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2001/11/05 11:14:33 |
Name |
Apatheia |
Subject |
[잡담] 토요일... 8강진출 경우의 수를 분석하면서. |
현재 전적 몇승 몇 패, 남은 경기 상대는 누구...
전승하면 어떻게, 1승 1패면 어떻게, 전패면 또 어떻게...
나름대로 복잡한 계산이었던지라
계산하는 동안은 아무런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뽑아진 데이터를 글로 쳐서 올리고
그래도^^; pgr21.com에 들른 이후 처음으로 올린
허접한 잡소리가 아닌...
경기 결과에 대한 분석자료였다는 점에 마음이 흐뭇해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지요.
저녁에 pgr21.co에 접속해 보니
운영자님의 코멘트가 붙어 있었습니다.
재경기도 남았는데, 확정이라는 말은 좀 그렇지 않으냐고 하시더군요.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답니다.
재경기까지나 갈 확률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얼마나 되겠냐고.
(C조의 경우는 좀 예외지만요...)
2승한 대건님 동수님 같은 경우에
재경기까지 가서 8강 탈락할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이며
반대로 2패한 조창우님 이재항님의 경우
재경기까지 가서 8강 갈 확률이 또 얼마나 되겠느냐고.
급하게 타이핑 쳐 올리느라 제대로 훑어보지도 못했던 제 글을 죽 훑어 보았습니다.
예전에 축구 좋아한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병폐중의 하나죠.
끝의 끝까지 몰려서, 경우의 수까지 따져서 턱걸이로 어디 진출하는...
그때마다 혀를 끌끌 차며 저러니 한국축구는 안된다 라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어요.
이탈리아나 잉글랜드같은 유럽의 강호들도
꽤나 자주 그런 경우에 몰리곤 하는데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대진표가, 선수의 이름이 아닌 알파벳 ABCD 따위로 짜져 있었다면
그래서... 임요환님과 조창우님, 김대건님과 이재항님이 전혀 구분이 되지 않는 상황 하에서였다면
제가 감히, 저렇게 건방지게 8강 확정이라느니 탈락 확정이라느니 하는 말을
쓸 수 있었을지를.
누가 낫고 누가 못하다...
선수의 네임밸류 및 제가 가진 선입견 등등
어찌 보면 경기와 전혀 상관없는 그런 것들로 인해
누구누구는 8강 확정, 또 누구누구는 탈락 확정...
그런 시건방진 소리를 한 것이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어
순간 뒤통수가 뜨끔해졌습니다.
아무래도 이번주 온게임넷... 가야겠습니다.
2주차에 한번 가보고 너무 가슴이 아파서
게다가 이번 주 경기 너무 중요한 경기라
혹시나 갔다가... 정말 마음 아픈 광경을 직접 보게 되면 어떡할까 싶은 마음에
그냥 가지 말까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었는데
아무래도 가야겠습니다.
가서 봐야겠습니다.
저보다 한참은 어린 그들이
그렇게나 치열하게, 열심히 사는 모습을요.
이기든 지든, 그 결과에 상관없이
그러게나 땀흘리며 노력하는 모습을요.
11시쯤 경기가 끝나면, 그래서 승자와 패자가 가려지면
더러는 기쁘고 더러는 슬프겠지만 말없이 결과에 승복하는 그들의 모습을 거울삼아
누구니까 8강 누구니까 탈락...
이딴 식으로 생각했던 제 속물근성도 조금은 고쳐질 것 같네요.
스타크래프트...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게임 하나에서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삽니다.
-Apatheia, the Stable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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