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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06/14 01:47:29
Name beholder
Subject 플라톤의 철인정치를 생각하며...
이번 선거 투표율이 48% 랍니다. -_- 훗~ 48%...
유권자 수가 10만명인 선거구에서 60%의 지지로 당선된 후보라면,
4만 8천명의 60%니까, 28,800명의 지지가 되겠군요 -_-
그럼 다시 유권자 대비 비율로 보면 28.8% ... 훗~

반장선거도 꼴보기가 이것보단 낫겠습니다 -_-

오늘 투표를 하고 와서, 왔다갔다 하면서, 또 TV 가끔 힐끔힐끔 보면서
투표율이 저조하다는 둥, 역사상 최악의 투표율이라는 둥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줄곧 제 머리속을 맴돈 것은 제가 군대있었을 적의 기억입니다.

당시 보직이 인사과 행정병이었던 저는 13대 국회의원 선거 부재자투표에
선거관리병으로 파견근무를 했더랬는데 말이죠...
그때 저와 함께 뺑이를 치던 한 전우가 투덜대더군요...

"아~ 씨 왜 귀찮게 투표같은 걸 시켜가지고 X뺑이 치게 하나?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군바리들은 그냥 이런 거 안하면 안되나?"

그와 함께 유권자 명단확인하랴, 지역별/부대별로 투표용지 나누랴 땀 흘리던 저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할 말을 잊었습니다.
저 역시
후보들에 대한 정보도 별반 없이 막연히
이름과 사진, 프로필만 보고 말그대로 찍.어.야.되는 상황에 대해서
나름대로 유감스러워 하고는 있었습니다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갖게된 투표권을 행사할 기회를,
군대에서나마 가질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럭저럭 긍지까지도 가지고 있었더랬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제 머리속을 때린 생각은

'아- 이런 자들에게도 투표권을 굳이 줘야만 하는가?'
였습니다.

오늘 투표장 안가고 딴 짓하신 분들... (아, 물론 투표권 없는 분들은 빼고 말입니다)
당신의 소.중.한 한 표를...
4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지역행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칠 인물을 뽑는 권리를,
행사할 30여분의 시간(그 이상도 필요 없더군요),
그것을 포기하게 한 당신의 바쁜 용무는 과연 무엇이었습니까?

"난 정치엔 관심없어."
라는 변명은 당신의 권리를 박탈해도 좋다는 의사표시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옛날에 중국의 요라는 임금은
'누가 임금인지도 모르는 상태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정치'
라고 했습니다만,
지금이 태평성대 요순시대 입니까?
그렇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것도 한 권리이겠습니다. 전 이것엔 전혀 불만이 없습니다.

"도대체 그놈이 그놈이라 찍을 놈이 있어야지."
라고 변명하시는 분들...
얼마나 자세히 그들의 공약을, 그들의 프로필을, 그들의 정치적 가치관을
관심갖고 바라보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엔 딴나라당, 새천년미친당, 개발독재연합, 남조선노동당 말고도
다른 정당 많습니다.
저도 오늘 투표장 가서야 알았지만 '녹색평화당'도 있고 '사회당'도 있더군요 -_-;
결과는 아직 다 나오진 않았지만,
이런 정당에서 나온 후보들, 다 떨어졌을 겁니다. 뻔합니다.
바로 당신이 그들을 찍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후보들, 찍어서 당선되어봐야 아무 힘 못쓸 지도 모릅니다.
이런 후보들, 일껏 당선시켜줘봐야 곧 태극기 흔들면서 다른당 입당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어쩌면 다른 넘들이랑 똑같은 짓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당신은 당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했어야 했습니다.
전체 유권자의 28% 지지를 받았건, 실질적인 지지율이 10%짜리 당선자건 간에
유감스럽게도 그 당선자가 당신의 머리위에
적어도 앞으로 4년간, 헌법으로 보장된 정치적 지배력을 행사할테니까요.

여기서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분이라면
그 정치적 지배력에서 '상.관.없.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은 당신과 당신의 아버님의 소득에서 일정부분을 당연스럽게 뜯어갈테고
당신이 사먹는 과자 한 개, 빵 한 덩이, 담배 한 가치, 껌 한 조각에도
'부가가치세'라는 명목으로 그들의 운영자금인 '세금'이 붙어있으니까 말입니다.

당신은 오늘 30분의 시간을 들여
"에이 X발. 찍을 놈 없네."하고 투덜거리며
하다못해 백지를 그냥 투표함에 넣고 오는 한이 있더라도,
(아니면 수십군데에다 마구 도장을 찍어댄다던가 -_-;)
투표장에 갔다 왔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기권'과 '무효표'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무효표는 투표율에는 합산이 되지만, 지지율에는 합산이 되지 않습니다.
투표장까지 가서 굳이 무효표를 만드는 정치적 의사표현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보다 더 극명하게 표현하는 '경고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당신이 버린 한표를 위해
우리의 선배들이 흘렸을 피를 단 한번이라도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우리에게도 선발된 200여명의 사람들이
장충체육관에 모여 대.통.령을 뽑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_-

나를 지배할 규칙을 만들고 굴릴 사람을 뽑을 권리

이것이 몇시간 전에는 당신 손에 있었습니다.
설사 당신이 저와 다른 사람을 지지한다 하더라도 저는 상관없습니다.
다만 다음에는 당신의 권리를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투표장 다녀오는데 기껏해야 30분입니다.
쓰레빠(-_-;) 질질 끌고가도 아무도 뭐라고 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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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6/14 02:02
수정 아이콘
하루 1시간 밖에안주는 시간에 찍으러가느니 잠잡니다
일하면 시간안줍니다 ㅡㅡ 일해야죠 누군지도모르는 사람을찍느니 걍 외면하는거죠 어떻게 알아봅니까? 누가 누군지
몸으로 먹고사는 직업 찍을 시간도 없습니다ㅡㅡ

정치인 잘찍어서 잘된것 알아볼시간에 먹고살면서 한푼이라도 버는게 좋다구봅니다 뭐 제말이다맞다는게아니라 사람마다 입장이있다는 예기죠ㅡㅡ 놀기만해도 찍는다,, 한시간 밖에안주는데 피곤하구 그냥잡니다 1시간이면 찍는다구요? 찍겠죠 허나 그래서 바뀐걸 알아보는것보다 피곤한몸 1시간자는게 전 하고싶은걸요
02/06/14 02:06
수정 아이콘
글 잘 쓰시네요. 이런 좋은 글이 삭제될 리가 있겠습니까?
02/06/14 02:09
수정 아이콘
가츠님 무슨 말씀이신지? 1시간 밖에 안 주다뇨? 그럼 23시간을 일하신다는 말씀? ????
돌팔이2
02/06/14 02:23
수정 아이콘
아.. 그게 이름이 철인 정치였나요? 음..
언젠가, 최선의 정치 형태는 모든 것을 아는, "신"에 의한 독재 라는 말을 읽은 기억이 있었는데, 그때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는... 플라톤의 말로 기억을 하는데 음..
민주주의와 철인정치는 왠지 안 어울릴 것 같은...
여튼, 생각이 많이 들어 간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 ^^
02/06/14 02:28
수정 아이콘
오늘 투표 결과를 보고 난 후의 심정은.......에라이! 그래 XXX당에 나라 맡겨서 지금보다 더 나은지 한 번 지켜보고 XXX 대통령 되고선 어떤 모습 보이는지 지켜보고 XX일보들이 자기네들 말처럼 정권비판 신문인지 한 번 지켜보자! 였습니다ㅡ.ㅡ 그나마 진보정당의 기수인 민노당의 지지가 눈에 띄게 상승했다는 것이 위안을 가지는 중이죠(충청도를 제외하면 자민련보다 높던 것 같군요) 저도 이번 선거 찍을 사람이 없어서 관둘까 했지만 그래도 살펴봐서 찍었습니다. 사실 도지사, 시장 뽑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것임에도 반장 선거보다 관심을 덜 기울이는 사람들도 있죠. 정치적 무관심도 각자의 판단이라 생각을 하지만 그런 경우가 많을 수록 정치권과 일반 시민들이 분리가 되어서 정치판을 썩게하지 않나 싶습니다.
정준영
02/06/14 04:51
수정 아이콘
붉은 악마를 보면서 온국민이 애국자처럼 느껴 지다가 투표율 40퍼센트 대라는 기사를 보고 참으로 웃긴일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한국의 경기를 보고 성원하기 위해 텐트를 치고 기다리며 표를 구하는 사람들..대한민국 파이팅을 외치면서 골이 들어가면 부둥켜 않고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이런 사람들로 이루어진 나라에서 투표율이 40퍼센트 대라는게 믿기질 않는군요.. 한국인들의 이중적인 모습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투표를 하지 않으면 참정권을 박탈하는 제도 라도 만들면 좋겠습니다.. 16강에 올라간 나라보다 원칙이 당연하다는 듯 존재하는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네요..
정준영
02/06/14 04:53
수정 아이콘
3류정치, 3류언론, 3류사회를 만드는 요건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4류 국민.....
brecht1005
02/06/14 08:53
수정 아이콘
'정치혐오주의'는 정말 문제죠. 정치에 관련된 문제는 다 비팒고 지지 정당이 없는 것이 '비판의식 있는 유권자'로 오인받는 분위기를 바꾸지 않는한 정치발전도 없을겁니다. 어쨌든 민주노동당이 자민련을 앞선것이 기뻐서 어제밤에는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대선까지 이어졌으면..
02/06/14 09:10
수정 아이콘
실버층의 승리!
오동 잎 한잎 떨어지는 것을 보고 천하에 가을이 온 것을 안다고 했습니다.
어제 아침 칠순 어머니 손 잡고 투표장으로 가면서 어머니께 은근히 여쭈어 보았죠. 누굴 찍을거냐고...
어머니께서는 입을 꾹 다물고 대답을 안 하셨습니다.
전 느끼는 바 있어 웃음이 나왔습니다. 얼마 전 퇴근 후 제가 어머니께 이번 선거에 누가 누군지
모르겠고 다섯 번이나 투표한다는데 어떻게 찍는거냐고 여쭙다가 말끝에 우리가 사는 곳과 멀리 떨어진
곳에 둥지를 튼 당을 변호하는 말을 했었거든요.
그 후, 어머니는 저에게 속내를 감추시는 겁니다. 노인들 특징이지요. 모르는 채, 말 안 하시는 거...
그래서 자칫 젊은사람들은 노인들이 아무 생각없고 판단력도 없고 아무 것도 모른다... 착각하지요.
경로당 가보셨습니까? 그분들은 그분들끼리 활발한 토론을 합니다. 놀라울 정도로 많은 정보를 교환합니다.
아파트 나무그늘 아래서, 벤치에서 부채를 흔들며... 온갓 세상사 얘기 나누다가,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입을 꾹 다뭅니다.
낯선 사람의 말에는 대꾸없이 고개만 끄덕이지요.
젊은이들 같은 즉각적인 반발은 커녕, 반응조차 없습니다. 주름진 얼굴에 무표정 아니면 웃는 얼굴뿐입니다.
그러나, 어머니 손 잡고 투표장 가는 길에 만난 많은 노인들, 어머니와 인사하는 그 노인들은 확실하게
투표장에 갔다 왔거나 가고 있는 길이었습니다.
살아 온 경험으로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는 분들이었습니다.
혹시라도 착각할까봐 그 분들은 지나가는 다른 노인분들에게 다시 한번 소리치더군요. 처음에는 석장을 주는데 어떻게 어떻게 찍는거고, 다음 두장 주는데 그거는 어떤 어떤 거라고...
brecht1005
02/06/14 09:18
수정 아이콘
아.. 그리고 남조선노동당이라뇨.(물론 패러디시겠지만요.^^) 다른 당은 그렇게 많이 불리지만 남조선노동당은 북쪽에 '남'자만 뺀 정당이 엄연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한 50년전에 있었던 사건이 생각나서 패러디하지 마셨으면 하는 바램이-_-;
beholder
02/06/14 10:51
수정 아이콘
^^;; 뭐 저야 민주노동당에 악감정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만, 누군가가 한나라당을 미워하는 이유만큼, 다른 누군가에게는 민주노동당을 미워할 이유가 충분히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문제의식을 느끼는 부분은 이러한 정치적 입장의 차이가 아니라, 정치 전반에 대한 막무가내식의 혐오와 무관심입니다.
brecht1005
02/06/14 11:08
수정 아이콘
님의 뜻은 알겠구요.^^ 다만 한나라당->딴나라당 새천년민주당->새천년미친당 등의 패러디는 많이 봤지만 민주노동당->남조선로동당 이라는 패러디는 처음 접하는 것이라-_- 당연히 민주노동당 싫어하는 사람 있겠죠. 아니, 아주 많을거라 생각합니다.^^
손건곤
02/06/14 13:48
수정 아이콘
4류 국민이라...
beholder
02/06/15 04:18
수정 아이콘
제 의도가 잘 전달된 것 같지 않아 유감입니다. 뭐 글 잘못 쓴 제 잘못이겠습니다마는... -_-; 두가지 부분에 대해서는 약간의 오해가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 하나, 제가 제목을 '철인정치 운운'으로 단 이유는 그저께 우리가 목격한 대한민국의 중우적 민주주의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 차라리 '철인(哲人)에 의한 독재'가 낫지 않겠는가-하는 다소 자조적인 발언이었습니다. 둘째로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위상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목마른땅님과 저의 견해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되며, 따라서 서로를 존중해야한다는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하여 변명을 피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게시판은 정치논쟁에 적절한 장소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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