 콜로니의 방어라인에 포격을 시작합니다!”
2기의 시즈탱크가 7개나 되는 성큰 라인에 포격을 시작했고, 따라 나온 SCV 2기는 미사일 터렛을 틈새에 건설했다. 저그는 성큰 라인 뒤쪽에도 계속 성큰을 만들며, 뮤탈리스크를 모으고 있었다.
“끼아아악!!”
뮤탈리스크들이 테란의 본진을 다시 급습했다. 외따로 떨어져 있는 마린이나 SCV를 일점사로 잡아내주며, 틈만 보이면 테란의 추가병력을 끊어버릴 기세로 움직였다. 하지만, 요환은 소수 유닛을 섣부르게 보내지 않았다. 병력을 충원시키려다가 지속적으로 뮤탈리스크가 추가병력을 잘라먹으면 결국 진출해있는 주병력도 위험해지기 때문이었다.
“자, 저그는 성큰으로 버틸 수 있을때까지 뮤탈리스크를 최대한 모으면서, 뮤탈리스크와 바깥에 빼놓은 저 럴커 세기로 한번에 임요환 선수의 병력을 잡아먹겠다는 생각인데요, 임요환 선수, 병력을 모았다가 충원시키는 지금의 플레이는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출해있는 병력이 싸먹히기 전 타이밍에 지원병력을 충원시켜야 해요!”
저그의 성큰 라인은 시간이 갈수록 엷어졌다. 남은 성큰 콜로니는 3개, 그리고 뒤쪽에 2개가 추가로 더 건설되고 있었다. 줄어드는 성큰 라인을 보며 요환은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피말리는 순간입니다! 임요환 선수, 과연 뚫어낼 수 있을 것인지!”
저그의 앞마당 지역에서는 저글링이 모이고 있었고, 뮤탈리스크는 둘로 나뉘어서 한 쪽은 본진에서 진출을 준비중인 테란의 병력을 감시하고 있었고, 한 쪽은 본진 지역에 차곡 차곡 모이고 있었다. 그리고 3시 지역에는 럴커가 완성되어 움직였다. 바로 그 순간,
“샤하악~!!! 두두두두두두두!!!!”
“아아악!!!”
요환의 바이오닉 병력이 거친 쉰소리를 내며 성큰 라인으로 달려들었다. 병력이 충원되어야 공격해 들어올 것이라는 타이밍을 그 전으로 끌어올린 것이었다. 4개의 성큰으로 인해 마린 몇 마리가 희생당했지만, 공1업 스팀팩 마린들은 순식간에 성큰 라인을 돌파했다. 그리고, 본진에 있던 바이오닉-탱크 부대도 출발을 시작했다.
“아!!! 임요환 선수! 공격해 들어갑니다! 이와 동시에 본진에 있던 추가병력 진출!”
“저그의 뮤탈리스크가 미처 대응하기 전 타이밍이에요!!!”
순간 당황한 저그는 흩어져있던 뮤탈리스크 부대를 황급히 모으기 시작했다. 그런데 미리 빼돌려놓은 럴커 4기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럴커는 중앙에 있는 십자가 모양의 미네랄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서는 9시 지역에 버로우했다. 테란 병력이 내려오는 길목이었다.
“저기, 저기! 임요환 선수 스탑럴커 조심해야 해요! 저거 예상하기 힘들거든요!”
요환의 바이오닉, 탱크 진출병력은 이제 앞마당 해처리에까지 당도했다. 성난 마린과 파이어뱃이 앞마당 해처리로 달려들었고, 앞마당에 모여 있던 저글링들이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두!!!”
“파앗! 파앗! 퍼펑!”
그 순간, 저그도 더 이상은 물러나지 않고 모아 두었던 저글링과 뮤탈리스크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뮤탈리스크는 세 부대 가까이 모인 상황이었다.
“뮤탈과 저글링이 달려들기 시작합니다!”
그 모습을 본 요환은 빠르게 병력을 터렛 라인까지 후퇴시켰다. 그와 함께, 이제 막 언덕을 올라온 추가 병력에게 스팀팩을 맞히고 빠르게 내려보냈다. 그 결과를 알고 있는 김동수 해설은 그만 비명을 질렀다.
“아악!!! 임요환 선수 안돼요!!!”
한편, 대규모 뮤탈 저글링은 터렛 라인까지 후퇴한 테란의 주병력에게 그대로 공격을 감행했다. 그 컨트롤을 해 주느라, 요환의 순진한 추가 바이오닉 병력들은 숨죽이고 있는 럴커들 위로 달려들고 있었다. 다수의 병력이 위를 지나가자, 럴커의 비늘 가시 뭉치가 쏟아져 나갔다.
“촤자자자자작!!”
“끄아아아악!!!”
요환의 귀에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미니맵을 클릭하자, 그의 동공에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는 바이오닉 부대의 붉은 혈흔이 비쳤다. 그것은 마치 요환의 눈동자가 붉게 변해 버린 듯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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