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터넷에서-.
한국이 세계 1위인 것들에 대한 글이 여기저기 퍼지고 있다. 반도체 생산량, 선박 건조율, 스타크래프트 상위 랭킹 점유율, 초고속 인터넷 사용률, 컴퓨터 보급율, 인터넷 이용시간, 네티즌 참여도, 휴대폰 보급 성장률, 스키장갑, 오토바이 헬멧, 손톱깎기, 텐트, 낚싯대, 냉동 컨테이너 등. 그 외에도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분야가 꽤 많다. 더러는 '별 시시콜콜한 분야에서다. 세계 1위를 하네?'라는 반응도 없지 않지만, 반도체 생산량 정도나 세계 수준에 들어있는 줄 알았던 네티즌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요즘 인기 있는 '펀 글(퍼온 글)' 중의 하나가 됐다. 그 글을 읽으면서 "왜 이토록 자랑스런 세계 일류가 많은데 그동안 잘 몰랐을까?"하는 의아심이 생겼다.
2002년 6월 4일 상암동 월드컵 공원에서-.
필자는 대형 전광판으로 한국과 폴란드의 경기를 봤다.'48년만의 월드컵 1승'은 3만명은 족히 넘을 듯한 응원단을 온통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지만, 그 열기가 정리되어가는 자리엔 흔히 보아와서 차라리 익숙한 쓰레기는 없었다.
그보다 몇 시간 전, 어렵사리 부산 월드컵 경기장의 입장권을 구했다며 들떠서 비행기를 타러 가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상이 나빠 비행기가 부산 상공에서 김포로 회항했다는 소식이었다. "의리 없이 혼자 가더니 쌤통"이라는 필자의 농담에 답하는 친구의 현장 중계는 "그런데 사람들이 이상해, 악다구니 쓰고 싸우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였다.
2002년 6월 10일 폭우가 쏟아지는 서울 시청 앞 광장-.
뉴스에선 그 자리에 모인 사람의 숫자가 65만명이라고 했다. 65만! 필자는 평생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쏟아지는 빗줄기를 피해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제 풀에 지쳐 돌아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어? 이상한데!", "심상치 않은데…?", "뭔가 다른데…?"
아! 그랬다.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부터 여러 사람들을 술렁이게 했던 이상한 기운은 이것이었나 보다. 뭐 엄청나거나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한국 축구를 일사분란하게 응원하고,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던 자리를 깨끗이 치우고, 서로 격려하고 다독거리고 힘을 내는 모습들…. 그렇다! '자존심'이 시킨 일이었다. 누가 뭐라 해서가 아니고, 스스로 그것이 납득되는 일이었으므로 자연스레 어깨동무를 한 사람들의 가슴 속엔 더 큰 자존심이 쌓여가고 있었다.
필자는 그것이 꼭 축구여서가 아니라는 것을 믿고 싶다. 스스로 납득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자존심이 반도체에서도, 낚시대에서도 폭발할 것을 믿는다.
어쩌면 우리는 당당히 '일류'가 될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 '삼류'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다르다. '일류'가 되기가 어려웠던 것이 아니었나 보다. '일류'라는 자존심을 갖기까지가 그렇게도 어려웠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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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 칼럼] 정일훈, 우리는 '일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