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불멸의 게이머 4
4. 아수라
처….얼썩
검은 파도가 넘실대고 있었다.
꺾어진 외등과 같은 달빛이 절벽에 실루엣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 위의 고성은 삐죽삐죽 솟아난 첨탑으로
깎아지른 절벽의 모양새를 훌륭하게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러기 대신 까마귀가 고성 첨탑 위에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푸른 스켈렉톤은 날개를 접더니 건호를 그 고성 문 앞으로 데려갔다.
"
아수라 백작님의 성이다."
끼이익… 해골문양과 뱀문양이 얽힌 거대한 문이 열리자 어두운 긴 터널이 드러났다.
발자국 소리들은 마치 긴 세월처럼 무겁게 들렸다.
그러나 건호는 궁금했다. 도대체 누가 자신을 친구라고 생각하고
이 자리에 오게 했는지 말이다.
"난 친구가 없어 대체 누가 날 부른 거야?"
"그 녀석은 널 친구라고 하던데…"
잠시 후, 스켈렉톤은 건호를 붉은 주단이 깔린 방으로 안내했다.
그 방엔 여러 가지 서적과 구슬 그리고 박제된 수많은 동물과 식물
그리고 알 수 없는 생물들 거기에 인간의 모습 등 갖가지 기괴한 전시물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 보다 훨씬 더 기괴한 것은 방 한가운데 앉아 있는 어떤 형상이었다.
그것은 사람의 형상과 흡사했으며 머리를 도포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반갑군, 난 아수라일세."
그 형상이 고개를 들어 말을 했다.
건호는 그 얼굴을 보는 순간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얼굴은 이리저리 수 없이 기워놓은 수많은 살점들의 모자이크였다.
수백 번은 바늘로 기운 듯 흉측한 얼굴이었다.
도포 밖으로 약간 드러난 그의 손에도 오통 수 없이 많은 문신이 보였다.
"의리 있게 친구를 구하러 여기까지 왔군."
그러나 흉측한 형상과는 달리 목소리는 꽤나 또박또박하고 정확했다.
"난 끌려온 거야……"
건호는 겁이 났지만 겨우 한마디를 건넬 수 있었다.
아수라는 개의치 않았다.
"이런 겸손하기까지...“
그때 끼이익 하며 방의 반대쪽에서 문이 열리더니 또 다른 스켈렉톤이 걸어 들어왔다.
그 스켈렉톤은 사람이 묶인 기둥을 어깨에 지고 들어오고 있었다.
건호는 다시 한 번 놀랐다.
그 기둥에 묶인 사람은 건호가 아는 얼굴이었다.
"하이 건호 옵빠 안녕…… 와주었네"
그것은 아나이스였다. 왠지 고생한 얼굴이었지만 장난스러운 표정은 그대로였다.
"아나이스"
"건호 옵빠 와줘서 너무 기뻐! 우린 역시 친구지?"
건호는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아나이스는 건호에게 윙크를 해보였다.
그리고 아나이스와 스켈렉톤 뒤에 또 한사람이 따라 들어왔다.
덩치가 무척 크고 검은 망토가 인상적인 기사의 복장을 하고 있는 사내였다.
장발의 긴머리를 하고 있는 그의 얼굴은 정말 차갑게 보였다.
"저 꼬마인가? 아수라. 인간이로군."
"나도 분노하고 있다네 겨우 인간이라니"
아수라와의 대화를 들으니 그 남자 역시 악마의 일족 같아 보였다.
그 남자의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하긴 아나이스 역시 반쪽이니…… 겨우 인간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지도 모르지"
스켈렉톤은 아나이스를 묶은 기둥을 벽에 고정시켰다.
아나이스는 스켈렉톤에게 악다구니를 해댔다. 여전히 진지하지 못한 아나이스.
건호는 지금의 분위기가 몸서리가 쳐졌다.
아나이스도 웃고는 있었지만 여기저기 상처가 있었고 옷도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다.
아나이스는 소리쳤다.
"저 아이는 게임을 무척 잘한다고! 당신을 분명히 이길 수 있어!"
아수라는 꾸짖었다.
"닥쳐라 곧 너를 죽여 버리겠다."
건호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건호는 아나이스에게 물었다.
"도대체 뭐지? 어떻게 된 거야?
"하하하 건호 오빠 과거는 중요하지 않아. 미래가 중요해. 우린 친구지?"
"친구?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간단해 아수라와 게임을 해 그리고 꼭 이겨"
"……"
"지면 나 죽어"
그 말을 하는 아나이스는 눈물을 뿌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화내는 모습과 장난치는 모습만을 보이던 아나이스에게서 명백하게 떨어진 눈물은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변수였다.
건호는 아나이스가 그 순간만큼은 무척 조신한 여성처럼 보였다.
~~~~
아수라는 차분하게 얘기하고 있었다.
"저 녀석 자기 인생에 미련이 무척 많아서 새로운 생명을 포기하고 이 지옥에 왔었지.
인생에 미련이 있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도가 심했지.
그러다가 돈이 다 떨어지고 나서 몸을 팔고
그러다가 영혼을 팔고 결국 레벨로 없는 하위 악마가 되었지.
그렇지만 여전히 미련을 못 버리고
카르마에 가려고 게임을 하다가 나한테 엄청난 빚을 지고 이 지경이 된 거지"
"자기 빚 때문에…… 나를 친구라고 부른 거라고?"
"그렇다."
건호는 다소 화난 얼굴로 아나이스를 노려보자.
아나이스는 어느새 다시 장난스러운 얼굴이 되어 있었다.
"건호야. 나 상처받았어.
나 혼자 널 친구라고 생각했었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건호는 아나이스가 문제만 있고 답이 없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아수라는 물었다.
"게임을 할 거냐 말 거냐?"
"……글세"
건호는 잠시 고민했다.
아나이스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도 못하고 그렇게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지만
지옥에 와서 알게 된 2명 중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몰라도 자기와 무척 친해지고 싶다고 말했던 사람이다.
그건 건호에게 다소 특별한 의미이기도 했다.
그래서 다른 것 없이 그냥 게임을 한다면 괜찮을 것도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 찰나였다.
"게임은 공평한 조건이다.
졌을 경우 너도 영혼의 가격에 해당하는 10억 조단의 채무를 가지게 된다."
건호의 고민은 순식간에 끝났다.
"나 돌아가겠어."
"잘 생각했어. 인간"
그리고 건호는 아나이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난 구해줄 수가 없어. 미안해"
그 말에 아나이스의 얼굴엔 장난기가 사라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러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아냐 내가 미안해"
"……"
"일부러 이런 데까지 와줘서"
"말했듯이! 난 끌려 온 거야"
"이런 겸손하기까지..."
아나이스는 다시 다정하게 건호를 바라보며 웃었다.
지금까지의 아나이스의 그 어떤 얼굴과도 다른 얼굴이었다.
"……"
"난 하루 만이라도 더 살고 싶었거든"
그 말에 건호는 의아해 했지만
아나이스는 그 뒤에 그저 쓸쓸하게 웃고만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저 자기가 살고 싶었다고 말하는 아나이스의 의식구조를
건호는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그다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일단은 여기에서 벗어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길은 멀지만 잘 가게 인간 쿡쿡쿡"
건호는 돌아섰다. 일부러 아나이스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
건호는 푸른 스켈렉톤을 따라 복도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들어올 때만큼이나 긴 복도였다.
그리고 얼마나 걸어갔을까 갑자기 건호의 머릿속에 어떤 울림 같은 것이 들려왔다. 찌이잉 건호는 순간적으로 머리가 무척 아파왔다.
스켈렉톤도 걸음을 멈췄다.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반년 밖에 살 수가 없습니다."
찌이잉……
그것이 어디서 들려오는 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귀에 들려오는 소리가 아닌
직관적으로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파동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지만 건호는 다른 사람의 기억과 체험을 공유하게 되었다.
~~~~
"이제 반년 밖에 살 수가 없습니다."
의사는 굳은 얼굴로 얘기했다.
그 상황이 무엇인지 건호는 분명하게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상황 안에 자신이 녹아들어 있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더 살 수는 없나요?’
‘무리입니다’
건호의 시야에 의사의 하얀 가운이 인지되었다.
그리고 무표정한 엑스레이 사진이 보였다.
의사는 억지로 담담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흐느낌이었다.
의사의 담담한 얼굴도 무너졌다.
그리고 건호에게 어떤 젊은 여자의 모습이 인지되었다.
건호는 그 상황을 전지적으로 혹은 1인칭적으로 번갈아 가며 느끼고 체험하고 있었다.
‘조금 더 산다고 해도 그분에겐 결국 상처가 될 겁니다’
‘그렇겠죠? 역시 안되겠죠…?’
‘……’
‘그 사람 옆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신부가 되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숱같이 검은 머리.
그녀의 어깨는 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잠시 후 그리고 다정하고 무척 따듯한 느낌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남자의 웃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는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날리면서 미소 지었다.
"네가 있어서 행복해"
남자가 말했다. 무척이나 따듯하고 편안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바로 그녀와 결혼할 그 남자였다. 그녀는 무척 행복해했다.
그러나 그만큼 슬퍼하고 있었다. 이제 곧 그녀는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교회였다. 그녀는 교회에 가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모든 정성을 다해 그녀는 기도 하고 있었다.
‘하느님 전 믿어요 진정한 사랑은 죽음이 갈라놓는다고 해도…
영원할 수가 있다고 전 믿어요. 그렇지만… 하느님’
그리고 그녀의 내면의 마지막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요.’
거기에 그녀에 대한 인지와 체험은 끝이 났다.
그녀는 얼마 후 세상과 영영 이별하게 된 것이었다.
그녀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사랑해야 할 때
이별을 하게 되었다.
~~~~
‘
‘건호는 잠시 어지럼증을 느꼈다.
그리고 정신이 들자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스켈렉톤이 말했다.
"꼬마 너도 들리냐? 아나이스 녀석이 청승맞게 또 울고 있는 거지.
상당히 깊은 원혼이야. 깊은 원혼들은 죽기 전에 항상 저래’
"이게 아나이스라고?"
"아마도"
방금 건호는 아나이스의 울음 소리를 들은 것이었다.
여러가지 메시지를 담은 울음이 건호에게 공명한 것이었다.
"이봐"
"뭐?"
"게임하러 돌아가겠어."
건호의 눈빛은 다급했다.
그 모습을 본 스켈렉톤은 차갑게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스켈렉톤은 사실 건호의 태도 변화에 무척 실망했다.
그의 주인이 이 가련한 인간을 문밖에서 살해할 자격을 주었었기 때문이다.
~~~~
게임이 준비 중이었다.
헬스테이션에서 본 것과 동일한 운영체제가 작동하고 있었다.
이 방은 방금 전 아수라와 대면한 바로 옆의 방이다.
마치 조그만 재단과 같은 곳에 자리한 2대의 피시는 역시 뱀과 해골의 문양에 뒤섞인 인테리어로 디자인되어 있었다.
게임의 긴장감을 돋우기 위한 여흥인지 모르겠지만
아나이스는 여전히 벽에 묶여 있었다.
건호는 잠시 아나이스에게 다가갔다.
"네 기억이었구나."
"미안해 건호야"
아나이스가 담담하게 말을 받았다.
"난 그저 게임이 하고 싶을 뿐이야"
서로 별말은 없었지만 이해가 오고갔다.
아수라가 해골문양의 스터디레더 갑옷을 입고 등장했다.
그 갑옷을 입으니 아까보다는 왠지 중후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기괴해 보였다.
그러나 목소리만은 여전히 또랑또랑했다.
"게임은 5판3선승이다.
네가 지면 넌 영혼을 바치던지 10억 조단을 내야 한다."
"……"
"그리고 한판을 질 때마다
저 녀석의 신체를 중독시키겠다. 이렇게 말이지"
그때 아나이스의 발에서부터 점액에 휩싸인 촉수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악"
아나이스가 비명을 질렀다.
아나이스의 발 밑에서부터 올라온 촉수는 아나이스의 몸에 들러붙더니
서서히 융합하고 있었다.
"무슨 짓이야?!!"
"이 녀석에게는 당연한 업보야 걱정말라구. 이 정도로 죽지는 않아"
아나이스는 그냥 봐도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지상에서도 이 정도는 약과일 텐데"
아수라는 천천히 걸어가서 자리에 앉았다.
아나이스는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억지로 웃어보였다.
"나 걱정하지마…… 게임에서 꼭 이겨"
"그래 이길게"
건호도 게임의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건호는 아직 아수라의 능력이 어떤 것일지 짐작조차 하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건호는 랜덤 아수라는 테란을 선택하였다.
맵은 로스트템플 그리고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5…4…3…2…1…
~~~~
게임이 시작되었다.
해처리가 보였다. 건호는 저그가 선택된 것이었다.
건호의 위치는 6시 수정하지 않은 로스트템플이라서 6시의 자원상태가 엉망이었다.
건호의 기분은 다소 불쾌해졌다.
그래도 건호는 앞마당을 먹고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
불안한 징크스를 억지로 피하기 위해서 소극적으로 게임하면
게임이 아예 안 풀려 버리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대신 초반에 징크스를 털어버리면 게임은 오히려 훨씬 좋은 상태로 역전이 되곤 했다.
건호는 드론 정찰을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건호는 자신의 마음가짐이 옳았음을 알았다.
그는 2시 테란의 위치를 찾은 다음에 정찰한 드론으로 멀쩡한 SCV를 무려 2마리나 잡을 수 있었다.
상대는 명백한 초보였다.
~~~~
검은 망토의 기사는 곳에서 능력치 측정기를 끼고 옵저버로 게임을 관전하고 있었다.
그가 입은 갑옷과 능력치 측정기인 금테 안경은 조화롭지 못했지만
그의 진지한 표정은 그런 부조화를 무마시키기에 충분했다.
검은 망토의 기사가 바라본 두 유져의 순수 게임능력치는 차이가 심했다.
Asura
컨트롤 50
침착성 75
생산력 65
승부욕 50
침착성 70
Total rating power 945
i_random
컨트롤 90
침착성 85
생산력 75
승부욕 110
침착성 70
Total rating power 1512
아수라가 원래 게임에 허접한 것인지 테란에 익숙하지 못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나저나 빌드오더만큼은 정확하게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건호의 드론이 SCV를 2마리를 잡은 순간엔 침착성이 -10으로 순간적으로 주저앉아 조금 꼬이기도 했다.
그래도 SCV생산을 조금 쉰 것 외에는 큰 실수를 하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마린 메딕을 차곡차곡 준비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건호의 저그는 그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검은망토의 기사는 쉽게 건호의 승리를 점치지 않았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Asura
Unigue skill : 1(+1)
검은 망토의 기사는 그저 흥미로운 게임이 진행될 것이라 짐작했다.
~~~~
건호는 상대가 어설픈 마린메딕 러시를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건호는 저글링을 일정수 계속 생산했다.
그리고 마린메딕이 나올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본진에서는 테크를 올리고 드론을 뽑고 있었다.
그때 2시 앞마당에 올려놓은 오버로드가 마린메딕부대의 전진을 감지했다.
입구에서 뿔뿔히 흩어져 나오는 마메부대는 고수테란들의 부대와는 달리 오합지졸이었다.
그 오합지졸 부대가 석양의 그림자같이 긴 행렬을 맵의 중앙에 드리우고 있었을 때
건호의 작전이 시작되었다.
~~~~
‘후두두두둑!!’
아수라는 무척이나 놀랐다.
‘후두두두둑!!’
버로우한 저글링이 2부대가 양쪽에서 튀어나왔다.
동시에 테란기지 앞 미네랄 멀티에 버로우한 3번째 부대도 테란의 입구로 달렸다.
‘으아아아악!!’
아수라의 마메부대는 비명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저글링에 전멸했고
테란의 입구는 그대로 열렸다.
그때부터 테란의 본진은 바로 저글링 3부대의 피습을 받아 불바다가 되기 시작했다.
~~~~
아수라의 놀란 표정을 본 아나이스는 고통 속에서도 신이 났다.
"하하 안 되나 보지?!! 꼴좋다 못생긴 폭탄아!!!......
넌 이 아이의 상대가 안 된다니까……!!"
~~~~
건호 저그의 본진에서 저글링을 계속 러시하여 테란의 본진을 바로 초토화시켰다.
럴커나 뮤탈 무엇도 필요 없었다.
그리고 결국 테란은 불타는 커맨드 센터를 공중에 띄워야만 했다.
‘거저먹기다’
라고 건호가 생각했다.
상대의 본진을 유린하는 현재의 상황까지 아무런 제약도 없었다.
그러면서 건호는 맞은편에 앉은 아수라의 얼굴을 주시했다.
그런데 그때 아수라는 웃고 있었다.
Pause
그때 아수라는 메뉴에서 Pause를 눌러 게임을 정지시켰다.
그러더니 아수라는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확실히 잘하는군. 반드시 두 번째 스킬을 입력해야 이길 수가 있겠군."
"……?"
"그리고 테란 바이오닉 무척 까다로워 테란이 저그한테 유리하다는데 나한텐 힘들어
그래서 지금은 첫번째 기술로 내가 지지는 않겠지만 지루해질 거야
좋아 첫 번째 판은 내가 졌다고 해두지"
GG
라고 아수라의 채팅메시지가 떴다.
‘여유?’
아수라는 의아해하는 건호의 얼굴을 무척이나 즐겁게 바라보면서 자리에서 떠났다.
건호는 무의식적으로 게임의 Pause를 풀었다.
이미 게임은 끝난 상태였다.
그러나 Pause가 풀린 게임의 상태를 보고 건호는 놀랐다.
화면이 바뀌어 있었다.
방금 전의 테란의 건물을 신나게 부수던 화면은 사라지고
테란의 본진은 안개에 쌓여 있었다.
그리고 건호의 저글링은 중앙에서 얌전히 버로우 하고 있었다.
게임은 약
2분전의 과거상태로 되돌아가 있었던 것이었다.
~~~~
건호는 리플레이 파일을 보고 있었다.
건호가 마메를 모두 둘러치기로 몰살시킨 것은 6분23초의 일이었다.
그리고 테란의 본진에 난입하여 분명히 커맨드센터까지 띄우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대 갑자기 리플레이 파일의 화면이 바뀌더니
테란의 본진은 멀쩡한 상태에서 마메를 모으는 상태의 화면을 보여주고 있었고
건호는 저글링을 모으고 버로우를 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 상황은 약 2분여 전의 것이었다.
아수라는 명백히 게임의 시간을 움직인 것이었다.
"사실 나와 비슷한 실력의 녀석들에겐 꽤나 무서운 기술이지"
"……"
"그런데 너한테는 그것으로 승부를 낼 수가 없을 것 같군"
그 말과 함께 아수라는 허공에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 주문은 건호의 가청주파수 너머에 있는 것이었다.
주문이 끝나자 아수라의 주위에 오로라가 하나 피어올랐다.
"자 바로 2번째 판 시작하지"
아수라는 자신에 찬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건호는 이유 없이 불안해졌다.
이미 아나이스에게서 범상치 않은 악마들의 스킬에 놀랐었지만,
방금과 같이 게임을 시간을 조정한다는 것은 쉽사리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2분전으로 게임 상황을 되돌리는 스킬 이외에 또 하나의 스킬을 입력했다.
아수라는 저그를 선택하였고
이번에도 건호는 랜덤을 선택하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관전을 하고 있던 검은 망토의 사내는
능력치 측정기의 변화에 주목했다.
Asura
total rating power 1123
unique skill : 2
우선 저그를 선택한 아수라는 테란일 때보다
높은 게임능력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스킬이 1(+1)에서 2가 되어 있었다.
지체 없이 게임을 시작하였다.
~~~~
건호는 2시 프로토스가 선택되었다.
일반적으로 저그상대로의 프로토스는 꽤나 좋지 않지만 지금은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은 아무래도 실력차이가 많이 나고 하드코어가 먹히면 오히려 초반에 게임을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하드코어 질럿러시를 성공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건호는 상대의 알 수 없는 새 기술이 시전되면 아무래도 불리하다고 생각했다.
프로브는 곧 저그 본진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6시 저그였다.
건호의 1프로브 1질럿이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수라는 테란일 때보다는 훨씬더 세련된 대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바로 앞마당을 먹지 않고 본진에 해처리를 먼저 지은 것이었다.
앞마당에서 불안하게 수비하느니 공격적으로 본진2해처리에서 시작하여
멀티를 하자는 의도였던 것 같다.
3분 00초 프토 3질럿 1프로브 러쉬 저그 스포닝 완성
3분 30초 저글링과 질럿 입구 공방전.
4분 00초 공방전 후. 3질럿 2프로브로 저그 입구 봉쇄
하드코어 질럿과 저글링의 한판승부가 오고갔다.
건호는 아수라의 저그실력이 보다 높은 것에 놀라면서 하드코어로 저그를 압박해 들어갔다.
나름대로 피튀기는 공방이 오고갔다.
건호도 질럿을 잃었다.
허나 저글링과의 공방전 후 저그의 입구를 완전히 틀어막을 수 있었다.
양편의 질럿과 저글링은 계속해서 저그의 입구로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5분01초 8질럿2프로브 16저글링 입구에서 대치.
팽팽한 상태였다.
추가질럿과 추가 저글링이 입구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이대로 저그가 앞마당을 확보하기 힘들게 되다면
승기는 분명하게 프로토스에게 있었다.
건호는 테크를 위해서 가스를 채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 게임이 정지되었다.
Pause
그리고 게임이 정지됨과 동시에 건호는 놀라운 상황을 체험하게 되었다.
"!!"
순간 건호의 주위는 검은 무지가 되어 있었다.
이것은 분명히 새로운 기술의 시전이었다.
건호는 재빨리 게임의 resume를 눌렀다.
그러자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위기가 다가왔다.
~~~~
‘푸하악푸하악푸하악푸하악 ’
다시 게임화면으로 돌아가자 갑자기 건호의 질럿은 힘없이 파괴되기 시작했다.
‘레인지 공격?’
그것은 히드라의 등뼈(속칭 침)공격이었다.
6마리였다.
분명히 건호는 변한 것이 없었다.
여전히 자신의 질럿은 8기이고 자원도 변함이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난데없이 나타난 상대의 히드라가 언덕밑의 자신을 타격하고 있었다.
건호는 놀랐다.
상대의 저글링 숫자도 오히려 더 불어난 것 같았다.
드디어 저그는 저글링을 앞세우고 히드라가 백업하면서 입구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동안 히드라는 더 추가되고 있었다.
상당히 많은 수의 저글링과 히드라가 질럿을 몰아내자
어쩔 수 없이 질럿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후퇴하는 도중 건호의 질럿은 대부분 사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조금 후 히드라의 발업이 완료되었다.
"이 비겁한 아수라…… 비겁한 녀석아!!"
아나이스가 악다구니를 했다.
건호에겐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현상황에 대한 분석과 물결처럼 달려오는 히드라의 행렬에 신경 써야 했다.
하드코어 질럿러시를 하던 건호에겐 가스는 있었지만 포지는 없었다.
건호는 컨트롤로 저글링의 숫자를 열심히 줄이면서 언덕으로 후퇴하였다.
그러나 이미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히드라는 속속 추가되고 있었다.
건호는 여러가지 컨트롤로 2분여를 더 버텼지만 결국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건호가 분석한 아수라의 2번째 스킬은 그것이었다.
상대의 게임시간 정지시키기
건호는 분한 마음에 끝까지 GG도 누르지 않고 그대로 엘리당했다.
~~~~~~~~~~~~~~~~~~~~~~
5편 예고
2번째 판의 리플레이를 분석하는 건호.
아수라는 2분간 상대의 게임시간을 멈출 수 있다.
과연 파해는 가능할까?
* 박진호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05-18 01:15)