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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8/06/04 20:07:08
Name kikira
Subject [소설] 5회 :『녀소 는리달 을간시』- 50억의 망상












※ 이 소설은 픽션입니다. 따라서 순환론과 관련된 인명, 서적, 논문, 학파 등에 관련된
    모든 내용은 허구이며, 혹 그 관련이 의심된다면 그것은 순전한 우연임을 알려드립니다.










다섯 번째 이야기 - 50억의 망상







  가든 교수가 순환론에 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며 종결론을 주장한 이후, 순환론은 그 싸움에서 완전히 패배했다. 그러나 그 기습은 순환론자들이 자신들의 약점을 모르고 있던 상태에서 이루어진 건 아니었다. 순환론자들을 이끌어 간 다카시 교수는 일찍이 70년대부터 줄곧 텍스트 양 끝을 순환하는데 우리가 모르는 ‘잃어버린 고리’가 있음을 지적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순환론자들은 선대 순환론자들이 이룩한 열매들을 수확하는데 집중했고, ‘잃어버린 고리’는 순환론자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졌다.

  70년대에는 세상 모든 문제가 순환론으로 해결 될 수 있을 것 같은, 그러한 낙관적인 분위기가 지구를 감싸고 있었다. 와이즈먼 교수는 브리스톨대에서의 초청 강의 중, 자신의 고물 포드에 순환론을 비유하며 이렇게 말을 했다. “제 페어몬트는 저번 달부터 와이퍼가 잘 돌아가지 않아요. 물론 이렇게 계속 놔두면 문제는 점점 심각해져 언젠가 엔진까지 고장 날지 모르죠. 하지만 전 오늘도 이 자동차를 타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정비 받을 시간이 없었거든요. 모든 이론이 그렇듯 순환론도 개선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허나 제 눈에는 순환론으로 해야 할 수많은 일들이 더 시급해 보이는군요.”

  와이즈먼 교수는 자신의 말을 지켰다. 순환론은 문학을 뛰어넘어 정치, 경제, 교육, 사회, 전 분야에 적용되었다. 그 효과는 검증되지 않았으나 그 실패 또한 검증되지 않았기에 순환론은 거침이 없었고 그 거침없음에 순환론의 모순은 점점 없던 일이 되었다.

  종결론은 그러한 순환론의 모순이 가까운 미래에 해결될, 보류된 사항이 아닌 해결을 볼 수 없는 불가해의 문제임을 지적했고 또 증명했다. 가츠코는 라벤더 향에 반응했으며 또한 가즈오를 기억했다. 순환론의 모순이 만천하에 들어났다. 비록 그러한 드러남이 처음은 아니었고 순환론자들 또한 그것을 아예 간과하고 있진 않았다. 이번에도 시류를 결정하는 것은 배우가 아닌 관객이었다. 순환론 극단은 파산했고, 그 자리에 종결론 극단들이 들어섰다.



   *   *   *   *   *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으나 순환론자들은 순결론자(Saintly virgin)라는 별명답게 쉽게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또 가까운 미래에 그 모순이 해결될 것임을 굳게 믿었다. 그 ‘가까운 미래’라는 말은 가까운 미래가 올 때마다 반복되어, 모순 해결의 도래는 항상 연기되었다. 그러던 중에 ‘가츠코의 모순’을 종결론적 방법으로 해결하려던 수많은 종결론자들이 먼저 지치고 말았다. 그 괴물 앞에 노구치 교수는 “해석의 나약함”을 운운하며 고개를 숙였고 종결론적 해결은 물 건너간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한 시점에 크리스틴 교수의 전향 선언이 나왔다. 노구치 교수의 항복 선언이 나온 뒤, 순환론적 모순 해결이 불가능함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이어서 나온 것이다. 그것도 ‘순환론의 미래’라고 불리던 크리스틴 교수에 의해서. 전 세계 저널리즘이 이에 민첩하게 반응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크리스틴 교수는 한 때 다카시 교수 밑에서 공부한 적도 있는 유능한 순환론자였지만 또한 순환론계의 이단아였다. 크리스틴 교수는 순환론이 해결하지 못한 ‘잃어버린 고리’를 절대 잊지 않았으며 와이즈먼 교수의 성급함을 비판하여 순환론계의 내분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당대의 많은 사람들은 순환론의 모순을 해결할 사람으로 젊고 유능한 크리스틴 교수를 꼽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주위의 과중한 기대가 크리스틴 교수의 강인한 의지와 합쳐져 결국 그를 전향토록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가츠코의 모순에 대한 새로운 정리를 시도하던 중, 그동안 사용했던 순환론적 방법이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가츠코 문제에 대한 약간의 사색」의 첫 문장은 이 글이 가츠코 문제의 ‘해결’이 아닌 ‘정리’를 시도함을 겸허히 시인하고 있다.
  그 ‘정리’는 또한 역시 소박한데, 첫 번째로 그는 그동안 순환론 및 종결론의 여러 문제가 텍스트에 씌어 있지 않은 부분에 관한 과도한 해석을 시도함으로써 비롯되었다는 것을 지적한다. 즉, 해석은 창작 이후에나 가능한 것이니 써지지 않은 부분에 대한 해석이란 본말의 전도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크리스틴은 텍스트에 ‘쓰여 진’ 부분에 대한 해석을 중시한다. 그러나 이미 수없이 밝혀진 바와 같이 작품내의 내용만으론 그 온전한 해석이 불가능하다. 크리스틴은 조용하지만 명확한 목소리로 말한다.

  “순환하지만 결정된 텍스트. 이것은 모순이나 또한 진실이다. 이것은 우리 모두를 괴롭히는 괴물이나 또한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우리의 출발점으로 삼는 일이다. 해석은 막강하지도 않으나 나약하지도 않다. 해석의 나약함이란 우리의 잘못된 방향 설정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비루하지만 굳건한 대지위에 다시 발을 디디고, 모순 해결의 한 발을 다시 디뎌야 한다. 그 방법은 오직 해석뿐이다. 종결론과 순환론을 모두 수용한 이 자리에서 우리는 지난 짧지 않은 시간동안 해오던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   *   *   *   *



  교수는 글의 말미에서 자신의 방법론을 따라 종결론과 순환론을 초월한 많은 후행 연구들이 이뤄지길 기대했다. 거기에 또한 자신의 방법론을 ‘합리론’이라 불러 주길 희망했다. 허나 그 두 가지 바람은 모두 빗나갔다. '순환론의 샛별'이었던 크리스틴 교수의 몰락이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먼저 종결론과 순환론의 수많은 학자들은 20년 가까이 이어진 해석 행위와 그 보잘 것 없는 성과에 너무도 지쳐있었다. 또한 크리스틴 교수가 실토한 바와 같이, 그가 서 있는 자리는 너무도 비루해 그 자리에서 아무리 발을 굴러 본 들 지금과 별다른 성과가 나오진 않을 성 싶었다.  

  거기에 관객들은 크리스틴 교수의 방법론을 ‘합리론’이라 부르길 거부했다. 그것이 진정 합리적인지도 의문이었거니와 종결론과 순환론을 초월한다는 교수의 방법론은 너무나 조야해 사람들은 그저 쉽게 ‘절충론’이라 이름 붙였다. 따라서 크리스틴 교수는 유일한 ‘합리론자’가 되었다. 크리스틴 교수는 지구에 다시 가츠코 바람을 불러일으켰으나, 반대로 그 자신은 끝없이 추락했다.


  그 몰락은, 또한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예전 이름이었던 'New Generation of Gatsuko' 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 뒤 2008년에 이르기까지 크리스틴 교수는 당시 꺼져가던 가츠코 논의의 불씨를 살려놓은 불쏘시개 취급을 받고 있다. 그러나 크리스틴 교수는 지금까지도 해석의 힘을 굳게 믿으며 가츠코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그에 대한 평가 또한 아직은, 미완일 수밖에 없다.









                                                                                                                                                                 6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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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_smokE
08/06/26 21:15
수정 아이콘
잘 보고 있습니다.^ ^
08/06/27 12:49
수정 아이콘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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