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경험기, 프리뷰, 리뷰, 기록 분석, 패치 노트 등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Date 2005/01/28 23:48:25
Name 베르커드
Subject 말아톤 - 싸늘한 시선을 용서해주는 포근한 사랑
처음으로 '노리고' 쓰는 장문의 감상문입니다.

━1.

이야기는 초원이의 밥투정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밥투정이라는 것 자체는 그 나이의 어린이라면 한번쯤은 하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초원이의 '첫 모습'은 일반인과 별반 다름없게 시작하는 셈이다.
그런데 관객은 이미 '자폐아의 눈물나는 말아톤 완주일기' 라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

과연 이 정보를 어떻게 꼬아줄 것인가 하고 상당히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기 시작했다.

━2.

이 장면을 주목해라. 비를 느끼는 손.
초원이 어머니는 어릴적 초원이에게 '비'의 개념을 가르쳐주기 위해 비를 맞힌 적이 있었다. 그때 내민 손이 바로 이 손이다.
말도 제대로 못하던 초원이가 무의식적으로, 분명히 그때에도 개념을 이해했을 것이다.
그래서 초원이는 왼손을 물어뜯는다.
분명히 초원이는 어머니의 짜증을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손을 물어 뜯었을 것이다.
물어뜯는 행위엔 자학의 개념이 있었다. 그런데 왜 오른손이 아니라 왼손인가?
세상을 느끼기 위해서 만들어진 그의 오른손은 그 자신에겐 너무나 소중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3.

코치라는 양반은 처음부터 이런 일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초원이 어머니가 사정사정을 하는데에도, 조소로 일관하다가 마지못해 시작하게 된다.
이때 등장하는 요소가 초원이의 CF카피 낭독(?)과 양복인데
전자는 자폐아의 특성이라고 한다. 나는 어린아이들의 일반적인 현상으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다고 한다.
어찌되었건 간에 치밀한 고증이다.
다만 여기서 아쉬웠던 것이 초원이의 양복착용.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섯살짜리 애가 그렇게 양복을 빨리 입을 수 있단 말인가? 넥타이까지?

처음에는 그냥 대충대충 시간이나 때우던 코치.
하지만 무심결에 내뱉은 말에 그대로 순종하는 초원이의 순수한 모습에 감화되어 진심으로 초원이를 응원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초원이와 친해지려고 데려간 찜질방과 노래방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의 독점욕과, 궁지로 몰려져가는 초원이 가족의 모습을 동시에 조명한 건 너무나 훌륭한 연출이었다.
초원이가 한가지에 몰두하게 되어서 어머니 또한 초원이에게만 몰두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소원해져버린 동생과 아버지는 따로 살 생각까지 했으니 말 다했다.

━4.

결국 초원이는 자기가 기억하던 10월 10일에 혼자서 멋대로 춘천마라톤에 가버린다.
그리고 그 순간에까지도 초원이를 말리는 어머니.
그리고 초원이는 자기의 의지로, 달리기 시작한다.
달리다 달리다 지쳐 쓰러진 뒤엔, 누군가가 준 초코파이에 힘을 얻어 일어나는데...
이 또한 어릴적에 그의 어머니가 교육하던 것.
그런데 그렇게 일어나서 다시 뛰더니 초코파이를 버린다.
초원이의 성장을 그려내고 싶었다면 초코파이를 그 타이밍에 등장시켜선 안되었다.
왜냐, 달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초원이에겐 초코파이가 필요없었기 때문이다.

━5.

초원이는 훌륭한 기록을 남기며 춘천 마라톤대회를 완주한다.
이 과정에서 그가 오른손으로 사람들의 환호를 느끼는 장면에서 정말 눈시울을 붉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초원이의 완주를 계기로, 붕괴되어가던 가족이 다시 하나가 되어 단란한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초원이 방에 걸린 양복과, 식탁위에 깨끗히 비워진 짜장면 4그릇)
사진 찍을때의 '스마일' 에서 끝났어도 좋았겠지만, 역시 이전에 붕괴된 가족의 이미지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다시 보여준 것이 참 좋았다.

━결론.

자폐아에 대한 사람들의 냉소적인 시선을 따뜻한 사랑으로 덮어주는 훌륭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다만 온정주의를 양산하게 될 것 같아 조금은 불안한 영화.
조승우 씨의 연기는 정말 훌륭했다.

마지막으로 이 감상문을 쓰기 위해 끄적여둔 메모를 공개한다. 감상문에 언급되지 않은 단어들이 무수히 나열되어있으니 이쪽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메모를 보시려면 마우스로 긁어주세요


코치의 감화와 어머니의 자포자기와 가족구조의 붕괴와 초원이라는 존재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차가운 시선
어머니의 독점욕과 버림받은 가족
초원이의 기억력과 어머니의 시련, 죄책감, 멍에
비를 느끼는 손과 물어뜯는 손과 사람들이 내미는 손
비를 맞듯이 힘을 얻는 초원이 포기하지않는 초코파이
얼룩말처럼 빠르지 않게 오래오래 참고 견디길 강요하는 어머니와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자책하는 어머니
하지만 그 교육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마지막 스마일
그리고 너무 뻔한 초반 노트
질리도록 치밀하고 독선적인 엄마의 계획서 그거에 발끈하는 코치
내던진 말에 따르는 순수한 양심에 상처받는 어른들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은 가즉붕괴 지치는 가족
그러나 마지막에 보여주는 짜장면 네 그릇과 양복과 소풍준비하는 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식상 그래도 최상의 결말이 아니었을까
너무나 단기간에 성장해버린 초원이 초코파이때문에 일어나놓곤 초코파이를 버리다
광고 카피를 읊어대는 모습은 어린아이의 습관에 대한 치밀한 분석
허나 양복은 입지 말았어야 함 리얼리티 결여로 지적가능
닷살애가 어떻게 넥타이까지


이미지 출처 : 말아톤 공식 홈페이지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베르커드
05/01/28 23:49
수정 아이콘
html 소스로 작성해서;; 막 에러가 났네요
여러번 썼다 지웠습니다;;
세이시로
05/01/29 00:58
수정 아이콘
저도 어제 이 영화를 봤습니다. 잘 쓰신 후기인거 같네요. ^^
정말 마지막의 조배우의 미소는 대단했죠. 극장안 사람들의 탄성이 절로 터져나올 정도였으니까요~ ^^
조배우...5년 안에 한국 최고의 배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강하게 왔습니다. 그정도로 대단한 연기와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 거 같습니다.
씰일이삼
05/01/29 01:00
수정 아이콘
이렇게 좋은 후기를 보면 일단 다른 사람들의 평이 어떻든 영화가 마구마구 보고 싶어지죠^^
Karin2002
05/01/29 01:39
수정 아이콘
클래식에서 그의 연기를 본후 정말 그에 팬이 되어버렸죠. 아쉬운건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지킬과 하이드 못본겁니다 ㅠ.ㅠ 이제 고3이라 볼시간도 없고요..말아톤은 꼭 봐야겠네요^^
20세기소년
05/01/29 02:26
수정 아이콘
클래식과 후아유를 보면서 참 연기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요번영화도 대단한 모습을 보여줬나 보군요..
후기 잘읽었습니다. 저도 꼭 봐야 겠군요...
펀치스트립
05/01/29 02:30
수정 아이콘
우리나라 배우 중 조승우씨가 아니면 절대 소화할 수 없는 연기 였습니다
시사회 끝나고 조숭우씨가 인터뷰에서 자기 연기에 전혀 후회가 없다고 했는데, 정말 그런말이 나올만 하더군요 ...
조승우씨는 진정 "배우" 인듯...
이 배우가 세월에 따라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네요^^
나옹이다옹~
05/01/29 09:22
수정 아이콘
오늘 볼꺼에요~ 님의 글은 보고 오고 난 후 꼭 읽겠습니다. 기대되네요^^
게르만
05/01/29 11:39
수정 아이콘
저..실제주인공이..제가 아는 분이라죠..
옛날 저희동네에서 곰두리 체육센터-_-;에서 수영하셨던..형입니다.
옛날엔 신문에 철인3종경기 완주로도 1면에 나온 적이있었는데.
정말 성공..했더군요. 어머니의 노력도 그렇고 그 형의 노력도 그렇고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계속 드는군요..
05/01/29 16:14
수정 아이콘
참 잘 읽었습니다. 정말로 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05/01/29 16:18
수정 아이콘
멋진 영화입니다. 거슬리는 부분도 나름대로 있지만 (간접 광고 -_-;) 달린다는 것이, 달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잘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누구나 자폐증 적인 증세를 조금씩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요? 전 보면서 남의 일 같지 않고 친근감이 들었.. -_-;;;
05/01/29 16:40
수정 아이콘
마침 어제 보고 왔습니다. 조승우씨 연기가 일품이더군요.
스피넬
05/01/30 15:49
수정 아이콘
저도 어제 보고왔는데 연기 진짜 잘하시더군요...
마지막에 스마일~ 절대 잊을수 없을껍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652 World E-Sports Games 16인의 시인에 대한 단상의 끝, 그리고 새로운 시작. [3] The Siria3367 05/01/29 3367 0
10651 아직은 과거일 수 없음에 [10] Satine3792 05/01/29 3792 0
10650 주간 PGR 리뷰 - 2005/01/22 ~ 2005/01/28 [12] 아케미4568 05/01/29 4568 0
10649 200501301600...새로운 시작 [35] 정일훈3951 05/01/29 3951 0
10648 김선기선수 죄송해요 [19] 최연성같은플5252 05/01/29 5252 0
10646 I love soccer! I love Ronaldo! [22] Juventus3845 05/01/29 3845 0
10645 말아톤 - 싸늘한 시선을 용서해주는 포근한 사랑 [12] 베르커드3803 05/01/28 3803 0
10641 [알림] 1차 Ladies MSL 오프라인 예선전 공지 (세부사항추가) [25] i_terran4875 05/01/28 4875 0
10639 1경기 감상평 [42] Sea.s2_4486 05/01/28 4486 0
10638 [후기] 당골왕배 MSL 오프후기^^ [15] Eva0104097 05/01/28 4097 0
10637 별들의 전쟁 episode 0. ☆Ⅰ부 12 ~ 13장. [2] Milky_way[K]3262 05/01/28 3262 0
10636 어제 MSL 패자조 결승을 보고.. [9] 제로스3108 05/01/28 3108 0
10635 밸런스 패치...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43] hobchins3768 05/01/28 3768 0
10634 자유게시판 최저 조회 수 [12] 총알이 모자라.4186 05/01/28 4186 0
10632 생뚱맞은 궁금증... 우승한번과 준우승3번, 누가 강할까요? [45] tovis5159 05/01/28 5159 0
10631 이번 MSL 최종결승 예상 [47] 초보랜덤4012 05/01/28 4012 0
10630 긍정의 힘을 믿습니다. [9] BluSkai3742 05/01/28 3742 0
10628 전 한심하고 쓰레기같은놈입니다. [50] 요환짱이다4135 05/01/28 4135 0
10627 토론이나 반박을 할 때 주의해야 할 점 [5] Timeless4255 05/01/28 4255 0
10623 지금 호주에선 테니스 전쟁중. [22] Yang4553 05/01/27 4553 0
10622 대한민국이란 나라.. [10] 봄날3335 05/01/27 3335 0
10621 임요환 선수의 빌드 싸움 [22] 까꿍러커5112 05/01/27 5112 0
10619 Coolwen 이승원해설의 열정 [53] 박서야힘내라8065 05/01/27 8065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