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연재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연재를 원하시면 [건의 게시판]에 글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Date |
2009/06/17 18:12:12 |
Name |
i_terran |
Subject |
[소설] 불멸의 게이머 20화 - 희망 |
[소설] 불멸의 게이머 20
20 희망
꿈이라는 건 그것이 꿈이라고 인지되기 전까진 현실이다.
이것은 전지적 시점에서 볼 때, 너무나 생생한 꿈이다.
‘피융 피융’
단지 컴퓨터 화면을 통해서 스타크래프트의 유닛들이 하나둘씩 보인다.
해처리 저글링 히드라... 저그를 대표하는 건물과 유닛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을 조작하는 손이 보인다.
그런데 마우스와 키보드를 조작하는 그 손은 스스로 보기에도 서툴러 보인다.
꿈을 진행하는 의식이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
그리고 컴퓨터 화면에서 시야가 옮겨지며 그 위로 소리가 들린다.
‘한 게임 안 해요?’
꿈을 진행하는 의식 내부로부터 뭔가 다른 이에게 말을 건네는 목소리가 들린다.
여기서부터 이 꿈의 의식의 주체가 여성임을 알 수가 있다.
그것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지금 이 여성은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돌려서 한 남자를 바라보고 있다.
‘전에 잘했다고 했잖아요?’
꿈을 진행하는 여성은 다시 한 번 남자에게 물어본다.
그러자 여성이 바라보고 있는 남자가 대답한다.
‘다르잖아.’
남자가 대답하자. 여성의 의식에선 강한 부정어가 떠오른다.
여성은 그것에 동의할 수 없다. 그러자 이번엔 남자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한다.
‘다르잖아.’
가지런한 턱 선
같은 말이지만 그 웃음을 더하니 말의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
그녀는 알 수 있다. 그녀가 너무나 그리워하던 웃음이 바로 이 사람이 웃음이었다는 것을 그녀는 기억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그 남자의 얼굴을 바라본다. 적어도 그녀가 알고 있는 한 최고로 따듯한 미소를 가진 얼굴이다.
이것은 그녀가 매우 그리워하는 얼굴이며 동시에 매우 친숙한 얼굴이다.
그녀는 그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
그 남자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녀는 잠이 깨버렸다.
----
“...건호 오빠... ”
라면서 아나이스는 잠에서 깼다.
아나이스는 어제 건호의 16강 진출 기념으로 자신이 기분이 좋아져서 다소 과음을 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머리가 갑자기 깨질듯이 아팠다. 아나이스는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오늘은 건호의 스케쥴도 없고 8강 1일차 경기를 다소 여유 있게 관람을 하면 되는 것이다.
건호도 방의 맞은편에서 이불을 덥고 자고 있었다. 아나이스는 안심했다.
“으음.... 더 자도 되겠네.”
아나이스는 다시 이불 안으로 상체를 집어넣었다.
그러나 잠시 후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우며 놀라듯 말했다.
“뭐야?!”
아나이스는 다시 순서가 맞지 않는 자신의 사고 순서를 정리해야 했다.
그리고 그녀는 비로서 기억해냈다.
“그게 내 꿈...?”
그렇다 그것은 바로 아나이스의 꿈이었다.
아나이스는 기억을 더듬으며 자신이 꾸었던 꿈과 자신이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에 했던 행동에 대해서 떠올렸다.
그리고 그녀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고 아직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건호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봤다.
“뭐? 내가 뭐라고 했다고?”
아나이스는 일어나서 건호에게 바짝 다가가 건호의 눈 코 입을 유심히 살펴본다.
그리고 곧 아나이는 건호가 가지런한 턱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
그때 세상모르고 자던 건호지만, 뭔가 부담스런 시선을 느꼈기 때문인지 서서히 눈을 뜬다.
그리고 건호는 아나이스의 얼굴을 발견한다.
“아나이스...?”
그리고 그녀의 얼굴과 자신의 얼굴의 거리가 딱 20cm 라는 것을 깨닫고는 놀란다.
“뭐!! 뭐야 아나이스!!! 배... 뱀파이어가 된 거야?!!!!”
작은 옥탑방은 공포에 빠진 건호의 절규로 순간 흔들렸다.
----
제 43회 헬게이트 스타크래프트 토너먼트
8강 1일차 경기.
오늘은 A조 베로나와 마혼 그리고 B조 카츠와 엑스투스의 경기가 진행되는 날이다.
아직 경기를 준비하는 헬스테이션 메인홀에는 정돈되지 않은 모습으로 웅성대고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려면 아직 시간이 걸린다. 그러난 가운데 건호와 아마트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건호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어디 간 거야 아나이스는...?”
----
헬스테이션의 사무동과 거주동 사이의 공간.
누군가 <관계자외 출입금지>가 표시 된 문 아래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간다.
그 사람은 아나이스였다.
‘철컥’
아나이스가 문을 닫고 들어간 공간은 매우 넓은 방으로 현재 공실이었고 어두웠다.
틈이 벌어진 틀어진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온 빛이 어두운 공간의 윤곽을 구분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속의 가운데 아나이스가 서 있었고 그 뒤로부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군.”
어느덧 그녀의 뒤에는 검은 그림자가 서 있었다. 아나이스는 그 그림자에 대답했다.
“네 죽을 뻔했죠.”
“팔려갈 상황이 되었다면 빼내 줄 생각이었다.”
“글세요. 건호가 졌다면, 전 아무 쓸모없었을 텐데요.”
그러자 그 그림자는 적당히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나이스가 다시 그 그림자에게 질문을 했다.
“저번에는 왜 그랬던 거죠? 건호가 상당히 괴로워했었죠.”
“나도 지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말이야.”
“건호는 진짜로 당신에게 진 줄 알고 자신감을 잃을 뻔했어요.”
“하지만 결국 더 열심히 해서 실력이 늘지 않았나?”
그 그림자는 한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자 블라인드에서 새어 들어온 빛이 그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는 바로 라데온이었다.
“소원에 대한 열망은 강하다 연습에 진 정도로 꺾이지 않아.”
이번엔 아나이스가 그 말에 대꾸를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아나이스는 다른 것을 라데온에게 물었다.
“역시 건호가 결승까지 갈 거라고 생각하나요?”
“그건 알 수 없다.”
또다시 아나이스는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이번엔 라데온이 말을 정리해주었다.
“진짜 강력한 녀석들의 등장은 이제부터다. 솔직히 스킬만으론 알 수 없는 녀석들이 많아.
16강에서 모든 스킬을 파악했다고 할 수 없다. 그 녀석에겐 어느 때보다 희망이란 게 필요할 거다.
그게 없어지면 녀석은 쓰러진다. 그러니 네가 그걸 지켜줘야 한다.”
아나이스는 말없이 표정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 표정을 확인한 라데온은 먼저 돌아서려고 발걸음을 떼려고 한다.
그때 아나이스가 고개를 돌려서 붙잡듯이 말했다.
“개인적으로 물어볼 게 있어요.”
라데온은 가려다가 다시 고개를 아나이스에게 돌렸다.
“뭐지?”
“인간과 악마의 재능에 관한 건데... ”
아나이스는 다소 자신 없는 얼굴이 되어 질문을 이어갔다.
“어떤 사람이 악마의 재능을 얻기 위해서 희생으로 기억을 바쳤어요...
그런데 시한이 다해서 악마의 재능이 사라지게 되면. 그 기억이 다시 돌아올 수도 있나요?”
라데온은 즉시 대답한다.
“없다.”
라데온은 이내 아나이스의 표정을 살피며 부연한다.
“그건 애초에 기억을 바친 게 아닐 거야. 기억과 연결된 다른 무엇이지.
너도 그 정도는 알텐데... 아무튼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마라.
너에게도 기회는 단 한번 뿐이니까... 그러니 그 꼬마에게서 희망을 지켜라.”
말을 마친 라데온은 그대로 먼저 문을 열고 사라졌다.
----
어느덧 8강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자리는 이미 대부분 차버렸다.
그런데 사람들을 헤치고 아나이스가 건호 옆으로 걸어들어 오고 있었다.
“어디 갔었어? 아니이스!”
건호는 짜증스럽게 말했다. 아나이스는 뻔뻔스럽게 건호의 옆에 앉으면서 말했다.
“내가 일일이 말해야 해? 난 여자야.”
아나이스가 차갑게 말하자. 건호가 받아쳤다.
“아침에 내 피를 못 빨아서 딴 데 가서 빨았나?”
“난 뱀파이어 아니거든.”
“근데 왜 그렇게 쳐다 본거지? 마치 먹이를 노려보는 듯이...”
아무튼 그 말로 인해서 건호와 아나이스가 아옹다옹했지만 경기는 예정대로 시작되었다.
----
8강A조 경기 베로나 vs 마혼 1set
언제나처럼 경기는 연승행진을 달리는 베로나의 승리 공식대로 흐르고 있었다.
“역시 베로나 선수 이번에도 쭉쭉 밀리고 있습니다.”
저그인 마혼이 무적진용을 중심으로 베로나의 유닛을 파괴하게 진군하고 있었다.
“이런 타이밍이 바로 베로나 선수가 GG를 받아내는 타이밍이죠?”
“네 아직은 저그 마혼선수 GG를 치지 않지만 곧 끝날 것 같습니다.”
경기화면을 보는 건호는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앗싸. 베로나 이겨라. 이겨.”
“넌 뭐가 좋다고 베로나를 응원해. 너도 진 주제에.”
아나이스는 건호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그러자 건호가 대답했다.
“이대로 베로나가 결승에 진출해주면 난 우승할 수 있어. 그러니 응원해야지.”
건호는 매우 뿌듯하게 말했고 안경으로 된 능력치 측정기를 끼고 경기를 관전하던 아마트라가 물었다.
“뭔가 알아낸 건가?”
건호는 자신 있게 말했다.
“자 이제... 내가 GG나오는 타이밍을 맞춰 볼게... 자... 지금이야.”
Mahon : GG
Mahon left the game
정확히 건호가 말한 타이밍에 마혼이 베로나를 실컷 밀다가 GG를 치고 게임에서 나갔다.
“어?!”
아마트라는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역시 베로나 선수... 이번에도 멋진 경기력.... 은 아니고... 어쨌든 GG를 받아내고 승리했습니다.”
“계속되는 베로나 선수의 사기 스킬에 의한 연승... 대단합니다.”
그러면서 건호는 의기양양했다.
“뭔데 건호야 나도 좀 알려줘.”
“아냐... 지금 알려주면 재미없잖아.”
아나이스가 궁금해서 물었다. 하지만 건호는 더 기가 살아서 그 의견을 묵살했다.
하지만 그런 건호도 다음 2set경기 뭔가 심상치 않은 변화를 감지했다.
“어 그런데 이번세트에선 마혼 선수 주종 저그가 아니라 프로토스를 선택했네요.”
“음 주종을 바꾸면 자신이 가진 무적진용을 사용하지 못할텐데요...”
“마혼 선수 설마 경기를 포기한 것은 아니겠죠?”
그리고 잠시 후 2set 경기가 이어졌다.
프로토스로 종족을 바꾼 마혼은 자신의 주력스킬을 사용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역시 강력한 경기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경기가 중반으로 가자 베로나는 여전히 쭉쭉 밀리고 있었다.
“아 마혼선수 프로토스도 잘하는군요. 이미 경기력으로는 마혼 선수의 완승... 거기에 아비터를 준비합니다.”
“지금 상황에선 아비터가 전혀 필요 없을 텐데요.”
“자 베로나 선수 쭉쭉밀리고 있으니 또 GG를 받아낼 타이밍인가요?”
“마혼 선수 스테시스 필드 겁니다.”
마혼의 아비터는 베로나의 본진 탱크에 스테이스 필드를 걸었고 주력부대가 난입했다.
“자.... 이제 베로나 선수의 사기 스킬이 나올 차례입니다.”
“마혼 선수 열심히 선전했지만...”
하지만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그런 해설자들의 예상과 달리
Berona was eliminated
"베로나 선수 패배...“
베로나는 GG를 칠 틈도 없이 경기에서 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건호는 경기석에서 희미하게 웃고 있는 마혼의 표정을 발견했다.
“녀석... 알아낸 건가?”
건호는 정당한 자기 몫을 빼앗겨서 분한 듯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베로나 vs 마혼의 3set 경기가 진행되었다.
장내가 약간 흥분이 일어나면서 3set 경기가 진행되자 아나이스가 다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대체 뭔데 건호야? 안 가르쳐 주면 마혼한테 물어볼 거야.”
“마지막 유닛이야.”
“마지막 유닛?”
건호는 천천히 대답했다.
“공통점이 있었어. 베로나가 GG를 받아내는 상황은 항상 그랬거든.
어쩌면 난 직접 경기를 했기 때문에 더 확실히 알았지.
베로나는 항상 본진에 있는 마지막 탱크가 터질 때 GG를 받아냈어.
초반 유닛이나 본진 밖에 있는 건 상관없었어. 그러니까. 꼭 상대가 이겼다고 생각할 무렵 그거에 걸리는 거지.”
아나이스는 건호의 말을 듣고 나서 자신이 기억하는 베로나의 경기를 하나하나 떠올려보았다.
과연 건호가 말하는 조건에 훌륭하게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경기에서도 마혼은 자신의 경기력을 통해서 베로나를 압도하고 아비터를 뽑아 진군을 시작하고 있었다.
“특히 난 베로나하고 경기할 때 마지막 탱크를 강제어택 했었어. 그래서 더 확실히 알고 있었지.”
“그랬구나...”
아나이스는 그때 수긍했고 아마트라는 또 하나의 의문점을 던졌다.
“그러면 왜 마혼은 왜 스테이스 필드를 거는 거지? 그냥 먼저 건물만 다 파괴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건 변수를 없애는 거지.”
“변수?”
“탱크를 던지거나 혹시 스스로 파괴해서 발동시킬 가능성도 있으니.”
잠시 후, 마혼은 또다시 베로나의 본진 탱크에 스테시스 필드를 걸어놓은 후에 자신의 주력으로 건물 청소를 시작했다.
베로나는 스테시스 풀리자 탱크를 열심히 움직였지만
또 다른 아비터가 다시 스테시스 필드를 걸었다. 베로나는 그로서 꼼짝없이 청소 당했다.
Berona was eliminated
"베로나 선수 패배...! 마혼 선수 베로나의 사기 스킬을 파해하고 4강에 선착합니다.“
“마혼 선수 생각보다 더 강하고 스마트한 플레이어로군요.”
마혼의 4강 진출 선언에 건호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바보만 있는 줄 알았는데, 상당히 똑똑하고 전략적인 놈들도 있네...”
그 말에 아나이스는 짜증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돌려서 자기 자랑하면 좋냐?”
----
다음 경기는 8강B조 카츠vs엑스투스였다.
해설진은 앞선 경기에 비해 맥빠진 목소리로 중계를 하고 있었다.
“두선수 매우 공통점이 많죠. 스킬도 자원채취율 향상을 기본으로 하고 있고요.”
“무엇보다 경기력의 수준이 비슷하군요. 정말 팽팽해요.”
앞선 경기에 비해서는 매우 지저부한 하수의 경기.
누가 더 못한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수준의 경기가. 그것도 다른 종족전이 아닌 테테전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잘하는 두선수가 팽팽한 경우엔 어쩌다 한번 실수하는 쪽이 진다고 말씀드렸는데
이렇게 둘 다 못하는 경우엔 반대로 어쩌다 한번 잘하는 쪽이 이기겠네요.”
아마트라 역시 두 사람의 능력치를 기계로 재고 있으면서 그 점에 뼈져리고 동감하고 있었다.
‘650... 550... 400... 700...380...’
카츠와 엑스투스는 플레이를 한번 할 때마다 수치는 이리저리 요동치고 있었다.
아마트라는 이렇게 경기력이 요동치는 경우를 제대로 본적이 없었다. 특히 엑스투스의 경우가 그게 심했다.
‘400... 700...380...500’
이렇게 요동치다가.
‘0...’
그때였다. 엑스투스의 언덕 위 탱크와 언덕 아래 카츠의 탱크가 맞붙었는데 언덕아래 카츠의 탱크만 죄다 파괴되는 현상이 보였다.
“아 엑스투스 선수 운이 좋군요. 자신의 탱크 한부대는 모두 HP를 가까스로 남기고 살았습니다.
언덕아래 카츠선수의 한부대가 넘는 탱크는 모조로 파괴되었는데 말이죠. 이런 장면은 쉽게 찾아보기 힘든데 말이죠.”
“네 엑스투스 선수 만년 16강 징크스를 뚫더니 운이 터지나 보군요.”
“사실 8강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고 카츠 선수를 만난 게 최고의 행운이죠.”
“사실 카츠 선수 입장에서도 엑스투스 선수를 만난 건 좋았는데 말이죠.”
“어쨌든 이 경기의 승자는 행운을 잡은 겁니다.”
어쨌든 그래도 경기는 지루하게 진행되었고
결국 방금 교전에서 언덕 위 탱크의 판정을 제대로 받은 엑스투스가 경기를 유리하게 이끌고 가며 승리했다.
그리고 1set가 끝나자 건호는 자못 심각하게 말했다.
“이 경기의 승자가 행운을 잡은 게 아냐”
아마트라는 무슨 말인가 싶었다. 설마 건호가 무슨 행운에 관한 스킬이라도 발견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2set 중반 건호가 이미 경기를 보다가 잠들어 버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아울러 건호가 했던 얘기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엑스투스 선수. 2set경기도 승리!! 4강에 진출합니다. 축하합니다.”
“하지만 오늘의 최고의 행운아는 마혼 선수입니다. 이런 엑스투스 선수를 4강 첫경기에서 만나게 되니 말입니다.”
“네 마혼선수 정말 행운아입니다.”
아마트라는 지루한 경기에 함께 완전히 잠들어 버린 건호와 아나이스를 오랜 시간에 걸쳐 힘들게 깨우고 경기장 밖으로 나갔다.
----
“4일 후니까. 연습 열심히 하고 절대로 방심하지 마라. 침 좀 닦고..”
경기장 밖으로 나온 후, 아마트라는 아직 잠이 덜 깬 건호들에게 조언을 하고 있었다.
오늘 경기를 보면 사실 방심하고도 남음이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강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자기 자신에게 타이르듯이 말이다.
“알았어.”
하지만 자기가 납득하지 못하는 것을 남에게 납득시키긴 힘든 법.
아마트라는 건호의 대답에서 진심을 느끼긴 힘들었다.
아무튼 더 이상 얘기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아마트라는 먼저 조직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건호는 아마트라의 모습이 멀리 사라지자마자 바로 솔직한 얘기를 했다.
“두 번째 경기를 보면 긴장하고 싶어도 긴장할 수가 없어. 엑스투스는 정말 최악이야.
가능성은 제로지만 결승전에서 그 녀석을 만나면 정말 난 행복할 거야. 7대0 스코어를 보여주겠어.”
건호는 감정을 실어서 말했고 아나이스는 덧붙였다.
“하하하 맞아... 근데 그 녀석이 이 말을 들으면 넌 여기서 맞아 죽고 결승전에 못가겠네. 캬캬캬.”
건호도 아나이스도 허리를 구부리며 웃었다.
그런데 잠시 후... 건호와 아나이스는 더 이상 웃을 수가 없었다. 항상 말이 씨가 되는 법.
“임건호 선수?”
돌아보니 엑스투스가 바로 건호와 아나이스의 뒤에 서 있었던 것이다.
“으어어”
건호가 더 놀란 건 엑스투스는 두 손으로 의자를 높이 쳐들고 서 있었다는 점이다.
마치 내려찍기라도 할 듯이...
“아니 이봐... 진정해!! 진정하세요!!”
순간 역광 조명으로 보인 엑스투스는 무시무시했다. 건호는 갑자기 인생의 끝이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다음 장면에서 엑스투스는 자신의 의자를 공손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음... 내 의자는 너무 소중해서 이렇게 두 손으로 높이 들어서 옮기고 있지.
남들이 꼴사납다고 말하지만 나에겐 변비를 고쳐주고 16강 징크스를 깨준 행운의 아이템이라서...
이렇게 소중히 다뤄야 하지...”
건호와 아나이스는 다행히 엑스투스가 그들을 내리 찍으려고 의자를 두 손으로 높이 든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아직 죄를 지은 입장에서는 쉽게 안도할 수 없었다. 그때 엑스투는 다음 말을 이어갔다.
“근데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나? 정말 재미있는 얘기처럼 들려서...”
짧은 순간 건호와 아나이스는 안심했고 아나이스가 재빨리 처리에 나섰다.
“아... 우리도 건호 행운의 아이템이 있거든 이 목걸이인데... 그게 기뻐서 웃었어...”
아나이스가 급하게 지어낸 말에 엑스투스는 매우 진지하게 반응 했다.
“오호.... 너도 행운의 아이템이 있었던 거군! 반갑다.”
건호는 자신이 목걸이를 엑스투스에 잠깐 보여주었다.
엑스투는 정말 진지한 표정으로 그 목걸이를 유심히 들여다보였다.
“내 아이템과 비슷하군 마력은 전혀 느껴지지 않지만, 분명 예사롭지 않은 물건이야.”
이번엔 건호가 엑스투스의 아이템인 의자에 대해서 품평회를 해야 할 차례였다.
“내가 있던 곳에 피시방에는 스타 초고수들이 있는데...
꼭 그 사람들이 쓰던 의자 같아... 뭔가 영험한 기가 느껴지고 있어.
이건 분명히 최강자의 기운이야...”
건호는 마구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역시 알아보는구나. 이건 수입 골동품 상인이 나에게 판 건데.
정말 오래된 보물이라고 들었어.”
그러나 건호의 말에 엑스투스는 진심으로 감탄하듯 대꾸했다.
“난 이 보물을 근데 500만 조단밖에 안줬어. 난 정말 싸게 산 것 같아.”
하지만 건호는 엑스투스의 마지막 말엔 갑자기 맥이 좀 풀렸다.
엑스투스의 사고가 사차원인 것은 문제가 없었지만, 역시 경제력에 차이에 따른 위화감은 가슴 아팠다.
그래도 일단 분위기는 부드럽게 만들었으니 건호는 거기에서 만족했다.
아무튼 두 사람은 서로의 아이템에 대해 조금 더 품평회를 했고 적당히 이별을 고할 타이밍이 왔다.
그런데 갑자기 엑스투스가 이전과는 다른 어조로 말했다.
“그런데 임건호 선수... 넌 인간이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엑스투스는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건호에게 말했다.
“어째서라니...? 뭐가?”
그때 아나이스가 갑자기 건호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이봐 우리 건호한테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래?
너 네 악마들이 인간한테 하는 얘기는 모두 도움이 안 돼. 그러니까 하지 마.”
“... 난 단지...”
“하지 마!! 어서가!”
엑스투스는 약간 섭섭한 얼굴로 자신의 의자를 메쳐 업었다. 그리고 건호에게 말했다.
“임건호 선수... 행운을 빌어. 다음에 봐.”
라면서 엑스투스는 먼저 이탈해 사라져 갔다.
엑스투스의 모습이 사라지자 아나이스는 다소 안심하며 건호를 이끌었다.
“가자 연습하러 가야지. 마르두크가 기다려.”
아나이스는 그렇게 건호의 손을 잡아 끌어 아마트라 소속 산하의 게임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건호는 조금 불편했다. 아나이스가 뭔가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아서 그랬다.
“아나이스... 왜 엑스투스의 말을 막고 그랬어?... 그 녀석 멍청하고 착해 보이던데...”
그러자 아나이스는 뭔가 생각하더니 말을 시작했다.
“악마들을 믿지 마.”
“뭐가?”
“악마들의 말을 들으면 인간은 희망을 지킬 수 없어.”
“희망을...?”
아나이스는 다짐하듯이 말했다.
“나도 앞으로 뭐가 어떻게 될 진 몰라.
하지만 이제부터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희망을 쥐고 있어야 해.
분명히 괴로운 일도 있을 거고 마음은 더 힘들어 질 거야.
그럴 때 희망을 놓으면 지게 되는 거야. 건호야 넌 어떤 일이 있어도 희망을 놓아선 안 돼.”
마치 비장한 각오를 앞에 둔 사람처럼 아나이스는 말했다.
건호는 오늘 엑스투스의 경기를 보고 긴장이 모두 풀려버린 상태였지만,
아니이스의 그 얘기를 들으며 뭔가 다시 긴장이 되었다.
그리고 건호는 아나이스의 말에서 그녀가 고난의 미래를 직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그런지. 왜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건호로서는 알 수 없지만...
----
아마트라 조직 내의 게임장으로 오니 마르두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마르두크는 정상적인 상태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수면 상태로 기다리고 있었다.
의자에 몸을 묻고 고개를 뒤로 꺾은 체 자고 있었던 것이다. 건호는 마르두크를 보며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봐 마르두크 일어나... 열심히 연습하는 줄 알았더니 자고 있어?”
<으... 으음..>
마르두크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글을 적었다. 건호는 마르두크에게 꾸짖듯이 물었다.
“이렇게 잘 거면 같이 가서 경기나 보지 그랬어. 뭐 우리도... (가서 자긴 했지만,) 이게 뭐야? 따로 놀고...”
마르두크는 졸린 눈을 비비며 글을 적었다.
<요즘 이상하게 컨디션이 안 좋아서.>
건호는 마르두크가 평소답지 않게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고 생각했고,
마르두크를 다그쳐서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건호는 생각했다.
그 어떤 난관이 오더라도 열심히 승부해서 꼭 이겨 보이겠다고.
결코 쉽게 마음에서 져서 절망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지금도 건호는 마르두크에게 재촉하며 연습을 시작하는 것이다.
-------
차회 예고
과연 건호에게 다가오는 고난은 대체 어떤 것일까?
-------
전직에 유명한 악마였던 어떤 이가 말했다.
그 악마는 너무 게임에 빠져 본분을 망각한 나머지 악마에서 퇴출당한 비운의 악마다.
”악마의 말은 아무리 잘 맞는 것 같아도 결국 인간에겐 도움이 안 돼.“
이것은 과연 앞으로의 이야기에 실마리가 될 것인가?
아니면 그저 줄거리를 헛갈리게 하려는 작가의 술수인가?
아무리 없어도 뭔가 있는 척... 실력이 허약할 수록 가리고 포장하는 작가의 밀고 당기기
그러나
혹시 후에 이 문구를 기억해낸다면
님은 기억력이 참 좋다고 말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저런 살아가면서 고민을 진짜 많이 하신 형님이시거나.
아직 철이 덜 들었어도 작성자는 뜬금없이 생각하게 된다.
과연 희망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 박진호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06-24 02:22)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