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2/03/03 02:02:12
Name Apatheia
Subject [잡담] 그 날, 그 마린.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열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김수영, 절망.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설마 여덞중에 둘이 떨어지는데

그 둘 안에야 들겠느냐고 믿지 말았어야 했다.



분명히, 유리했었다.

이겼다 라고 장담은 할수 없었을지 몰라도

승기의 상당부분은 이미 기울어져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게임에서 그렇게 많이 날아다니는 드랍쉽을 본 기억이 흔치 않다.

상대는 당황했었고 그는 득의에 차 있었었다.

하수인 내가 보기에도, 게임은 유리했다.

그러나, 실로 결정적인 드랍 직후에 떠버린 시커먼 바탕화면...

순간 너무나 화가 났고 분통이 터졌다.

방금 전까지 나란히 서서

개인화면 중계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스텝마저도

전혀 상관없는 내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해 올 정도였다.

게임은 다시 속행되었다.

그러나 운이란 건, 섣불리 자신을 놓쳐버린 사람에게는

좀체로 되돌아가려 하지 않는 법...

그는 졌고, 조용히 GG를 치고 게임을 나왔다.



대기실까지 따라 들어가 괜찮으냐고 물었다.

할 수 없죠...라고만, 그는 상당히 굳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여러 사람이 대기실로 들어와 괜찮으냐고, 어떡하냐고 말을 걸었고

그는 뭐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라고

아직 어린 티가 덜 가신 얼굴 위로 힘겨운 미소를 떠올리며

자신을 추스리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바깥에서는 그의 마지막 상대가 결정되었다. 또 테란이란다.

아... 또 테테야. 차라리 성춘이 형이면 나았을 텐데...

진빠지기로 유명한 테테전 두 게임끝에 지쳐버리기라도 했는지

그는 지나는 말로 한숨을 섞어 그렇게 말했다.

그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예감이 좋지 않았다.

아까도 말했듯이,

운이란 건 한 번 자신을 놓쳐버린 사람에게는 다시 잘 돌아가려 하지 않기 때문에...

처음엔 경미한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한치의 틈은 곧 한뼘이 되고 한자가 되었다...

본진으로 밀려드는 탱크를 바라보며 나는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었다. GG.



액땜이라고 생각하세요...라는

참 내가 생각하기에도 흔해빠진 위로의 말 한마디를 건네고

방송국을 나왔다.

마침 2월의 마지막 날이라

길거리엔 술이 거나하게 오른 사람들이 택시를 잡기 위해 잔뜩 몰려나와 있었고

이런 날, 그런 기분에

그래도 그는 마침 방향이 같은 분이 있어 차를 얻어탔으니

적어도 택시를 잡기 위해 발을 구르지는 않아도 될 것이라는 점에 억지로 감사하며

싸늘한 새벽바람을 30분이나 쐰 끝에, 그나마 안 서려는 택시를 억지로 잡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키지 않는 기분으로 카페에 접속해 보니

이미 나와 비슷한 기분을 느낀 분들의 글들이 잔뜩 재여있었다.

그리고 그 한 구석에 떨구어진 그의 글을 만날 수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프로들 사이에서는 운도 실력입니다.

그만한 일에 마음 추스리지 못하고 다음 경기에 지장을 받다니...

저도 아직 멀었군요.

......

아직 멀었다...라는 그 말이 왜 그렇게 눈에 박히던지.

왜 그렇게 안스러워 보이면서도 흐뭇해 보이던지.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또한,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온다고도 했다.

그 날의 그 마린은, 운은 더럽게 없었을지 몰라도

외부의 충격에 견디는 아머가 1은 높아졌을 것이다...

연초부터 호된 아픔을 겪었으니, 이젠 좀 나아지길 빌며.

스캔 뿌린 곳마다 적의 멀티가 있는 행운은 아닐지라도

컴퓨터가 승리를 시샘하는 불운은 더 이상 없기를 바라며.


Good Luck, TheMarine.


-Apatheia, the Stable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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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겅 김정민님 게임이 잘 안풀리셨나봐요. 그래도 열심히 응원해주시는 apatheia님 대단 하심다 ㅋ0ㅋ
목마른땅
02/03/03 02:36
수정 아이콘
"프로는 운도 실력이다."라는 말이 뼈있게 들려오는군요. 최근 경기에서 계속 운이 따라주지 않아 우승문턱에서 좌절하는 김정민 선수, 다시금 원기를 회복하고 올 해 메이져대회에서 첫승을 기록했으면 하네요.. 운이 나쁜 시기가 지나면 분명히 좋아질 거라 믿어요,, 화이팅,, TheMarine
N2Rookie
방송경기 다운나서 재경기 후 패배해본 사람만이 그 기분을 알지요.-_-; 그리고 전 개인적으로 운은 실력에 포함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_^/ 최고는 정말 너무나 많은데 게임 내적인 면에서, 가끔은 이런 말도 안되는 게임 외적인 면에서 종종 무언가가 태클을 걸고는 하죠-_-
어쨌든 정민이의 여유있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어느정도 이루어 놓은 강자의 여유랄까? +_+ 정민이 화이팅
02/03/03 10:07
수정 아이콘
정민님 힘내셨으면 좋겠네요.. 화이팅!
Apatheia
02/03/03 11:23
수정 아이콘
옆에서 보는 사람 기분도 그랬는데 당한 사람 심정이야 말해 뭐하겠습니까... 모든 프로님들 화이팅 ㅠㅠ
Sir.Lupin
담당PD인 제가 할말이 없답니다..그날 다운되고 나서 아파님 얼굴이 먼저 떠오르더군요..그리고 카메라를 통해 들어온 정민이의 난감한 얼굴..정민이 카페에도 글을 남겼지만, 최고의 플레이어 중 한명인 그에게 그 최고를 증명하기 위한 과정은 정말 험난한 가시밭길의 연속이 아닐런지..정민이의 그 의연함을 보건데, 조만간 자신의 실력을 모든 이에게 '공개적'으로 보여줄 그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더마린 화이팅!
P.S 동준이도 왔네...동준아 연습 열심히 해라~~
항즐이
02/03/03 16:18
수정 아이콘
흐음... 윤열이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윤열이마저도 맘고생이 심하더군요. 자신을 "오노"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면서.. 너무심한거 아니냐고 -_-;; 암튼 드랍경기, 그것도 생방송의 드랍경기는 늘 .. 문제가 되어 왔습니다. 다음주에는 제가 일찍가서 하드 싹 포맷하고 스타만 깔아놓을예정입니다. -_-+ 온겜넷처럼 과열상황도 아닌데 다운될리는 없겠죠. 흐~. 실력 이외의 것에 흔들리지 않을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합니다. ^^
02/03/03 16:43
수정 아이콘
오,오노라니!ㅜ.ㅜ
전 그 날 이윤열 선수의 경기에 감동받았는데...
02/03/03 16:50
수정 아이콘
정말 테테전 잘하시데요... 오늘 아침에도 요환님 이기구(누구의 x순이 입장에선 슬프지만서도...-_-)
앞으로 이윤열의 시대가 열릴지도...
따까치
한 임빠는 오늘 아침에는 그 겜 보구 디게 슬펐는데... 지금은 담주를 준비하실 요환님 생각하고 괘안탐니다...-_-;;

그리고 윤열선수... 저두 게시판 여기저기서 봤는데... 정말 "오노"라는 말도 안되는 얘기를 갖다 붙이믄서 난리도 아니더군요… 되려 정민선수는 이렇게 염려해 주는 분들이 많아, 전 윤열선수가 더 안쓰러워 보이더군요….까페에 글 올리신거 보니… “…실력으로 이긴거 같지 않다… 미안하다…”등등등… 사실 윤열 선수가 미안해 할 것이 아닌데 말에요… 마치 본인의 잘못인양 어쩔줄을 모르는 것이 눈에 그려지는 군요….규정은 규정이니 프로로서 최선을 다했다면 됐다고 생각합니다..

두 선수 모두 힘 내시구요… 담번에 다시함 붙을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아, 겜비씨 vod는 언제나 업뎃되려나…. 궁굼해 몸살난 따까치…..
선수의 심정을 무시한, 순간 드랍된 상황에만 포커스를 맞춘 망발을 했던 저는 이글을 보는 순간에도 창피합니다. 수습코저 떠들었던 몇마디 말도 기억하기 싫군요. 그러나 정민이가 자신을 거스르는 운마저도 돌려세우는 최강의 모습으로 거듭나길 빌며, 그 에게 약속한 밥은 꼭 사먹이겠습니다._.
Apatheia
02/03/03 18:59
수정 아이콘
황당한님께도 드린 리플이지만 어쩌겠습니까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ㅠㅠ 그저 두 분 다 마니 상처받지 않으시기만을 바랄 뿐이죠... 윤열님도 맘고생 심하셨을 텐데, 너무 정민님 생각만 한거 같아 지송해지는... ^^;
선수들을 따듯하게 그려 주시는 Apatheia님의 글은 프로게이머의 가족으로서 무척 고맙고 마음이 포근해집니다.
물론 '아파'님 뿐만 아니라 항즐님, 날다님, 외 여기 오시는 모든 분들도 게이머들에게 애정을 보내 주시는 분들이시라는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pgr21이 다른 게시판과 차별화되어 계속 발전하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사이트 전체 색상이 봄을 느끼게끔 무척 화사하게 변했군요. 파스텔톤이 무척 아름답고 마음에 듭니다. 아파님 고생하셨겠습니다.
Sir.Lupin
항즐..이미 컴들은 지난 토요일 모두 포맷후 재정비를 완료해 놓았다네..그래도 다운되면..컴 다운 노이로제 걸릴 것 같아..-_-;;
마요네즈
02/03/04 00:20
수정 아이콘
재경기때...... 레이스에 처참하게 당하는 배틀크루즈의 모습을 볼때.. 참 가슴아프더군요 --;
그러나 전 첫번째 치뤄젔던 경기가 물론 정민님이 유리한 상황이셨지만 완전히 넘어갔다고는 보지않기때문에 드랍이후의 재경기도 충분히 인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윤열님 양심없는 사람들의 비난에 너무 주눅들지 마시길..
그리고 정민님을 생각하니 참 안타깝네요.. 힘만 빼고.. 최선을 다함에도 불구하고.. 쓸쓸히 자리를 떠나셔야 되었다니.. (기욤의 퇴장도 가슴아팠지만..) 그러나 특히 세경기나 멋진 경기를 보내주셨던 정민님이 떨어지시니 참 안타까운 마음 뿐이더군요.. 하지만 너무 상심하지 마시고 정민님의 그 백만불짜리 미소를 팬들앞에 다시 선사해주시길..^^ 귀족테란의 번영을 기원합니다..^^
그경기 후에 제 동생이 한 말이 기억나는군요...
'김정민 오늘 술한잔 하겠네.....'
항즐이
02/03/04 07:45
수정 아이콘
재혁이 형 .. 화이팅 -_-;;; 감사요. 제가 해야 할 일을 ㅇ_ㅇ;;
음 윤열이를 응원해 주신 MoMo님, 따까치님, 마요네즈님 모두 감사드립니다. 윤열이보고 와서 읽으라고 꼭 전할께요. ^^
나는날고싶다
02/03/04 21:14
수정 아이콘
정민이도 화이팅..윤열군도 화이팅....-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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