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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3/11/03 12:15:00
Name 난폭토끼
Subject [펌]이 글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0-
고등학교 동기인 친구 한명이 서울대 기계공학과 석사과정 1년차에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1992년이었다. 나란히 석사과정 1년차로 자연대에서 과학사를 전공하고 있던 나는 그 친구의 유서와 여러 지인들에게 들은 정황을 근거로, 대학원 실험실의 각박한 상황이 이 친구를 죽음에 이르게 한 주요한 요인이었다고 주장한 대자보를 써붙였다. 도서관 앞에 붙여진 그 대자보 앞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아마도 그 해 1년간 붙어있던 어떤 대자보보다 많은 군중을 불러모았을 것이다.

그는 학부 시절 학생회관 음악감상실 DJ를 했고, 용돈을 쪼개 고가의 클래식음악 CD를 사모으던 감수성이 예민한 친구였다. 경기과학고 시절 한때 나와 같은 방을 쓴 룸메이트였기 때문에, 나는 그의 강한 개성과 음악에 대한 애정을 잘 알고 있었다. 경기과학고 기숙사는 학생들의 신청에 따라 3개월에 한번씩 방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이합집산의 주된 동인 중 하나는 음악적 취향이었다. 음악적 취향에 따라 가요방, 락 · 헤비메탈방, 팝방, 심지어 국악방도 있었는데 그는 유일하게 존재하는 클래식방의 방주였다.

그는 여리고 섬세한 정서와는 달리 세련된 매너도, 수려한 외모도 갖추지 못했고 비교적 작은 키에 아주 특이한 걸음걸이를 갖고있었다. 이성교제에서도 번번이 고배를 마신 듯했고, 실험실에서 쳇바퀴돌듯 살아가며 자신이 바랬던 삶의 방향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상황에 원초적인 절망감을 느꼈던 듯하다. 사실 그의 죽음을 실험실의 경직된 질서에 대한 불만과 연결시킨 나의 해석은 어느정도 자의적인 것일 수도 있었다. 많은 자살사건이 그러하겠지만, 그의 죽음의 원인 또한 상당히 복합적인 배경이 작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가지 정황상 나는 그의 절망감을 증폭시키고 '결정적 타격'을 가한 것이 실험실의 꽉 막힌 분위기였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노래방에서 분위기가 맞다 싶으면 동물원의 '혜화동'을 부르면서 그 친구를 추억하곤 했다. 실제로 대학로에서 만나서 짜장면을 같이 먹곤 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대학원에서 과학사 · 과학철학을 전공했으니 엄밀히 말해 이공계 전공자라고 보기는 힘들었지만) 이공계 대학원 실험실의 구조적 문제에 대하여 상당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자네 이런 일 하는거 부친이 알고있나?>

석사과정 재학 중에 나는 서울대 대학원자치회에서 일하고 있었다. (서울대에는 대표성을 가진 대학원 학생회가 만들어지지 못하고 임의단체인 '자치회'의 수준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서울대에서는 화학과 신모교수의 여조교 성희롱 사건이 터졌고, 자치회는 공동대책위원회에 참여하여 한국 최초로 직장 내의 우월한 직위를 이용한 성희롱에 대해 배상 판결을 받도록 하는 데 일조하였다. 하지만 나에게 자치회 활동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공계 대학원생 지위 향상을 위한 활동이었다. 성희롱 사건과는 반대의 이유로, 즉 가장 참담하게 실패한 사건으로서 말이다.

요즘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당시엔 프로젝트 연구비가 제대로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고 있었고, 연구비를 수령하기로 되어있는 대학원생들이 실제로 이를 받지 못한 채 슬쩍 전용되는 사례가 많았다. 과중한 프로젝트 연구로 인해 실제 학생이 자기 연구나 공부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고 '노가다'처럼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물론 이런 상황은 어느 정도 서울대가 프로젝트 연구를 많이 수주할 수 있는 일류대학이기 때문에 가능한 상황일 수도 있었고(따라서 배부른 자의 푸념이라고 매도될 여지도 있었다), 한국적인 사제지간-선후배지간의 자연스러운 표현이지 이게 어찌 이공계 연구실만의 문제냐고 할 수도 있었다(그러니 침소봉대하여 긁어부스럼만들지 말라는 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대학본부에 뜻을 전달하여 공대 · 자연대 대학원생 대표 2명, 대학원자치회장, 그리고 대학원자치회 학술위원회 대표였던 나, 이렇게 네 명이 대학본부에서 보직교수들과 면담을 할 수 있었다.

결과는 참담 그 자체였다. 그들은 전통적인 '권위적 사부'의 상에서 한끝도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자신들이 소시적 겪었던 어려움에 비하면 그러한 불만은 어린애 투정같은 소리라는 태도였다. 한마디로 '협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특히 당시 서울대 연구처장은 내가 학부를 졸업한 분자생물학과 교수로서 상당히 완고한 사람이었는데, 그가 나를 향해 펀치를 날렸다. "자네 이** 교수 아들 아냐? 자네 이러고 있는 거 부친이 알고 있나?"... 그는 우리 아버지의 후배였던 것이다. 나는 이 질문 앞에 너무 황당하여 말문이 막혀버렸다. 사석도 아닌 공석에서, 공식적인 안건을 놓고 논의하는 자리에서, 상대방에게 철없는 짓 하지 말라며 부친과의 관계를 들먹이는 그 문화적 후진성 앞에서 도대체 내가 뭘 할수 있단 말인가.

나는 회의 후반으로 갈수록 발언하기 점점 힘들어졌다. 그 교수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진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내 자신이 (전공의 성격으로 보아) 전형적인 이공계 대학원생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함께 참석한 공대, 자연대 대표들은 지레 꼬리를 내리는 형국이었다. 뒷풀이 모임에서 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국 대중운동이 문제였던 것이다. 자연대, 공대 대학원생들이 제대로 조직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층부의 협상을 통해 뭔가 상황을 개선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중운동이 활성화되어야 제도개선을 위한 청원운동을 하건, 스트라이크를 하건 할텐데 말이다. 결국 그날의 해프닝(?)은 아무런 성과도 없이 무거운 숙제만 남기고 끝나고 말았다.


<이공계 자체는 문제가 없나>

사실 이공계적 지식과 마인드의 가치는 매우 높은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과 밀접한 연관을 갖지 않는 분야가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공계열 전공자는 가지고있는 기능에 비해 제대로 인정받고 대우받지 못한다고들 한다. 특히 최근 들어 이공계 기피현상은 극에 달한 느낌이다. 최상위권 이과생들 가운데 의대, 치대, 한의대를 가지 않는 학생들이 주변으로부터 '이상한 녀석' 취급을 받거나 부모로부터 강력한 압력을 받는 일이 종종 벌어지는 상황이니까.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한 것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대책으로 제시된 것들이 몽땅 무슨 정부나 산업계의 '온정'과 '시혜'를 논하는 수준이다. 이런 식으로 이공계가 마냥 기피되어서는 향후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문제가 생기니, 좀 파이를 만들어주자는 식이다. 나는 이런 식의 대책이 결국에는 언발에 오줌누기밖에 안 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이공계인 자신들의 각성과 자발적인 대중운동의 기회를 지레 차단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퇴행적이고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본다. 무엇보다도 떡고물 좀더 얹어주는 식으로 달래려는 것은 이공계적 지식과 마인드의 가치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기 때문에 더욱 불쾌하다. 또 그 효과 면에서도, 기껏 그런 정도의 유인을 제시한다고 해서 의대 가려던 학생이 이공계로 마음을 돌릴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본다.

그렇다면 어디서 실마리를 풀어가야 하는가? 나는 이공계인의 주체적인 노력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즉 이공계인의 주체적인 자각과 대중운동을 통해, 이공계적 지식과 마인드의 중요성을 직접 사회적으로 입증해보이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전북 부안군 위도에 건설하려는 핵처분장 문제로 논란이 한창이다. 그런데 그 논란 와중에 '한국수력원자력'(한국전력에서 분리되어 나온 발전 전문회사)이 KAIST에 발주한 용역 연구결과를 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2002년 말 KAIST 연구진에서는 고준위 폐기물(사용후 핵연료)은 위도에 모아 처분하는 것보다 각 발전소 내에서 보관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어차피 원자력발전소의 수명이 다하고 나면 그것 자체가 거대한 폐기물이 되어 매우 장기간 보존해야 하는 시설이 되어버린다.) 이것은 한국수력원자력 측에서 내심 원하던 결과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를 발표하지 않고 은폐해 버렸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정도 사건은 KAIST 교수진과 학생회에서 들고 일어나야 할 일이다. 왜 그렇게 가치있는 연구결과를, 정부정책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쓱싹 없던일로 삼아버리고 은폐하는가? 이런 관행이야말로 이공계적인 합리성이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한국사회의 추악한 단면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KAIST의 교수와 학생들이 충분히 발끈할만한, 아니 '발끈해야만 하는' 일인 것이다.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KAIST 측의 몇가지 연구상의 전제가 문제있다며 딴지를 걸고 있지만, 훨씬 큰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한국수력원자력 측이다. 그들이 발표하는 원자력발전의 비용에는 원자력발전소의 수명이 다한 뒤에 이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천문학적인 비용이 전혀 포함되어있지 않다.)

또한 위도의 지질조사가 잘못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지질조사차 시추작업에 동원된 업체의 대표가 '지하 40m까지만 시추공을 뚫을 것'을 지시받았으며 이것은 그보다 깊은 곳에 지하수층이나 파쇄대가 발견될 것을 우려한 탓이라는 폭로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문제라면 우리나라 지질학계가 벌집쑤신듯 들고일어나 외쳐야 할 일이다. 지질조사와 관련된 의혹을 우리가 말끔히 씻어줄 테니 우리에게 맡겨보라고. 이쯤되면 지질학의 사회적 유용성을 입증해줄 수 있는 훌륭한 기회 아닌가.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할까. 새만금, 고속전철, 핸드폰 전자파 유해성문제, 디지털TV 표준 선정 문제, '전자정부'의 기반을 마이크로소프트의 OS에 의존하는 것의 타당성 논란 등… 도대체 이공계인들이 나름대로의 전문성에 기반하여 견해를 내놓고 이를 통해 이공계적인 지식의 사회적 가치를 입증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수없이 많은 논란거리들에 대해 이공계인들은 도대체 별 말이 없다. OS 독점 문제나 전자파 문제 같은 것은 구미 각국에서 그토록 심각한 논란을 계속 벌이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토록 조용하지 않은가. 이것은 학교 다닐 때부터 '정답은 하나다' 라는 식의 사고에 절어있고 대학원 다닐 때에는 '교수 말만 들어야지 혼자서 제멋대로 뭔가 해서는 큰일나는' 분위기에 젖어있던 탓이 아니겠는가. 이공계인들 스스로가 '윗사람 말 잘 듣고 주어진 연구개발 주제만 잘 해내면 되는' 풍토를 스스로 재생산하고 있는 탓이 아니겠는가.

물론, 위에서 언급한 논란거리들은 아무리 이공계인들이 나선다 해도 그로 인해 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복잡한 이해관계에 얽혀있는데다가, 전자파 유해성 문제처럼 지금당장 과학적으로 판단하기 힘들거나 OS독점 문제처럼 (기술과 관련은 있지만) 그 핵심이 '기술적 문제'가 아닌 것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과학기술자는 늘 '똑부러지는 답'만을 제시해온 것도 아니었으며, 심지어 과학기술자들끼리 서로 편을 갈라 싸우는 일도 비일비재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논쟁을 통해 대중들은 과학기술에 대해 좀더 잘 이해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제시된 정보와 지식은 보다 나은 판단을 내리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곤 하였다. '과학기술자들은 늘 하나의 정답만을 제시한다(혹은 제시해야한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편견이자, 이공계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지식과 마인드가 가진 힘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도록 위축시키는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문화혁명이 필요하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의 군사제도 개혁을 주도한 사람들은 과학 아카데미 소속의 일급 과학자들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지금도 명함에 자신이 '엔지니어'임을 자랑스럽게 써놓는다. 미국의 과학 엘리트들은 미국의 생명과학, 우주과학, 군사과학, 정보통신과학 등에 어마어마한 입김을 발휘하며 미국사회를 인도하는 파워 엘리트의 한 축을 구성하고 있다. 중국은 심지어 핵심 권력층의 대부분이 청화대 등을 졸업한 이공계 출신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문제들도 있지만, 적어도 그들은 사회를 구성하고 움직이는 중요한 축으로서 사회적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고 있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라면, 이공계 인력의 중요성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따라서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한 해결은 우리 입장에서 시급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몇가지 시혜성 정책을 펴는 것으로는 이공계 기피현상은 결코 제어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공계인들 자신이 일종의 문화혁명을 수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공계인들은 그저 주어진 연구개발 과제만 열심히 수행하는 데 그쳐서는 안된다(물론 그것 자체도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데 관심이 많아야 한다. 전공만 열심히 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보다 폭넓은 경험과 노하우를 쌓고 이공계의 지식이 경제적 · 사회적으로 가진 위력을 스스로 주장하고 입증하는 사람들이 보다 많이 나와야 한다. 빌 게이츠처럼 수학 전공하다가 갑부 되는 사람도, 리누스 토발즈(리눅스 창시자)처럼 자신의 아이디어와 연구결과를 기꺼이 사회화하는 사람도 나와야 한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공대 출신)처럼 행정계 · 정치계의 거물도 나와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교류와 연대, 그리고 대중운동도 훨씬 쉬워졌다. 인터넷이라는 편리한 도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같은 문화혁명의 과정에서 프로젝트 연구비를 떼어먹는 대학교수, 관행적인 접근방식만을 강요하는 선배나 상관, 합리적인 대안을 무시하고 입맛대로 취사선택하는 행정관료, 연구개발인력에게 최소한의 안정적인 고용조건도 제공하지 않는 국가기구와 기업들, 이공계적 지식과 합리성에 무지하거나 이를 무시하는 언론… 등이 고발되고 개혁되어야 한다. 자신의 전공분야가 가지는 사회적 유용성을 이해하고 각종 사회적 이슈에 대한 과감한 발언이 이뤄져야 한다. 또한 이러한 모든 것들은 이공계 내부의 권력구조가 좀더 수평화되고, 그 안에서 이뤄지는 의사소통이 진정으로 지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바뀌는 과정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화혁명의 과정에서 이공계는 환골탈태할 것이고 온전한 사회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며 대입 수험생들에게도 비로소 그 매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보론 1 : 의학계열 전공과 이공계열 전공에 대하여>

예전에는 적어도 서울대의 경우 이과에서 가장 커트라인이 높은 과는 (의예과인 경우도 있었지만) 전자공학과, 컴퓨터공학과, 물리학과, 미생물학과 등등 상당히 다양했었다. 그런데 90년대 후반 이후 의예과 선호도가 높아졌고 결정적으로 IMF 시국 이후 우리나라의 고용안정성이 부쩍 낮아짐에 따라, 의사면허증이 가진 희소성과 사회적 가치가 이전보다 높게 평가되게 되었다. 이것이 이과 상위권 학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하고 의학 계열로 진학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이공계 기피현상 및 이와 맞물린 의학계열 선호현상은 한국사회가 IMF 시국을 기점으로 워낙 빠른 속도로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한국은 노동유연성이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크다. 그만큼 해고가 쉬우며 정규직이 아닌 임시직, 계약직이 비율이 높은 것이다. 몇몇 언론은 한국 노조의 힘이 너무 강하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노조 가맹률 자체가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분명 도를 지나친 감이 있다. 이공계열의 고용안정성이 어지간한 인문사회계열 전공자보다 더 낮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과생이 경영학과 가는 것은 괜찮게 보면서 이과생이 물리학과나 컴퓨터공학과에 가는 것은 말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현상은 무엇보다 (특히 상위권 이과생들은) '그 점수면 의학계열 갈수 있지 않느냐'는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의사는 사회적 평판이나 경제적 지위, 그리고 사회에 대한 기여도 등에 있어 여러모로 괜찮은 직업이며, 나는 내가 개인적으로 의사에 대한 적대감정이나 의료계에 대한 편견을 갖고있지 않다고 본다. (나도 고3 한때 의대를 갈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인터넷 게시판을 들여다보면 의학 계열을 지망하는 것이 항상 최선이며 지고지선의 길인 것처럼 선동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나는 그러한 심리를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이들은 갖가지 근거(일부는 허위거나 침소봉대한 이야기들)를 들어 의학 계열을 지원하는 자기자신을 정당화하며 이공계를 옹호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데, 그런 속좁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나중에 내 병을 고치는 의사가 될 거라고 생각하니 참으로 한심하다.

나는 무엇보다도 그런 글을 쓰는 사람들이 원하는 학과를 들어갈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뿐만 아니라(요즘 의예, 치의예, 한의예과 경쟁률이 워낙 높지 않은가), 이들이 졸업할 10여년 뒤에 의사가 지금과 같은 사회적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이미 한국사회 곳곳을 파고들고 있고, 그것의 요체는 한마디로 말해 '보다 광범위한 시장경쟁원리의 도입'이다. 의료계 또한 나날이 시장경쟁이 치열해질 것이 분명하고, 최근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처럼 앞으로 보다 많은 의원, 병원들이 도산하게 될 것이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오랜 기간의 숙련이 필요하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면허가 그렇게 단기간에 주어질리 없다. 남자는 예과 2년 + 본과 4년 + 인턴,레지던트 5년(예전엔 이보다 짧았는데 최근엔 거의 5년이다) + 군의관 3년, 여자는 여기서 군의관 3년 빼고... 결국 본격적인 전문의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11~14년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인턴, 레지던트 월급은 100만원대이다. 군의관은 말할 것도 없고...

내 의문은 이거다. 그렇다면, 그정도 오랜 기간 고생하며 노력할 거라면 뭘 전공해도 성공하지 않겠는가?... 대학 4년 + 어학연수 1년 + 대학원 과정 유학 4~5년 + 외국 또는 국내 회사나 연구기관에서 경력 2~3년 + 군대 2년(최근에 24개월로 줄었다) 이면 14년이다. 여학생은 2년 빠지겠고... 예를 들어 이런 식으로 이공계 전문가로서의 교육, 숙련기간을 14년으로 잡고 열심히 노력한다면 충분히 그 분야에서 한가닥 하고 여러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적절한 기회에 보다 많은 돈을 벌거나 하는 일도 가능할 거고. (내가 가까이서 보고 지내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갑부는 경기과학고 동기인데 디지털화된 화상감시시스템을 만드는 회사를 코스닥에 등록시켰다. 그다음은 분자생물학과 후배인데 컴퓨터연구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더니 결국 전공을 바꿔 KAIST 대학원으로 진학했고 한참 뒤에 보니 게임회사 넥슨(Nexon)의 사장이 되어있었다. 두 명 다 이공계이다.)

이공계열이 국내 노동시장에서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시 말하건대 이것은 이공계 전공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의 청년실업 문제는 전공을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IT 산업은 꾸준히 성장하겠지만, 기존 제조업에 비해서는 일자리 창출효과가 작은 편이다. 어지간한 선진국들은 거의다 20대 실업률이 높은 편인데, 우리나라도 산업구조가 고도화될 수록 그런 전철을 밟을 개연성이 크다. 즉 노동시장의 찬바람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가장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길은 국내 노동시장에 종속되지 않는 기능을 갖추는 것이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이공계적인 지식은 세계 보편적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물리법칙이 미국에서 안 통할리도 없고, 소프트웨어의 구조가 나라마다 달라야 할 이유도 없다. 또한 우리나라 상위권 대학의 어지간한 학과이면 가르치는 수준이 꽤 인정해줄만한 정도에 있다. 따라서 이렇게 배운 전문지식과 기능을 (국내 차원을 뛰어넘어) 보다 넓게 펼쳐볼 수 있도록 어학(주로 영어)실력을 갖추게 되면 날개를 달게 되는 셈이다.

인도 사람들이 실리콘 밸리에 그렇게 많이 취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나라 상위권대학의 공대가 인도 공대보다 수준이 낮을까?... 아니다. (인도도 독자적으로 인공위성 발사로켓이나 항공기를 제작하는 등 그 자연과학과 수학 수준 자체가 상당히 발전된 수준이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은 영어가 된다. 인도에선 벵갈어와 함께 영어가 공용어이기 때문에, 억양이나 발음이 이상해도 어쨌든 그들은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인도의 노동시장에 종속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 글이 '국내에서는 살길이 없으니 국외로 탈출하자'는 단순한 주장으로 들리지 않길 바란다. 한국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척 많다. 단지 이공계적 지식의 보편성을 고려해볼 때 시야를 조금만 넓게 가지고 꾸준히 준비하면 얼마든지 폭넓은 미래를 그려볼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보론 2 : 교육계의 문제>

내가 위에서 제시한 과제는 비단 이공계만의 것이 아니다. 사회 각처에서 문화혁명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이미 문화적으로 후진적인 조직은 더이상 발전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한국 자본주의의 객관적인 발전 단계가 이미 그러한 단계에 오른 것이다. 주변 눈치나 보고 주어진 업무만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조직은 고도경제성장기에는 필요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절대 아니다. 사회변동의 속도가 극심한 지금, (약삭빠르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넓은 적응력을 갖추고 유연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 교육체제는 계속 기계적 인간형들을 양산하고 있다. 공교육 사교육 구분을 떠나서 이것이 한국 교육의 핵심적인 문제이다. 사회는 준수한 실력을 갖춤과 동시에 문화적으로 유연하고 시야가 넓은 인간형을 요구하는데 반해 교육계는 이런 사람들을 길러내는 데 실패하고 있으며, 이것은 궁극적으로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와 직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지금은 교육의 실패가 한국자본주의 전반의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데에는 공교육계의 책임이 물론 크지만 사교육 또한 이러한 상황을 강화하는 강력한 요인이 되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한국 경제의 검은 구멍이 되어버렸다. 입을 벌리고 있으면 돈이 소용돌이치며 쏟아져들어오는 구멍... 예전에 아무생각 없이 강의할 때에는 별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작년부터는 부쩍 나도 그러한 '붕어빵 제조기'에 기생하는 것 같아 괴롭다. 더구나 어느새 메가스터디는 엄청나게 문화적으로 후진적인 기업이 되어버렸다. 처음 만들 때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제 나 혼자의 시도로는 교정될 가망이 전혀 없다. (메가스터디의 지금 모습은 오프라인 학원들의 전형적인 난맥상을 그대로 온라인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또 개인적으로 더이상 파워게임의 각축장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고 싶지도 않다.

이제 내 인생에도 또다른 임계점이 도래한 것이다.

2003. 10. 17
이 범



전 불행히도 이범이라는 분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글은 무척 마음에 와 닿는군요.

저는 모 고시를 준비중입니다. 제가 장난삼아 KAIST 학부과정인 영욱이 녀석에게'요새 각종 고시에 보면 S대등 명문대 공대생들 무지 많드라?' 라며 농을 걸었더니 그 녀석曰 '공대애들 중에 못난놈들이나 그러는거지, 자신의 일에 확신이 있는놈들은 않그래요.' 라고...

정말 열심히만 할 수 있다면 의대나 한의대, 치대에 가는것 보다 이공계쪽이 더욱 매력적이지 않을까요? 용기가 없기에, 뭔가 성취를 해낼 용기와 의지가 없기에 그냥 점수맞춰서 의대지원 하는게 아닐지(뭐 소신을 가지고 의료업을 행하겠다는 사람이 없다는건 아닙니다.) 자신의 깜냥으론 '평균' 밖에 못할것 같다는 생각이 이공계 기피와 의대-치대-한의대 선호로 이어지는건 아닐지...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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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제가 모 싸이트에 이범이라는 분의 글을 퍼오면서 쓴 글입니다.

사실 어느분야건 최고가 되는것, 정말 힘듭니다. 다만 최고가 되기위해 노력하다가 최고, 혹은 엘리트 그룹이 되지 못하더라도 예술이라던가 프로게이머등의 직종과 달리 일반직종은 남아있는것이 크죠. 그것이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요?

전 메이저에 나오는 프로게이머되는것이 사시 패스하는것이나 서울대들어가는것 보다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노력은 당연한것이고 거기에 재능이 없다면 포기하라고 하고 싶습니다. (아래의 성준모군의 글을 잘 보았습니다. 그러나 성준모군은 재능이 있었고 거기에 +@로 강인한 정신력도 갖춘것 같더군요. )

아인쉬타인은 바이얼린에 상당한 조예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아마추어로선 꽤 칭찬받을만한(게임으로 치면 준프로급 베넷 초고수 정도?) 수준이었답니다. 만약 그가 바이얼린에 어느정도 자신이 있다는 판단아래 과학을 포기하고 좋아하는 바이얼린에 매진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꿈을 쫒으라고 하고 싶습니다. 다만, 자신의 능력이 어디에 가장 잘 맞는지, 그리고 어느것을 가장 좋아하는지, 그 전망은 어떻고 얼마만큼 할 수 있는지, 그 이후는 어떨는지를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건 프로게이머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는 다른 직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ps. 사족입니다만 학교는 꼭 다니라고 하고싶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것은 공부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재 nba에도 고졸등 얼리엔트리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팬들이 그들의 얼리엔트리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단순히 농구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한 명의 사회인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배울 수 있게 하기 위함이죠.(물론 대학을 거치고 들어가면 농구 내적인 면에서도 많은 성장이 뒤따를거라 생각합니다.) 이건 프로게이머에게도 적용 되리라 믿습니다. 다만 학업을 하기 힘들다면 가급적 다양한 사람을 만나길 바랍니다. 어느정도 팬이 확보된 분들이라면 다양한 층의 팬들과의 다양한 형태의 팬 미팅을 추천합니다...저번에 나온 '사내 동아리 지원' 의 수익모델이 실현되는것도 한 방편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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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빵
03/11/03 12:30
수정 아이콘
한표..
As Jonathan
03/11/03 12:39
수정 아이콘
오늘 밑에서부터 글을 읽어오면서 성준모님이나 zard님, 언뜻 유재석님같은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가족의 글에도 댓글을 아꼈지만,
이글은 정말 좋군요. 우리나라의 현실에 강력한 한방을 날리는, 한의사가 맥을 짚고 정확히 침을 놓는 듯한 발언이군요.^^;
글 잘 읽었습니다.
물빛노을
03/11/03 12:51
수정 아이콘
캬~ 멋진 글입니다^^ 추게 가야되는 거 아닙니까ㅠ_ㅠ As Jonathan님 말씀처럼 정말 맥을 정확히 짚은 멋진 글이군요. 오늘 원츄 남발입니다ㅠ_ㅠd 여담이지만, 이범이라면 혹시 입시학원 Megastudy에서 과학탐구를 가르치고 계신 강사분이 아닌가 생각이 되네요. 제가 인터넷 강의로 이분의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어서^^ 분야도 비슷하고... 혹시나 입니다만.
Quantizer
03/11/03 12:58
수정 아이콘
'공대애들 중에 못난놈들이나 그러는거지, 자신의 일에 확신이 있는놈들은 안그래요'
절대 동감하는 말입니다. 적성이 맞지 않으면 절대 못 버텨낼 곳이 공대입니다. 딱 적성이고 뼈 속까지 엔지니어인 주위 분들 보면 부럽습니다. (전 음..못난놈 축에 좀 더 가까운 것 같네요. 하하 -_-; 이건 공부 문제와는 전혀 별개로, 뼈속까지 엔지니어인 분들을 같이 지내보면 압니다. 그들은 범(凡)인이 아니라는 것을요 -_-;) 그들이 모두 이제까지 들인 노력에 비해 경제적 보상을 많이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의대나 기타 상대 출신분들에 비해 낮다는 것이 사회적인 문제겠지요. 하지만 확신에 찬 분들이라면 그런 것도 신경 안 쓰시더라구요. 물론..속은 좀 쓰리겠지만요. 그들의 프라이드가 부럽습니다.
하얀 악몽
03/11/03 12:59
수정 아이콘
음. 맞습니다. 메가스터디에서 공통과학 맡고 계신 이범선생님..
선생님 개인홈페이지에 써놓은 글인데 이곳저곳에서 자주보게 되네요.
저 글을 비판한글에다가 리플을 다신 글도 본적있는데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WizardMo
03/11/03 13:52
수정 아이콘
공통과학(통합)을 가르키는 이범선생님이신듯 합니다.
WizardMo
03/11/03 13:56
수정 아이콘
지금의학계열들어가면 최소 15년이 지나야합니다. 더군다나, 약 6~7년전부터 의대, 한의대 폭풍이 몰아쳤지요. 앞으로 몇년은 더갈겁니다. 문제는 이들이 본격적으로 나오는 2010년부터 입니다. 평년에비해 배나되는 인력이 해마다 나오고 직업을 갈구합니다. 그렇다면? 역시 경쟁률이라는것이 생겨날것이고, 그들또한 경쟁을해야합니다. 부모님이 병원만들어줄 재력이 없다면 의대도 그다지 좋은선택은 아니라봅니다...
전 컴공 진학을 희망하고있습니다. 물론 전망은 밝지않지만, 초등학생때 가졌던 꿈이 꺽이는것은 싫습니다. 어떻게 입에 풀칠만할수있다면 꿈꾸던것을 이룰수있다 라는것만으로도 행복할듯합니다.
WizardMo
03/11/03 13:57
수정 아이콘
얼마전 국내의 의사들이 이민을 하려하는것을 뉴스로 인해 알게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의료시설과 치과,성형 을 제외한 의사들은 제 생각처럼 엄청난 부자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요...
언뜻 유재석
03/11/03 14:02
수정 아이콘
한동안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지금도 두근두근...
공대생으로서 작가의 꿈을 꾸는일은 멈추지 않으렵니다...
손에 잡히지는 않아도 조금 그 윤곽이 보이는듯도 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03/11/03 14:04
수정 아이콘
원츄 남발이라도 좋다... -_ㅜ.... 이 글은 추게로 가야합니다.
정말 동감합니다.
사다드
03/11/03 14:08
수정 아이콘
대단히 좋은 글이라고 저도 생각되는데, 왜 공대생이 고시를 보면 못난놈이 되는건지..-_-a 그저 일반화한 말이라고 생각하는게 좋을듯 하네요. 그 부분은..(아, 못난놈 소리 듣기 싫어서 이런건가..--;)
꿈꾸는청년
03/11/03 14:34
수정 아이콘
가슴에 느낌을 주는 좋은글을 읽게 되어서 배달(?) 하여 주신
난폭토끼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 문제를 둘러싸고 있는 구성원들이
스스로 해결을 해야 하는 것임을 다시한번 깨닫게 하는군요.
또한, 해결하기 위한 방안중의 하나로 무엇인가 "이벤트"가 있어야 하는데
그 이벤트에 대한 동력이 저변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동력이 쌓이고 또 쌓이다 보면은 언젠가 분출될 시기와 장소가
눈앞에 보이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그 시기와 장소에서 한 역할을 하기위해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꾸준히 "내공(?)"을 쌓아야 하겠지요.

좋은글을 쓰신 이범님과 그 글을 배달하여주신 난폭토끼님에게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꾸~~벅.
03/11/03 14:53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이공계 분들이 적극적으로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기를 바라는 사람중의 하나라서 원문에는 조금 동의하기 힘들지만(원문 쓰신 분도 다른 쪽으로 진출하셔서 잘되신 케이스이구요) 그래도 좋은 글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03/11/03 15:21
수정 아이콘
저 자신 의사이고, 14년의 마지막해를 살고 있지만, 아직까지 제 미래는 답답하기만 합니다. 더불어 이바닥 사람들도 정말 다양한 분야로 진출해야만 하는데, 시스템에 길들여진지 오래여서 큰 판을 못보는군요. 아아..머리아파라 -_- 최근엔 14년으론 안됩니다. 그놈의 '전임의'제도라는게 메이저 센터에선 거의 정형화 되어 있어서, 개업의 리스크가 없고 잘나가는 몇몇과를 제외하고는 16년도, 17년도...될 수가..쿨럭. 저 자신도 15년째 착취를 준비중입니다.
Godvoice
03/11/03 15:58
수정 아이콘
저도 한표. 이분 참 대단하군요... 고3 때 이분 문제집을 풀었던 기억이 나는데(딴소리군요)... 아무튼 추게로 고고-
03/11/0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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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신은.. 역시 소신이 없어.. 공대쪽은 포기했었다는...
소신이 가장 좋은게 아닐까요? 역시 난 소심하지만서도..
어느길도 쉬운 길은 없는듯 합니다.. 그게 정말 우울하고요..ㅠ.ㅠ
난폭토끼
03/11/03 17:36
수정 아이콘
/jjune님, 이공계가 다른분야로 진출하는것은 저도 반깁니다.

다만 그 전공의 '지식' 을 살려야 된다는 것이지요. 이 말은 이공계선호와 연계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에 시급한 고급인력인 '산업경영학도' 를 들 수 있겠네요. 컴푸터가 좋아서 컴공을 가거나 화학이 좋아서 화학을 배우고 난 뒤, 제품, 혹은 그 과정과 업계에 대한 마인드가 쌓인 상태로 경영에 대한것들(각종 관리와 회계, 재무등) 이 쌓인 사람, 현재 기업에서 시급히 요하는 고급인력입니다. 아무래도 경영쪽을 배우고 공학을 배우는것보단 공학을 배우고 경영마인드와 지식을 쌓는것이 훠~~~얼씬 낫죠. 적극적으로 다른분야로 진출을 하더라도 자신이 배운 그 자체를 기반으로 삼을 수 있는, 그렇게 이공계가 요즘의 의학·약학·한의학등 보다 선호될 수 있는 인식. 이게 중요한게 아닐까요...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jjune님의 견해와도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똘레랑스
03/11/03 18:33
수정 아이콘
1. 어렴풋했던 생각을 '이범'님께서 깔끔하게 정리해주셨네요. ^^ 좋은 글 감사합니다.
2. 난폭토끼님의 사족은 다소 부담스럽습니다만, 한편 수긍하게 됩니다.
학교를 꼭 가야한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만, 개인에게 있어 적어도 학교를 대체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은 가져야 한다는 데 공감합니다.
학교는 다녀서 얻는 '그 배움'의 깊이보다도 '배울 것이 많다라는 것을 안다'는 것이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사회를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 즉 세계관을 키울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과정은 다른 길로도 체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학생의 특권은 가만히 있어도 '타율적'으로나마 어느정도 배우게 된다는 겁니다. 따라서, 난폭토끼님이 제기하신 가급적 많은 이들과의 조우, 관계의 형성은 이를 보완하거나 대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 논지를 벗어납니다만, '이범'님은 90년대 초반 학회활동을 했었던 이들에게 당시 정치성 가득한 학회공간에 생경했던 과학사, 과학철학을 알렸던 이로 기억될 수 있는 분이라 생각합니다.
sunnyway
03/11/0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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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께서 흔치 않은 과학사를 전공하셨군요.. 그래서인지 철학적 사고와 문제의식 제기가 훌륭하신 것 같습니다.

'과학기술자의 글쓰기'(http://www.tec-writing.com/index.htm)라는 것이 있습니다. 도대체 과학기술자의 글쓰기에 무슨 문제가 있기에 이런 것이 있을까요? ^^;;

흔히 연구원(이공계 대학원생의 일반적인 직업이라 가정하고 사용합니다.)들은 본인의 연구성과를 논문이나 특허 또는 연구보고서로 남깁니다. 그러다 보니 일정 분야의 전공자만이 아는 용어의 사용에 익숙하고, 이 용어가 일반인에게는 얼마나 어려운지 곧잘 잊어버립니다.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ㅠ.ㅠ
한 가지 예로, 기업체 연구소에서 일하는 경우에는 연구 결과를 경영층에 보고해야 하는데, 이 때도 곧잘 연구원 본인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그러면, 전문용어를 듣고 있던 경영층은 어려운 말 하지 말고, 쉽게 돈이 되는 지나 말해 보라고 합니다. 이렇게 경영층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발표자는 당황스럽지요.. 그리고, 속으로 아직 실험 결과 다 말 안했는데 하고 투덜거립니다. ㅜ.ㅜ

그런데, 보고란 무엇일까요? 보고란 보고를 받는 자를 이해시키는 것이므로, 보고 받는 자가 이해할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즉, 아무리 훌륭한 보고 내용일지라도, 보고 받는 당사자에게 유의미한 내용이 아니라면, 쓰레기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기업의 돈으로 연구하는 연구원은 자신에게 돈을 댄 사람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기업의 경영층이 기술 개발이나 연구에 대한 특별한 마인드가 있다면 좋겠지만, 없다고 하더라도 왜 없냐고 반문할 수는 없겠지요. 기업의 움직이는 경영층의 대부분이 상대 출신인 이 현실을 현재로서는 받아들일 수 밖에요 ㅠ.ㅠ
물론 앞으로는 점차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그렇지 않을 수 도 있겠지만요..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흔히 과학을 전공하고, 이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자신의 전공분야와 실생활과의 연관성이나, 자신의 분야를 일반인에게 알리고자 하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은 자연과학에 대한 교양서적이 외국에 비하여 적은 것만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광고 문고가 사실 맞습니다. 우리의 실생활은 모두 과학기술과 연관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입는 옷, 먹는 음식, 사는 집, 타고 다니는 이동수단 등등.. 그러나, 과학기술자들이 이런 곳에 적용된 과학기술을 일반인에게 이해시키고, 알리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을까요?
과학이 일상생활에 정말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일반인에게 심어주어야만, 계속적으로 과학에 돈이 투자가 되고, 거기에 종사하는 사람의 대우가 나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실험실에서 연구만 열심히 하면 되지 뭐..' 라는 생각이 과학의 필요성 인식과 실생활의 침투에 오히려 힘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점점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공계인의 주체적인 노력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라는 부분에 너무 공감합니다. 다양한 방면으로의 노력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행동하지 않는 지성은 지성이 아니라는 말이 너무 딱 맞는 이 현실..
그런데, 과학기술자들이 워낙 조직적이지 않은 성향이라 조직적인 사회운동이 가능할 지는 쪼금 의문스럽습니다. 이 무슨 자기비하 이냐구요.. 하지만, 사실인데요 ㅠ.ㅠ

ps. IMF가 터지고 나서 대덕연구단지의 많은 연구원들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회사가 어려우면 R&D에 투자되는 돈이 제일 먼저 짤리죠.. 그 후에, 대전지역방송(KBS인지 MBC인지는 잘 모르겠어요;;)에서 퇴직한 연구원의 생활을 취재한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부인이 연 생활용품 가게 또는 음식점을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자기비애도 상당했지요. 기자 분이 정말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왜 전공과 다른 일을 하냐고 물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한 분야만 공부했기 때문에 다른 것은 몰라서 할 게 없답니다. 이게 답입니다.
그리고, 그런 기업체 연구원 생활도 한 10년 지나면 그만 두어야 한답니다. 소수의 승진자를 제외하고요. 이 점은 일반 사무직과 같다고 하실 수 있지만, 그 이후의 사회적응에서 과학기술자는 일반 사무직과는 달리 더 많이 어렵습니다. 그 당시에, 제 주위 분들은 자식이 자연대 간다면 절대 안보낸다고 하셨답니다. 자연대 출신의 비애 ㅠ.ㅠ
이뿌니사과
03/11/04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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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입니다. 다만, 처음 읽을때는 오옷~했지만, 곱씹어볼수록-;; 이상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위의 sunnyway님 말씀에 적극 동감하면서 (몇손가락 안에 꼽히는 공대 출신입니다)
글쓰신 분께서 빼놓으신건 십수년 노력해서 하고 난 그 다음의 문젭니다.

사례로 들어주신 몇몇분의 경우는 그야말로 best case라고 볼수 있겠죠.
그런 꿈만 꾸다가 좌절하는 분들이 훨씬 많을겁니다.
좌절하는 경우, sunnyway님 말씀대로, 그 외에는 아는 것이 없기때문에 --; 더 어렵죠.

상업적으로가 아니라 학문적으로 풀려 해도,
20대부터 30대 중반까지의 시간을 투자하여 박사학위따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냉정하게 말해 내리막을 걷는 분들이 훨씬 많습니다.
경기가 어려워지면 제일 먼저 삭감되는게 R&D예산이고, 고급연구인력이 감축됩니다. 당장의 영업성과에 연결이 안되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경기에 영향 덜 받는 국책~쪽이나 교수직으로 가자니
한해에 나오는 박사가 몇명인데, 어림도 없이 모자랍니다.

지금 선망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의/치대의 경우, 힘든 수련과정을 거치고 나면,
그때부터는 경력이 되죠.
어느 병원에서 어느병원으로 , 혹은 개업, 등등..
연륜이 쌓일수록 무게감이 쌓여갈겁니다.

연구원들의 경우,
힘든 공부과정을 마치고 나면, 은퇴 혹은 관리직으로 돌아서야 할 날이 다가옵니다. --;

결정적인 차이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최대한 좋게 봐줘서,
개업의로 개원해서 성공할 확률이나, 박사학위 마치고 탄탄한 연구소에 취업할 확률이나 비슷하다고 보더라도,
그 이후의 놓여져 있는 길에서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신 있으면 된다고 말씀하셨다는 그 친구분의 말씀. 저도 그맘때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막상 졸업할때가 되고, 제가 소신이 부족했던 탓인지 오로지 연구만 하는 것으로 만족하기에는 욕심이 많아서였는지
길을 꺾게 되더군요.

원글이 좋은 글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부분을 고려하지 않으신 듯 해서 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공계로 가고 싶은 분들께는 ^^ 제몫까지 열심히 해주셨으면 하는 아쉬운 바램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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